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화 미친 노인네
수선이란, 그 육신 자체의 수련을 제외하면 연단, 연기, 진법금제에 대한 수행 등이 있다.
이른바 3천 개의 대도는, 각각 다른 길일지언정 목적지는 같으니, 최선을 다하여 수련하면 결말은 모두 같았다.
그러나 이 진법은 지금의 엽운에게는 너무나 심오한 것이었고,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엽운은 눈앞에서 어렴풋이 빛나고 있는 은빛의 땅을 보고 있자니 감히 발을 디딜 수 없었다.
특히 앞쪽 멀지 않은 곳에 영전에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는데, 심지어 어떤 곳에선 빗줄기가 내렸고, 천둥과 번개 치는 곳도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소인 엽운 영전을 개간하러 왔습니다.”
목소리는 공중에서 메아리쳤고, 빠르게 흩어졌다.
“소인 엽운, 영전을 개간하러 왔는데, 칠장로님 계십니까?”
숨을 들이마시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순간, 분노에 찬 노쇠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무엄하구나, 누가 감히 영전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목소리가 마치 모든 영초와 모든 꽃, 그리고 영전의 한 뼘 한 뼘의 모든 공간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듯 사방에서 들려와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엽운은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었다.
엄청난 기운이 빠르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누가 너를 들여보냈느냐? 밖을 지키던 제자 둘은 죽었느냐? 만약 죽지 않았다면, 잠시 후 내가 나가서 죽여 버릴테다.”
노쇠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이곳저곳이 아닌 엽운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 노쇠한 목소리로 말끝마다 죽음을 언급하니, 엽운의 마음속에서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올라왔다.
‘이 사람이 바로 칠장로인가? 성격이 단지 괴팍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몸을 돌렸다.
노인 한 명이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 노인은 머리가 헝클어져 어깨에 아무렇게 늘어져 있었고 옷차림도 남루해 너덜너덜해 보였다.
백발이었지만 얼굴만큼은 동안이어서 온 몸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선배님이 칠장로님 이신가요?”
엽운은 더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내 공손히 절을 올리며 말했다.
"소인은 임무를 맡아 영전을 개간하러 왔을 뿐입니다."
“영전을 개간하러 왔다고”
이 노인은 분명 칠장로였다.
그는 잠시 멍해 있다가, 갑자기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이곳의 영전을 아직도 더 일궈야 한다고?”
그러자 엽운은 정말로 어리둥절했다.
"선배님, 시련전에서 받은 임무입니다."
“머저리 같은 놈들! 10년 전부터 누구도 영전에 와 개간을 돕지 못하게 하도록 그렇게 당부했는데, 내가 신경 쓸 여유가 있겠느냐!? 그리고 여기 오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나쁜 일만 저지른다고.”
칠장로는 분노하며 말했다.
“특히 네 놈 같은 녀석들..!”
바로 이때, 그는 엽운을 보며 무언가를 눈치 챈 듯 놀라 소리쳤다.
"천촉봉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엽운의 입가에 별안간 쓴웃음이 번졌다.
보아하니 이곳의 영전은 한 사람이 돌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이 칠장로의 성격이 괴팍해서 종파의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장로에게 맞서 영전을 차지하려고 하는 제자에게 어떻게 좋은 결과가 있겠는가?
“선배님, 저는 단지 영전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선배님이 정말 달갑지 않으시다면…”
엽운은 소리를 내어, 그가 원치 않는다면 이 임무를 취소하고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뭐, 뭐라했느냐? 영전이 어디라고, 보고 싶다면 다 볼 수 있는 줄 아느냐?"
칠장로는 갑자기 더욱 더 열을 내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엽운은 순간 고개를 떨구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썩 꺼져라!”
칠 장로는 펄쩍 뛰며 손찌검을 하려고까지 했다.
엽운은 무거운 짐을 벗은 듯 고개를 돌려 떠나려 했다.
지금은 어떻게 임무를 취소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가 아니라 목숨을 부지할 때인 것 같았다.
“네가 여기 있은 지 석 달이 되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이냐, 경고하는데, 이 영전의 꽃과 풀은 모두 보배이다. 무영봉의 늙은이들이라 할지언정 감히 이곳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금방 몸을 돌린 엽운은 다시 한 번 멍해졌다.
‘석 달이라니 무슨 뜻이지? 좀 전에 이곳에 왔을 뿐인데, 벌써 석 달이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이 칠장로는 성질이 괴팍한 것뿐만 아니라 정신도 오락가락 하는 것 같았다.
천촉봉은 어찌 이런 장로에게 중요한 영전을 돌보도록 맡겨놓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일까?
엽운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빨리 가서 술 가져 오너라.“
이때 칠장로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네 이놈 여기서 뭐하는 것이냐! 빨리 술 가져오지 않고.”
"술을 가져오라구요?"
엽운은 몸을 돌려 칠장로를 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찌 석 달 째 여기 있으면서 술 가져오는 것도 모르느냐?"
칠장로는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내가 직접 가야 하나?"
좀 전에 죽여벼리겠다고 소리칠 때 까지만 해도 진정한 살의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무서운 살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몸속 깊이 잠든 흑백의 빛까지 반응하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란 고개를 돌려 칠장로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옅은 안개 속에 푸른 등나무가 가득한 석옥이 있었다.
"칠장로님, 술이 저 오두막에 있습니까?"
엽운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나보다 기억력이 떨어지는게냐?"
칠장로는 굳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엽운의 눈앞이 캄캄해졌고 피가 역류해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석옥 앞으로 밀려온 것을 알았다.
“세 단지 가져오너라!”
칠장로의 호령이 다시 들려왔다.
엽운은 가슴이 아파왔지만, 감히 머뭇거릴 수가 없어 억지로 닫힌 방문을 밀어젖혔다.
다행히도 안에는 침상 말고도 청자 술 단지가 가득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두 봉인되어 있었다.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만약 이 칠장로가 정신이 나가 이곳에 사실은 술 단지가 하나도 없거나, 혹은 숨겨져 있어 찾지 못했더라면, 영문도 모르고 단숨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님, 술 가져왔습니다.”
엽운은 단지 세 개를 안고 가능한 빠른 속도로 칠장로 앞으로 날아갔다.
이때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몸이 흑백의 빛에 의해 개조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또 내식경에 이르지 못했더라면, 그 한 방에 중상을 입고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놈이 가르칠 만하군. 여기에 석달동안 있더니, 꽤 똑똑해진 것 같구만.”
칠장로는 노여움이 다 풀린 채 흡족해하는 모습으로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왔던 놈들은 모두 멍청해서 단 한 사람도 술을 가져 오지 못했다.”
이 말을 들은 엽운은 한기가 몰려오고 등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됐다.
예전에 이곳에 왔던 제자들은 한 대 맞고 일어나질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술을 가져오지 못했고, 그 뒤론 더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펑!”
칠장로는 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는데, 뿜어져 나온 영력이 술 단지의 봉인을 모두 풀었다.
짙은 향기가 공기 중에 가득 찼다.
“이건?”
엽운은 흠칫했다.
짙은 술 냄새가 풍겨왔다.
확실히 술이었지만, 그 속에서 놀라운 영약의 향기가 났다.
냄새만 맡아도 경맥에 영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껴졌다.
"좋은 술이다. 역시 좋은 술이야."
칠장로는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술 세 단지를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쩝쩝,”
몇 번 입맛을 다시고는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더니 말했다.
“허리패를 줘 보거라.”
“허리패 말씀이십니까?”
엽운은 재빨리 허리패를 건네주었지만,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됐다.”
칠장로가 허리패를 받아 멋대로 슥슥 긋더니 말했다.
“넌 먼저 내 술 단지를 도로 갖다 둔 후 꺼지도록.”
“이것은?”
엽운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칠장로는 그를 보며 말했다.
“네 놈은 딱히 눈에 거슬리지 않으니, 내친김에 영석을 모을 수 있도록 앞의 몇몇 사람이 해놓은 임무를 적어 놓았을 뿐이다.”
엽운은 황당했지만, 칠장로를 보니 이전과는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했던 두 눈도 선명해졌다.
그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살짝 흔들렸다.
칠장로는 뒷짐을 지고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네 녀석, 자질이 괜찮구나. 영석을 벌고 싶다면 시간 있을 때마다 오거라.“
엽운은 이 장로의 정신이 좀 더 맑아진 것 같다 생각했지만, 갑자기 다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빈 술 단지 세 개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술 단지를 끌어안는 순간 짙은 술냄새와 약냄새가 다시금 그의 코를 찔러왔다.
이번에는 마치 하품영석을 흡수한 듯 콧속에서 한 줄기 영기가 넘쳐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술 단지 바닥에 남은 옅은 진녹색의 술을 발견했다.
칠장로는 손이 가는 대로 술을 부어 댔는데, 술 단지마다 잔액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그의 머릿 속에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고, 심장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