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화 괴짜
눈살을 찌푸린 엽운은 상대의 이런 행동이 윗장로들의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었다.
“싸울때는 반드시 온 힘을 다하라고 조금 전에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 지금 내 인내심에 도전하려는 것이냐?"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란 장로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한 위압이 엽운과 모용무흔의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모용무흔은 전혀 위압을 받지 않는 듯 뒤돌아선 채 장로들을 바라봤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누구도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모용무흔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무슨 이유를 대는지 들어나 보지. 여기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을만한 이유를 대거라.”
“모용무정이 제 형입니다.”
모용무흔은 이 한 마디 뿐이었다.
란 장로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랬군.”
순우연 장로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말한대로라면, 도대체 무얼 하러 여기에 왔느냐?”
“수행하고 싶은 곳에서 수행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우리 천검종에서 금단대수사가 몇명 나왔던 걸로 아는데, 모두 잡역제자로써의 경험이 있더군요.”
모용무흔은 순우연을 마주하고도 약간 거만한 기색이었다.
“잡역제자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동안도 깨달은 게 많지요. 앞으로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순우연은 이런 모용무흔을 보면서도 화내지 않고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재밌군.”
“제법이구나. 다음에 만날 때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면 좋겠다.”
모용무흔은 순우연을 더 이상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엽운을본 후, 곧 손가락을 살짝 내밀었다.
손끝에서 일곱 색의 빛이 번쩍이더니 일곱 색의 긴 꼬리털을 가진 큰 새 한 마리가 허공에 나타났다.
“간다.”
모용무흔은 훌쩍 뛰어 큰 새의 등에 올라타며 이렇게 말했다.
온몸에 유리 빛을 띤 큰 새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온몸에서 마치 노을같은 일곱 빛깔을 흩날렸다.
곧 한 줄기의 무지개빛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영수다! 영수라니!”
“영수를 길들이다니!” 모용무흔은 대체 누구야!”
광장의 모든 제자들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모두들 놀라 소리를 질러댔다.
방금 일곱 빛깔의 큰 새는 이미 영지를 가졌음이 분명했다.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진정한 영수였다!
영수는 지혜가 있어 수선자의 뜻을 깨닫고, 함께 적을 막아 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하면 대부분 영수를 거두어 전투시의 동반자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영수는 지혜를 갖고 있기에 길들이기가 어려웠고, 순수 자신의 실력으로 영수를 무수히 이겨내야만 진심으로 복종했다.
그래도 영수를 탈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영수는 영을 가지고 있고 사람처럼 지혜를 가져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가 되는 것은 좋아했지만 탈것을 자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싸움에 이겨 전투의 동반자로 길들이는 것도 어렵지만, 탈것으로 길들이는 것은 적어도 백 배 이상 더 어려웠다.
그런데, 방금 모용무흔은 영수 한 마리를 풀어놓고는 등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갔다.
영수는 연체 5단계 내식경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 한 소년에 탈것이 되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엽운 역시 모용무흔이 사라지는 방향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용무정은 또 누구인가.
듣기로는 장로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았다.
몇 번 숨을 들이쉬자, 놀란 마음도 빠르게 가라앉았다.
지난 3년간 잡역 채집곡에 있었고 진짜 천촉봉에 들어온 지는 며칠밖에 안됐다.
천촉봉의 윗쪽 산에는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이 천촉봉도 무영봉의 단종이 있는 곳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영봉은 천검종 외산의 몇 개의 가장 큰 봉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렇게 따져보면 무영봉 위에는 또 얼마나 많은 놀라운 인물들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모용무정도 분명 그 중 하나일 것인데, 그 지위가 어느 정도 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시합장에 있던 장로들 몇 명은 약간씩 놀라며 심지어는 부러워하는 모습까지 보였는데 란 장로 만큼은 모용무흔이 사라진 곳을 계속 보고 있었다.
곧 엽운을 보며 말했다.
“모용무흔이 천촉봉 소속이 아닌 이상, 이번 시합은 네가 이긴 것이다.”
장내는 일순간 고요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엽운을 향했다.
이번 승리로 엽운은 8위 안에 든 첫 번째 신입 제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엽운은 고개를 숙였다.
모용무흔의 출현으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없는 존재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미물같은 존재였다.
생사는 전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란 장로 정도의 수위도 천검종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그러나 아직도 장로들이 흑백 빛의 비밀을 간파할까 봐 두려웠다.
만약 란 장로가 지금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반항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신입 제자들 중 8위라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자신도 모르게 비석에 봉인된 금단을 떠올렸다.
이 순간, 수많은 눈길 속에서도 마음은 오히려 진정되고 고요해졌다.
곧 이어질 흉악한 종문의 임무도 이 순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는 못하고 어떠한 두려움도 느끼게 하지 못했다.
엽운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하늘과 땅이 모두 넓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용무흔과의 대결이 심경 수행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음을 알았다.
“모용무정은 또 누구길래 순우연 장로에게 저렇게 거리낌이 없는 거야, 설마 천검종 내산의 천재 제자인가?”
“이 대결에서는 뜻밖에도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네.”
먼 곳에 남성이 생각에 잠겨 눈살을 찌푸렸다.
관심있게 지켜보던 다른 경기에는 별 다른 이변이 없었다.
단진풍의 상대는 완전히 밀리고 있어 패배는 시간 문제였다.
다른 쪽 시합장에서는 곡일평이 몸에서 검은 빛을 끊임없이 뿜어대고, 상대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몸에 이미 상처가 여러 군데 나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남성을 놀라게 한 것은 다름아닌 여명홍이었다.
여명홍은 여전히 이전의 결투 방식과 다름없이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안정의 극치를 이루었다.
공격과 수비가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고 절대 모험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며 상대에게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셈이었다.
손놀림은 한 치의 영력도 낭비하지 않을 만큼 영적 통제가 철저했다.
상대는 원래 지금보다 훨씬 강해 보였지만, 영력이 점점 소모되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했다.
……
모용무흔이 준 충격이 강렬했기에,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다른 전투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자, 곡일평, 단진풍 등이 모두 승리를 거머쥐었고, 여명홍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속의 영력이 다 떨어진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