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23화 (23/227)

제 23 화 깊이 숨어있는

엽운이 보따리를 열어보니 안에는 중품영석 수십 개와 상품영석 3개가 있었다.

“비록 상품영석 하나가 부족하지만, 이 관문을 통과하게만 해준다면, 나가서 채워 드릴 수 있습니다.”

곡일평은 안색이 좋지 않음에도 엽운에게 사정했다.

엽운은 그의 뜻을 이해하고는, 별말 없이 주먹 한 방을 눈 앞의 구멍으로 내리 꽂았다.

“펑!”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약간의 숨 돌릴 시간을 얻게 된 곡일평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단진풍은 연신 냉소를 지었다.

“네 놈도 영석을 제법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곡일평은 그와 더이상 말씨름하지 않았다.

엽운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러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력을 막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곤 말했다.

“곡일평 사제는 이미 갖고 있는 영석을 나에게 모두 줬으니, 너도 먼저 나에게 영석을 건네 주고 다시 얘기 해라. 나중에 올라가서 네가 변덕을 부리면 안 되니까.”

“좋다, 정말 신중하구나. 나도 이런 사람과 협력하는 게 좋지.”

단진풍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하하 웃으며 손에 쥐고 있는 영석을 저물대에 넣어서 바로 떨어뜨렸다.

엽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곡일평에게 눈짓을 하더니 바로 위로 날아올라 한 손으로 떨어진 보따리를 잡음과 동시에 단진풍의 옆쪽에 착지했다.

곡일평은 엽운의 뜻을 이해했다.

조금 회복한 듯한 그는 지체 없이 검은 불덩어리를 날렸고, 그 틈에 몸을 날려 엽운의 옆쪽에 발을 내딛었다.

단진풍은 곡일평을 아니꼽게 바라봤다.

엽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우리 세 명은 한 패가 되었다.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영력의 공격을 막아내면, 나머지 두 명이 숨 돌릴 시간쯤이야 충분히 가질 수 있을거다. 또 각자의 영력이 너무 많이 소모된 틈에 누군가가 덤비려 할 일도 없겠지.”

곡일평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누군가 기회를 타 기습하지 않도록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단진풍 역시 콧방귀를 뀌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올라갔다.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미 위에는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

엽운과 곡일평도 연이어 뒤따라갔다.

엽운의 말처럼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영력을 막으니 아주 순조롭게 위로 올라갔다.

또한 시간도 얼마 안걸려 반이나 올랐다.

“단진풍과 곡일평이 서로 싸우는게 엽운에게는 이득이구나!”

아래쪽에 있던 잡역 제자들은 모두 엽운을 부러워했고, 질투가 극에 달했다.

그렇게 많은 중품영석과 상품영석은 그들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지금 엽운 혼자 그 모든 걸 얻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들에게 이같은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걸 알았다.

이런 일은 엽운이 단진풍이나 곡일평과 비슷한 수준의 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사람의 협력은 적어도 그들에게 이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곧 남은 잡역 제자들도 자신과 수위가 비슷한 상대를 찾아, 동맹을 맺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

벼랑 꼭대기, 위협적인 금빛을 내뿜는 거대한 비석의 바로 앞 벼랑에서 한 차례의 바람이 솟구치더니 단진풍이 마치 큰 새 한 마리처럼 내려와 섰다.

“드디어 올라왔다. 내가 어디 너희 같은 하찮은 존재와 비교가 되겠느냐.”

단진풍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비석은 자세히 보지도 않은 채 거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엽운도 껑충 뛰어오르자 곡일평 역시 뒤따라 와 엽운 옆에 내려섰다.

그는 온몸에 힘이 풀렸지만 입가에는 음흉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는 단진풍처럼 호탕한 성격이 아니었다.

방금 그 영석들은 그의 전재산이었고, 당장 중품영석 하나를 더 내놓으라 해봤자 그는 줄 수 없었다.

그 영석이 없으면 앞으로 천촉봉에서의 수행은 보통 제자들처럼 매달 나누어주는 수행 영석에 의존해야 했다.

순간 머리 속에서 그날의 유도열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회가 생기면 그 영석들을 엽운에게서 빼앗아 올 샘이었다.

또한 이 시험을 통해 엽운이 앞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임을 느꼈다.

만일 영기가 없다면 자신은 엽운의 상대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눈빛이 번뜩이는 것이 또 무슨 나쁜 마음을 먹으려는지도 모르겠군요. 엽운, 방금 우리가 한 거래는 모두가 무사히 절벽 꼭대기에 오르는 것 뿐이었고 지금은 도착했으니 힘을 합쳐 저 자를 제거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때, 단진풍이 그를 향해 독살스럽게 웃었다.

“엽운, 이 자는 분명 좋은 놈이 아니다.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 지금 여기서 떨어뜨려 버리자. 이 정도 높이라면 분명 죽을 것이다. 뭐 후환도 없을 것이고 말이야!”

곡일평은 이 말을 듣자마자 별안간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단진풍,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내가 네 적수가 못 될 거라고 생각하지마라. 설사 내가 네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네놈을 끌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조차 못 할 것 같으냐?”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있던 엽운은 오히려 한쪽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나는 다른 일에 휘말리는 건 원치 않으니, 너희들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는 너희끼리 알아서 해결해라.”

그의 눈에는 둘 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여기서 부상을 입는 것이 가장 좋았다.

만약 전력으로 싸우게 된다면 흑백 빛의 비밀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은 단진풍의 입에 발린 제안은 고사하고 설령 상품영석 몇 개를 더 얹어준다 해도 침통한 마음으로 거절해야 했다.

“그럼 혼자 해결해야 할 것 같군, 너 같은 하찮은 놈이 감히 뻔뻔스럽게도 나를 희생양으로 삼겠다고?”

단진풍은 엽운의 거절에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곧 그가 끼고 있던 장갑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와 거세게 곡일평을 향해 돌진했다.

“죽고싶어 환장했구나!”

곡일평이 원래 명령 받은 것은 그저 단진풍을 감시하는 것이었지만, 그에게 여러 번 치욕을 당하고, 이번에는 공격까지 하니 반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굉음이 울리며 검은 팔찌에서 검은 불덩어리가 활활 타올랐다.

“꽝!”

두 영기가 순식간에 충돌하여 연신 폭발했다.

엽운은 잠시 간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실력은 비슷해 같이 죽게 되더라도 이상할 게 없지만, 개입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몸을 돌려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위압적인 비석을 봤다.

높이가 열 장에 달하는 비석의 표면은 보통의 비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런 무늬도 없고 표면도 거칠었지만, 엽운이 쳐다보자 마치 황금 빛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순간 비석의 바깥쪽 표면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더니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황금빛이 작열하는 태양이었다.

불타는 태양의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만의 금빛은 모두 각기 다른 듯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혹시 이 금색의 빛 하나하나가 어떤 이치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엽운은 순간 이 같은 생각이 스쳤다.

“멈춰라!”

“시건방지구나!”

이때, 몇 마디 호통 소리가 들리더니 그림자 세 개가 빛을 번쩍이며 마치 허공을 가르듯 나타났다.

그 중 한 사람의 소매가 살짝 흔들리자 붉은빛이 번쩍여 단진풍과 곡일평은 나란히 양옆으로 나가 떨어져 바위에 부딪쳤다.

“연심전 비석 아래에서 소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감히 싸우기까지 하다니, 정말 건방진 놈들이구나.”

정식으로 입전을 주관한 장로의 얼굴은 싸늘했고, 목소리도 매우 차가웠다.

순간, 절벽을 오르고 있던 제자들도 엄청난 위압을 느꼈는데, 그들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져 움직일 수 없어 정신력이 약한 제자들은 하마터면 바닥에 꿇어앉을 뻔했다.

다행히 이 장로가 위압을 가하는 순간 영천벽도 멈춰서 더 이상 영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자들 중 반 이상은 추락했을 것이었다.

엽운도 마찬가지로 위압을 느꼈지만, 순간 가슴에 있던 흑백의 빛이 스쳐가서 그가 예상한 바 대로 모든 위압감이 사라지며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힐끗 보아하니 단진풍과 곡일평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는 듯 다른 제자들처럼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곧 이어 그의 마음도 덜컥 움직이더니 영력이 역행해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가득 맺혀 마치 위압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다.

“네 놈들이 고작 이정도 수위를 믿고 감히 연심전 비석 밑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이 비석의 내력은 너희에게 이미 말했듯이 바로 우리 천촉봉 금선의 능력이 우화가 된 이후 그 금단을 이 곳에 숨겨둔 것이다. 너희는 이것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를 알아야 하며,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만 도리를 깨닫게 될 수 있고 이는 훗날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인데, 네 놈들은 경배는 못 할망정 싸움이나 하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장로의 목소리는 약간 누그러졌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금단의 도와 우리의 도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무엇을 깨달으란 말입니까?”

단진풍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아직 승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는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순간에도 감히 장로에게 대들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장로는 눈을 흘기며 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 빛이 단진풍의 가슴을 쳐 그는 거꾸로 나가 떨어졌다.

그는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는데 바위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단진풍은 바닥에 세게 떨어져 입가에서 선홍색 피가 흘렀다.

애써 고개를 들었는데 눈에는 분노가 가득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징로의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검날 같고 위압감은 대단했다.

단진풍은 드디어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린 듯 달갑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그의 눈에 교활한 빛이 번뜩이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해 득의양양한 기색이 그의 입가에 살짝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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