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50화 (50/227)

제 50 화 사양

“엽운 사형, 저도 4위 안에 들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응?”

방금 머리를 숙인 채 내려온 엽운은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는데, 기쁜 모습의 여명홍이 보였다.

그 역시 마음속으로 여명홍이 이겨서 나타나기를 바랬지만 그가 전혀 다치지도 않은 채 여유를 부리는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하하하! 내가 말했지? 곡일평은 얘기할 가치도 없어. 영기와 선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엽운한테 지다니. 정말 약해 빠졌군."

건방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단진풍임을 알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였다.

뒤의 시합장에서 그와 맞붙은 제자가 땅 위에 주저앉은 채 연신 피를 토하고 있었다.

“엽운 네가 이기긴 했지만, 손해가 너무 막심하다. 이번 시합은 너무도 촉박해 네가 회복할 시간은 아예 없을 것이다. 정말 아쉽구나. 네가 결승에 가더라도 널 시원하게 두들겨 팰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재미없겠네."

이번 시험은 매우 촉박하게 매 경기가 끝난 직후 곧 바로 다시 추첨을 해 다음 시합을 진행했고, 이렇게 우승이 정해질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신입 제자들은 실력 뿐만 아니라 운수도 겨루는 셈이었다.

엽운은 그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곧 중품영석 두 개를 쥐고는 가부좌를 틀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회복하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냐? 해봤자 얼마나 빨리 영력을 회복할 수 있겠어? 그러나 만약 네가 만날 상대가 내가 아니라면,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있을 것이다. 이번 시험에서는 나 말고는 아무도 네 상대가 안 되니까 말이다.”

뒷짐을 지고 있던 단진풍은 엽운이 영석을 흡수하는 것을 보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단진풍 사형, 엽운 사형의 회복을 방해하지 마시지요. 란 장로님께서 곧 추첨을 하실 텐데, 사형과 엽운 사형이 일찍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여명홍은 단진풍이 여전히 방해하려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넌 뭐하는 놈이냐? 어찌 내 일에 참견하는 거지? 너도 나를 만나지 않길 바래라. 그렇지 않으면.....흐흐”

단진풍은 그를 보며 웃었다.

“저는 사형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맞붙게 된다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명홍은 얼굴이 붉어지며 긴장한 듯 했지만 건방지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패기가 좀 있구나. 너와 붙게 된다면 목숨만큼은 살려주마.”

단진풍은 여명홍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이때 엽운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손에 쥔 영석의 영기는 끊임없이 흘러 들어왔지만, 마지막 시합이 시작되기 전까지 결코 최상의 상태로 회복할 수는 없음을 느꼈다.

바로 이때, 몇 가닥의 하얀 빛 줄기가 하늘에서 사람들 앞에 떨어졌다.

4위 안에 들었던 또 다른 신진 제자는 유운송 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옥패를 보고, 주변에 있는 옥패를 다시 보더니 갑자기 얼굴에 쓴웃음을 띠었다.

자신의 상대가 단진풍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수위는 이제 막 연체경 5단계에 이르렀는데, 4위 안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게도 숨은 강자들을 맞닥뜨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영력을 크게 소모한 엽운과 붙게 되길 바랬고, 그렇지 않으면 수위는 보통이고 영력만 강한 여명홍과 붙기를 바랬다.

그렇게만 된다면 최후의 결승전까지 올라갈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뭘 하고 앉아 있느냐?”

단진풍은 여명홍과 엽운의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쳐다보았다.

곧 시합장에 올라서 유운송을 조롱했다.

“다시 봐도 소용없다. 내가 너를 날려 버릴테니 빨리 오거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을 들은 유운송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시합이 계속되면서 단진풍은 점점 더 건방져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 자의 수위는 자신보다 훨씬 높아서 상대조차 되지 못 할 것이다.

유운송은 어쩔 수 없이 달갑지 않더라도 시합장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란 장로의 처벌을 받게 될까 두려워 바로 항복하지도 못 했다.

“단진풍 사형, 좀 봐주시지 말입니다.”

“봐줘? 내가 널 언제 봤다고 봐달라는거야?”

단진풍은 깔보듯 쳐다본 후 바로 몸을 돌렸다.

유운송의 얼굴이 달아올라 눈에도 분노가 가득 차 번득였다.

곧 손에 푸른색 칼 한 자루가 나타났다.

약간 떨면서 칼을 꽉 쥐었다.

‘네가 건방지게도 나를 끊임없이 욕보이게 했으니, 패배 할지언정, 설령 크게 다칠 지언정, 나는 너와 싸울 것이다.’

유운송은 칼을 꽉 움켜쥐고 번개처럼 단진풍을 향해 휘둘렀다.

2번 시합장 옆에는 엽운과 여명홍 두 사람만 남았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구도 시합장에 올라가지 않았다.

엽운은 여전히 회복을 하는 중이었고, 여명홍은 옆에 서서 조용히 바라봤다.

“너희 둘 왜 아직도 시작하지 않는 게냐?”

란 장로는 두 사람이 경기장에 오르지 않은 것을 보고는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말했다.

엽운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아직 체내의 영력이 반 정도 밖에 회복되지 않았기에 여명홍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유운송이 여명홍을 웅장한 영력에만 의존하는 만만한 녀석으로 느꼈다면 큰 오산이었다.

엽운은 알 수 있었다.

여명홍은 결코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고 살수를 쓰지도 않았으며 그저 영력만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기에는 동문의 정을 많이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의 상태로는 여명홍을 상대로 전혀 승산이 없었다.

그러나, 승산이 없더라도 시합장에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란 장로에게 받게 될 처벌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엽운이 몸을 일으켜 시합장에 오르려는 순간, 여명홍이 갑자기 그를 꽉 눌렀다.

곧, 여명혼은 몸을 돌려, 윗쪽을 향해 작은 절을 올리고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 형님의 수위는 저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번 시합은 제가 졌습니다.”

주변에 있던 제자들은 모두 멍해졌다.

그들은 여명홍이 올라가지도 않고 그대로 항복할 줄은 몰랐다.

설마 란 장로가 생사를 불문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한 말을 무시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간이 커도 너무 크다.

“여명홍..너…..”

엽운 역시 여명홍이 항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가 말을 마치지기도 전에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렸다.

“흥! 네가 내 명을 거스르려고 하는구나. 좋다. 아주 좋아.”

란 장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

여명홍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모양새로 몸을 굽혀 절을 올렸다.

”장로님께 아뢰옵니다. 소인은 결코 이유없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로, 저의 수위는 엽운 사형에 비해 확실히 많이 뒤떨어집니다. 둘째로, 엽운 사형의 현재 상태로 바로 시합에 참가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의 상태로도 소인을 쓰러뜨릴 수 있겠지만요. 셋째로, 전에 모용무흔 사형께서 말한 것이 생각났는데, 비록 이 시합은 생사를 불문한다지만 모용사형의 말씀대로 저희는 모두 동문이고, 그렇기에 동문간의 정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 동문끼리 생사를 걸고 싸우면 전체 종문에 어찌 단결력이 있겠습니까? 어찌 대동단결하여 종파의 명예를 위해 싸울 수 있겠습니까?”

“흥!”

란 장로는 예상 외로 그를 벌하지 않고 그저 콧방귀만 뀌었다.

여명홍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이번 시합은 저희 신입 제자들 중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의 대결이 될 것이기에 모두가 보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엽운 사형과 단진풍 사형입니다. 이 둘만이 1등을 차지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여 저는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그대로 패배를 인정한 것입니다. 다만 엽운 사형이 최상의 상태로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단진풍 사형과 함께 마지막 한 판 승부를 펼친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대결이 될 것입니다.”

여명홍은 끝까지 절을 하며 말했다.

“란 장로님과 대장로들께서는 허락해 주십시오.”

여명홍이 말을 마치자 연무장 아래에서 관전하던 외문 제자들이 웅성거렸다.

“여명홍이 한 말도 괜찮은 것 같아. 만약 엽운과 단진풍이 최종 결전을 펼친다면, 가장 멋진 싸움이 될거야.”

“이번 년도의 신입 제자들은 정말 사람을 다시 보게 하네, 모용무흔 같이 체험하러 온 놈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진풍과 엽운도 말이야. 그들의 수위는 확실히 대부분의 황색 도포 제자들보다 강해. 하지만 이 여명홍도 정말 놀랍군. 마음이 이렇게 넓다니.”

“그래, 모두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전례를 깨뜨릴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란 장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목소리가 온 광장에 퍼졌다.

여명홍의 부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와 다른 장로들은 이미 마음 속으로 엽운을 칠 장로의 수제자라고 여겼다.

이런 작은 일로 칠 장로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엽운은 정말 란 장로가 동의할 줄은 몰랐다.

여명홍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감격이 가득 했다.

“엽운 사형, 어서 영기를 흡수해 원래 상태를 회복하시지요.”

여명홍은 웃으며 대답했고, 진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엽운은 가부좌를 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 속의 감동과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냉정한 상태가 되려고 노력했다.

여명홍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앞으로 그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반드시 도울 것이다.

영석을 손에 쥐자, 엽운의 마음은 빠르게 안정 되었다.

그는 갑자기 몸을 살짝 떨더니 순식간에 기묘한 경계로 빠져들었다.

안정, 신정, 심정!

수선을 하려면 수심을 해야 한다.

엽운은 바로 이 수선의 기묘한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모든 것과 단절되었고, 온 세상에 한 사람만이 남았다.

천지가 아득히 멀었고, 만년이 넘도록 종횡무진하며, 소탈하고도 자의적으로 천지를 누볐다.

이 순간, 엽운은 가슴에 흑백의 빛이 갑자기 나타나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검은 색과 흰색 사이에 옅은 금빛이 반짝이며 지나갔는데, 마치 이것이 신체의 경맥으로 흘러들어와 모든 피부와 뼈, 심지어 피 한방울에 까지도 스며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있던 중품영석 속에 영기가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그 속도는 예전보다 열 곱절이나 빨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반각도 안되 영력을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영기가 점점 더 빠르게 체내로 흘러 들어가 경맥에서 요동쳤다.

가슴을 거쳐 흑백의 빛을 지나면, 영기는 더욱 깨끗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흡수가 아주 쉬워질 것이다.

엽운은 중품영석 속의 영기가 흐르며 영석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체내의 모든 혈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주 가벼운 떨림이었지만, 묘한 느낌이었다.

떨림이 전해질 때마다 한 가닥 영력이 혈에 들어가, 그 속에 모였다.

온몸의 혈이 지금 이 순간 열릴 기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만약 이를 전부 뚫어내 영력을 흡수하면, 그것이 곧 연체 제 6단계 통규경이었다.

한번 혈구멍을 열게 되면, 영력이 경맥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혈에 저장되어 몇 곱절, 심지어 열배까지 증가한다.

엽운의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했다.

만약 이 순간 온몸의 혈을 뚫어 통규경에 이르게 된다면, 단진풍과 최후의 결투에서 그가 이길 확률이 많이 커진다.

흑백의 빛에 의해 육신의 변화를 맞이한 후, 엽운의 수련 속도는 하루에 천리 길을 간다고 형용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반년도 안 되어 기를 응결해내고 단번에 연기경에 이를 것이었다.

그러나, 혈의 떨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비록 영력이 조금이나마 혈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 안에 많이 저장되지 않았기에, 혈이 제대로 뚫리지 않았다.

엽운의 마음은 물처럼 고요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다음번에 혈의 떨림이 느껴진다면 단박에 성공해 통규경에 이를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바로 이때,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앞에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란 장로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신입 제자 최후의 결전은, 단진풍 대 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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