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화 영액
청목단병 속에 담겨있는 것은 칠장로의 술단지에서 끌어 모은 잔액이었다.
하룻밤이 지나자 청목단병의 표면이 맑아져 옥같은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영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술 냄새만으로도 영석의 영기를 빨아들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험을 치르기 전 이 영액이 어떤 놀라운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영액이 별 효능이 없더라도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영기가 체내로 흡수되어 영력을 보충해준다면 결정적인 상황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칠장로가 영액을 마시는 것을 보니 정말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나쁜 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귀가 맑아졌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고 청목단병을 열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방울을 입에 떨어뜨렸다.
“뭐야!”
별안간 안색이 바뀌었고 온 몸이 거세게 떨려왔다.
한 줄기 기운이 체내에서 맹렬하게 퍼지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차디찬 기운 한 가닥이 복부에서부터 천령으로 곧장 돌진했다.
죽음의 기운이 온몸을 뒤덮어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치 모든 의식이 얼어붙고 소멸되어 머지않아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하고 속에서 흑백의 빛이 번쩍였다.
차가운 기운은 순식간에 흑백 빛에 의해 절반 넘게 흡수되었다.
곧 흑백의 빛은 빠르게 사라졌다.
엽운은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헉헉거리더니 그제서야 격렬한 숨소리를 냈다.
“이건.....”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방금 전의 느낌을 떠올렸다.
강한 영기의 기류가 몸에 흐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영기의 양은 하품영석 하나에 담긴 영기의 양보다 훨씬 많게 느껴졌다.
그만큼 빠르게 영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돌풍이 영혼을 밀어내 순식간에 죽음에 이를 것 같던 그 기운은 어떻게 된 것일까?
엽운은 계속해서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차디찬 기운이 사라지고 나니 머리가 더욱 맑아졌다는 것이다.
마치 맑은 공간에 떠있는 것처럼, 샘물과 안개에 수없이 정화 되 미세한 먼지조차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고, 주변의 색상까지 선명하게 살아났다.
무엇보다 평온한 기운이 스며들어 언제든 물아를 잊을 수 있는 상태에 들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는 작용이구나!”
“강대한 정신!”
"이 영액은 정신을 맑게 해 집중 시키는 것이야!"
이 순간 엽운은 완벽히 반응했다.
영액의 가장 강한 효능은 바로 영혼에 있었다.
영기가 보충 된 것은 아마 약 자체가 영기를 자연적으로 발산하기 때문 일텐데, 이것은 단지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칠장로는 제정신이 아니던데, 혹시 영혼이 손상되어 영액을 마셔야 정신을 차리는 걸까?"
엽운은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시에 식은땀을 흘리며 방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알았다.
정신력을 강하게 만드는 약들은 대부분 연기경 이상의 수사들만이 감당할 수 있었다.
한꺼번에 많이 복용하면 오히려 영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큰일 날 뻔했네!”
만약 귀중한 보물인 흑백의 빛이 체내에 없었더라면, 죽거나 미쳐버렸을 것임이 분명했다.
"아마 다른 효능도 있는 것 같군. 기혈까지 왕성해지니, 어쩌면 큰 부상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칠장로는 도대체 어떤 신분이길래 이런 영액을 배합해내고 또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는거야! 이런 영액을 천촉봉의 장로가 쓸 수 있나? 정녕 그는 천검종 내산 출신인 것인가?"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청목단병을 보고, 이번에 반드시 종문 시험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험이 하나 더 생겼다.
비록 천촉봉 장로들의 진전 수제자라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영력을 보충할 수 있는 영액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영액은 놀랍게도 정신을 안정시키고 또 강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은 이 술을 마시면 바로 죽을지 모르지만, 그는 흑백의 빛을 가지고 있기에 좋은 점 밖에 없을 것이다.
……
……
아침 햇살이 어둠을 뚫고 대지에 빛을 전하자 밤새 조용하던 천촉봉이 바빠졌다.
푸른 도포를 입은 수많은 외문 제자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가 보였다.
오늘은 천촉봉 외문 제자들의 결전의 날이다.
100위 안에 들면 천검종을 대표하여 종문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후한 상을 받을 수 있다.
천촉봉의 외문제자들은 모두 같은 등급으로 보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높고 낮음이 있었다.
엽운처럼 새로 부임한 외문 제자들은 청색 도포 밖에 입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수위가 평범하여 주목을 받지 못한 제자들 역시 청색 도포를 입어야 했다.
예컨대 채집곡, 연약당 등 당에서 인정받은 제자들만이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당에 들어갈 수 있는 제자들은 황색 도포를 입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지위는 청색 도포 제자들보다 반 수 위였고, 약간의 수련 자원도 얻었다.
청색 도포의 제자들처럼 자신의 노력만으로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황색 도포의 제자들이 받는 수련 자원 역시 매우 적었지만, 없는 것 보다야 나았다.
수위가 일정한 경지에 이르러 각 당의 장로들의 눈에 띄면 소대의 책임자가 될 수 있고, 비로소 검은색의 긴 도포를 입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었다.
이 제자들은 달마다 상당한 양의 고정적 수련 자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아래의 분대가 임무를 완수하면, 별도의 보상도 주어졌다.
이들은 거의 연체경의 절정에 이르는 수위를 가졌고, 여차하면 오기경을 돌파하여 연기경에 달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들이 외문 제자들 가운데 최고위급은 아니었다.
예컨데 남성의 경우, 그의 수위는 일찍이 오기경 절정에 도달했고, 연기경의 경지까지는 고작 반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 역시 시련전에서 임무를 하사하는 직위에 앉아 추가적인 자원을 받았는데, 이 같은 직위는 매우 중요해 시련전 장로가 인정하는 제자가 아니면 절대 앉을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어쨌든, 남성과 같은 검은 도포의 제자들조차 외문의 제자들 중에서 종문의 보살핌을 가장 많이 받는 부류가 아니었다.
자주색 옷을 입은 제자들이 외문제자들 중 으뜸이었다.
자색 도포의 제자들은, 예외 없이 수위가 모두 연기경에 달하고, 내문을 노려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천재들이었다.
자주색 도포의 제자들은 어떤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경지를 높이고 수위를 강화하여 2년마다 시행되는 내문 제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일단 시험에 통과하면 하루아침에 용이 되어 천촉봉 외문을 떠나 내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문의 수련 환경은 외문에 비해 적어도 열배는 좋아서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촉봉의 임무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련자원이 풍성했다.
그들이 할 일은 단지 수련하고, 수련하며, 또 수련하는 것뿐이었다!
그만큼 내문 제자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연기경은 내문 제자의 심사 기준으로 수위가 연기경에 달해야만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천촉봉이 세워진 이래 1100년의 세월 동안, 수위가 연기경의 5단계, 6단계, 심지어 7단계절정에 이른 외문제자들은 많았어도, 마지막 한 걸음을 더 나아 간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