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화 금빛
“이 연심전을 오르는 시험은 말이다. 첫번째로 단광의 영향을 극복해내며 언제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수행을 하면서 평정심을 잃게 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그때 아무런 저항력이 없다면, 조금의 보물만 봐도 눈이 멀어 죽게 될 것이다.”
장로의 안색이 조금 밝아지더니 눈길이 엽운을 향했다.
“두 번째, 혼자서 해내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적이라도 말이다. 잘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장로가 칭찬하자, 엽운은 몸을 굽혀 예를 올리며 겸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네 영맥은 평범하지만 강한 육체와 성숙한 정신력으로 반드시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
장로의 안색은 더 온화해지며 말했다.
“앞으로 잘 수행을 한다면 적절히 도움을 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다시 한번 절을 올리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장로가 어떤 사람이던 간에 이런 말 한 마디는 그가 종문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줄 것이었다.
“뒤쳐진 사람들도 이정도면 됐다, 너희들 모두 방법을 알게 되어 벽 위에 서있으니, 모두 통과한 셈이다.”
장로는 약간 칭찬하며 모두를 쳐다보았다.
몸을 돌려, 영력이 멈춘 틈을 타 아래쪽에서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보며 다소 경멸하는 듯 말했다.
그가 보기에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제자들 중에서 출세할 수 있을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칭찬은 아래에서 기어오르고 있던 제자들을 기쁘게 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비록 이 장로가 은혜를 베풀었다지만 시험에 참가한 천촉봉의 잡역제자 가운데 영력이 멈춘 후에라도 올라와 비석 아래에 서있을 수 있는 자들은 고작 백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합격률은 수선의 길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줬다.
수선의 도가 대성하는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선의 길을 걷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끝없는 신선의 길이 어디 쉽겠는가?
하늘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일은 매우 험악하기 그지없는데 자칫하면 몸이 부서지고 정신이 나가 환생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매년 외부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소년들이 사방에서 몰려와도 상당수는 일찍이 탈락해 각 단계의 시험을 통과한 제자들이 딛고 올라설 디딤돌이 될 뿐이었다.
이 순간, 시험을 통과하여 비석 아래에 서 있는 제자들은 모두 미친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엽운은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이런 가혹한 법칙을 뚫고 살아남아 나중에 이 비석 속 금단의 주인처럼 대도의 금단 대수사가 된다면.. 그걸로 정말 신선이 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너무도 미숙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 수선의 세계란 원래 평범한 인간 세상보다 더 가혹한 게 당연한 건가?
엽운은 비석 아래에 서있었고 사방은 기쁨과 환호로 가득했다.
모두가 열광하며 자축했다.
그러나 마음은 점점 복잡해졌다.
마치 원했던 것이 이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아예 두 눈을 감아버리자 마음 속 격동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갑자기 가슴에서 흑백의 빛이 천천히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흑백으로 교차하는 빛이 몸을 한 바퀴 돌아 머리 꼭대기로 돌진하는 듯했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엽운은 대경실색했다.
지금 그의 심정이 어떻든 일단은 살아남아야 했다.
만약 흑백 빛이 머리 꼭대기에서 튀어나와 장로에게 들키면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다행히 흑백의 빛은 꼭대기에 다다르자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더 이상 분출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눈앞에 어렴풋이 금빛이 어른거렸다.
그 금빛은 견디기 어려운 압력을 주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경외심이 순간 온 몸에 스며들었는데, 마치 눈앞의 이 금빛의 수위가 그보다 수천 배는 강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를 부숴버릴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엽운은 공포에 질려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번뜩였고 곧 놀라움이 가득 찼다.
“설마, 이 금빛이 바로 천촉봉에서 우화한 그 대수사가 남긴 금단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생각이 떠올라 어느새 들판의 풀처럼 자라났고 바다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금빛이 휙 하고 날아오더니 머리 위 영력이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흑백의 빛은 마치 이를 기쁘게 맞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 금빛을 감싸더니, 머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가슴으로 파고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엽운의 온몸이 흔들렸고, 곧 몸이 통제력을 되찾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천천히 눈을 뜨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리에서 자신의 몸으로 파고 들어온 금빛은 이치대로 말하면 세 장로의 눈에도 보였을터,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엽운은 호흡을 멈춘 채로 있었고 귓가에는 환호성이 계속 되었지만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 속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장로들 중 누구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엽운은 깊이 숨을 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이 금빛이 설마 눈앞에 있는 비석 속의 금단인가?”
이같은 생각을 하자 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수선의 길이 어찌 그리 만만하겠는가.
연체경으로 육신을 단련하고, 정신을 강화한다.
그 다음 진기를 깨우치고 연기경에 달하여 연기를 성공하면 그것으로 영혼을 정화하여 강원을 만들어내고, 음양을 깨닫고, 촉기에 성공하면 단도의 허상을 만들어 또 큰 고난과 역경을 딛고 그 허영을 실체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금단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금단의 도를 닦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속세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다 합쳐도 금단의 길을 걷는 것에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금단의 도는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다.
수련에 성공하면 천지를 종횡무진 누비고, 별이 가득한 우주를 유람하며, 천지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이 금단은 흑백 빛으로 새롭게 태어나 강화된 육식을 가진 엽운이라고 하더라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좀 전의 그 금빛이 정말로 금단이라면, 그 위력의 만 분의 일이라 하더라도 엽운의 몸은 견디지 못하고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방금 그 금빛은 분명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설마 흑백의 빛이 금단의 빛마저 조용히 삼켜버렸다는 말인가?
이리저리 생각해 본 엽운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금단이 어찌 반응을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 세 장로들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엽운은 거듭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느낌상 흑백의 빛은 지금 사라졌고 몸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당분간은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자, 나도 너희들이 외문 제자가 되어 느끼는 그 엄청난 기쁨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수선의 길의 시작일 뿐이며, 너희들은 우리 천촉봉의 외문 제자가 될 것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반드시 문파의 규칙을 지키고, 부지런히 수행해야 하며, 절대로 천촉봉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시험을 주최한 장로는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무표정하게 말했다.
“다음에는 손장로와 양장로가 너희를 데리고 외문 제자들이 있는 숙소로 갈 것이다. 외문 제자들 한 사람당 저택 한 채와 두 벌의 외문 제자 도포, 그리고 영패와 다른 물건들을 받게 될 것이다. "
“장로님, 감사합니다!”
그제야 장로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모든 제자들에게 비석 뒤편의 그림자로 나가라고 손짓했다.
엽운이 사람들을 따라 그림자를 가로질러 가자 순간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구름은 깊고 안개가 자욱했으며, 높은 산과 큰 하천은 천지의 영기가 가득해 순수하고 깨끗했다.
먼 곳에는 산봉우리와 하늘을 찌를 듯한 고목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거대한 수관이 사방 수 백장의 공간을 가리고 있었다.
산림 사이에 진기한 꽃과 풀들이 서로 다투고, 새들과 벌레들이 울고 짖으며, 이따금씩 요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와 온 들에 울려 퍼졌고 그 위세는 마치 파도와도 같았다.
이곳이 바로 천촉봉의 외문이 위치한 곳으로, 길게 이어진 하나의 산맥이었다.
엽운은 천촉봉의 외문이 이런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3년 동안 그는 거의 매일 먼 곳에 있는 천검종을 바라만 보았다.
항상 구름과 안개에 휩싸인 천검종이 매우 크고 기세가 웅장하여 수백 리를 차지하는 큰 산일 것이라고만 느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이 천촉봉 하나에만 해도 수십리 넘게 뻗어 있었다.
그래도 천촉봉은 천검종에 속한 무영봉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무영봉에는 이런 산이 열댓 개는 되는데, 그럼 천검종은 도대체 얼마나 크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