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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4화 (14/227)

제 14 화 석쇄

"모든 잡역 제자들은 듣거라, 너희 앞에 주먹만한 크기의 흰 수정이 나타날 것이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영력을 실어 보내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녹색, 파란색, 빨간색, 자색 이 네 가지 색이 나타날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색깔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하산 하거라. 그것으로 너희와 우리 천검종은 무관하다는 뜻이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지며 잡역제자들의 귀를 찔러 고막을 아프게 했다.

순간 공중에 희끗희끗하고 긴 두루마기를 입은 네 명의 늙은이들이 나타났다.

저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솟구쳐 올라 억압당한 잡역제자들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렸다.

수천 개의 하얀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정확히 멈춰섰다.

옥처럼 영롱하고 투명했다.

엽운은 몸 앞의 하얀 수정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것은 외문 제자 시험의 첫 관문인 영맥 시험이었다.

일반적으로 영맥을 가진 수선자여야만 수련을 통해 결과를 낼 수 있기에 종문에서 양성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천검종에서 시험하는 수정은 영맥의 품계를 간단하게 색상으로 표현할 수 있어 녹색,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은 차례대로 제일 낮은 것부터 제일 높은 순서였다.

엽운은 다시 심호흡을 하며 최상의 상태로 오른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사형, 저는 좀 떨립니다."

심묵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강한 위압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긴장하지 말거라. 네 천부적인 재능이라면 이번에 통과하지 못해도 다음번에는 꼭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엽운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심묵이 고개를 끄덕이자 놀랍게도 엽운의 숨결이 그가 받고 있는 위압을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외문 시험의 첫 관문인 혈맥 시험이 시작되고 광장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 난 녹색이다, 녹색이야. 망했다!”

“난 파란색이야!”

“녹색, 녹색이야, 하하하!!”

“세상에, 나는 왜 색깔이 없지?”

“검은색? 왜 나는 검은색이지? 뭔가 잘못됐나봐, 분명히 뭔가가 잘못 됐어.”

눈 깜짝할 사이, 모든 사람의 손에 빛이 번쩍였다.

여러 가지 색채들이 머리 위로 솟아올라 모든 사람의 시험 결과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희비가 교차했고 환호성과 비명이 곳곳에 가득했다.

갑자기 한 줄기 붉은 빛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다른 빛보다 더 높고 훨씬 굵었다.

“빨강, 빨강색이야!”

공중에 네 명의 노인들이 나타나 흥분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노인 중 한 명이 손을 들자, 빨강색 빛을 받아낸 제자가 쏜살같이 날아나가더니 그들 앞에 섰다.

"빨강색은 자질이 뛰어나고 운수가 좋은 것을 의미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더냐, 뒤에 있는 시험은 면제하고, 천촉봉에 들어가 수행하거라."

"선배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소인은 곡일평이며, 경도에서 왔습니다.”

붉은색을 낸 천부적 재능의 제자는 영전 종직 골짜기의 상징인 파란 옷을 입고 있으며 청초한 모습이었는데, 열다섯 살쯤 돼 보였다.

"좋다. 옆에 서거라."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가리키자 곡일평은 허공이 굳어버려 대지가 된 듯 공중에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곡일평은 몸을 펴 똑바로 섰는데,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래쪽에서는 다양한 빛이 끊임없이 빛났다.

흑색, 백색, 녹색, 파란색, 하지만 더 이상 붉은색은 나타나지 않았다.

보라색은 더욱 보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이 넘는 제자들이 나가 떨어졌고, 녹색과 파란색을 받아낸 제자들은 채 100명도 안 되었다.

이때 한 줄기 붉은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는데, 이 빛은 곡일평보다 더욱 굵고 힘찼다.

“누구, 누구냐?”

백의의 노인은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란 장로님, 소인은 경도의 단진풍입니다"

좀 전에 엽운을 종으로 들이겠다던 단진풍이었다.

"너는 나를 아는 게냐? 아, 경도에서 온 단가문 이로구나, 영맥에 이러한 재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넌 내 뒤에 서면 된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진풍을 한 번 쳐다보았다.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단진풍은 절을 하더니 으쓱대며 란 장로 뒤에 섰는데 그의 눈길에 엽운이 스쳤다.

엽운은 그를 보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처럼 급하게 시험을 진행하지 않고 조용히 눈앞의 수정을 보고 있었다.

“시험의 첫 관문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수행은 무슨 수행인가!”

엽운은 손을 수정 위에 얹으려 하는데, 별안간 한 줄기 보라색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는데 그 기세가 아주 웅장했다.

놀랍게도 높이가 열 장이나 됐고, 빛을 발하는 동안 천지의 색이 바뀌는 것만 같았다.

순간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우레와 같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보라색 빛기둥으로 색 중에서 최고의 영맥으로 최고의 운수를 가진 절세의 천재에게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보라색, 보라색이라니! 몇 년 동안 보라색을 가진 천재가 나오지 않았었지?"

란 장로의 목소리는 떨려왔고 얼굴은 새빨개졌다.

옆에 있던 다른 세 명의 장로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감격했다.

란 장로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아리따운 한 사람의 그림자가 군중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는데, 뜻밖에도 어린 여자아이였다.

소녀의 얼굴은 새하얗고 머리카락은 구름같고 수려한 얼굴에는 조금의 흠도 없었다.

그녀는 보라색 긴 치마를 입었는데, 산바람이 불자 신선처럼 하늘거렸다.

"군약란이 장로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소녀는 싱그럽게 절을 했는데, 자태가 정말 아름다웠다.

"아주 좋다. 군약란, 너는 무영봉의 제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장로들이 너를 만나 네가 누구의 수련공법에 가장 적합한지 두고 볼 것이다. 앞으로 네 성취는 무한할 것이다."

란 장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손을 뻗어, 군약란을 들어올렸다.

"네!"

군약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봉으로 직행해 무영봉의 선배들에게 친히 길러진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대우였다.

갑자기, 아래쪽에서 시작하지 않은 제자들이 연달아 나서기 시작했다.

자신들도 보라색 혈맥을 내 천부적인 재능을 선보이고 무영봉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오른손으로 옥처럼 하얀 수정을 감쌌다.

그는 신비롭고 시원한 기운이 순식간에 몸을 파고들며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꼈다.

별안간 그는 자신의 몸에서 짙은 보라색 기체를 보았는데, 이 청량한 기운을 쫓아 몸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보라색?

그는 멍해졌다가, 이내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만약 정말 보라색 재능이 있다면, 종문에서 전력으로 양성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몸속에서 갑자기 흑백의 빛이 깜빡 하고 신호을 하자 이내 시원한 기운과 보라색 기체가 거꾸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파란색의 기운이 흑백의 빛에서 뿜어져 나와 수정으로 흘러들어갔다.

희미한 푸른빛이 수정에서 나타나 언제라도 흩날릴 것처럼 공중에서 조금씩 떨었다.

초록색 혈맥 재능이었다!

초록색 재능은, 당연하게도 위쪽 네명의 노인을 놀라게 하지 못했고 한 외문 제자가 다가와 첫 관문을 통과했다고 알려주었다.

엽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방금 맑은 흐름이 몸에 스며드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체내에서 보라색 빛의 그림자가 솟아 나왔다.

손끝에서 튀어나오기만 했다면 수정에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보라색 혈맥의 천부적인 재능은 군약란과 거의 차이가 없을 터였다.

그랬더라면, 그 역시 무영봉 한 장로의 수제자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보통의 외문 제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흑백의 빛은 보라색 빛을 죄다 흡수하고 한 줄기의 미약한 초록색 빛을 내보냈을까?

엽운은 침묵했다.

천천히 그 뜻을 헤아렸다.

"사형, 시험 해보겠습니다."

심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운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시험에 임하거라."

심묵의 여윈 어깨가 조금 떨렸다.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니 체내의 영력이 별안간 돌기 시작했다.

탁!

맑은 소리와 함께 그의 몸 앞에 있던 흰색 수정에 균열이 생겨 거미줄처럼 퍼져 주먹만 한 크기의 시험 수정은 곧 가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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