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화 조롱과 반대
그러기 위해 지금은 조롱할 때가 아님을 알기에 이를 악물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엽운 역시 마음을 물처럼 가라앉힌 채 차갑게 서있었다.
영기는 비록 강력한 물건이지만, 그의 몸속에 있는 흑백의 빛은 이와 같은 영기를 훨씬 능가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영기의 위협이 흑백 빛의 힘을 조금은 억누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진천한의 시선은 시종일관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는데 그는 엽운의 차분한 기세를 보곤 자신도 모를 이상한 감정이 스쳤다.
이 외문 잡역 제자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향로 하나쯤 태울 시간이 지난 후, 유옥은 크게 웃으며 날아올랐다.
“천한 사형, 시작하셔도 됩니다!”
그의 손에 검광이 번득이자 검은 영검이 독사처럼 빛을 토했다.
진천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냉랭하게 말했다.
"준비가 되었다면, 시작해 보자".
"엽운, 내 너를 만만하게만 봤는데, 몰래 수련을 해서 이 경지까지 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영력이 대단하구나.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검의 이름은 흑요검이라 한다. 잘 보거라, 어쩌면 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유옥은 체내에서 영력을 요동치며 손에 쥔 영검의 힘을 느꼈다,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결투를 입으로 하냐?”
“네 이놈……”
유옥의 조롱을 띈 얼굴에 악독한 기색이 역력했다.
곧 크게 화를 내며 손에서 검은 불빛을 번뜩였다.
몸 속의 영력이 솟구쳐, 순식간에 흑요검에 주입됐다.
검에서 검은 빛이 수차례 반사되어 나와 공중에서 응집 되었다.
곧이어 새까만 검 한 자루가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는데 길이가 무려 일 장이나 되었다.
영검은 곧 낮은 바람 소리를 내며 곧장 엽운을 향해왔다.
“영기는 역시 평범한 무기와는 차원이 다르군!”
엽운은 고개를 들어 곧게 날아오는 검을 노려봤다.
위력이 하늘을 뒤덮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어떤 연체경 5단계 이하의 무인이라도 정신을 잃고 영혼이 무너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위압에도 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순간 체내의 영력이 솟구쳐 오르더니 두 주먹을 향해 밀물처럼 돌진했다.
열 손가락을 깍지 낀 채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곤 하늘에서 베어져 내려오는 영검을 향해 세차게 돌진했다.
“교룡충천!? 이건 기초 기술 중 하나가 아닌가? 이런 기술로 영기에 맞서려는 것인가?”
검은 도포를 입은 진천한은 어리둥절했다.
눈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지적인 기질은 분명 범상치 않으나, 영기에 대해 이리도 이해가 없다니, 보아하니 죽을 것임이 틀림없구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 필요도 없다."
영기가 귀한 이유는 영력을 흡수해 힘을 배로 늘릴 수 있으며, 심지어는 영력을 형상화하여 강력한 공격으로 응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품질이 높은 영기일수록 영력의 증가폭은 더욱 커졌다.
듣자하니 최고의 영기는 영력을 천 배나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좀 전까지 엽운은 영력만으로도 유옥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흑요검을 가진 그를 순전히 힘만으로 제압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엽운의 기술은 확실히 웅장한 힘을 내포하고 있지만, 진천한의 눈에는 여전히 흑요검과 비교될 수 없었다.
유옥은 엽운이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날아와 정면승부를 할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다.
영검의 거대한 그림자가 공중에서 잠시 멈추더니, 바로 더욱 강력한 힘으로 엽운을 베려 했다.
엽운은 몸을 더 높게 띄웠다.
엽운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자 높이 쳐든 철권에서 옅은 빛이 났다.
그 역시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두려움을 지워 하품 영기를 마주하고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엽운의 마음속에선 이 주먹이 흑요검을 뚫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 믿음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몰랐지만 분명 확고했다.
시커먼 그림자가 육중하게 떨어져 내리고 은은한 백색의 빛을 내뿜는 철권이 하늘로 치솟았다.
둘은 공중에서 순식간에 충돌하더니, 마치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공중에서 천막으로 떨어졌다.
하얀 빛이 살짝 주춤하는듯 하더니 곧 하늘을 뚫고 올라 검은 그림자를 뚫었다.
유옥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피를 토하며 사방에 흩뿌렸다.
엽운의 주먹이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치였다.
방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파도 같은 힘을 분명히 느꼈다.
흑요검으로 만들어낸 검의 그림자를 한순간에 찢어버리니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찌 잡역 제자의 몸에서 이런 힘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엽운이 방금 날린 이 주먹은 연체경 6단계에 달해 온몸의 혈을 터놓은 제자들로써도 갖기 어려운 위력이었다.
헌데 어떻게 엽운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진천한……”
그는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대뜸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말을 꺼내려는 순간, 눈이 한 번 깜박이는 짧은 사이에 얼굴에 거대한 통증이 느껴지며 나가 떨어져 버렸다.
쾅!
유옥의 몸이 바위에 거세게 부딪히자 돌멩이가 사방으로 튀며 그대로 부서졌다.
"말도 안돼, 네 수위로 어떻게 이런 힘을!"
힘겹게 상체를 지탱하고 있던 유도열의 목소리는 악귀의 울음소리보다 처량했다.
"아직도 말이 안된다 생각하나?"
엽운은 차갑게 웃으며 한 걸음 달려가더니 유옥을 또 다시 날려버렸다.
진천한은 조용히 바라보며 조금도 말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거센 파도가 일고 있었다.
그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 2단계인 주천경에 이르렀고, 진기가 경맥을 뚫고 공전을 하였다.
그러나 엽운의 영력이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설마 스스로 어떤 강력한 심법을 수련한 것인가?
이 같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떠올랐다.
신선이 도처에 가득하고 온갖 셀 수 없는 수행 공법들이 있었다.
보통 높은 단계의 수선심법은 절대 평범한 세간에 전해질 수 없었지만, ‘절대’ 라는 말은 없듯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이때, 그는 눈앞의 이 엽운이라는 자가 천검종의 정식 제자가 된다면 훗날 반드시 내문 제자가 될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절대로 엽운이 천검종의 정식 제자가 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천한 사형, 살려주십시오!”
도움을 부르는 갸냘픈 목소리가 뒷쪽의 부서진 암석 사이에서 들려왔다,
유옥이 연장경의 수위에 달한 자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엽운, 그만해라.”
진천한이 차갑게 말했다.
엽운은 조용히 유옥의 앞에 서서 경멸과 야유를 보내는 눈빛으로 피범벅이 된 얼굴을 냉정하게 훑으며 뒷짐을 졌다.
유옥은 바위 틈에서 겨우 일어났지만 피범벅이 된 얼굴에서는 아무 표정도 볼 수 없었다.
두들겨 맞아 한쪽만 보이는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원한이 가득했다.
"엽운, 하산 하거라."
진천한은 엽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담담하면서도 상상할 수 없이 위엄이 충만한 어조로 말했다.
“하산이요?”
엽운의 몸이 별안간 흔들렸고, 눈에서는 빛이 거세게 번뜩였다.
“그래!”
진천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엽사형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모든 게 유도열과 유옥이 일으킨 건데. 당신들은 몰래 영석을 빼돌리는 자들은 찾아낼 생각도 않으면서 도리어 엽사형을 쫓아낸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여리지만 분노가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뒷쪽에서 야윈 그림자 하나가 엽운을 향해 걸어왔다.
바로 심묵이었다.
엽운의 주먹에 맞아 기절했었는데, 언제 깨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지마라.”
엽운은 몸을 돌려 심묵을 쳐다본 뒤 이어서 진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산하지 않겠다면?"
진천한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종률 가운데 아무 이유를 하나 찾아 엽운에게 왜 그를 쫓아 내야하는지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유를 묻지 않고 되려 그에게 하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수위를 모두 폐기시키고 강제로 추방 되겠지.”
다소 어리둥절하던 그는 곧 냉소를 지으며 느릿느릿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요!"
심묵이 참다못해 고함을 질렀다.
엽운이 호흡을 멈추자 체내의 흑백 빛이 다시 솟아오르더니 번쩍이며 지나갔다.
이때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힘,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게 된 것 말고도 그는 모든 것이 우스워지는 기운을 느꼈다.
마치 깊은 심연 속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조롱하는 한 쌍의 눈 같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그의 몸을 밀물처럼 휩쓸었다.
고개를 들어 등을 곧게 펴고 진천한을 보며 말했다.
"그럼 오십시오"
모두가 떠들썩했다.
진천한의 눈동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네가 감히 나를 상대하겠다고?”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