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26화 (26/227)

제 26 화 방목

"이것도 상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엽운의 눈빛이 달아올랐다.

수련에 필요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손 장로는 이어서 말했다.

“천촉봉은 동, 서 두 성전으로 나뉘는데 각각 다른 직책을 맡고 있으니, 너희는 나를 따라 동전으로 갈 것고, 양 장로가 이끄는 곳은 바로 서전이다. 온 힘을 다해 수행할 수 있도록 동서 양전은 항상 시합을 주최해, 승자에는 두둑한 상이 주어질 것이다.”

“어떤 상인가요?”

한 제자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천촉봉은 한가한 사람을 키우지 않고 공짜로 무언가를 주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수행에 필요한 것은 너희들이 임무를 완수해서 스스로 바꾸거나 포상을 통해 얻어야 한다.”

손 장로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진나라의 새로운 외문 제자들은 열흘 후에 동서 양전의 신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치를 것이다. 8등 안에 들 수 있는 자는 곧바로 천촉봉의 장무전에 들어가 공법과 무기를 하나씩 고르고, 일정한 양의 영석을 상으로 받을 것이다.”

“8등 안에 못 들면 어떻게 됩니까?”

놀란 듯한 목소리 하나가 울려퍼졌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당연히 8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8등 안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네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실력이 부족하면 자연히 종문이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공법과 선기를 수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손 장로는 귀찮아하지 않고 천천히 설명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만약 처음부터 공법과 선기를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 종문의 임무를 완수할 때 그 사람들에 비해 자연스럽게 손해를 보게 되잖아요.”

“공평? 공평하려면, 공평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처음부터 뒤쳐지는게 손해라는 것을 알았다면 열배, 심지어 백배는 더 노력해서 따라가야 한다! 더 좋은 수련 공법과 자원을 얻으려면 더 많은 임무를 완수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손 장로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죄다 영양가라고는 없는 말 뿐이었다.

“순전히 변칙적으로 핍박하겠단 말이군.”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에 유도열의 핍박에 못 이겨 위험천만한 구역으로 들어가 영약을 채집했던 일이 떠올랐다.

확실히, 이런 이익구조로 제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종문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이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임무를 완성하게 할 수 있지만, 이런 수행은 사상자가 생기는 것이 불가피했다.

손장로의 말은 그로 하여금 천촉봉에서의 수행도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왜죠? 이 정도만 해도 가혹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다음 수행은 더 위험할 수 밖에 없다는 건가요?”

손 장로는 한 번 훑어보고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다시 크게 웃었다.

“수선의 길이란 본디 하늘과 목숨을 다투는 일이고, 한 걸음 한 걸음 운명에 맡겨 싸워야 하는 법이다. 멀쩡한 하늘에서 아무 까닭 없이 영석과 영약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설령 영약의 냄새를 맡아 손쉽게 영약의 요수를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영약을 찾으러 쫓아가던 수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천도가 그러하다. 천군만마가 함께 길을 걷는다 해도 막판에 그들을 떨궈낸 자가 비로소 신선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엽운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청색 허리 패를 쥐고, 손가락으로 20037이라는 숫자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쩐지 길에서 본 외문 제자들이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던 것은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뜻 같았다.

“모두들 허리 패를 차 봐도 좋다.”

손 장로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듯 무표정하게 호통 쳤다.

엽운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영력을 천천히 허리 패로 주입시켰다.

허리 패에서 빛이 떠오르더니, 외문 제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거기 그 빨간 빛이 바로 너희들의 주소이다.”

손 장로는 그들을 한번 훑어보곤 덤덤히 말했다.

“이제 해산하고, 각자 사는 곳으로 가도 좋다. 그 다음 종문의 공통 소집이 있으면 종소리로 소집을 할 것이다. 평일에는 각자 수련하는 것 외에, 임무란 도 볼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직접 가서 등록하고 임무를 수행 하거라. 이 허리 패의 빛 속에 자세히 쓰여 있을 것이다.

제자들이 떠들썩했다.

시험에 통과하기 전 까지만 해도 그들은 천촉봉의 제자가 되면 좋은 점이 아주 많을 것이고 선배들이 그들을 데리고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손 장로의 말을 듣자 하니, 천촉봉에서 그들의 지위는 극도로 낮고 방목된 들개처럼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았다.

앞으로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수행해야 할 것 같았다.

많은 시험과 임무를 완수한 후에야 윗 선배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을 위해 일을 해야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었다.

많은 제자들은 상상과 너무 다른 현실에 창백한 얼굴을 했지만 엽운은 교묘한 생각이 떠올라 오히려 기뻤다.

많은 사람이 함께 활동하고, 접촉하는 선배들이 많을수록 자신의 비밀이 들통 날 가능성이 높았다.

들개처럼 방목 되어있는 상태가 오히려 안전했다.

게다가 수중에는 영석이 많았기에 당분간의 수련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어서 허리 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동전과 서전의 거리는 멀리 떨어져 모든 주소가 가까운 것 같진 않았는데, 다른 주소에 도대체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어 당분간 곡일평이나 단진풍 등과도 마주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단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허리패에 쓰여져 있는 주석을 잘 살펴보고 손 장로가 말한 시합을 준비할 셈이었다.

이번 시험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자신은 8등 안에 들어 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연심전의 금단 비석 아래에서 금색 빛이 흑백의 빛에 흡수되어 몸속으로 들어왔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마음속에는 어쩌면 흑백의 빛이 그 금단의 힘을 정련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시련에 합격한 제자들은 걱정이 컸고, 손 장로의 말을 듣고 나서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금방 삼삼오오 흩어졌다.

엽운은 쉴 새 없이 영력을 허리 패에 주입하여 광막이 계속 그의 앞에 떠있게 했다.

반각 후, 광막에 표시된 위치를 따라 자신의 주소를 찾았는데, 사방이 기괴한 암석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작은 뜰이었다.

신기한 진법금제가 있기라도 하듯 온 마당이 뒤덮여 있었다.

돌이 쌓인 담벼락 한 곳에는 재질을 알 수 없는 나무 문 두 개가 닫혀 있는데, 추위가 밀려와 손이 시렵게 만들었다.

나무 문 중앙에는 영패 모양의 푹 파인 함이 있는데 이것이 허리 패의 모양과 똑같았다.

엽운이 조심스레 허리 패를 끼워 넣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며 나무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허리 패는 구멍에서 튀어나와 손바닥에 떨어졌다.

문이 열리자 2층짜리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작은 집 앞의 가짜 산에서는 물이 흐르고 돌다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정원에는 이름 모를 화초와 나무가 심어져 옅은 향기가 코를 찌르며 기분을 좋게 했다.

천촉봉 외문 제자의 숙소는 잡역 제자의 숙소와 비교 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비록 손 장로가 외문제자들이 각종 임무를 완수하고 각종 활동에 참가해야만 많은 수련자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가장 간단하고 안전한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잡역 제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만약 수위가 올라가고 지위가 높아져 무영봉의 제자가 되고 심지어 천검종 내산제봉의 내문제자가 된다면, 또 얼만큼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단 말인가?

엽운은 정원을 바라보며 또 다시 감회에 젖었다.

갑자기 뇌리에 퉁명스럽고 굳건한 표정의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심묵, 너는 어떻게 되었으려나? 영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정말 요사스러우니 적어도 무영봉에서는 설 자리가 있을 거다. 다음에 만나면 너와 나는 큰 차이가 나겠지."

심묵을 떠올리며 뭉클함과 동시에 따스함을 느꼈다.

채집곡에서 지낸 3년의 시간 동안, 이 시험에 참가하기 전 막 알게 된 심묵만이 마치 천검종 내의 유일한 친구 같이 느껴졌다.

가볍게 탄식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순간, 이 세상이 자신만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옆 사람이 몰래 엿볼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계략도 없었다.

줄곧 굳어있던 마음이 놓이자 말할 수 없는 상쾌함과 피로가 뒤섞여 몰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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