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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37화 (37/227)

제 37 화 싸움터

날이 밝아오자 수많은 제자들이 연무전을 향해 산길을 달려갔다.

청색 도포를 입은 엽운은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와 해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미소를 지으며 연무전을 향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엽운 사형!”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청포를 입은 한 소년이 하늘을 날듯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명홍 사제.”

엽운은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 사형, 상태가 썩 안 좋아 보이는데, 8위 안에는 꼭 들 것 같네요."

여명홍은 웃으면서 왔지만 엽운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엽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8위 안에 든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여명홍이 멍해져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엽운 사형, 사형께서도 시험이 미심쩍다고 생각하시나요?"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럼 사형은 8위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하실 건가요?”

여명홍은 망설이더니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장로님들은 우리보다 훨씬 예리하다. 일부러 힘을 숨기는 건 불가능해.”

엽운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혹시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하면 8위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고, 필사적으로 3위 안에도 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형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여명홍은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마저 그렇게 생각한다니, 설마 자신도 8위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엽운의 마음 속에 이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고 연무전 광장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전에는 이들의 대결이 없지만 한 장면이라도 놓치고 싶진 않았다.

엽운이 여명홍을 데리고 광장에 들어갔을 때에는 거의 모든 신입 제자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대열 속에 서서 소곤소곤 속삭였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엽운, 드디어 왔구나."

단진풍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뒤이어 한 그림자가 광장 밖에서 급히 날아와 순식간에 엽운 앞에 섰다.

"밖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꾸물거릴 줄이야. 네가 안 오면 이 몸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겠느냐?”

단진풍은 엽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오든 안 오든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엽운은 덤덤히 말했다.

"네가 안 오는데 내가 어떻게 등장해? 최강자는 마지막에 나타나야 한다고."

단진풍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연무전 광장에 있다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어째 너무 가식적인 것 같구나."

그를 한 번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척 속삭였다.

그러나 이 말은 단진풍 귀에 나지막이 들려왔다.

단진풍의 눈은 약간 움츠러들었지만, 오히려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엽운, 그게 무슨 뜻이냐?”

엽운은 냉소했다.

“스스로 이해 하거라.”

“재밌군.”

단진풍은 가볍게 세 글자로 받아쳤다.

"그래도 시작부터 날 마주치지는 말거라, 그래야 8위 안에 들 수 있을 것이야. 뭐, 곡일평 같은 놈들은 아마 네 적수가 안 될 것 같으니.”

한쪽에서 이 말을 들은 곡일평의 눈에는 살의가 스쳤다.

"왜? 어째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단진풍은 이미 그의 존재를 눈치 채고도 도발했다.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겨룰 기회가 생길텐데, 뭐가 그렇게 급한 거냐?”

곡일평이 차갑게 말했다.

단진풍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때가 되면 무서움 이란 걸 알게 되겠지.”

"귀찮은 일 만들고 싶지 않으면 다 입 닥쳐! 순우연 장로님이 오셨다!"

옆에서 황색 도포를 입은 제자들 몇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보기에 단진풍과 곡일평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입을 다물지 않는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훈계할 심산이었다.

엽운은 단진풍과 거리를 두었다.

다른 제자들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때 이미 여러명의 장로들이 광장 앞쪽으로 나와, 온 광장을 위압으로 뒤덮었다.

순우연은 모두를 훑어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우리 신입 제자들은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것 같군. 란 장로, 이번 시합의 규칙은 당신이 발표하시오."

란 장로는 엄숙한 표정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신입 외문 제자 시험은 3년마다 한 번씩 있다. 헌데 이번에는 8위 안에 들면 종문 임무에 참가할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에 규칙이 조금 다를 것이다."

그는 머뭇거리며 제자들을 훑어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옛말에 끝까지 가도 목숨을 건진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생사를 불문하고 최선을 다 하거라. 목숨이 걸려있는 싸움인 만큼 아주 험악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8위 안에 든다면 보상은 예년보다 훨씬 후하다. 따라서 이번 시합은 우리 모두 거는 기대가 크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가 시끌벅적해졌다.

이 규칙은 이치에 어긋났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승부를 가릴 수 있는데 굳이 왜 사활을 걸고 싸우라는 것인가?

이 말을 듣자 엽운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사를 불문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은 힘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고의로 실력을 숨기기가 어렵다.

"란 장로님, 상대가 죽어야 승부가 나는 건가요?"

많은 신입 제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렇다면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물론 아니다. 여지를 두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이렇게 해야 너희의 실력을 더 잘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란 장로는 제자들을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상대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 그런데 일부러 져주다 걸리면 바로 요수탑에 던져버릴 것이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보아하니 전에 생각해둔 계획은 아무 소용없는 짓 같았다.

란 장로의 말은 숨김없이 임하라는 뜻이었다.

이 같은 방식은, 진정한 최강자를 뽑으려는 것이다.

진정한 최강자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엽운은 깊이 생각했다,

실마리를 잡아 빨리 뭐라도 생각해낼 것 같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재미없군. 항복 따위 할 수 없으면 얼마나 좋아, 이 변변치 않은 놈들이 일찍이 눈에 거슬렸단 말이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종문의 수련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단진풍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진풍의 목소리는 작지 않아, 주변의 모든 제자들이 그를 곁눈질을 했다.

“정말 죽고 싶은가 보군.”

입문한 지 오래된 황색 도포의 제자들은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제부터 누군가 쓸데없는 말을 하면 바로 영수탑에 던져 버릴 것이다.”

란 장로가 차갑게 웃자, 위압이 장내를 휩쓸었고, 이내 모든 사람의 몸을 얼음물에 담궈 버린 듯했다.

곧 그는 두 손을 허공에 교차시켜 옅은 푸른빛을 반짝였다.

눈 깜짝 할 사이, 연무전 광장의 중심부만이 보였고, 8개의 경기장이 위로 떠올랐다.

모든 경기장은 이름모를 옥석으로 조각되어 있어 맑고 은은한 광채를 내뿜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연무 경기장은 햇빛이 드리우자 희미한 빛을 뿜어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엽운은 곧 이것이 감상할 만한 예술품이 아니라 피를 묻힌 살육장임을 깨달았다.

평소 천촉봉의 제자들은 수련 활동 외에도, 제자들 사이에 풀기 어려운 원한이 있으면, 윗선의 동의를 받아 이 연무 경기장에서 사활을 건 전투를 벌였다.

“오늘 이후로 여러 사람들과 이 싸움터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엽운은 맑고 투명한 연무대를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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