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화 충돌
엽운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소흡성결을 손에 들고 장무각의 문을 나섰다.
여명홍은 엽운을 보더니 곧 바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왔다.
“엽운 사형, 어찌 잘 고르셨습니까?”
“뭘 고른게냐?"
단진풍의 시선이 그를 휙 훑었다.
“소흡성결? 보조 공법?”
단진풍은 멍해져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냈다.
‘보조 공법 하나만 골랐다고?’
곡일평 등의 사람들은 가까이 오진 않았지만 단진풍이 하는 말을 듣고 멀리서 들고 있는 고서를 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사형, 어찌 이런 공법을 택하신 건가요?"
여명홍 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 엽운을 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진 엽운이 급박한 마음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좀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골랐다.”
엽운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주위 제자들 중 몇 명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출신이 너무 평범하고 식견도 부족하여 비로소 이런 공법이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느꼈다.
"어차피 상관없다. 이 장무각 1층은 죄다 지극히 평범한 공법 밖에는 없으니.”
단진풍의 건방진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곧바로 종문 시험에 참가하게 될 것이고, 돌아온다면 2층에 들어갈 수 있겠지. 아무거나 골라도 이런 공법보다 백배는 더 나을걸.”
단진풍의 말을 듣고 있던 몇 제자들의 눈에 기대감이 드러났다.
이번 시험에서 살아 돌아 올 수만 있다면 검은 도포를 입을 뿐 아니라 풍부한 자원을 상으로 받을 것이다.
연기경을 돌파할 날도 멀지 않게 되니, 반드시 더 높은 공법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 음험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찮은 놈들이, 종문 시험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다니? 그리고 2층까지 올라가 공법을 고르기를 원한다니. 정말 주제를 모르는군. 이 장무각 2층에 올라가는 게 그리도 쉬울 줄 아느냐?”
“누구냐?”
단진풍이 크게 노했다.
엽운은 문득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는데, 뒤에 어느새 두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자색 도포의 제자들이다.
자기도 모르게 살짝 움츠러 들고, 주위의 여명홍 등 다른 이들은 더욱 긴장하며 조심스러워졌다.
천촉봉의 외문 제자에게도 등급의 구분이 있는데, 가장 낮은 제자는 바로 신입 제자들이다.
다음이 경력이 부족한데다 천부적인 재능도 지극히 평범한 청색 도포의 제자들,
그 다음으로 약간 뛰어난 황색 도포의 제자,
그 다음에 각 전의 각 당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흑포 제자로, 바로 남성 등이 이에 속했다.
마지막은 천촉봉 일부 장로들의 문하생으로 수위도 이미 연기경에 이른 자색 도포 제자들이었다.
모든 자색 도포 제자들은 천촉봉의 잡무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장무각 2층에 올라가 마음대로 공법과 선기를 골라 수련할 수 있고 그 지위는 대단했다.
할 일은 오직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뿐이었다.
무영봉 아래 각 산에서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나올수록 이듬해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 받을 수 있고, 무영봉에서의 지위가 더 높아진다.
그래서 천촉봉과 비슷한 거의 모든 봉우리에서는 정성을 다해 이런 자색 도포의 제자들을 키우려 했다.
아무리 날뛰고 제멋대로 굴어도, 성질이 괴팍해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종문의 지위와도 자원 배분과도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자색 도포를 입은 외문 제자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엽운의 표정은 잔잔해 보였지만 단진풍은 상대방이 입은 자색 도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차갑게 웃으며 말한다.
“너희는 또 뭐하는 놈들이냐?”
‘뭐하는 놈들이냐고?’
단진풍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두 자색 도포 제자들의 뺨을 매섭게 때리는 것만 같아 모두가 멍하게 있었다.
갑자기 너무 조용해져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였다.
연기경에 달한 자색 도포 제자들 앞에서도 단진풍이 안하무인격으로 이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뛰어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건지 멍청하기 짝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후자에 가까웠다.
“좋아, 아주 좋아. 이번 신입 제자들은 정말 제법인걸, 감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녀석이 있다니.”
자색 도포를 입은 제자 하나가 어리둥절해 했다.
눈에 놀라운 기색과 함께 살기가 번뜩였다.
“견 사형, 이런 하찮은 놈들과 입씨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며칠 지나면 종문 시험을 치러가 돌아올 수 없을 겁니다.”
다른 한 사람이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견 사형은 그 말을 듣더니, 눈에 보이던 살의를 점점 거두었다.
“그건 그렇지. 이 녀석들을 죽여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천촉봉은 문규가 삼엄하여 자색 도포의 제자라도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었다.
목숨을 건 결투를 하려면 반드시 종문의 허가를 받은 후 연무 경기장에서 진행해야 한다.
절차에 따라, 상대를 죽이게 되면 설령 당신이 자포 제자의 신분으로 청포 제자를 죽였다 하더라도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번 종문 시험이 아주 성대하다고 들었는데, 너희는 왜 가지 않는 게냐? 아, 너희들은 수위가 낮고 잠재력도 그저 그런 모양이구나.”
단진풍은 자색 도포 제자들에게 끝까지 비아냥거리며 귀찮게 굴었다.
“입을 아무렇게나 놀리는 걸 보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고작 청포 제자 하나 죽였다 해서 종문이 나를 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견 사형은 갑자기 몸을 돌려 버럭 화를 냈다.
또 다른 자색 도포 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엽운을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견 사형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노기는 반쯤 사라졌다.
“네가 엽운이냐?”
고개를 돌려 엽운을 보며 물었다.
엽운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를 안다. 이번에 신입 제자 시험에서 1등을 했음에도 그 어떠한 선기조차 부릴 줄 모르고, 기초 심법을 수련한 게 전부인데다 변방에서 왔다지. 너는 잠재력이 매우 크고 앞으로도 무한할 것이다”
견 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네 체면을 봐서 이 자의 잘못을 묻지 않으마.”
엽운은 안색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답례를 했지만, 마음속은 밝아졌다.
분명 칠 장로 때문에 이러는 것임을 알았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칠 장로에게 미움을 살까봐 몹시 걱정됐던 것이다.
언쟁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자, 단진풍은 오히려 큰 소리로 냉소하기 시작했다.
“나의 잘못을 묻지 않겠다고? 네가 뭔데?”
견 사형은 이미 돌린 몸을 다시 천천히 되돌렸다.
“네 이름을 남겨라. 돌아오면 이 단진풍이 너를 찾아 생사를 결정하겠다.”
단진풍의 목소리는 칼같이 차가웠다.
이 한 마디에 광기는 전혀 없었지만, 자신감과 거만함이 가득했다.
“나는 견화성이다.”
자색 도포 제자는 불쾌한 듯 눈에 분노와 살기가 가득 찼다.
문규의 제한이 아니었다면, 또 엽운과 칠 장로가 신경 쓰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진작에 단진풍을 혼내주러 나섰을 것이다.
냉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떠났다.
여덟 사람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빤히 보며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양운송 등 사람들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이 자색 도포의 제자는 엽운을 약간 껄끄러워 하는 눈치였지만, 그들 여덟 명을 모두 한 무리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멍청한 척을 하려해도 그렇지, 일부러 저런 상대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잖아?"
엽운은 단진풍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 너무 건방지단 말이야. 내가 굳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우리한테 잘해주진 않았을거다.”
단진풍은 웃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엽운을 보며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진천한을 자극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이것보다 더 심했을걸.”
진천한의 이름을 듣자 얼굴이 약간 굳었다.
확실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연기경까지 돌파한다면, 설령 진천한 같은 상대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더 말하지 않고 장무각 대문 한쪽의 등록소를 향해 갔다.
공법과 선기는 장무각내에서 절대 열람할 수 없고 그곳을 떠나야만 뒷장을 펴볼 수 있었다.
또 떠나기 전에 장무각의 수위 제자들에게 검사를 받아야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