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화 위압의 초기형태
엽운의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팔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후퇴했다.
하품 방어 영기의 강도로 미루어 보자면 단진풍의 상반신을 공격하는 것은 거의 쓸모 없었다.
즉, 단진풍은 상반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고 머리와 다리만 감싸면 된다.
두 사람의 실력은 원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미 막상막하인데 상체 방어를 않해도 된다면 어떻게 공격을 하겠는가?
엽운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왼쪽 팔의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에 시간을 끈다면 매우 불리했다.
지금은 항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1등을 단진풍에게 내놓자니 매우 달갑지 않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의 수선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몸속에 흑백의 빛을 가지고 있기에 영기를 정화시킨 다음 곧바로 흡수할 수 있다.
이렇게만 수련하면 속도가 매우 빠르기에, 자신의 경지에 대한 깨달음만 충분하면 아무런 방해 없이 영기를 흡수해 단번에 수위를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흑백의 빛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영기를 내뿜기 위해서는 많은 영석이 필요했다.
현재 하품영석은 엽운에게는 계륵과 같았고 중품과 상품만이 흑백 빛의 갈증을 채울 수 있었다.
8위 안에 들면 중품영석 50개를 가질 수 있지만 1위를 한다면 50개를 추가로 가질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가문의 지지 따윈 받지 못했고 모든 영석은 스스로 벌어야 했다.
영석이 그닥 중요한 물건이 아닌 단진풍이나 곡일평과는 달랐다.
따라서 1등에게 추가로 지급되는 50개의 중품영석을 반드시 얻어야 했다.
강자란, 무엇보다 마음이 강해서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평범한 제자가 따라올 수 없는 강자의 마음을 가졌다.
강자의 마음이란 근거 없는 상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직면하고 도전하는 것에서 나온다.
아무리 어려움을 겪어도 좌절하지 않으며, 실패해도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니 영력이 속에서 흘렀다.
잠시 충격을 받았던 마음은 전의가 타올라 눈빛이 굳건해지고 더 할 나위 없이 단호해졌다.
순식간에 기세가 이전과 달라졌다.
전에는 걱정이나 잡생각도 더러 있었다면, 이제 그의 머릿속엔 오직 결투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여 단진풍을 꺾는다!
단진풍이 몸을 살짝 떨었다.
오만했던 자세도 사라져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부상을 입기 전보다 훨씬 더 기세가 좋아지고 어렴풋이 위압까지 느껴졌다.
이 위압이란 것은 연기경의 경지에 이른 후에야 정신이 서서히 열리고 단련되어 마침내 위압으로 방출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많은 제자들의 수위가 연기경에 이르렀다곤 해도 그들이 반드시 위압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정신의 단련과 수행은 결코 공법과 영석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묘한 느낌이어서 영혼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진정으로 정신을 열고 위압을 단련해 기세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엽운에게 은은하게 위압의 흔적이 느껴지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에서, 란 장로와 순우연 장로가 눈을 마주쳤다.
눈에는 충격이 가득했다.
그들의 수위와 사고로도 연체경 5단계의 제자에게서 조금이나마 위압이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만약 엽운이라는 아이가 종문의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우리 천촉봉에 연기경을 아주 빠르게 돌파하는 제자가 생기게 되겠군.”
순우연 장로는 엽운을 보며, 눈에서 빛을 번쩍였다.
. “이번 종문 시험에서 외문 제자가 살아 돌아오기는 정말 어려울 겁니다.”
란 장로는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순우연 장로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신입 제자들은 정말 괜찮은 녀석들인데, 이렇게 보내야 한다니 정말 아쉽군.”
“너무 감성적인 것 아닙니까.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요. 외문 제자가 된 후 큰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문 제자와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자들이 몇이나 됐나요? 우리 천검종에서는 내문 제자쯤 되지 않으면 키워 줄 가치가 없습니다. 이번 종문 시험이 매우 위험하긴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란 장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순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시합장 위의 단진풍은 기세가 갑자기 달라진 엽운을 보고 안색이 굳어졌다.
그를 마주하고 있었기에 엽운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위압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 숨어있는 독사처럼 그를 겨냥하고 언제든 혓바닥으로 공격할 것만 같았다.
“엽운, 넌 정말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단진풍, 너도 마찬가지다.”
엽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진짜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지.”
단진풍이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접자 장갑 하나가 그의 왼손에 나타나 옅은 검은 빛을 뿜었다.
오른손에는 흰 장갑을, 왼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었는데, 두 하품영기가 내뿜는 힘은 완전히 달랐다.
한쪽은 파도처럼 맹렬했으며 한쪽은 음산하고 어두웠다.
전혀 다른 하품 영기 두 개가 나타나 한 사람이 두 개의 다른 힘을 통제해야 했다.
단진풍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 넘은 것이다.
“유명지황의 장갑? 그럴리가?”
아래에 있던 곡일평의 안색이 변하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많은 제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곡일평 사형, 저 영기를 아십니까?”
옆에 있던 여명홍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곡일평이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
“유명지황은 바로 금단경에 도달한 왕이다. 그는 유암귀권이라 불리는 권법을 사용했는데. 아주 음산하고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주먹이 뿜는 바람에 맞으면 그 속에 영혼이 갇히고 깊고 어두운 못에 빠지며, 백귀에게 물려 넋을 빼앗기는데, 실로 무서운 것이라고들 하지. 유명지황에게는 유명 장갑이라는 법보가 있는데, 이것은 유암귀권의 위력을 10배 강화시켜서 같은 경지의 상대 중엔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럴리가요. 그렇게 무서운 법보가 어떻게 천촉봉에 나타난 거죠? 금단수사의 법보는 위력이 너무 강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잖아요.”
여명홍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곡일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러니 이 영기도 모조품일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던 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만 갔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여명홍과 주변의 제자들은 그 뜻을 이해했다.
설령 태양의 장갑처럼 모조품이라곤 해도 영기가 또 하나가 더 생겼으니 단진풍은 그야말로 인간 영기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진풍은 차갑게 엽운을 바라본 후, 두 주먹을 가볍게 부딪혔다.
서로 다른 힘이 순식간에 충돌했다.
그러나, 상상한 것처럼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고, 오히려 은은한 흑백의 힘들이 서로 뒤섞이는 것이 보였다.
이치대로라면 이 두 힘은 절대로 융합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떻게 물과 불이 서로 뒤섞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 두 힘은 한데 어우러졌다.
“엽운, 네가 이 주먹을 막을 수 있다면 1등은 바로 네가 될 것이다.”
단진풍의 목소리에서 예전과 같은 오만 방자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감이 있었고, 은근한 패기도 느낄 수 있었다.
엽운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흑백이 뒤섞인 주먹은 아직 공격해오지 않았지만 그에게 무언가를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그의 몸 속에도 흑과 백이 어우러진 빛이 있는데, 단진풍의 두 주먹이 뿜는 빛과 조금 비슷했다.
똑같이 흑과 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극명히 달랐다.
무엇보다 단진풍의 두 영기가 뿜어낸 빛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유명의 장갑은 어둡고 음산하고, 태양의 장갑은 파도처럼 거세다.
전혀 다른 두 개의 힘이 놀랍게도 완벽히 한데 모였다.
한데 어우러졌다면, 흑백의 빛에도 극과 극의 힘이 담겨있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왜 이 두 힘은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음에도 자신은 이를 조금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 속의 진정한 힘조차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단진풍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고 하얀 빛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니, 엽운은 마치 문을 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문이 아니라 아마도 아주 작은 구멍일 것이다.
이 구멍을 통해 흑백 빛의 진실을 약간이나마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일황황, 유명암장!”
단진풍은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쥐었다.
흑백의 빛이 마침내 장갑에서 뿜어져 나왔다.
멀리 보니 흑백의 빛이 사방으로 쏟아지고 그 속에서 흑백이 섞인 주먹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힘을 싣고 거세게 충돌해왔다.
주먹의 위력은 전에 보여준 공격보다 훨씬 강력했다.
마치 연체경과 연기경의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아 심지어 연기경에 이른 제자도 이만큼이나 폭발력이 넘치는 주먹은 내지를 수 없었다.
이 주먹은 막아낼 수 없다.
모든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
남성과 검은 도포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단진풍의 주먹을 본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들의 수위로는 이 주먹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막아낸다 하더라도 최소 중상을 입을 것이었다.
“엽운, 조심해!”
남성은 경기장을 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그 역시 엽운과 거래했기 때문에 만약 엽운이 죽게 되면 이렇게 눈치가 빠른 놈을 다시 찾기는 어려웠다.
곡일평과 여명홍의 얼굴에도 충격이 가득했다.
주먹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곡일평은 순간 자신이 너무나도 멍청하다고 느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공격하면 단진풍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지금 보니 만약 정말로 단진풍과 붙었다면, 주막 한 방에 연기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순식간에 곡일평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 옷이 흠뻑 젖었다.
관전하던 제자는 천 명이 넘었는데, 그들도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이것이 진정 신입 제자의 수위인가?
주먹의 위력은, 자색 도포의 제자들 쯤은 되어야 막을 수 있어 보였다.
단진풍이라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찌 이러한 경지에 이른 것인가.
모두 공포에 질렸으나, 엽운은 여전히 조용히 서있었다.
유명의 장갑과 태양의 장갑이 융합된 일격은 순식간에 가슴 앞까지 다가왔다.
이미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 누구도 엽운이 무엇 때문에 웃는지 몰랐다.
두 주먹을 들어 올려 가슴 앞에 놓았다.
“쾅!”
흑백의 빛이 순식간에 두 주먹을 공격했고 엽운은 나가 떨어졌다.
만약 연무전의 시합장에 금제 진법이 걸려있지 않았더라면 이 주먹은 아마 바닥을 모두 깨뜨렸을 것이다.
엽운은 나가 떨어졌지만 예상처럼 피를 뿜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엽운의 몸은 공중에서 활짝 펼쳐졌고 안색은 차가운 것이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공중에서 살짝 몸을 돌리며 두 팔을 펼쳤는데, 마치 큰 새가 공중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오더니, 시합장 위에 섰다.
안색은 평소와 같고, 조금도 다치지 않은 기미였다.
주먹은 연기경 아래에서 가히 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이렇게 쉽게 받아 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단진풍과 아래에 있는 제자들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