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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41화 (41/227)

제 41 화 꾀

엽운은 진심으로 살의를 품었다.

왕아제의 수위가 연체경 4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먼저 공격하도록 하여 기세를 파악한 뒤 그녀를 세게 밀어내 시합장 밖으로 떨어뜨리려 했다.

이 정도로 쌍방의 차이가 크다면, 그녀가 항복 하더라도 장로에게 처벌 받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진 일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조금 전의 왕아제는 단지 그를 쓰러뜨리려고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흑백 빛의 개조를 받지 못하였더라면, 방금 빛이 왕아제의 영력을 집어 삼키지 않았더라면, 또 이 시합 전에 내식경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내지른 주먹은 왕아제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죽음에 이르게 하진 않았다.

검은 도포의 제자가 왕아제의 앞을 가로막은 채 저지하는 것을 보고 살의를 서서히 거두었지만, 가슴의 상처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속에서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이 시합은 그저 8위 안에 들 수 있는지를 판가름 할 뿐이다.

남의 목숨까지 빼앗으며 올라갈 필요가 있는가?

모두들 이런 방식으로 수행해서 대수사가 된들, 과연 그것이 늘 그려왔던 “선” 일까?

"아직도 시합장에서 꾸물대고 있는 것이냐! 빨리 내려와서 다음 대결을 준비 하거라!"

엄한 호령이 엽운의 귀에 들려왔다.

왕아제는 비록 큰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미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 하나가 데려가 치료하고 있었고, 다른 검은 도포의 제자는 냉정하고 위협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쓰읍-”

하는 소리를 내며 엽운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동자 깊은 곳에서 숨길 수 없는 흑백의 빛이 번졌다.

이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에게 호령을 듣는 순간, 때리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다.

하지만 곧 차가운 공기가 가슴속에 차오르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며 시합장에서 내려갔다.

“엽운 사형. 괜찮습니까?”

제일 먼저 온 여명홍이 가슴 앞쪽 상처를 보며 말했다.

엽운은 자신의 상처를 보자, 눈동자가 움츠러 들었다.

순식간에 상처에서 피가 멎고 이미 거의 아물어 가고 있었다.

‘ 두 개의 각기 다른 기운이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는 영액의 힘인 거 같은데 이 약효는 혈육을 빠르게 재생시키고 상처를 가렵게 만들었다.

또 다른 기운은 심맥에서 온 것 인데, 흑백의 빛으로 부터 어떤 영력이 흘러나와 기혈 속에 녹아 든 것 같았다.

그의 기혈은 자체가 형용할 수 없는 영약이 된 것 같아 상처를 향해 흘러내릴 때 마다 차가운 밀물이 상처를 씻어내는 것 같았다.

“엽운 사형, 어찌 이렇게 빨리 회복 하신겁니까?”

가슴 위 상처가 거의 아문 것을 본 여명홍은 깜짝 놀라 물었다.

“칠 장로님의 영액에는 역시 강력한 치료 효과가 있다.”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고개를 들어 여명홍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영약을 좀 마셨을 뿐이다."

“상처의 회복 속도가 이리도 빠르고 체질도 보통 제자들에 비해 월등히 좋으니, 영약을 마신 게 분명하군요.”

여명홍과 대화 하는 사이, 란 장로가 옆에 있던 손 장로에게 말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손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심전에서 보인 능력부터 해서, 확실히 괜찮은 놈인 것 같군.”

란 장로는 약간 망설이며 말했다.

“이 약효를 보자니, 설마 저도 모르게 혈란초를 먹은 것인가?”

“다음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얘기하시지요. 당장 저 녀석이 쓸 만한 놈인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다른 장로가 불쑥 끼어들었다.

란 장로와 손 장로는 서로 쳐다보고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올라가서 시합하거라!”

이떄,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 하나가 여명홍을 지목하며 시합장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엽운 사형, 다녀오겠습니다.”

여명홍은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잠시 머뭇거리더니 검은 도포의 제자가 가리키는 시합장으로 향했다.

……

“이번에는 수지 맞는 장사를 하게 된 것 같군.”

백 장 밖에서는 남성이 엽운을 보며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저 아이의 자질을 보아하니 이번 시험을 통과한 뒤 한 번만 도와준다면 연기경까지 돌파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쩐지 칠 장로가 저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더라니, 어쩌면 영약도 칠 장로가 준 것일지도 몰라.”

옆에 있던 검은 도포를 입은 여러 제자들도 엽운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수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지금 천촉봉에서 잘 살아남기 위한 자질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꾀가 깊어야하고, 둘째는 연줄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지독해야 했다.

지금 그들이 보기에 엽운은 그 가운데 하나도 부족한 자질이 없었다.

검은 도포의 제자들에게는 엽운과 같은 독종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모두에게 좋을 것이었다.

이때 엽운은 아주 조용했다.

조금도 나서지 않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여명홍이 있는 시합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깐 동안 경기를 지켜본 엽운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여명홍의 상대는 수위가 연체 4단계 후기 정도였고 주로 잡역 제자들이 수련한 기초 무술을 사용했다.

보기에 여명홍의 공격은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반면, 상대는 몇 번이고 악을 쓰면서 공격하다가 멈추길 반복하는 것이 분명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해 짐에 따라 영력이 다소 낭비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악을 쓰더라도 여명홍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꽤 침착하구나. 보통 신입 제자는 적어도 몇 년은 연마해야 저 정도 수준이 될 수 있을 텐데.”

멀리서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 하나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침착하고 여유롭긴 하지만 추친력이 부족하고 대담하지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제자가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자질이 너무 평범하고.”

아주 잠깐, 엽운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줄곧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던 여명홍이 갑자기 가볍게 한 걸음 내딛더니 두 주먹을 번갈아 힘껏 앞으로 내질렀다.

주먹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상대는 영력을 느끼고는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러나 두 손으로 앞을 막은 자세로는 체내의 영력을 지속시키기 어려웠고, 낮게 울리는 충격 소리와 함께 그는 10여 보를 물러나, 얼굴이 핏빛이 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엽운 사형!”

여명홍은 기쁨에 겨운 얼굴이었지만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듯 아래에 있는 엽운을 향해 소리쳤다.

엽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음속으로 그의 승리에 기뻐했다.

“응?”

멀리 있던 남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천촉봉에서 지낸 몇 년 동안 그는 다양한 제자를 만났다.

이때 그는 여명홍이 약간 빌붙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가 그리 좋으냐? 다음 경기에서 우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여명홍의 귀에 들려왔다.

막 시합장에서 내려온 여명홍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건방진 목소리만 들어도 단진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31명이나 남았군. 행운인지 불행인지, 올해 신입 제자들의 실력은 작년보다 훨씬 좋군요.”

손 장로는 단진풍을 훑어보고, 란 장로 등에게 말했다.

“단지 너무 성급합니다. 대부분 너무도 우유부단하여 상대를 모질게 공격할 줄도 모르는 모양이구요.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다른 종문의 신입 제자들도 비슷할 터이니.”

란 장로는 고개를 저었는데 표정이 조금 복잡해보였다.

말을 마치며 옷소매가 흔들리자 30개의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역시 한 조각의 옥패였다.

엽운의 얼굴은 미동도 없고, 손은 텅 비어있었다.

그에겐 한 조각의 옥패도 날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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