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56화 (56/227)

제 56 화 보물을 드러내다

시합장 아래 곡일평의 안색은 완전히 바뀌었다.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마음속에 담긴 말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벌써 통규경에 도달한 것이지!”

“내 일격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단진풍의 말소리는 아주 침착하고 느렸다.

목소리에서 조금의 거만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엽운의 눈빛은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희미하게 빛났다.

이때 단진풍의 태도가 어딘가 묘하게 느껴졌다.

이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 듯 하고 동시에 한 방에 때려 죽일까봐 걱정도 되는 것 같았다.

눈동자에 나타난 미세한 표정 변화는, 마치 엽운에게 중상을 입혀 짧은 시간에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들어 다음 종문 시험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만, 단진풍이 무엇을 감추려고 하든, 무엇을 하려고 하든, 그가 원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속이려 하든, 진실을 말하려 하든, 협조해 줄 생각이다.

엽운은 차갑게 웃으며 일부러 큰 소리를 쳤다.

“얘기 끝났나? 공격은 안 할 샘인가?”

말투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눈앞에 통규경을 드러내고 각자의 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영기를 쥔 수사가 있는 게 아니라, 그보다 두 단계 아래 수사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단진풍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두 손에 있던 흑백의 빛이 또 뭉치더니 “쾅” 하는 폭발음을 냈다.

모두 눈을 뜨기 어려웠고, 어렴풋이 뜨거운 태양에 엽운이 이미 삼켜진 것처럼 보였다.

엽운은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속으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력이 몇 배나 강해진 영력을 마주해도 전과 다를 바 없이 두 손을 몸 앞에 두었다.

한바탕 고함 소리 속에서, 모든 이들은 엽운의 몸이 거대한 힘에 의해 솟구쳐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봤다.

그의 몸은 공중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며 순식간에 10장이 넘게 날아갔다.

멀리 있던 남성마저 안색이 완전히 바뀌었고, 이 충격으로 죽지 않더라도 최소한 중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사실 엽운이 왜 아직도 항복하지 않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가 겪어본 엽운은 이해득실을 따질 줄 알았지만, 고작 이익에 눈이 멀어 목숨을 버릴 사람은 아니었다.

“설마…”

허공에서 아직 떨어지지 않은 엽운을 보며 눈동자 깊은 곳에 한 가닥 이상한 빛을 띄었다.

“응?”

단진풍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곧 그의 눈에 다시 충격이 가득해졌다.

가장 가까이서 봐도 피를 토한다거나 하는 중상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쉭…”

순간 냉기를 몰아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의 제자들은 엽운이 떨어지는 순간 몸을 가다듬어 머리를 위로, 다리를 아래로 한 채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지만, 입가에 피가 스며드는 것 외에는 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펑!”

두 발로 착지하곤 살짝 기우뚱 하더니 곧 똑바로 섰다.

많은 제자들은 오히려 저도 모르게 몸이 흔들렸고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단진풍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고, 안색이 안 좋아졌다.

공격을 멈추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엽운은 몸을 낮추고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하하하하하.”

별안간 단진풍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제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이 웃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엽운의 미간이 씰룩 거렸다.

그는 단진풍이 눈짓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단진풍은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숨 쉴 틈을 너무 많이 준 것 같구나."

실소하는 소리 속에서 단진풍은 영력을 남김없이 솟구쳤다.

한 주먹에 이어서 또 한 주먹을 연거푸 휘두르며 치고 나갔다.

시합장 위에는 한 줄기 빛기둥만이 보였다.

빛줄기가 남긴 소용돌이를 따라 공간이 전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엽운의 몸은 마치 권법연습에 쓰이는 인형처럼 날아가고 또 떨어졌다.

단진풍은 무려 10여 차례에 달하는 공격으로 체내의 영기를 송두리째 털어낸 뒤 비로소 멈췄다.

“퍽!”

엽운의 몸이 땅으로 세차게 내리꽂혔다.

많은 제자들이 놀라 고함을 질렀다.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기 때문이다.

이때 엽운의 얼굴에는 혈색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꾸며낸 게 아니었다.

비록 체내의 흑백 빛이 영력 충격의 대부분을 흡수했지만, 설령 작은 힘을 연속적으로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이미 몸은 부서지기 직전이었고, 체내의 영력은 거의 고갈 된 상태였다.

"아직도 일어날 수 있다고?"

단진풍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얼굴 가득 스산한 살기를 띄며 콧방귀를 뀌었다.

손의 영기는 사라졌고, 두 가닥의 정갈하고 단아한 빛이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왔다.

상품영석 두 개를 손에 쥔 것이었다.

"상태를 보니, 내가 조금이나마 힘을 보충한 뒤가 네놈이 죽는 순간이 될 것 같은데?"

또 한번 냉소를 지어보이며 곧바로 상품영석 속의 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엽운은 왜 아직도 항복하지 않는 거지?"

아래에 있던 곡일평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엽운이 자신과 같은 특수한 사명을 가진 것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통규경은 영석을 흡수하고 정화하는 속도가 내식경보다 10배는 빠르다.

엽운의 영력은 이미 바닥났고, 설령 동시에 상품영석 두 개를 꺼내든다 해도 영력을 회복하는 속도는 단진풍과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엽운은 영력의 뒷받침 없이는 단 한 방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단진풍에 이 같은 움직임에도 엽운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있다 다시 청목단병을 꺼내들었다.

곧이어 청목단병을 열고 조심스레 입에 영액을 한방울 떨어뜨렸다.

술 냄새가 풍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엽운의 몸이 갑자기 맹렬히 진동하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몸속에서 마치 영력의 굉음이 울리는 것 같았다.

란 장로와 순우연 장로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은 충격으로 휩싸였다.

칠 장로쯤은 되는 괴물만이 이런 영액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엽운은 하늘이 뒤집힐 듯한 이 차가운 느낌을 마주하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조용히 몇 번 숨을 쉬고는 창백한 얼굴에 홍조를 떠올랐다.

“단진풍, 아직도 싸우겠느냐?”

천천히 단진풍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살짝 주먹을 쥐었다.

옅은 하얀색 빛이 그의 주먹에서 반짝였다.

마치 몸을 비추려고 하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영액이냐!”

“이렇게 빨리 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영액이 있다니!”

“황아회원단조차 이렇게 빨리 영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아래에 있던 대부분의 제자들은 당연히 엽운과 칠장로의 관계를 몰랐다.

이 기이한 효력을 본 제자들은 그야말로 미쳐버렸다.

현장에 장로들이 있지 않았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예컨데 황아회원단만 해도 그들이 감히 접할 수 있는 단약이 아니었는데, 이것은 그보다 몇 배나 강한 영액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여명홍의 눈까지 가늘어졌다.

눈빛이 몇 번이고 격렬하게 번쩍거렸고, 별안간 모든 이들이 펄쩍 뛰기 시작했다.

“이겼다! 엽운 사형이 이겼다!”

놀라움에 찬 목소리가 혼란의 틈에서 갑자기 울려왔다.

마치,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끔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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