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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34화 (34/227)

제 34 화 궁리

100위 안에 들면 임무를 완수했을 때의 상금이 눈에 띌 정도로 두둑해, 상품영석 20개를 받으면 수위를 한 층 더 성장시킬 수 있었기에 연체경 7단계인 오기경을 돌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3년간 잡역 외원을 전전하며 얼마나 많은 수확을 얻었고, 얼마나 많은 헌신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을 필요도 없이 남성 사형의 설명만으로도 윗선의 장로들은 하층 제자들의 생사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쉽게 말하자면 천촉봉의 푸른 도포를 입은 제자들과 노란 도포를 입은 제자들만 해도 4~5천 명에 달하기에 그 정도 손실은 아무 것도 아니니 심묵이나 군약란 같은 자질이 가장 높은 제자들만 골라내면 된다는 뜻이었다.

이때 순우연 장로의 목소리가 울렸다.

“본디 제자들이 입문할 무렵 동서전의 시합도 함께 열리곤 하는데, 8등까지는 장무각에 들어가 공법과 무기를 고를 수 있는 상을 받고 중품영석 50개도 받는다. 3등까지는 무기 두 개를 고를 수 있는 별도의 상을 받을 것이고, 1등은 거기에 중품영석 50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이 한 마디에 현장은 순간 시끌벅적해졌다.

정말 후한 보상이었다.

근 수십 년, 아니 백년 동안 신입 제자의 시험에서 이렇게 많은 보상이 있던 적은 없었다.

순우연은 시끌벅적한 광장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말했다.

“신입 외문 제자 중 8등까지는 모든 제자 시험의 100위에 바로 진입해 종문 임무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현장은 다시 한 번 떠들썩해졌다.

신입 외문 제자는 수위가 가장 낮은 제자들이기 떄문에 설령 8등 안에 든다 한들 입문한 지 오래된 제자들과 비교하자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순우연이 그들을 바로 100등 안으로 들게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우연은 군중을 보며 미소 지었다.

“원래대로면 너희들은 절대 이런 영광의 자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란 장로가 나에게 말하길 이번 신입 제자들은 잠재력이 매우 커 그 수위가 몇 회 전보다 많이 높아졌다고 하더군. 그리하여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니 이 기회를 잘 잡도록 해보아라.”

순간 100여 명의 신진 제자들의 대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로님들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신입 외문 제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 이번 보상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머지않아 연체경 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연체경의 절정인 오기경에도 닿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엽운은 숨을 한 번 내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변이 없는 한 그가 8위 안에 든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시험에서 8위 안에 든다는 것은 그가 전체 100위 안에 든 제자들과 함께 어떤 종문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이 종문의 임무는 매우 위험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딱 하나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위험한 임무라면 어째서 수위가 더 높은 제자들이 참가하도록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러던 중 갑자기 소름 끼치는 한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란 장로와 손 장로가 그와 곡일평 등을 훑어보고 있었다.

별안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번에 상을 받지 않게 일부러 실력을 숨기려 해도 안 먹힐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의 실력은 장로들의 눈에 들은 지 오래였다.

"엽운, 곡일평, 이번에도 분명 우리 셋이 3위 안에 들것이다. 하지만 1등은 반드시 이 몸이겠지. 너희들은 그때 가서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면 된다.”

바로 이 순간, 대열 속에서 단진풍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단진풍, 누가 1등인지는 겨뤄봐야 알겠지."

곡일평은 차가운 목소리로 살의를 가득 담아 말했다.

.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일부 신입 제자들의 입가에는 냉소가 감돌았다.

엽운을 포함한 세 사람은 일전에 남들보다 실력이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다만, 그들의 수위가 정말 여기있는 모두를 업신 여길 수 있는 수준일까?

겸손을 모르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주위에 있던 입문한 지 오래된 제자들의 귀에 단진풍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가자 연신 냉소가 이어졌다.

“상을 받고 나서는 눈치껏 행동해야겠군!”

엽운은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왕 힘을 숨길 수 없게 된 이상 가능한 한 많은 영석을 얻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흑백 빛의 신비로움은 서서히 드러났다.

영기를 흡수한 뒤 내뿜는 그 영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수했고 이 영력을 통해 순식간에 한 경지를 돌파했다.

수위를 성장시킬수록 흑백의 빛은 더 많은 영력을 흡수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내뿜는 영력은 더욱이 거대해질 것이니 충분한 영석과 적절한 공법, 그리고 선기를 연마할 기회만 있다면, 그의 실력은 단시간에 놀라울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단호한 눈빛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연기경에 달한 진천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천촉봉의 제자가 된 이후로 진천한이 그를 잊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

허공에서는 순우연 등 세 사람이 아래쪽 제자들의 반응을 보며 웃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다들 알아 들었으면 여기까지만 하지. 신입 외문 제자의 시험은 내일 아침부터이고, 나머지 제자들의 절차는 내일 오후부터 시작하겠다.”

란 장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는데 이번에는 위압적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은은했지만 제자들의 귀에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역시나 시간이 긴박했다.

준비할 시간이 하룻밤 밖에 없다니.

새로 입문한 외문 제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입문한 지 오래된 제자들, 특히나 노란 모포를 입은 제자들은 모두 안색이 굳어졌다.

시간이 며칠만 있었더라면 그들은 방법을 찾아내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장로들을 찾아가 친분이라도 쌓을 수 있을 터. 하지만 하룻밤만으론 결코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엽운, 어디 가느냐?"

엽운이 광장을 떠나려는 순간, 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무의식적으로 그 목소리가 단진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냐?"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너한테 일러주러 온 것이다. 기도나 열심히 하거라. 절대 8등 안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마주치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 보상은 다 날아갈 테니.”

단진풍은 미친 사람처럼 박장대소했다.

왠지 모르게 단진풍이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을 직감한 엽운은 다시 단진풍을 보았는데 혐오스러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단진풍의 말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문득 무언가 떠오르게 했다.

“8위 안에 들기 전에 너를 만나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무슨 말이냐, 설마 네놈이 나를 탈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단진풍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썹을 치켜세우고 엽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엽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주먹을 쥐고 돌진하는 단진풍의 손바닥을 세게 쳤다.

퍽!

무거운 소리가 울리고, 단진풍과 엽운은 나란히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단진풍,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리든 나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주저하지 않고 차갑게 웃으며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럼 내일 혼쭐을 내주지.”

단진풍은 손을 휘두르며 엽운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엽운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숙소로 향했다.

단진풍의 참견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다른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만약 8위에 들어가기 전에 단진풍이나 곡일평을 만난다면, 일부러 패배해도 장로들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8위에 들어가기 전에 적수를 만나지 못해 8위에 들어간다면, 차라리 필사적으로 3등 안에 들고 1등을 노려 가능한 많은 이득을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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