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화 선경
“정말 겁도 없구나. 칠 장로께서 하사하신 영액까지 넘보려 하는 것이냐?”
군중 속에서 또 냉소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낸 사람은 남성이었다.
“칠 장로?”
“영전의 그 이상한 장로?"
“엽운이 그 분이랑 무슨 상관이야?”
순간, 숨을 내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다들 저도 모르게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칠 장로는 실성했지만, 신분이 아주 특별하다고 들었다.
여러 해 동안 천촉봉에서 칠 장로를 직접 본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다만 칠 장로가 정신이 나갔고 성결이 괴팍하다는 소문만이 무성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되면 정말이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놀랍게도 어떤 장로께 영액을 받은 모양이구나, 어쩐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더라니."
시합장 위, 아래의 떠들썩한 소리를 들은 단진풍은 눈빛을 번뜩였다.
“엽운, 앞으로는 그렇게 운이 좋진 않을 거다.”
엽운은 음산하기 그지없는 표정의 단진풍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여 말했다.
“인정하지.”
이때 마음이 매우 밝아졌다.
싸움의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단진풍은 완전히 순풍에 돛을 단 배 같았다.
자신의 공격이 엽운의 수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호의를 베풀어 모른 채 해준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
“흥!”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합장에서 내려왔다.
단진풍과 엽운, 시합장 아래의 많은 제자들은 이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온몸에 영기를 휘감고 있는 자와 맞서, 결국 엽운이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신입 제자 시험의 1등은 엽운이고, 2등은 단진풍이다. 여명홍과 유운송이 공동 3위를 차지했고 나머지 4명은 5등에서 8등까지다.”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란 장로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한 시진 정도 후에 외문 제자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순우연 장로와 다른 장로들이 참관 할 것이며, 8등까지의 신입 제자들은 나를 따라 장무각에 가서 공법과 선기를 고르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진정한 수선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란 장로는 엽운 등을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란 장로님 감사합니다!”
모두 몸을 굽혀 인사했다.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했다.
그들은 온갖 고난을 다 겪었고, 잡역 제자가 되어 갖은 핍박을 받았다.
드디어 시험을 통과해 천촉봉의 외문 제자가 된 것이다.
이 제자들이 하게 될 일은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선기를 얻는 것이다.
비록 단진풍과 곡일평 같은 사람들은 가문에서 선기를 익히지만, 일반 가문의 공법과 선기를 어찌 천검종에 비할 수 있겠는가?
천검종은 진나라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수선대파로, 장무각 안에 무수한 선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9급, 8급 선기는 너무도 많아 이루 헤아릴 수 없고, 설령 왕실이라 하더라도 천검종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단진풍과 곡일평은 모두 8등 안에 들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다.
만약 장무각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 선기와 공법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하늘이 내린 복이었다.
“너희들은 따라 오거라.”
란 장로는 기쁨에 차 있는 여덟 사람을 보곤 소매를 가볍게 흔들었다.
구름 같은 안개가 란 장로의 옷소매에서 피어오르더니, 여덟 명의 발밑에 뭉쳐 은은히 감돌았다.
엽운은 발밑에 구름이 갑자기 요동치는 것을 느끼자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란 장로의 인도 하에 천촉봉의 내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기비행, 이것은 바로 연기경 후기에 이르러야만 쓸 수 있는 신통이다.”
곡일평은 이제서야 정신을 좀 차렸다.
잠깐 동안, 란 장로는 여덟 명을 데리고 천촉봉 위쪽의 짙은 안개 속으로 올라갔다.
엽운 등은 그저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적응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내려와 눈앞이 환해졌다.
장무각!
금색의 큰 세 글자가 보탑 모양의 건물 위에서 은은한 금빛을 뿜고 있었다.
장무각은 모두 7층으로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외벽은 이름 모를 빨간 재료를 쌓아 만들었는데, 옥처럼 은은하고 투명해서 매우 아름다웠다.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장무각이다.”
란 장로는 진기를 거두고 여덟 사람은 나란히 몇 장 높이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이곳이 우리 천검종의 장무각인가?”
눈앞에 약 백장 높이에 달하는 장무각을 본 단진풍의 눈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천검종? 이건 천촉봉의 장무각이다.”
란 장로는 힐끗 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이곳이 천촉봉의 장무각이란 말입니까? 천촉봉은 약을 채취하고 재료를 수집하는 곳이니 선기와 공법도 아마 채집술과 단술을 연마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겠군요. 아쉽네요. 정말 아쉬워요.”
단진풍이 고개를 저었다.
“무식하기 그지없구나. 너희는 우리 천검종이 몇 개의 9품 선기를 갖고 있는지 아느냐? 무려 10만 개다. 이 정도 등급의 선기는 종문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므로 아무것도 아니다. 천검종에는 모두 다섯 개의 장무각이 있는데, 각 1층에 저장된 9품 선기는 완전히 똑같은 것으로 무려 10만개를 가뿐히 넘는다. 너희들이 각자에게 맞는 공법과 선기를 고르지 못할까 걱정 될 지경이지.”
란 장로의 말소리에서 불쾌감이 느껴졌다.
그는 그냥 단진풍이 오만하고 우둔하기 짝이 없다고 느꼈다.
9품 선기는 신입 외문 제자들의 눈에는 아주 진귀한 법문이지만 란 장로 같은 외문 고수들의 눈에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
수위가 연기경을 돌파하면 2층에 들어가 8품, 7품 선기를 고를 수 있다.
란 장로는 7품 선기를 세 개나 익혔다.
조금 더 나아가 축기경에 달하면, 3층으로 올라가 6품과 5품 법문을 고를 수 있게 된다.
9품 공법은, 가장 기본적인 법문일 뿐이었다.
“자 이제,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장무각에 들어가서 공법을 고르도록 하겠다. 장무각에 들어가서는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 하거라. 한 시진을 주겠다. 반드시 꼼꼼히 살펴보고 자신에게 맞는 공법을 찾아야만 앞으로의 수행에 적은 노력만으로도 큰 성과를 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란 장로는 여덟 사람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장무각 1층의 앞으로 걸어갔다.
“제자 란송항은, 8등까지의 신입 제자들을 데리고 공법을 고르도록 할 터이니, 수호 장로님께서 허락해주시길 바랍니다.”
란 장로는 금빛 찬란한 대문 앞에서 몸을 굽혀 절을 올렸다.
“들어 오거라.”
노쇠한 목소리가 금색 대문 뒤에서 들려왔다.
있는 듯 없는 듯 했지만 모두의 귀에 또렷이 울려 퍼졌다.
삐걱!
금색 문이 천천히 열리자 이가 시큰해지는 소리가 났다.
더 할 나위 없이 넓고 큰 공간이었다.
엽운 등이 장무각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무수한 책들이었다.
책마다 붉은 빛에 쌓여 공중에 떠 있었다.
그런데 장무각의 1층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굉장히 높긴 했지만 밖에서 볼 때, 층의 지름은 커봐야 열 장 남짓한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안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그 안의 공간은 너무나도 커, 열 장은 커녕 한 눈에 이 곳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진법!
공간 진법이었다!
엽운 등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은 안에 이렇게 거대한 공간 진법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접한 적도 없었고, 현재의 경지로는 수련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공간 진법은 너무 유명하고 또 실용적인 것이라,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고서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상세하게 기록도 되어 있었다.
공간 진법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라면 적어도 수선의 세 번 째 경지에 달했을 것이다.
축기경 쯤은 되어야 기초를 닦고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수미개자와 같은 대진을 배치하려면 수위가 적어도 금단경에 달해야 했다.
헌데 천검종 전체에서, 천하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금단경수사가 몇이나 될까?
어쩌면 하나도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어떻게 진나라의 외진 곳에 종을 세워 무려 천년이나 버틸 수 있었겠는가?
천검종에 막 도착했을 때, 고통의 땅에서 온 소년들은 모두 엽운과 똑같았다.
진나라가 바로 천하제일의 대국이고, 천검종은 최고의 종문이니, 진나라의 왕실조차 와서 공물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쓴 진나라의 역사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진나라 밖에도 많은 나라가 있었고, 심지어 어떤 나라들은 너무나 강대해서 거대한 수선 종문에도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은 뜻밖에도 공간 진법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매우 강력한 공간 진법이다.
한 동안 넋이 나갔던 제자들 몇 명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앞의 공법을 향해 달려갔다.
엽운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 빨리 뛴다고 거머쥘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이 공법들을 이용해 금단 수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드시 이곳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공법과 만족스러운 선기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게 움직여도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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