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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64화 (64/227)

제 64 화 천년제일

“땡....”

아득한 종소리가 천촉봉의 하늘에서 울리며 오래도록 맴돌았다.

곧이어 아무 감정도 없는 노쇄한 목소리가 외문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에 들려왔다.

“종문의 시험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모든 제자들은 두 시진 후 연무전에 집합하여 천촉봉 내봉으로 갈 것이다.”

란 장로의 목소리였다.

천촉봉 외문의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순우연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졌으며, 보통 천촉봉 제자들의 지도는 모두 그가 떠맡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종문 시험 참가 자격을 얻은 거의 모든 제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종문의 시험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엽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도 없었고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연무전을 향해 나아갔다.

가는 길에 수많은 황포 제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엽운을 보고 걸음을 늦추며 저도 모르게 쳐다봤다.

그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부러운 표정을 지었고, 어떤 이들은 질투하는 표정을 지었고, 어떤 이들은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고 심지어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의아한 표정이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은 공통적으로 이 신입 제자 녀석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엽운이라는 녀석은 분명 연체경 5중의 수위로 연체경의 정점을 넘보는 주먹을 날렸던 녀석이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엽운 사제.”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의 풍경을 보고있는 사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곤 웃음을 지었다.

“남사형, 오늘은 시련전에 앉아있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앞쪽에서 남성이 나타나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 각 사, 각 전의 제자들도 수련을 해야 하는데, 어찌 매일 시련전에 당직을 서겠느냐.”

“그건 그렇죠. 남사형께서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영석을 두둑하게 챙겨주는 좋은 임무라도 있나보군요.”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대답했다.

남성은 양 옆을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당직을 서는 날도 아니고, 뭐 그냥 지나가다 엽운 사제를 마주친 것뿐이야. 연무전으로 가는 길이겠지. 마침 같은 길이니 같이 가면 되겠군.”

“아. 남사형께서는 흑포 제자이시니 이번 시험에는 참가하지 않으실텐데, 설마 어떤 특수한 자격으로 이번 종문 시험에 참가하게 되신 겁니까?”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남성은 시련전의 제자이니 분명 이번 시험에 참가할 리 없지 않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고, 단지 사적인 일로 연무전에 가서 사형 한분을 찾아뵙게 되었는데, 마침 길을 가다 엽사제를 만난 것이다. 같이 가도록 하지.”

“그렇게 하시지요. 마침 잘됐네요. 가는 길에 남사형께 시험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여쭈어 보면 되겠군요.”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청하는 동작을 취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던 남성은 엽운을 한 번 훑어보곤 별안간 멍해졌다.

“엽사제, 통규경을 돌파한 거야?”

“이제 막 돌파했습니다. 남사형께서는 과연 머지않아 진기를 가다듬을 분답게 한눈에 알아보셨군요.”

엽운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엄청난 영력을 가졌음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내식경에 머물러 있을 때, 영력은 이미 일반적인 통규경의 제자도 막아낼 수 없을 수준이었고, 전력을 다해 공격할 때는 심지어 남성조차 손쉽게 제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수위는 통규경을 돌파했는데, 통규와 내식은 하나의 작은 경계에 지나지 않지만 영력의 차이는 보이는 것처럼 적지 않았다.

통규란, 말 그대로 전신의 수백 개가 넘는 혈자리를 모두 뚫어 모든 혈 하나하나에 영력을 모을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내식경과 비교하면 영력의 양은 적어도 다섯 곱절은 차이가 나며, 간혹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들은 심지어 열곱 절이 넘는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엽사제, 이번에는 혈을 몇 개나 뚫었는지?”

그는 몹시 궁금했다.

비록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정말로 알고 싶었다.

“몇 개의 혈을 뚫었냐구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소흡성결의 도움으로 영력이 맹렬히 솟구쳐 들어왔고, 아무래도 그 순간 온 몸의 혈자리가 모두 열려 영력이 주입된 듯 했는데, 몇 배나 강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남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어서 말했다.

“내식경에서 통규경으로 넘어갈 때, 일반적으로 그 순간 전신의 혈 가운데 30개에서 40개 정도가 열린다. 이어서 영력의 성장에 따라 나머지 혈들이 열리며 도합 350개의 혈이 모두 열리면 수위가 통규경의 정점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어서 세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보통은 삼사십 개가 열리는게 다입니까?”

“그렇지도 않아. 어떤 천재들은 쌓여있는 영력이 많아서 통규경에 달하는 동시에 50에서 60개, 심지어 7~80개 까지도 뚫리는 경우가 있지. 우리 천검종에 최고로 걸출한 제자 한 명은 한번에 99개의 혈을 뚫었다고 하는데, 천년 동안 이런 사람이 딱 하나 나왔다고 하더군.”

남성은 고개를 저으며 느릿느릿 말했다.

“99개요?”

엽운은 먼 곳을 바라보며 정신을 체내에 집중시켜 자신이 대관절 몇 개의 혈을 뚫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영력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와 이미 열린 혈자리를 향해 솟구쳤다.

영력이 주입된다면, 그 혈은 열린 셈이다.

통규경에 도달했을 당시에는 몇 개의 혈을 뚫었는지 주의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저 어렴풋이 온몸의 혈이 전부 뚫린 것 같았고, 흑백 빛이 뿜어낸 간결하고 순수한 영기가 몸의 모든 혈 자리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는데, 족히 수백 개는 넘는 것 같았다.

만약 그 혈을 모두 뚫은 것이라면, 남성이 말한 천검종 천년 이래 가장 뛰어난 천재를 아득히 뛰어넘은 셈이다.

마음을 가라앉혔다.

잠깐 사이 엽운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전신 350개의 혈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뚫려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만약 99개의 혈을 뚫은 사람이 천검종 천년 이래 가장 걸출한 제자라면, 통규경에 달함과 동시에 전신 350개의 혈을 모두 뚫은 사람은 무엇이 되는가?

요괴 중의 요괴? 아니면 괴물인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엽운은 크게 놀랐다.

통규경을 돌파함과 동시에 전신의 혈을 모두 열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지금껏 진정한 공법을 연마해 본 적도 없고, 기초 심법에는 연체경의 각 경계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기록 되어있지 않고, 설령 언급한다 해도 일언반구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잡역 제자로써 그의 수중에는 종문 법규가 쓰여 진 책 한권 밖에는 없었고, 그 외에 어떤 책도 읽을 기회가 없었기에 연체경의 일곱 경계에 대해서는 띄엄띄엄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예를 들어 통규경이라 하면, 그저 온 몸의 혈이 뚫려 더 많은 영력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는 정도만 알았다.

엽운은 생각했다.

남성이 몇 개의 혈을 뚫었느냐고 물었다는 것은, 자신이 통규경에 달했다는 것만 꿰뚫어 볼 수 있을 뿐, 몇 개의 혈을 뚫었는지 까지는 알아차릴 수 없다는 뜻이다.

“남사형, 저도 제법 많이 뚫은 것 같습니다.”

“아, 몇 개나 뚫었는데? 50개? 작년에 어떤 사형께서 통규경에 달하셨을 때 53개를 뚫었는데, 시련전 은 장로의 눈에 띄어 흑포를 하사받았다지.”

남성은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한 눈으로 다급히 물었다.

엽운은 눈을 깜빡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마 60개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남성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곧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엽운의 어깨를 두들겼다.

“엽 사제. 이번 종문 시험은, 결국 살아남는 게 중요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분명 머지 않아 자색 노포 제자가 될 것이고, 심지어 빠르게 수위를 올려 내문 제자까지도 넘볼 수 있을거야.”

엽운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연무전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그렇게 되길 바래야지요.”

연무전의 광장에는 종문 시험의 참가 자격을 받은 100명의 제자가 모두 모여 있었다.

“좋아. 모두 모였군. 보아하니 종문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 한시도 지체하기 싫은 모양이구나. 이것이야말로 천촉봉 외문 제자의 귀감이다. 그럼 바로 출발해 보도록 하지. 천촉봉의 내봉으로 들어간다.”

천촉봉의 내봉은 연무전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데, 은은한 구름으로 뒤덮인 봉우리였다.

그곳은 천촉봉 고위층과 내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천촉봉 대부분의 자원과 힘은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는 신비로운 진법이 걸려있어, 진 안이 무수히 많은 상품영석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봉 전체에는 외문에 비해 적어도 열곱 절은 넘을 만큼 영기가 충만했다.

수위가 연기경에 달하면 천지의 영기를 곧바로 흡수해서 연화시킬 수 있기에, 외문 제자들 처럼 영석에 의존하여 수련하지 않아도 된다.

영석은 자원이고, 따라서 유한하지만, 천지의 영기는 무한하다.

비록 여러 가지 요소들 때문에 천지의 영기는 영석에 담긴 영기만큼 순수하지 않지만, 애써 몸속으로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

숨을 쉴 때마다 영기가 몸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매 순간순간이 수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기를 다루어 연기경의 수위에 도달하는 것이 진정한 수선의 길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천촉봉의 내봉에는 무수히 많은 상품영석을 쌓아 진안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족히 근방 천백리 안 천지의 영기가 이 봉우리에 모이게 된다.

영기의 농도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에서의 수련은 자연스레 사반공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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