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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8화 (18/227)

제 18 화 살의

엽운은 맞은편 절벽을 향해 걸어갔다.

흡입력이 사라지니 수백 장의 거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잠시 위를 쳐다보니, 그의 마음은 크게 안정되었다.

손바닥이 피로 물든 제자는 잘 올라갔고, 이쪽 절벽도 방금 전 절벽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니 현재 그의 체력으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거 같았다.

"엥, 너 같이 하찮은 녀석이 소용돌이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니, 내가 너를 너무 얕봤구나."

전방의 암벽 아래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종이부채를 쥔 한 청년이 엽운의 눈에 들어왔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목소리만 들어도 단진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못 들은 척 곧장 앞으로 나아가려했다.

“왜 못 들은 척하며,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냐?”

단진풍이 엽운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 우리는 연심전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엽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왜?”

단진풍은 크게 웃었다.

"여기서 싸우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엽운도 마침내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해 냉소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싸우자는 말입니까?”

단진풍은 크게 웃었다.

“싸워보자, 네가 도대체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지 내게 보여주거라.”

“정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시렵니까?”

엽운은 여러번 참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금은 무슨 수를 써도 단진풍의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결국 살의가 치밀었다.

냉소를 지으며 체내에서 영력이 뿜어내 손바닥에 모아 단진풍을 향해 날렸다.

단진풍은 시시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넌 정녕 모든 잡역 제자들이 기초 무술만 연마한다고 생각하느냐? 너무도 유치하군."

손에 쥔 부채를 가볍게 접고는 앞에다 활 모양을 그었는데, 희미한 빛이 부채 위에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곧 부채가 장검처럼 펼쳐지며 순식간에 수십 개의 검이 튀어나왔다.

이것은 절대로 기초 기술일리 없었다.

이 기술은 헤아릴 수도 없을만큼 변화무쌍해 순식간에 엽운의 모든 공격 경로를 봉쇄했다.

설령 그가 지금 후퇴한다고 해도, 그를 죽일 수 있는 수십 가지의 방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무예, 진정한 무예였다.

단진풍은 경도의 단가에서 왔는데, 진나라 왕의 성씨가 단씨이므로, 그는 황제의 친척이었다.

그러니 어찌 일반 가문의 자제에 비할 수 있겠는가.

단진풍은 단가의 제자로서 천검종에 들어와 수행하였으니 진정한 무예를 지닌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엽운은 단진풍의 반격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부채를 장검으로 변화시킨 이 공격의 힘은 그로 하여금 더욱 확실한 인식을 가지게 했는데, 유옥의 9품 기술인 혈인절맥수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사방에서 잡역 제자들이 나타났다.

20명쯤 되는 사람들이 10장 밖에 모여 앉아 싸우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손가락질 했다.

"부채가 검이 되는 기술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적어도 나는 당해낼 수 없겠는데."

“저건 분명 9품 기술일 텐데, 단진풍이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

"맞아, 우리는 기초 심법과 기초 기술만 수련해왔으니 이런 정교한 기술은 어림도 없지."

"경도 단가는 황제의 친척이다. 단진풍의 꺼낸 기술은 단가의 9품 기술인 만검제발(万剑齐发)인데, 수련의 절정에 이르면 한순간에 만개의 검을 찌르는 만큼 위력이 대단하다고 전해진다."

수려한 외모의 소년은 장내를 둘러보았다.

눈에는 이상한 기운이 스쳤는데,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곡일평, 너도 경도에서 왔으니, 단진풍과 아는 사이인가?"

그의 곁에서 한 사람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지. 하지만 곧 나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곡일평의 눈가에는 살의가 스쳤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잡역 제자여, 내가 너를 대신해 복수해 주마."

그의 눈에 엽운은 이미 죽은 자와 다름없었다.

단가 기술의 대부분은 왕실에서 하사한 것이었는데, 일반적인 종문에게 모든 공법과 기술은 대단한 존재였다.

만검제발은 9품 기술 중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기술이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수련의 절정에 이르게 되면 한 번 내지르기만 해도 빛이 만리를 간다고 전해진다.

비록 진짜로 만개의 검만한 위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 만검 중 도대체 어떤 게 진짜고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순식간에 몸을 관통당해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단진풍 역시 연체경 4단계의 수위였지만, 그의 영력은 아주 방대해 같은 급의 제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영력만 강한 것이라며, 엽운도 무서울 게 없었다.

그의 영력은 연체경 5단계의 제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미 연체경 4단계의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에 반걸음만 더 발전해도 내식경에 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검의 위력은 그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단진풍은 분명 만검제발을 극한까지 수련하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만개의 검을 펼쳐내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사실 그가 수련한 것은 껍데기에 불과해 이 검이 만들어낸 빛도 수십개의 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수십개에 지나지 않는 검이라 해도 엽운은 그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헛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대응을 할 수가 없고, 만약 잘못된 선택을 하면 단칼에 몸이 관통될 수 있었다.

한 주먹에 모든 검광을 쓸어버릴 수 있거나, 혹은 전광석화 사이로 피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했다.

분명 엽운의 수위가 잡역 제자들 사이에선 뛰어난 편이라 해도, 이 공격을 쉽사리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부채에서 검으로 변한 그림자가 휙휙 소리를 내며 날아왔고 빛이 번쩍였다.

모든 검빛은 모두 놀라운 위력을 갖고 있었다.

이 공격 중 하나라도 맞으면 몸이 꿰뚫릴 것만 같았다.

엽운은 굳어진 얼굴로 손을 살짝 돌리자 한 줄기 기이한 흑백 빛이 눈가에 스쳤고 곧 몇배는 빠른 속도로 옆쪽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 엽운의 속도는 몇 곱절이 빨라져 한 번에 가볍게 열 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휙휙 소리를 내는 검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뒷산의 벽을 뚫고 지나가며 불똥을 튀겼다.

모든 칼날은 놀랍게도 모두 진짜였고, 가짜는 하나도 없었다.

단진풍이 날린 검광이 모두 진짜 공격이었다니,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돼!”

곡일평은 깜짝 놀라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만검제발은 수련의 정점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모든 검의 그림자를 실제 공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전까지 실제 공격력을 지닌 칼날은 열 개 중 하나 뿐이었다.”

"곡일평 사형, 방금 저 칼이 나를 공격했더라면 분명히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똑같이 붉은 영맥을 가진 제자의 목소리에 섬뜩한 두려움이 묻어났다.

단진풍이 수십 개의 실제 공격력을 가진 칼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실제로 쓸수있는 검이 적어도 수백 자루에 이른다는 뜻이었다.

연체경 4단계의 수위로 이런 공격은 정말 불가사의였다.

도저히 당해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진풍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칼날이 엽운을 관통하는 것을 분명 보았는데 그것이 잔영이라고는 생각치 못 했다. 곧바로 엽운의 공격이 그의 오른쪽을 향해 그대로 날아왔다.

아주 간결하고, 아무런 기교도 없었다.

단 한 주먹에 엄청난 힘이 휘몰아쳤는데, 연체경 4단계인 연장경을 뛰어넘은 위력적인 힘이 엽운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단진풍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하찮고 저속하며 비열하다 여기던 잡역 제자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약하지 않고 되려 아주 강한 적수였다는 것을 이 순간 깨닫게 되었다.

샥!

단진풍은 세차게 몸을 돌려 엽운을 마주했다.

그의 오른쪽 주먹에 뜬금없이 새하얀 장갑이 나타나며 희미한 빛을 발했다.

순간, 그가 똑같이 주먹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별안간 그를 중심으로 몇 장 안의 공기가 마치 압축된 것처럼 펑펑 소리를 냈다.

영기는 놀랍게도 흰색의 장갑으로 모였고 눈 깜짝할 사이 응집되어 눈부신 빛을 발해 멀리서 보면 마치 정오의 땡볕같이 보였다.

영기였다,

단진풍은 순식간에 영기를 꺼냈다.

이 흰 장갑의 위력은 확실히 유옥의 흑요검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렇게 천지의 영력을 모으는 것은 공격 효과를 증강시켜주는데,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태양의 장갑? 어찌 이럴수가?”

곡일평이 크게 놀라 소리쳤고,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쾅!

놀라움에 소리치는 순간, 두 사람의 주먹이 거세게 부딪쳤고,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빛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각자 수십 장씩 날라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엽운과 단진풍 두 사람은 멀리서 굳어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짜였구나. 그럼 그렇지. 단진풍이 어떻게 태양의 장갑을 가지고 있겠어.”

먼 곳에서 곡일평이 깊은 숨을 내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태양의 장갑은 어떤 수준의 영기인가요? 곡일평 사형의 말투를 보면 정말 대단할 것 같습니다만."

옆에 있던 사람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태양의 천자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느냐? 전설에 의하면 그 수위가 이미 금단에 달한 고수라고 했다. 태양의 장갑은 그의 법보 중 하나이며, 영기 중에서도 일품 영기에 속한다. 선기와 근소한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물건이지. 그러나 단진풍이 가지고 있는 태양의 장갑은 모조품에 불과 할 것이다. 하품 영기에 지나지 않아.”

곡일평은 단진풍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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