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화 위협
화염을 두른 두 손바닥이 파도치듯 다가오며 온 공간이 열기에 휩싸였다.
비록 연기경에 달하지 못한 상태로는 화운열염수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손바닥에 담긴 힘만으로도 연체경 5단계의 무인을 중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해 심지어 한 방에 절명시킬 수도 있었다.
평소 이 서전의 소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경기장 아래에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소영승의 수위가 이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저 선기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천촉봉에 들어온 잡역 제자들 모두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고 있지만,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자는 많지 않을 거야.”
많은 신입 제자들은 놀라며, 한 편으로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비록 가장 하등인 9품 선기라 할지언정 대부분은 이 같은 진정한 선기를 익혀본 적이 없었다.
이는 적어도 명문가 출신의 귀족쯤은 되어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세상의 수많은 명문가 귀족들은 그 선조들 중 수선자가 있었기에 명문 귀족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엽운이 이 일격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합장 위의 엽운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눈에는 놀라움이나 두려움, 혹은 다른 감정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우물처럼, 어떠한 파동도 없이 조용히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별안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곧이어 주먹을 쥐곤 화운열염수를 향해 날렸다.
순식간에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이 순간 마치 몸집이 엄청 거대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한 주먹에 바람이 휘몰아치고 영력이 몸에서 솟구쳐 나와 주먹에 모였다.
주먹에서 하얀 빛이 불안정한 형태로 번쩍였다.
놀랍게도 몸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듯한 모습이었다.
참고로 영력은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되는 것이다.
응축시켜 진기를 이루고 연기경에 달해야만 진기를 뿜어내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엽운의 영력은 조금도 안정되지 않아 언제든 튀어나가 허공을 뚫을 것만 같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만약 오기경의 수위라면, 천지의 영기를 깨달음과 동시에 진기의 원리를 깨우쳐 어쩌면 이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시합장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엽운의 수위가 연체경의 5단계 내식경에 머물러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헌데 그 수위로 내지르는 주먹에 어찌 이 정도의 영력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자는 분명 어디선가 육체와 영력을 향상시키는 영약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런 영력을 가질 수 있는 거겠지!"
이미 오기경에 오른 황색 도포 제자들의 머릿속에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쾅!”
영력이 터져 나올 듯 한 철권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화운열염수를 강타했다.
두 공격이 매섭게 충돌하자 폭발적인 위력을 뿜어내며 연이어 폭발음이 들렸다.
곧 한 줄기 빛이 뒤로 날아가더니 경기장 뒤쪽 난간에 부딪혀 세게 넘어졌다.
엽운은 경기장 위에 조용히 서있었다.
다시 좀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체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규칙대로라면 서전의 제자인 소영승이 아직 항복하지 않았으니 시합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지금 다시 그를 공격한다 해도 규칙에 어긋나지 않았다.
한 번 더 공격하면 아마 소영승은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이었다.
하지만 엽운은 공격하지 않았다.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소영승이 숨을 한번 내쉬었다.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자 입가에 붉은 피가 흘르며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서로 한 수 물러나자는 엽운의 뜻을 분명히 이해했다.
방금 전의 주먹 한 방으로 엽운과의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던 억울함은 빠르게 존경으로 바뀌었다.
“엽운 사형. 정말이지 간결하고도 강력한 영력이옵니다.”
입가에 맺힌 피를 닦아내며 조용히 서 있는 엽운을 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때로는 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소영승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도 엽운의 뜻을 이해했는지 눈에서 감격이 느껴졌다.
“사형, 몸 조심하십시오."
조용히 말을 마친 뒤 엽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시합장을 내려왔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녀석이다. 상대하기 까다롭겠군."
"엽운이라 했지, 채집곡의 유도열이 이 자에게 맞아 죽은 것 같던데."
엽운이 내려오자, 아래쪽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동서전 신입 제자 대부분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 속에는 일말의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엽운의 고요함과 단진풍의 위풍당당함, 전혀 다른 색을 지닌 두 사람이었지만 이들이 보여준 실력은 모두를 두렵게 만들었다.
입문한 지 여러 해가 된 외문 제자들과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들조차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였고,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구나. 어쩐지 칠 장로가 그를 예뻐하더라니.”
검은 도포를 입은 7~8명의 제자들은 구경하기 위해 한쪽에 모여 있었는데, 남성은 수십 장 너머의 엽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남성 옆에 있던 한 제자가 이상하다는 듯 한 눈치로 되물었다.
"칠 장로님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저 아이에게 영전을 개간하라고 하셨다.”
남성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칠 장로라고?”
검은 도포를 입은 여러 제자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놀랍군. 실력이 비록 쓸만하다 고는 하지만 말도 안되는 실력을 가진 선배들에 비하면 한참 뒤쳐지는데, 칠 장로가 왜 저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네, 칠 장로는 정신이 나갔으니까. 헌데 칠 장로님 눈에 들었다면 믿을 구석이 하나 더 생긴 거지 뭐. 나중에 불리한 상황이 생겼을 때 칠 장로님한테 얘기하면 해결해 주실 지 누가 알겠어.”
남성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깊은 뜻을 담아 말했다.
주변에 있던 흑색 도포의 제자들은 모두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우리 천촉봉에서 군약란이라는 천재가 나왔는데, 수위가 이미 연기경에 달했다고 한다.”
검은 도포를 입은 한 제자는 감회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어쩌면 이미 장로님들께 거둬들여져 수제자가 됐을지도 모르지.”
"우리도 시련전에서 열심히 일해 왔고, 연기경을 돌파하기 까지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장로님의 진전 수제자가 되는 영애를 누려볼 수나 있을까하는데 말이야. ”
주위에선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남성과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1차 시합에서는 끊임없이 승부가 나고 있었다.
비록 생사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시합은 의외로 평화로웠고, 누구도 죽지 않았다.
“무엄하구나!”
별안간 차가운 목소리가 허공에서 요란하게 울리더니 무시무시한 위압이 허공에서 떨어져 시합장에서 막 항복을 외치던 제자를 때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제자는 비명을 지르며 돌계단에 세게 떨어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는 고통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 경련을 일으켰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자와 공격을 날린 란 장로를 보고 깜짝 놀라 잠시 동안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했던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냐?”
란 장로의 표정이 얼음 같이 차가웠다.
“이 자를 영수탑에 가두어라. 만약 또 누군가 감히 고의로 항복한다면 이와 같이 처분해라!”
신임 제자들은 순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엽운은 이 참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해도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