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화 위장
엽운은 조용히 서있는데 표정도 숙연했다.
전혀 다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단진풍의 주먹 한 방에 담긴 위력이 얼마나 강한 지, 남성 같은 자들 조차 중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엽운은 이런 주먹을 가볍게 막아내고는 다치지도 않다니.
“이럴수가? 말도 안 돼.”
“환각이다. 이건 환각이야.”
“올해 신입 제자들의 실력은 정말 너무 무서운 걸.”
“엽운과 단진풍 같은 신입 제자는 반드시 종문 장로들의 수제자가 되겠지.”
“그건 아니지. 저들은 종문 시험에 참가해야 하니까, 살아 돌아올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어.”
남성의 눈에도 기대와 흥분이 일었다.
“엽운! 엽운! 역시 내가 잘못 보지 않았군.”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해도 엽운은 쉴 새 없이 눈빛을 번뜩였다.
방금의 주먹은 원래대로라면 엽운의 수위보다 두 배쯤 강해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연기경 극한에 달한 수준의 주먹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다.
엽운은 모용무흔 마저도 이 주먹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토록 강력한 주먹을 가볍게 막아냈다.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방금 두 주먹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순간 막아낼 수조차 없을 것 같은 힘이 단진풍의 흑백 주먹으로부터 자신의 팔을 타고 순식간에 몸속으로 들어왔다.
만약 이 힘이 그냥 몸으로 들어온다면 설령 몸이 흑백 빛에 의해 개조되었다 하더라도, 막아낼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엽운이 이 주먹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이유는 바로 단진풍이 공격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흑백의 빛이 나타나 매우 흥분한 듯 떨려왔기 때문이었다.
엽운은 흑백의 빛이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흑백의 빛이 떨려온 이유는 흥분했기 때문이 분명했다.
단진풍이 날린 주먹에는 흑백의 빛에 매우 유용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이 공격을 향해 주먹을 날린 것이다.
단진풍이 날린 주먹의 힘이 몸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에 있던 흑백 빛이 곧바로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해 주먹의 힘을 모두 끌어냈다.
순간적으로 주먹의 힘은 엽운에 의해 전부 흡수되었다.
흑백 빛은 손쉽게 빨아들여 순식간에 깨끗이 흡수해냈다.
비록 거대한 힘에 엽운은 거꾸로 날아갔지만, 조금의 상처도 입힐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마음속으로 기대했다.
단진풍이라면 주먹을 몇 백 번은 날릴 수 있을테니, 충분한 힘을 흡수하기만 하면 최소 한 달 간의 수련이 편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진풍 사형, 힘을 좀 더 써도 될 것 같은데.”
단진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진풍의 눈에 한 가닥 오묘한 빛이 번뜩였다.
“내 힘의 3분의 1정도면 너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안일했구나. 그렇다면 태양의 장갑과 유명의 장갑이 합쳐진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맛보게 해주마.”
그의 말투는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마음속으론 오히려 기대하며 한 치의 분노도 없었다.
“한 방 더 간다!”
커다란 목소리 속에서 영력이 다시 폭발하며 두 손으로 몰려들었다.
왼손에서는 검은 색의 빛이 꿀렁거렸는데, 그 빛은 죽음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수천 개의 빛이 끊임없이 번쩍이더니 단진풍의 옆에서 무시무시한 유명연옥으로 변했다.
그리고 오른손의 태양의 장갑 모조품도 하얀 빛을 발했다.
두 개의 전혀 다른 힘이 기이하게 융합하기 시작했다.
순간 흑백 주먹의 힘은 더 이상 나눠지지 않았고, 빠른 속도로 한데 어우러졌다.
헌데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흑백의 주먹이 합쳐진 후 어떤 이들은 순수한 검은색만이 보였지만, 온전히 흰색만을 본 사람도 있었다.
그 주먹은 때로는 눈처럼 하얗고 때로는 먹처럼 어두웠다.
자세히 보면 주먹의 힘이 흑과 백이 교차하여 변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일유명!”
단진풍은 숨을 내뱉으며 두 주먹의 힘을 모아 엽운을 향해 세게 날렸다.
이 주먹은 더 이상 예전처럼 흑백이 뒤섞여 있지도, 뚜렷한 경계가 있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옥처럼 하얀 주먹이 거세게 돌진하는 것을 보았고, 누군가는 음산하고 무서운 유명귀권이 보였다.
오싹한 기운은 마치 상대를 지옥의 깊은 못에 끌고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주먹의 위력은 좀 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놀랄만큼 기이했다.
검은 주먹을 본 제자들은 어렴풋이 살벌한 기운을 느껴 오싹한 귀신의 기운이 언제라도 자신을 유명연옥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흰 주먹을 본 제자들은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떠있는 것을 느꼈다.
햇빛이 지나간 곳에 초목이 회색으로 변하고 강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기묘한 환각에 제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반응이 빠른 제자들은 얼른 두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비로소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계속 쳐다만 보던 황색 도포의 제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마음이 흔들려왔다.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차더니 점점 풀어지기 시작했다.
대일유명권!
이 주먹의 위력은 연체경의 절정에 이른 수준이었는데, 무엇보다 정신적인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위가 미쳐 연기경 후기에 도달하지 못해 이제야 막 정신을 단련하기 시작한 연체경의 제자들에게 정신적 공격은 거의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 주먹의 기이함을 엽운도 분명히 발견했지만 그가 본 것은 제자들과 달랐다.
그는 단진풍이 두 개의 주먹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하나는 검은색이고 하나는 흰색이었다.
진짜 한데 어우러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묘한 방식으로 뭉쳐진 것 같았다.
대일유명권이 절대 일반적인 9품 선기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만약 수위가 연기경에 이르게 되면, 이 주먹은 진정으로 한데 어우러질 수도 있을 것이며 폭발의 위력도 지금보다 적어도 10배, 심지어 100배는 강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불가사의한 선기, 불가사의한 주먹이었다!
엽운은 숙연해졌다.
비록 몸속에서 흑백의 빛이 여전히 요동쳤지만, 이 주먹이 가진 힘과 기이함은 조금 긴장하게 만들었다.
몸속의 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대일유명권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쾅!”
두 번째 공격이 또 한 번 거세게 부딪혔다.
단진풍의 예상과 같이 그의 주먹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고 엽운의 영력을 그대로 무너뜨리며 몸으로 파고 들었다.
단진풍은 올바르기도 사악하기도 한 이 주먹이 엽운의 몸에 들어가면 설령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상을 입혀 싸울 힘을 잃도록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엽운은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 하고 다시 한 번 나가 떨어졌다.
가장자리에 있는 옥석 난간이 막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래로 떨어져 단진풍에게 1등을 내어줬을 것이다.
몸속 흑백 빛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빛이 요동칠 때 마다 알 수 없는 흡입력이 뿜어져 나왔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엽운의 두 팔을 지켰다.
동시에 대일유명의 힘이 빠르게 몰려와 흑백의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흑백의 빛은 마치 식탐 많은 아이처럼 이 힘을 빨아들인 후 미친듯이 흡수하고 정화했고,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엽운의 몸은 다시 한 번 공중에서 펼쳐지며, 큰 새가 된 양 천천히 내려왔다.
여전히 다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단진풍을 향해 두 걸음 내딛었다.
비록 거뜬해 보이긴 했지만, 단진풍은 그의 안색이 전보다 창백해진 것을 예리하게 알아챘다.
얼굴의 혈색은 사람의 몸 상태를 반영할 수 있는데 안색이 창백하다는 것은 엽운이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도 그럴것이 단진풍이 이 주먹에 맞았더라면, 절대 버티지 못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엽운에게 몸을 보호해주는 어떤 보물이 있다고 쳐도 연속으로 맞았으니 반드시 오장육부에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고, 몇 번 더 맞게 되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단진풍의 눈에 한 줄기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
깊은 숨을 들이 마신 후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두 주먹 사이에, 흑백색의 빛이 끊임없이 번뜩이더니 빠르게 합쳐져 주먹으로 모였다.
“엽운, 네가 몇 번이나 견딜 수 있는지 보자고.”
단진풍은 크게 소리쳤다.
번개 같은 철권과 파도 같은 위세가 엽운을 향해 다시한번 돌진했다.
시합장 아래, 남성과 곡일평 같은 제자들은 분명히 알아챈 듯 했다.
엽운이 막 땅에 떨어졌을 때 걸음걸이는 전처럼 침착하지 않고 얼굴도 약간 창백해졌다.
무엇보다 전혀 바람이 불지 않았음에도 그의 옷소매가 약간 떨렸다는 것이다.
그가 다친 게 분명했다!
단진풍도, 곡일평도, 다른 수 많은 제자들도 이를 봤다.
엽운의 안색은 지금 이 순간 더욱 창백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