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화 통규
“어떤가 엽운,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단진풍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엽운은 차갑게 그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항복하라고? 이렇게 영력을 써대면 너도 몇 번 공격 못할 걸?”
“그래?”
단진풍은 별 말 없이 다시 한 번 두 주먹을 날렸다.
밝게 빛나는 태양과 어둠이 숨어 있었다.
끊임없는 위세 속에 한 줄기 어두운 기운이 숨어 두 갈래로 공격해왔다.
연결된 두 공격은 휘황찬란한 태양의 뜨거운 불에 빠지게 할 수 있고, 동시에 경맥의 깊은 곳은 어두운 심연에서 온 기운에 침식되게 하여 겉과 속이 모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만들었다.
파도 같은 기세의 공격이 순식간에 엽운 앞에 날아왔다.
엽운은 전처럼 똑같이 두 손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주먹을 막는 두 손은 무력해보였다.
커다란 힘이 엽운을 날려 마치 거꾸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시합장 난간에 세게 부딪힌 후 공중에서 간신히 몸을 돌려 땅에 떨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니 상황이 더욱 나빠진 듯 했지만, 여전히 항복하지 않았다.
“아직도 항복하지 않으시겠다? 계속 고집 부리다간 뒤늦게 패배를 인정해도 너무 늦을 텐데.”
단진풍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계속 깊은 숨을 들이쉬며 기운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단진풍에게 공격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응?”
단진풍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이상한 빛을 번뜩이며 두 주먹을 다시 요란스럽게 부딪혔다.
대일유명!
기이한 기운이 다시 밝은 태양에서 나와 주먹을 휘감고, 순식간에 앞에 이르렀다.
엽운은 이미 가장자리로 몰렸기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창백한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어 세차게 뻗었다
손바닥에는 거대한 영력이 담겨 있었다.
어쨌든 흑백 빛이 있으니 대일유명권의 힘이 몸 안에 들어가도 괜찮았다.
이 선기를 자세히 느낀다면 앞으로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투 경험은 바로 이런 생사의 고비에서 깨닫는 것이다.
“아직도 반격하려 하다니, 죽고 싶구나!”
단진풍은 엽운의 두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력을 알아채고는 눈에서 매서운 빛을 번뜩였다.
“쾅!”
주먹과 손바닥이 맞닿자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엽운은 전처럼 충격에 날아갈 뻔했다.
하지만 난간에 등을 기댔기 때문에 날아가지 않고 몸을 세게 부딪쳤다.
만약 난간이 진법의 억제를 받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박살나 밖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엽운은 쓰러지지 않고 두 손으로 난간을 꼭 붙잡았다.
안색은 종이처럼 창백했지만 다시 똑바로 섰다.
대일유명권의 힘은 두 손을 비집고 체내로 들어가 다시 흑백 빛에 의해 흡수됐다.
그리고 그의 몸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의 공격으로 확실히 영력을 소모해 약간의 손실을 봤을 뿐이었다.
“단진풍, 네 영력도 많이 소모되지 않았나?”
창백한 얼굴에 한 가닥 웃음기가 나타났다.
단진풍은 어안이 벙벙했다.
비록 엽운의 실력이 높다고는 해도 그가 보기에 어떻게 해도 조금 전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아래에서 함성 소리가 이어졌다.
대일유명권의 위력은 흑포 제자들도 쉽게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고 연속으로 서너번을 막아내는 것은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경을 돌파할 수 있게 될 남성 같은 흑포 제자들조차도 서너번의 공격이라면, 설령 큰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일어서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엽운은 경기장에 멀쩡히 서있었다.
비록 안색이 창백해져 꼴이 말이 아니지만, 천천히 일어나 단진풍을 향해 걸어갔다.
단진풍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공격하지 않았다.
눈에 거센 빛이 번뜩였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널 얕봤군. 실력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구나.”
별안간 고개를 들고 엽운에게 말했다.
순간, 그의 기세가 완전히 변한 것 같았다.
눈에는 빛이 번뜩였고 마치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몸에서 “탁탁” 소리를 냈다.
“연체 6단계 통규경이다!”
“이건 연체 6단계 통규경이야!”
“어떻게 이럴수가!”
단진풍의 기운을 느낀 수십 명의 흑포 제자들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엽운은 멍해졌다.
거의 모든 제자들은 얼이 빠졌고, 란 장로 등의 눈에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진풍의 경지는 모든 사람들이 봤다.
비록 일반 외문 제자들에게는 잘 안 보였지만, 란 장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의 수위는 확실히 연체경 5단계 내식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온몸의 혈자리에서 “탁탁” 터지는 소리를 내며 수백 개의 혈구멍을 한꺼번에 뚫었다.
솟구치는 영력은 아무런 막힘없이 잘 통하고 있었다.
이는 수위가 통규경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일인데, 수련 기간이 오래되야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일반적으로 이제 갓 통규경에 이른 제자는 온몸에 수백 개의 혈 가운데 수십 개 밖에 뚫리지 않는다.
아무리 타고난 자질이 높다고 해도 100개를 넘기지는 못했다.
천검종을 통틀어 타고난 자질이 가장 훌륭한 제자라고 하면 모용무흔의 형인 모용무정인데 그가 당시 내식을 돌파하고 혈을 뚫어 통규경에 이르렀을 때도 99개 밖에 뚫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천검종에서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지금 단진풍은 순식간에 통규경에 이르러 온몸의 혈을 모두 뚫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뿐이다.
첫째로 절세의 천재인 모용무정을 뛰어 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주 오래 전에 이미 통규경에 이르렀지만 단지 란 장로 등의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 하게 비법으로 숨긴 것이다.
첫 번째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그럼 두 번째 가능성만이 남는다.
란 장로와 순우연은 서로를 쳐다봤다.
눈에는 충격이 가득했다.
그들의 수위로도 단진풍의 경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엽운, 아직도 내 주먹을 막아낼 자신이 있느냐?”
놀라움에 찬 환호 속, 평소 단진풍의 오만함은 온데간데 없이 절대적으로 냉정한 느낌이었다.
“이 녀석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군.”
사람들은 분명 엽운이 지금 매우 두려워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매우 냉정했고, 심지어 약간의 기대도 하고 있었다.
지금 단진풍의 영력은 배로 늘었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대일유명권으로 공격을 펼치면 흑백의 빛이 흡수 할 수 있는 양도 더욱 많을 것이다.
“와라.”
엽운은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이상하리 만치 간단하게 말했다.
단진풍의 미간에 깊은 그늘이 졌다.
하지만 그도 더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엽운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유명의 장갑과 태양의 장갑 모조품에서 수많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교차하였다.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다.
모든 빛은 비할 데 없이 또렷했다.
이 빛은, 좀 전의 빛에 비해 몇 배나 더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