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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42화 (42/227)

제 42 화 추측

“옥패를 받지 못한 자는 운이 좋은 것이다. 이번 시합에 응하지 않아도 되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면 된다.”

옥패는 란 장로가 준 것이었지만, 말하는 사람은 장로들 중 가장 수위가 높은 순우연이었다.

“엽운은 시합이 없네, 운도 좋군!”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좀 전의 시합은 험악하기 그지없었고 지금은 겨우 31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 중 대부분은 매우 까다로운 상대였기 때문에, 시합을 한 번만 덜 치러도 체력적으로 훨씬 유리했다.

그러나 장로의 목소리를 듣고도 엽운은 기뻐하지 않았다.

방금 행동 때문에 자신에 대한 장로들의 평가가 더욱 높아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장로들은 그를 특별히 대우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우리는 마지막에 싸울 운명인가 보군.”

순우연 장로의 목소리를 듣고, 곡일평의 입가에서 알게 모르게 냉소가 스쳤다.

그는 장로들이 그들의 실력에 대해 이미 확실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진 시합에서는 분명 강자와 약자가 붙을 것이 뻔했고, 절대 두 강자가 싸울 가능성은 없었다.

곡일평의 예상과 같이, 이번 시합은 실력의 차이가 너무도 분명해 여명홍과 같은 자들도 쉽게 상대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합에서도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7번 시합장에서, 실력 차이가 현저한 한 명이 공격을 당해 쓰러진 후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양쪽 모두가 다칠만한 공격을 가했지만 성공하지 못 하여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엽운은 고개를 숙인 체 죽어가는 제자를 보지 않았다.

눈은 장로들을 향했다.

장로들의 얼굴에 일말의 안타까워하는 기색조차 없음을 보았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모두 죽더라도 천촉봉에서는 아무 일도 아닐 것임을 확신했다.

“이번엔 어떤 종문의 시험인가?”

먼 곳에 남성 역시 피범벅이 된 신입 제자의 시체를 보며 점점 옳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싸움일지라도 진정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는 장로들이 나서서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로들의 수위는 이런 중요한 순간에 이들을 제지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도 장로들 중 누구도 나서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장로들은 마치 일부러 제자들에게 이런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설마 다음 시합에 정말 잔혹한 싸움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래서 장로들이 이런 방식으로 제자들에게 경험을 쌓게 하려는 걸까?”

무시무시한 생각이 남성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등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엽운도 같은 생각이었다.

“설마 다른 종문과 무슨 시합이라도 있는 것인가?”

어떤 종문들끼리 이익을 쟁탈할 때, 서로간의 손실이 심각하지 않은 시합을 여는 경우가 있다 들었다.

반면 각 종문 제자들이 어느 시험 장소에 모여 서로 죽고 죽이며 싸우는 시험도 있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런 시험에는 신입 제자나 천촉봉의 일반 제자들은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선발된 제자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건가?

아니면.... 수위의 제한이 있는 것인가?

갑작스레 머릿속에는 이 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고, 호흡도 순식간에 멈췄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검은 도포의 제자들은 이 선발 시합에 참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신입 제자인 그들과, 이어 선발 시합에 참가할 청색 도포와 황색 도포의 제자들은 모두 연체경의 수위였고, 연기경에 달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설마 이것인가?”

갑자기 문제점을 찾아낸 듯 했다.

모든 신입 제자들 중 선발된 8위까지의 제자들은 영력이 자신만큼 강하거나, 아니면 선기를 수련했거나 영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실력은 입문한 지 오래된 제자들과 비교해도 아마 많이 약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강할 지도 모른다.

“무슨 시험이길래, 이렇게나 많은 제자가 필요하지?”

마음 속에는 다시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런 선발 방식이라면, 천촉봉만 해도 100여 명을 뽑게 될 것이고, 무영봉 전체를 합치면 최소 4~5백 명, 천검종 전체를 포함하면 그들 같은 실력의 제자들이 적어도 수천 명 될텐데, 그들도 이번 종문 임무에 참가하는 것인가?

도대체 어떤 종문 임무이길래?

점점 더 불가사의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조금 안정됐다.

만약 상대가 모두 연기경에 달하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번 시합에서 적절한 수행 공법과 선기만 얻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

모두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보고 크게 놀랐다.

그러나 수위가 가장 높은 순우연 장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듯, 냉소하며 말했다.

“조금 전 시합에서, 너희들 중 몇 명은 너무도 우유부단하여 실전에서 맞아 죽는다 해도 아깝지 않다.”

“곡일평, 너는 분명 영기를 가지고 있는데, 왜 시간과 영력을 낭비하느냐? 그리고 류현, 방금 전 한 방에 상대를 때려 눕혔으면서, 어째서 마지막 일격을 날려 완전히 격파하지 않고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기다린거지? 너희들, 지금 이것이 수련이 아니라 밖에서 걸어가다 적을 만난 상황이라도 이처럼 행동할 것이냐?”

순우연의 눈빛이 두 사람을 향했다.

목소리는 칼같이 차가웠다.

“란 장로님, 이건 단지 동문 간의 수련일 뿐입니다. 밖에서 적을 만났을 때는 당연히 다르지 않겠습니까?”

한 소년이 몸을 굽혀 절을 하며 말했다.

말투는 비록 공손했지만 속에는 불만이 가득한 듯 했다.

바로 류현이었다.

연심전에서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움직임이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엽운이 선혈이 스며드는 벽의 비밀을 발견한 후, 맞은 편의 벽에 변화가 오기 전에 재빨리 정상에 오른 사람들 중 하나였다.

몇 차례 시합에서 보여준 실력을 보니 이미 내식경의 절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무엄하구나! 지금은 우리 천촉봉끼리의 싸움이지만, 다른 봉의 제자들을 만나고, 또 다른 종문의 제자를 만난게 된다면 어쩔 것이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인데, 네가 만난 상대가 어떤 적수인지 어떻게 알겠느냐! 비록 상대가 중상을 입더라도 네 놈을 죽일 수 있는 무수한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순우연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향했다.

“그리고 동문이라 해도, 임무를 수행할 때 빈틈을 노려 너에게 맞설지 누가 아느냐?”

신입 제자 대부분은 모두 마음이 씁쓸해졌다.

장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류현은 안색이 확 바뀌며 입을 닫았고, 윗쪽에 있는 장로에게 몸을 굽혀 예를 보였다.

엽운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에서 희미하게 빛이 번뜩였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상대가 회복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손을 떼는 것이다.”

순우연 장로는 모든 제자들을 훑어보고 란 장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란 장로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휘젓자, 한 줄기 흰 빛이 춤을 추며 날아 다녔다.

이번에는 엽운을 비롯해 16명의 남은 제자들 손에 옥패 하나가 나타났다.

“1번, 그렇지, 1번은 나한테 줘야지. 남는 건 내가 바꿔 줄게.”

단진풍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흥분이 극에 달한 듯 했다.

그러나 지금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입문한 지 오래된 제자들의 눈에 이 녀석은 진작에 죽은 놈처럼 처참해 보였다.

엽운은 손의 옥패를 보았는데,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곡일평을 바라봤다.

그가 두번째로 나왔다.

“3등이라고?”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공중에 떠있는 있는 란 장로를 봤다.

그들 세 사람의 옥패가 무작위로 떨어진 게 아니라 란 장로가 일부러 이렇게 준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란 장로가 거짓으로 수위를 감추어 다음 전투에서 패배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란 장로와 나머지 장로들의 안목이라면, 자연스레 세 사람의 진정한 전투력쯤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엽운 사형, 저는 7번입니다. 사형은요?”

여명홍이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3번이다.”

엽운은 문득 떠올랐다.

이 말인 즉슨, 여명홍도 어쩌면 8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올라가서 겨루거라!”

호통이 끊임없이 울렸다.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들은 그들에게 잡담할 시간을 주지 않고 시합장으로 불러냈다.

곧 폭음이 몇 번 울렸다.

엽운은 아직 걸음을 옮기지 않았지만, 그의 상대는 이미 시합장에 온 것이 보였다.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거만한 얼굴을 한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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