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화 요물의 재능
"이…이것은 중품영석인가요?”
잠시 멍하니 있던 심묵은 별안간 온 얼굴에 핏발이 선 채 펄쩍 뛰었다.
중품영석 하나에 담긴 영력은 하품영석 100개에 달하는데 심묵처럼 새로 입문한 제자는 지금껏 차이만 알고 있었을 뿐 정작 중품영석을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맞다, 이것이 바로 중품영석이다."
엽운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만약 이 영석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영력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연체경 2단계인 환혈경을 돌파하게 되고 온몸의 피를 정련시켜, 큰 힘을 가진 정혈을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심묵의 앳된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감격스러운 듯 손을 떨며 중품영석을 바라보았다.
“이건 너무 귀한 건데...”
“영석은 값을 매길 수 있지만 정은 값을 매길 수 없잖아.”
엽운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 영석이 쓸만한 물건이긴 하지만 너는 수련기간이 짧아서 흡수 속도가 늦을 테니 조급해 하지는 말거라."
엽운의 몸이 흑백 빛에 의해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품영석 하나를 흡수하는 데 거의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심묵이 이 중품영석의 10분의 1을 20일 안에만 흡수할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샘이었다.
“엽운 사형…?”
심묵은 말을 하려다 멈추곤 머뭇거렸다.
"왜?"
엽운이 이상한 듯 쳐다봤다.
“영석의 영기를 흡수하는 게 정말로 처음에는 느린 건가요?”
마침내 심묵이 입을 열더니 조용히 말했다.
“중품영석와 하품영석의 차이인건가, 어쨰서 저는 하품영석의 영기를 흡수할 때 잠깐이면 됐을까요?"
"잠깐 동안에 다 흡수했다고?"
엽운은 멍해졌다.
심묵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제가 한 달에 얻을 수 있는 영석은 4개인데, 수련할 때마다 잠깐이면 다 없어졌어요."
엽운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이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이라니...
수제자들쯤 되면 저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려나?
"엽운 형님, 제가 말실수라도 한건가요?"
심묵은 엽운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 말하기라도 한 줄 알았다.
"아니, 아니다."
엽운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바닥을 뒤집어 중품영석 하나를 더 꺼냈다.
심묵은 멍해졌다.
“엽운 형님, 이것은..?”
엽운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곤 기대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 두 개의 영석에 기를 흡수해 보거라."
순간, 자신이 영기를 흡수하는 속도를 보려는 것이란 생각에 심묵은 감동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으려 했다.
하지만 엽운은 손짓을 하며 몸을 돌리곤 말했다.
"내 집에 가서 얘기하자"
두 사람은 다른 잡역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누추한 집 안으로 들어가서 심묵은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방 중앙에 앉았다.
중품영석을 각각 손에 쥐고 천천히 쉼호흡을 하자 기초 심법이 순식간에 실행되기 시작했다.
순간, 심묵의 손에서 옅은 빛이 번쩍이고 두 영석이 마치 중심에서 점등이라도 된 듯 반짝거리며 빛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엽운은 심묵의 손바닥 안에 든 영석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속도로 작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안의 기운이 빠르게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 같은 중품영석은 흑백 빛에 의해 다시 태어나게 된 그 조차도 하루에 최대 10개 정도만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묵은 순식간에 두 개의 중품영석을 가볍게 흡수해버렸다.
이 정도 속도는 들어본 적도 없는 불가사의한 수준이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요동치는 마음을 억눌렀다.
정의감에 사로잡힌 어린 소년에게 이 같은 수련 속도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엽운은 이를 비밀에 부치고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았다.
심묵의 이런 요물 같은 수련 속도는 앞으로 천검종 고위층의 사랑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당장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연유가 될 가능성이 컸다.
"심묵! 나는 비록 내산 제봉에 들어가 천검종 내문의 제자가 되어보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진전 제자의 수선자가 어떤 천부적 재능을 가졌는지 본 적도 없지만, 네 재능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들 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엽운은 심묵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천한이라도, 수행에 타고난 재능을 비교하자면 돌멩이와 밝은 달 정도의 차이일거다."
심묵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엽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엽운은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떠올리자 다시 저절로 눈이 가늘게 떠지기 시작해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너무 뛰어난 재능은 쉽게 질투를 불러오고, 특히나 그들의 자리를 넘볼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성취가 있기 전까지 그런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거라."
심묵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심묵은 아직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엽운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도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싸움은 그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는데 이는 외문 제자와의 첫 결투였고, 비록 흑백 빛과 그림자의 도움으로 쉽게 무찌르긴 했지만 외문 제자의 공격은 그에게 또 다른 경지를 알게 해주었다.
특히 그 흑요라는 하품영기의 공격 방식은 그가 평소 접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엽운은 시커먼 칼날이 공중으로 수 장까지 치솟아 잡역제자들은 당해낼 수도 없는 위세를 떨치며 제자들의 영혼을 죄다 무너뜨렸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흑요검이 위세를 떨치는 순간 흑백의 빛으로 부터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솟아나 흑요검의 힘이 지금의 열 배라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엄청난 기운이 계속해서 엽운의 체내를 맴돌며 영기의 위압을 막아냈고 흑요검을 한방에 부수고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강렬한 느낌만은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너무도 미묘한 느낌이었다.
이 기운을 다스리게 된다면 진천한은 물론 그보다 더 강력한 연기경 제자들과 맞닥뜨려도, 적어도 그들의 기운에 눌리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운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머리 속으로 유옥과 싸우는 장면을 다시 그려보았다.
위기의 순간 그 기운이 나타나 흑백의 빛을 다듬더니 경지를 초월한 힘을 분출하여 영기인 흑요검의 공격을 격파했다.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엽운은 지금만큼 흑백 빛의 비밀을 완전히 캐내려 한 적이 없었다.
“죽어라!”
문득 엽운은 진천한의 살기를 떠올리며 그의 살의에 빠져 다음 순간 곧바로 죽임을 당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속의 흑백 빛이 갑자기 빛났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끝없는 금갑신병이 마치 파도가 용솟음치듯 세차게 밀려왔으며 높은 산의 거대한 봉우리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그 강력한 신병의 추격 속에서 도무지 도망칠 수 없을 것 같던 검은 옷의 두 남녀는 오히려 어떠한 두려움도 없고, 그 기세는 온 하늘에 구멍을 뚫을 것 같았다.
“도대체 이건 어느 정도의 수위인거지?”
아무리 엽운이 둔하다 해도, 하늘을 뚫을 듯한 기운을 느끼고 있자면 흑백 옷을 입은 남녀의 무시무시한 수위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장면 속 금갑 신병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산봉우리 하나를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한 힘이었는데, 이 금갑신병들 조차 그들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저 머릿수가 많을 뿐이었다.
천검종에 들어오고 나서 연기경은 수련의 두번째 경지일 뿐이며, 그 위에 축기경과 금단경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금단 고수는 순식간에 천리를 달릴 수 있다 전해지며 금단 법상을 내뿜으면 높은 봉우리도 부술 수 있다고 들었다.
금단경에 달한 선배라니,. 정말 그런 수위가 존재하는 것일까?
엽운은 한동안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쉬며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려 체내의 흑백 빛의 궤적을 쫓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