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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20화 (20/227)

제 20 화 부정행위

모두들 조용히 산꼭대기를 바라볼 정도로 군약란의 활약은 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다들 떨떠름한 눈치였다.

군약란은 완전히 실력으로 올라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엽운, 너는 왜 가만히 있는거냐?"

단진풍은 몸을 돌려 엽운을 바라보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군약란이 오른 후에는 절벽에 소용돌이치던 흰 구름과 회오리바람도 사라졌다.

시험에 참가한 주변의 제자들 모두 충격에 휩싸여 깨달음을 얻어 너도나도 서둘러 등반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그 끔찍한 소용돌이가 다시 이 절벽 사이에 나타날까 두려웠다.

이때 절벽 아래의 바닥에는 오직 세 사람만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단진풍과 엽운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은 이전 영맥 시험에서 붉은색을 받았던 곡일평이었다.

단진풍의 말에 엽운은 평소와 다름없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속으로 냉소를 터뜨렸다.

소용돌이는 사라졌지만 이곳이 어디 그렇게 쉽게 설계되어 있겠는가,

꼭대기에 흩어진 단광도 매우 위험했는데, 지금 주변에 제자들은 아무 생각없이 때지어 올라가고 있으니 큰 문제였다.

아래에서 보니 다급히 절벽을 오르는 것은 단광의 영향을 받아서 전혀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암벽은 딱딱해지는 듯 했고 점점 미끄러워져 더 이상 올라가기 어려웠다.

엽운에게서 피로 바위를 무르게 하는 방법을 배운 여러 사람들이 슬그머니 손바닥을 베어 벽에 피를 묻혔지만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때 흰 구름과 소용돌이가 사라진 뒤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그들은 마치 우물에 갇힌 개구리처럼 보이고 절벽은 마치 이끼가 가득 찬 축축한 우물의 벽처럼 힘만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뭐야, 왜 또 못 들은 척 하는 거냐."

엽운이 침묵하는 모습을 본 단진풍은 그를 바라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다 같이 의견을 나누어보자,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엽운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진풍은 진작에 실마리를 눈치 챈 것 같으니, 의견을 교환하며 의논해 보면 정말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넌 무슨 의견이 있는데?"

그는 고개를 돌려 단진풍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단사형, 무슨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곡일평은 눈에서 알 수 없는 섬뜩한 빛이 휙 번뜩이며 느릿느릿 말했다.

"너는 누구지? 내가 너를 알던가? 나랑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

단진풍은 거만하게 그를 쳐다보더니 경멸 섞인 어조로 말했다.

곡일평은 눈살을 한 번 찌푸렸지만 얼굴에 성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단진풍처럼 이렇게 오만방자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단사형, 여기서는 우리 셋이 제일 멀쩡해 보이지 않습니까. 다 같이 모여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이렇게 거만하십니까."

그는 마음속으로 비웃고 있었지만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뭐냐, 아직도 끼어 들 생각이냐?”

단진풍은 크게 웃었다.

“그럼 나와 엽운은 여기서 쉬고 있을 테니, 너는 천천히 방도를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각자 알아서 하시지요."

곡일평은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섰다.

엽운은 곡일평이 떠날 때까지 보고만 있다가, 이제야 단진풍을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이미 단서를 얻은 거지?”

“이 벽은 영맥의 벽이다.”

단진풍은 득의양양한 기색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느릿느릿 말했다.

"외벽은 멀쩡해 보이지만 안쪽에 속이 빈 곳이 있으니, 그 곳의 외벽을 뚫기만 하면, 발 디딜 곳이 있을 것이다."

“영맥의 벽이라고? 외벽은 완전 똑같아 보이는데, 진짜로 어떤 곳은 안이 텅 비어있다는 말이야?”

엽운은 멍해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이런 식견과 안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찌 이렇게나 빨리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일까.

다음 순간, 그는 단진풍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득의양양한 기색을 보고 곧바로 눈치 챘다.

부정행위다!

단진풍은 좀 전의 란 장로와 친분이 있었는데, 란 장로가 도대체 어떻게 이 곳의 장치를 단진풍에게 알려줬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네가 곡일평을 보내려 하더라니, 이런 일은 역시 적게 알려질수록 좋은 거지.”

철두철미하게 반응하던 엽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단진풍을 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런 시험에서 부정행위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인데, 란 장로 같은 존재가 도와줬으니, 소문만 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감출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이 많아져 소문이 퍼져나가기라도 하면, 아무리 란 장로라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었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렇게 하찮고 멍청한 놈들이라도 결국에는 이 절벽의 문제를 찾아 낼테니, 우리는 힘을 낭비할 것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단진풍은 엽운이 눈치 챈 것을 알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엽운은 앞으로 그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 분명히 이 자에게 끌려 다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와 협력하는 것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 했다.

“너는 이미 벽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왜 나와 협력하려는 거지?”

엽운은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이라 절벽 위 금단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또 미간을 살짝 찌푸리곤 단진풍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곧 알게 될거야.”

단진풍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단진풍이 뜸을 들이는 것을 본 엽운은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인내심이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꼼짝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사람들이 절벽을 여기저기 두들기기 시작했다.

급한 병에 걸리면 아무 의원이나 찾아간다고 하던가,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여기가 빈 곳이야!”

별안간 왼쪽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모두가 몰려갔다.

한 잡역 제자가 자갈을 들고 산 벽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명쾌한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으니, 이 벽 가운데 한 곳이 비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하지!”

곡일평은 크게 기뻐하며 인파를 뚫고 벽을 가볍게 두드려보곤 별안간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쾅!

주먹 한 방에 단단하기 그지없는 벽에 한 척의 직경을 가진 구멍이 생겼다.

엽운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곡일평이 가진 영력의 강도는 그보다 약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들 흩어져 찾아보십시오.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여러 개 일수록 좋아요.”

곡일평의 격양된 목소리가 멀리까지 전해졌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뛰어왔는데, 그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발을 디딜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분명 하나는 아닐 터이고, 한 사람 두 사람씩 위로 올라갈 테니, 몇 개만 더 찾을 수 있다면 모두 절벽 꼭대기로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세 군데에 울림소리가 나는 곳을 발견했는데, 이 세 지점은 모두 세 장씩 떨어져 있었다.

“잘 봐라.”

가만히 서있던 단진풍은 고개를 돌려 엽운을 바라보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 곡일평의 그림자가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의 도약으로 그는 세 장위로 올라갔고, 울림소리를 내는 또 다른 곳을 찾았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을 내지르자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는 다시 몸을 날려 두 번째 구멍 앞에 섰다.

“그렇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기만 하면 순조롭게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겠어. 보아하니 두번째 시험은 딱 이정도로군.”

좀 전까지 마음이 급했던 곡일평은 속으로 남몰래 기뻐했다.

이 정도라면 위로 올라가는데 두 시진도 안 걸릴 것이다.

바로 그때 곡일평은 다시 한 번 세 장 높이로 뛰어올랐고 두 번째 구멍 위를 몇 번 두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또 한 군데 빈 구멍을 찾아내 주먹이 한 번 스치자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려왔다.

곡일평은 크게 웃었다.

그의 몸이 구멍의 가장자리를 차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그가 웃고 있을 때 동굴 안에서부터 별안간 웅장한 영력이 솟구쳐 나오더니, 순식간에 그의 몸을 덮쳤다.

곡일평은 몹시 놀라 소리쳤다.

몸이 공중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먼지를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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