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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43화 (43/227)

제 43 화 패배를 인정하다

“엽운이구나, 연심전에서는 나도 네 덕을 좀 봤다.”

엽운이 경기장에 올라오는 것을 본 소년은 조용히 서있었다.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러니 안심하거라. 오늘은 널 죽이지 않으마. 내 이름은 모용무흔. 앞으로도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엽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소년이 너무 거만해서가 아니라 수위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몸에는 어떠한 영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신체는 매우 묵직한 느낌을 줬다.

“영기를 지니고 있나 보군.”

무용무흔을 보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자신 있을 수가 없지.”

“네가 먼저 공격하거라.”

모용무흔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말했다.

마치 눈에는 엽운이 고민할 거리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럼 조심하거라."

엽운의 얼굴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체내의 영력이 갑자기 미친듯이 솟구쳤다.

모용무흔이 단지 거만하고 오만하여 적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모용무흔이라는 자가 어쩌면 천검종에 들어온 후 만난 가장 강한 상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엽운의 직감으론 이 소년의 힘이 곡일평과 단진풍보다 아래라 할 수 없었다.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가 몸에서 울리자 황색 도포를 입은 제자들의 안색도 변했다.

엽운의 영력은 보통 내식경의 제자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용무흔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가볍게 콧방귀만 뀌었다.

“이 놈은 정체가 뭐지? 우리 서전에서 나오는 걸 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보니 딱히 특출난 것 같지는 않았는데, 방금 전 몇 번의 전투에서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이상하다. 영기를 숨기고 있는 것인 분명해.”

시합장 아래에 있던 신입 제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뜻밖에도 그들은 모용무흔에 대한 기억이 없었고, 난데없이 나타난 것 처럼 느꼈다.

당장 쳐들어 온다 해도 관심조차 끌지 못할 것 같았다.

연무전 시합장 위에 있던 란 장로와 다른 장로들은 모두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선은 모용무흔을 향했고, 눈에는 이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용무흔? 우리가 눈이 멀은 게인가.”

순우연 장로가 란 장로 등을 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용무흔…모용..”

란 장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보면 알게 되겠지.”

순우연의 시선이 모용무흔의 얼굴을 훑고는 3번 시합장을 향했다.

모용무흔이 무언가 느낀 듯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눈빛을 번뜩이며 위를 쳐다봤다.

“설마 내 눈빛을 느낀건가?”

순우연 장로는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웃기 시작했다.

“쉽지 않군.”

모용무흔은 고개를 돌려 눈꺼풀을 늘어뜨렸다.

“엽운, 아직도 공격하지 않고 뭐하느냐?”

엽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조금 전 모용무흔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매우 강력한 위험을 느꼈다.

게다가 몸속에서 무언가 강렬한 충동이 일어나 피가 약간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동을 못 이기고 공격을 하려는 찰나, 머릿속에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와 바로 진정시켰다.

이때 정신을 차렸다.

모용무흔은 상대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법을 수련한 것처럼 보였다.

머릿속에 흐르는 차가운 기운은 익숙한 느낌이었다.

칠 장로가 만든 영주 잔액에서 나오는 기운 같았다.

즉, 칠 장로의 영액의 약효가 순식간에 그를 냉정하게 만든 것이다.

만약 이 영액의 힘을 시험해보지 않았다면, 조금 전 그는 알 수 없는 위험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아직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이미 공격을 했을지도 모르지.”

모용무흔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엽운의 말을 듣고 모용무흔의 얼굴에 드디어 감정변화가 나타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

“너를 다시 보게끔 만드는구나, 헌데 이것도 괜찮군. 그렇지 않으면 네 수위가 너무 낮아 앞으로 나에게 쓸모가 없을테니 말이다.”

모용무흔의 말투는 아직 풋풋했지만 오만함이 뼛속에서부터 새어 나왔다.

엽운은 모용무흔을 보고,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순간 한 걸음에 뛰쳐 나오더니, 주먹에서 하얀 빛을 번뜩였고, 우지직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전력을 다했다.

모용무흔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한 줄기 바람이 모용무흔을 쳤다.

모용무흔은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역시 나쁘지 않군!”

엽운의 이 주먹에는 어떠한 화려함도 없고, 그 어떤 선기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간단한 주먹 한 방이었을 뿐이며, 심지어 기술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 한 방은 전체 연체경 5단계 내식경을 보여줬다.

누구도 감히 막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주먹에 담긴 영력이 연체 5단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기초적인 기술을 선기에 필적하는 힘으로 만들었다.

모용무흔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똑같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주먹을 휘둘렀고, 똑같이 옅고 부드러운 빛이 번쩍였다.

그 역시 가장 간단한 공격을 택해, 엽운과 정면승부를 하려는 것이었다.

쾅!

두 철권이 세게 부딪히자 공중에서 굉음이 울렸다.

보이지 않는 두 기세는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공간마저 약간 흔들렸다.

막상막하였다!

시합장의 두 사람은 자리를 바꿨지만, 여전히 조용히 서있었고, 아직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주먹의 힘은 연체 6단계 통규경의 수위라 해도 쉽게 막아내진 못 할 것이다. 엽운 네가 영력을 이 정도까지 끌어올렸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모용무흔의 눈에 기쁨은 이미 사라져도 여전히 거만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말했다.

엽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큰 충격을 받아 으스스 해질 지경이었다.

모용무흔의 주먹은 그의 공격을 전부 상쇄시켰다.

곧이어 조금의 여지도 없는 주먹이 공격해왔는데 마치 두 사람의 힘이 완벽히 똑같은 것 같았다.

힘이 같기란 불가능했다.

모용무흔이 나중에 공격해왔으니, 분명 엽운이 날린 주먹의 위력을 똑똑히 보고 똑같은 위력의 주먹을 날렸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용무흔은 엽운을 향해 손을 내밀어 계속해서 공격해도 된다는 뜻을 보였다.

“그럴 필요 없다.”

엽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졌다.”

“뭐라고?”

시합장 아래 대부분의 제자들은 이 두 주먹의 힘으로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의 실력이 비슷했고, 전혀 밀리지 않는 주먹으로 맞선 것 같았다.

기껏해야 몸 풀기 정도일 뿐인데, 어째서 엽운이 바로 패배를 인정한 것인가?

모용무흔은 어리둥절했다.

그도 엽운이 바로 패배를 인정할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확실히 네 상대가 아니다. 장로님들도 알아보실 수 있을 터이니, 내가 이렇게 항복하더라도 나를 벌하시지 않겠지.”

엽운의 얼굴은 오히려 평온을 되찾았다.

모용무흔을 보며 어떠한 감정의 미동도 없이 말했다.

비록 주먹 한 방이었지만, 이미 모용무흔의 영력이 그보다 강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상대방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법도 쓸 수 있는데다 틀림없이 아직 선보이지 않은 선기도 있을 것이었다.

이런 상대와 계속 싸우면 흑백 빛의 비밀도 숨길 수 없을 것이며, 위쪽의 장로들에게 들킬 것이다.

“네가 이런 때에도 냉정함과 판단력을 유지할 줄은 몰랐다. 너를 재평가해야 할 것 같구나.”

모용무흔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졌다, 엽운, 다음 시합에서는 날 실망시키지 말거라.”

웃음을 지어보인 후 몸을 돌려 시합장을 내려갔다.

“이건 무슨 뜻이지?”

“엽운이 패배를 인정했는데, 그도 항복해버리다니?”

“그리고 이렇게 바로 나가 버린다고?”

아래가 떠들썩해졌다.

많은 제자들은 완전히 넋을 놓아버렸고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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