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9화 (19/227)

제 19 화 갈망

“금단 고수? 선기? 곡일평 선배님, 너무 무섭게 말하시네요.”

“넌 작은 지방 출신이니, 태양의 천자를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될 거다.”

곡일평은 거만하게 웃어보이곤 더 이상 주변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역시 너는 보통의 잡역 제자가 아니구나. 어쩐지 그때도 기세가 남다르더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

엽운이 멀쩡한 것을 본 단진풍은 여전히 오만한 얼굴을 한 채 엽운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매우 차분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제법 하는 모양이군. 네놈을 내 마음대로 부릴 방법은 없는 것 같구나.”

그는 별안간 크게 웃었다.

그의 말투는 속마음과 분명히 달랐다.

“너는 천촉봉 수천명의 하찮은 잡역 제자들과는 정말 다르구나.”

엽운은 당연하게도 단진풍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의 눈에 단진풍은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신중하지도 않아 이곳의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금방 죽게 될 존재였다.

"너로써도 나를 처리할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 괜히 힘을 낭비하지 않는 편이 낫겠군."

그는 살의를 거두며 무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연심전에서 나간 뒤 다시 이야기 해보는 게 낫겠군요."

“좋다, 나가서 다시 보자고.”

단진풍은 크게 웃으며, 옆으로 비켜 나갔다.

엽운은 멍해졌다.

그는 단진풍이 이렇게까지 시원스러울 줄은 정말 몰랐다.

"안심해, 이 절벽은 보이는 것처럼 간단하진 않으니까."

단진풍은 엽운의 의심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그를 주의 깊게 쳐다보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너는 전혀 올라가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떨어져 죽어 내가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질 지도 모르겠군.”

엽운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더 이상 쓸데없이 말을 섞지 않으려 했고, 곧바로 단진풍을 지나 절벽 앞까지 나아갔다.

그는 손가락과 손바닥에 영력을 불어넣고 세게 한 번 찍어 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돌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떨려오는 손가락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누구의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자신의 피를 이용해야만 바위를 무르게 할 수 있다니,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장치구나."

엽운이 망설임 없이 날카로운 암석으로 손바닥을 세게 그었더니 피가 뚝뚝 흘렀다.

선혈이 낭자하여 바위 위에 핏자국이 났다.

이어서 엽운은 손바닥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바위를 거세게 움켜잡았다.

단단한 정석이라도 찌른 양 손가락 끝에서 엄청난 고통이 전해져와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피를 바위 위에 발랐는데 놀랍게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어떻게 된거지?”

엽운은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방금 앞에 있었던 제자는 피로 바위를 무르게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절벽이 달라진 거지?’

만약 이 돌벽에 구멍을 뚫지 못한다면 엽운 같은 잡역 제자의 수위로는 위로 올라갈 수 없고 단진풍 같은 사람조차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순간 그는 단진풍이 한 말을 떠올렸고,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단진풍은 이미 뭔가를 느낀건가?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단진풍을 쳐다보지 않았다.

단진풍과 그의 수위는 큰 차이가 없었고, 그는 체내의 신묘한 흑백의 빛 덕분에 금단의 위압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단진풍이 뭔가를 알아냈다면 그가 못 알아낼 이유는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가파른 절벽들을 올려다보던 그는 이 절벽에 특별히 튀어나오거나 움푹 들어가서 밟고 올라갈 수 있는 부분이 없음을 보았다.

천 장이나 되는 절벽에, 밟고 오를 곳이 없다면 어떻게 올라가라는 것인가?

내려가는 절벽은 자신의 피를 발라 암석을 무르게 할 수 있었는데, 그럼 올라가려면 무슨 방법을 써야하는가?

좀 전에 그 제자는 피를 이용해 기어 올라간 것 같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니, 설마 시간 제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순간 엽운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먼저 할게.”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엽운 옆에서 들리고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수려한 여자 아이가 그의 옆에 섰다.

군약란이었다.

보라색 영맥을 가진 이 여자 아이는 조용히 서 있었는데, 마치 조용한 한 송이의 연꽃 같이 보였다.

엽운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군약란은 그에게 너무도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좀 전에 흡입력이 강해 저항할 수가 없던 그 소용돌이에도 이 보라색 치마를 입은 소녀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소용돌이가 마치 그녀를 내려 보내주는 디딤돌인 양 돌계단이 되어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때 군약란의 보라색 치마가 산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번뇌의 속세를 벗어나 초탈한 모습은 마치 신선 같았다.

“군약란, 방심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지는 않겠지?”

단진풍의 목소리가 또 울려퍼졌다.

군약란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사형의 관심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군약란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너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단진풍은 그녀를 보며 언짢게 말했다.

지금 군약란의 기세만 보아도 그녀가 평범한 집안이나 하등 가문의 자제 출신은 아님이 분명해 보였다.

그녀의 내력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군약란의 수려한 얼굴에선 어떠한 기복도 볼 수 없었고, 눈매는 깊은 못처럼 맑아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에서는 곡일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단진풍을 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

“당신과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감히 내게 이따위로 말하다니, 군약란, 조만간 너를 나의 종으로 삼을테다.”

단진풍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에 있던 부채로 군약란을 가리키며 거만하게 말했다.

군중들은 모두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군약란의 수위는 소용돌이를 밟고 내려올 때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았고 단진풍도 분명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이 작자는 진정 자신이 왕가의 친척이라고 착각하여 하늘 무서운 줄 몰랐는데, 군약란에게 저렇게 말하다가 만약 그녀가 화를 내며 공격이라도 해온다면 단진풍은 아마 그녀의 적수가 되지도 못할 것이다.

“미련한 놈, 도련님이 이 자를 주시하라 했는데, 정말 헛수고 하셨군.”

옆에서 단진풍의 말을 듣고 있던 곡일평은 별안간 미간을 찌푸렸고 입가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엽운도 냉소를 지었다.

단진풍 이놈은 문파 내 모든 사람들의 적이 되고 싶은 것인가? 생각했다.

“만약 훗날 당신이 정말 그런 수위에 도달한다면, 안 될 것도 없겠지.”

군약란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그녀가 조금도 화내지 않을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타고난 심성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단진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두고 봐, 내가 나중에 금단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르니까.”

단진풍은 자신의 멍청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웃어대 마치 군약란이 그에게 약속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말에 군약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방그레 웃었고, 이내 그녀가 아담한 몸을 움직이자 보랏빛 꽃봉오리가 공중에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보랏빛 꽃 한 송이가 빙빙 돌며 위로 솟았다.

매번 회전 할때마다 치맛자락이 하늘거리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순간 모든 이들의 눈빛이 변해 더없이 진중해졌다.

심지어 어떤 제자들의 눈은 열광으로 가득 했는데 그보다 흠모의 마음이 더욱 컸다.

보라색 꽃송이가 돌 때마다 수십 장씩 솟아올라 치맛자락이 절벽에 살짝 닿자, 그녀의 그림자도 다시 회전하며 수십 장씩 솟아올랐다.

잠깐 사이에 군약란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서 점점 작아졌고, 향 반개 태울 시간도 안된 사이에 이미 보랏빛 꽃 한 송이만이 남아 사라져버렸다.

보라색 영맥을 가진 군약란. 그녀는 놀랍게도 2000 장이나 되는 절벽을 지나 하늘로 날아갔다.

이러한 수위는 엽운이나 단진풍, 곡일평 같은 사람들을 모두 포함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그들의 수위가 몇 단계 오른다고 해도, 연체경의 마지막 단계인 오기경에 이른다 하더라도 이처럼 손쉽게 하늘로 날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마 군약란의 수위가 설마 벌써 연기경에 달한 것인가?

말도 안 된다!

엽운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고, 마음속에 격렬한 파도가 일었다.

이 소녀는 도대체 어디서 왔길래 이 정도 수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보라색 긴 치마가 산바람에 날리자, 굴곡진 몸매에 착 달라붙어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군약란은 금빛 비석 아래에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이 비석은 마치 그녀를 칭찬하기라도 하는 듯, 한 줄기 금색의 빛을 떨구었고, 절벽 사이에 자욱하던 하얀 구름은 모두 사라졌다.

한순간에 천지는 빛을 잃은 듯했고, 온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보라색만이 남게 되었다.

엽운은 산꼭대기의 이 보랏빛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일말의 전의를 불태웠다.

옆에 있던 단진풍도 똑같이 산꼭대기 너머 천검성도 비석 아래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거만함은 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본래 눈망울에 경망스러움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보석과 같이 빛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빛나는 눈망울에는 갈망, 힘에 대한 지독한 갈망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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