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화 수상쩍음
시련전 밖을 누비던 외문 제자들은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계속 시간을 앞당기다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거 아니야?”
남성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한 가닥 의혹이 서려 있었다.
"신입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종소리인가?"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종이 세 번 울렸는데, 이것은 그들을 소집하는 신호였다.
그리고는 허리패에서 이상한 빨간 빛이 번쩍였고 허리패의 지도 위에 붉은 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집합 장소를 가리키는 표식이었다.
혹시 남성이 이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남성 사형, 혹시 이게 뭔지 아십니까?”
"빨리 연무전 광장으로 모이라는 구나, 아마 동서전의 시합일 것이다.”
남성은 허리 패 위의 집합 장소 표식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래 잡역제자는 삼 년에 한 번 시험을 보는데, 지금은 훨씬 앞당겨진 모양이다. 동서전의 시험은 원래대로라면 입문한 지 한 달이 지나야 한다.”
"지금 당장 동서전에서 시합을 벌이는 건가?"
엽운은 크게 놀랐다.
“전에 손 장로님과 다른 분들께서는 저희가 입문한 지 열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3일 후에 소집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하루가 앞당겨졌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그러게. 정말 혼란스럽구나.”
남성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머뭇거리며 엽운을 보곤 말했다.
“가능한 것은 딱 하나다. 그건 바로 장로들에게 전달되는 명령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만 뭔가 미심쩍은 점이 있으니 조심 하거라.”
“알겠습니다.”
엽운은 더 이상 지체 하지 않고 지도에 나타난 장소를 향해 날아갔다.
“엽운 사형!”
어느 산길 앞에 서있던 푸른 도포를 입은 제자가 날아가는 엽운을 보고는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인사를 올렸다.
"너는?"
엽운은 그를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저는 여명홍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연심전에서 사형의 조언 덕분에 절벽을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그후 엽운 사향과 단진풍 사형의 능력을 보고 그것을 따라해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감사함이 가득했다.
“만약 엽운 사형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번 시험을 통과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아마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겠지요.”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다. 서로 돕는 게 당연하지.”
엽운은 이 자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은혜에 감사할 줄은 아는 것 아닌가.
"엽운 사형, 우리도 서둘러 따라갑시다."
여명홍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갓 입문한 제자들 대부분이 그들을 앞질러 가는 것을 보고 급하게 엽운에게 말했다.
“가자.”
엽운도 군말 없이 힘차게 날아갔다.
연무전은 천촉봉 중턱에 있는데, 큰 광장이 구름 속에 펼쳐져 있고 커다란 그림자가 아래쪽의 식물을 무려 10리가 넘게 뒤덮고 있었다.
연무전은 보통 천촉봉 제자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곳이다.
정기적으로 시합을 열기도 하는데, 높은 경지에 올라 큰 잠재력을 가진 제자를 골라 포상을 하거나 중점적으로 육성했다.
천촉봉의 외문에는 규정이 있어 모든 제자들이 맞서 싸울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풀 수 없는 원한이 있다면 외원에 가서 계율당 장로에게 승락을 받은 다음 연무전의 생사대에서 생사를 결정하는 비무를 벌여야 한다.
만약 평소에 몰래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인다면, 징계가 가벼울 경우 영석을 빼앗기고, 무거울 경우 수위를 모두 폐기시킨 뒤 종문에서 쫓아낸다.
평소 연무전에서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많은 제자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천촉봉의 모든 제자들은 수련 자원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얻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거의 모든 시간을 임무를 수행하는데 썼다.
그곳에 가서 머리를 맞대고 싸울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생사가 걸려있는 싸움이라면 더 말할 것 도 없다.
. 연무전 광장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주변을 한 번 훑어본 엽운은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광장에는 막 시험을 통과한 백 몇십 명의 신입 제자을 포함해서 적어도 5천 명이 넘는 천촉봉 제자들이 있었다.
“우리 천촉봉 외문에 제자들이 이렇게 많았나요?”
여홍명의 얼굴도 한없이 창백해졌다.
천촉봉에 신입 제자들은 모두 푸른 도포를 입었다.
입문한지 오래되어 고정 직책을 맡은 일부 사람들은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 정도 수위가 된다면 장로들의 정식 제자로 거두어져 영전, 단화방, 시련전 등 중요한 곳에서 직책을 맡게 되고 그러면 비로소 검은 도포를 입을 수 있었다.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들만이 비로소 천촉봉의 비밀스러운 장소들에 들어갈 수 있다.
천촉봉의 고심심법까지 수행해야만 비로소 흔히들 말하는 내문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촉봉의 검은 도포를 입은 제자라 하더라도 무영봉의 외문에 해당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영봉은 천검종의 내산에 있지도 않았다.
이런 높은 등급이 있다는 사실은 잡역 제자일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고작 이 천촉봉 하나에 그들과 같은 제자들이 4~5천 명이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매년 일이백 명씩...적어도 수 십 년이 지나야 이 많은 제자들이 푸른 옷이나 노란 옷을 입는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즉, 천촉봉에서는 수 십 년이 지나서도 검은 도포를 입지 못하면 여전히 최하등 제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 많은 제자들을 보고 있자니 여명홍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연무전 위쪽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허공에 떠오르더니 하늘을 천천히 걸어왔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희끗희끗한 노인이 정수리에 상투를 틀고 나무로 만든 작은 검 한 자루를 비스듬하게 꼽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고 옷깃에 금색 실 한 가닥을 달아 놓았는데 뒤에는 푸른 옷을 입은 노인 두 명이 조용히 서있었다.
그 중 좌측에 있는 자는 전에 심묵을 데리고 간 란 장로였다.
“순우연 장로다. 전해지기론 그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의 정점에 이르러 머지않아 음양을 깨우치고 촉기경에 달할 것이라고 하더군.”.
“연기경 절정이라면 어느 정도 수위인가요? 이번 생애 오를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만.”
“연기경 절정인 진화경은 음과 양을 정련하고 500년을 살 게 만들어준다 하니 이것이야 말로 수선이라 할 수 있지.”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죠? 순우연 장로까지 온 걸 보니 큰 일이 있는 것 같네요.”
"하늘이 정해놓은 뜻은 누구도 바꿀 수 없지 않느냐, 어쩌면 좋은 일 일지도 모르지.”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꿈 깨라.”
이곳에 수 많은 제자들은 이미 입문한지 제법 오래 되었는데, 이 장로들을 보자 서로 의견이 분분했고 입문한 지 오래된 제자들일수록 오히려 표정이 굳어져 갔다.
란 장로는 허공에서 한 걸음 다가서더니 두 손을 살짝 올려 지긋이 누르는 동작을 보였다.
순식간에 막을 수 없는 위압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한없이 돌진해 와 모든 이의 정수리를 짓눌렀다.
연무전 광장은 이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번 소집을 통해 너희들에게 얘기해줄 것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로 순우연 장로는 천촉봉을 대표하시는 분이며 새로 부임한 제자 128명을 모두 환영하신다. 너희는 우리 천촉봉의 강력한 지원군으로, 훗날 천촉봉을 빛낼 희망이다.”
란 장로는 사람들을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위압이 없었다면 연무전 광장에서는 분명 야유가 쏟아졌을 것이다.
128명의 신입 제자들을 환영하는 일에 순우연 같은 장로까지 나올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다들 머릿속으로만 지껄일 뿐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천촉봉에서 쫓겨나 수위를 폐기 당하고 하산하고 싶거나, 목숨을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두 번째로, 이번에 모든 외문 제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를 것인데, 100위 안에 드는 제자들을 선발해서 천촉봉을 대표해 천검종의 한 임무에 참가시킬 것이다. 임무를 완수하면 인당 상품영석 20개와 중품영기 1개를 포상할 것이다.”
란 장로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는 시선을 한 번 훑고서 이어 말했다.
“이번 종문의 시험 임무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너희 모두의 종합 평가에 기록될 것이다. 눈에 띄는 수확을 거둔 자는 수위가 낮더라도 내문 제자로 발탁될 것이니 모두 실력을 발휘해서 100위 안에 들 수 있도록 하거라.”
란 장로의 말이 끝나자 위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잠깐 사이에 떠드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형, 저희에게도 기회가 왔으니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 100위 안에 들 수 있다면 곧 내문 제자가 되는 것이다.”
"맞아요, 오늘을 위해 10년간 열심히 수련했어요."
“멍청한 놈들, 100위 안에 들어 임무를 완수한 후에 받을 보상은 상품영석 20개와 중품영기 1개인데, 상품영석은 그렇다치고, 중품영기는 우리가 쓸 수나 있는 거야?”
"김사제, 이 녀석들은 아직 어려서 이 임무가 얼마나 험한지 전혀 모른다. 우리는 절대 100위 안에 들지 말자고.”
“악사형, 저희는 모두 천촉봉 외문에서 50위 안에 드는 수위입니다. 이번 시합에서 100위 안에 들지 못하면 란 장로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좋치?”
"조금만 더 지켜보자.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좋겠건만.. 만약 며칠만 시간이 있다면, 미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천촉봉에 입문한 지 오래 된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계략이 있었다.
그들 모두 이번 선발 시험이 지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험에서 만약 의도적으로 패배해 100위 밖으로 밀려나 처벌을 받는다면 그 처벌이 어느 정도 수준 일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만약 육체적인 고통일 뿐이라면, 억지로라도 참고 견딜 것이었다.
위험한 시련에 참가해서 목숨을 잃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엽운 역시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계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