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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8화 (8/227)

제 8 화 목숨을 버리다

천검종 정식 제자가 잡역 제자의 발에 밟힌 것은 그야말로 속세의 왕후가 마부에게 밟힌 격이었다.

부끄러움이 극에 달한 유옥은 “푸”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피를 뿜었다.

"엽운, 함부로 날뛰지 마라. 잡역제자들이 외제자를 죽이면 연유도 묻지 않고 즉살한다!“

유도열 이마에 핏줄이 불룩 솟았다.

만약 유옥이 이곳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그도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쫓겨 다니다가 영수탑에 버려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용없다.”

엽운에게 밟힌 유옥은 도리어 엄한 목소리로 크게 웃으며 포효했다.

"감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내가 윗분들께 말씀드리면 아무도 널 구할 수 없을 것이다."

포효하는 소리를 들은 잡역제자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엽운은 그저 차갑게 웃으며 발밑에 다시 힘을 주어 유옥의 머리 반쪽을 흙속에 쳐 박았다.

"천촉봉의 제자가 여기서 약초나 캐던 잡역제자에게 이렇게 당하고 발밑에 밟혔다고 널리 알린다면, 누가 창피를 당하려나, 이런 소문이 퍼지면 천촉봉에서 벌을 받는 것은 너일까 나일까. "

유옥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 포효하던 목소리마저 사라졌다.

이런 일이 알려진다면, 아마 그는 앞으로 천촉봉에서는 아무런 앞날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누구라도 그를 업신여길 것이다.

어쩌면 윗 사숙은 화가 나 아무 곳에나 그의 자리를 마련해 놓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 방금 이 모든 것은 너와 어떤 관계도 없다. 우리가 자초한 거야. 유옥께서도 너한테 맞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술을 보여 주려다 운이 나쁘게도 지나치게 열중해 중상을 입은거야. 너희들 모두 봤잖아. 그렇지?”

유도열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평소의 모습과 달리 뻔뻔하게 소리쳤다.

"그래?“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어보였다.

"맞아, 맞아! 그래, 우리 모두 봤으니까 다 증언할 수 있잖아."

유도열은 온몸을 떨더니 다시 소리쳤다.

“예, 그렇습니다.”

장내 모든 잡역부 제자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 연달아 말했다.

"이렇게 쉽게 화를 입을 수 있으니. 할 일이 없다면 천촉봉에서 단약이나 잘 정제하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아라."

말을 마친 엽운은 발을 들고 물러섰다.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킨 유옥의 입가에 핏자국이 얼룩덜룩 맺혀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독이 가득 찬 눈으로 엽운을 바라보며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유옥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안개 속 높은 곳에 있는 제봉을 바라보았다.

유옥도 이미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으니 외문 제자 시험은 이변이 없는 한 쉽게 통과할 것이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눈앞에서 솟아올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하늘을 찔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장 높이의 공중에서 칠색의 불꽃이 피더니 빛이 되어 천천히 드리워졌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사형, 뭐 하십니까.”

공포로 가득 찬 유도열의 목소리가 불꽃 아래에서 울렸다.

"말로 나를 진정시키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안타깝게도... 종률을 관장하시는 사형께서는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유옥의 눈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순간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해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지경으로 미풍이 불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곧이어 구경하던 잡역제자들이 새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놀란 표정으로 엽운의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유옥의 눈빛은 확고했다.

"이곳의 종률을 관장하는 자와 한통속이구나!"

엽운이 순간 반응했다.

‘그랬구나!’

정규법을 지켜야 할 종률의 제자마저 이런 존재라니, 엽운은 한 줄기 열류가 머리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기혈이 모두 타오르기 시작했다.

“네놈은 잡역제자일 뿐이고, 잡역제자는 개돼지만도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도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지 못 할거다."

유옥은 몸을 뒤로 날렸다.

두 개의 단약이 그의 손에서 날아 입에 들어갔고, 왼손으로는 두 개의 중품 영석을 잡았다.

그는 엽운이 자신을 죽일 생각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차 반잔 정도만 시간을 끌어 종률전의 사람들이 오게끔 하면 엽운은 죽은 목숨이었다!

유도열 역시 얼굴색이 변하더니 필사적으로 뒤로 빠져 나왔다.

엽운의 실력이라면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수일 전 엽운은 분명히 아직 연체경 4단계인 연장경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때도 엽운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는데, 지금 엽운의 수위를 어떻게 당해내겠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파리 목숨일 뿐이다.

수선자라면 천지의 힘을 모아 하루아침에 신선이 되며, 천지를 품고 중생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건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어둡고 불공평한 것들뿐이었다.

설마 이리도 큰 천검종 안에 심신이 밝은 달처럼 순결한 선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모두 이렇게 속고 속이고, 아랫사람을 개돼지 취급하는 존재들뿐인가!

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화기가 머리 위로 치솟았다.

엽운은 흑백의 광채를 다시금 느끼고 있는 듯 눈 밑에서 흑백 두 빛이 소리 없이 스쳐지나갔다.

순간, 그는 흑백 빛의 뜻을 느낀 것 같았다.

마치 금갑신장들의 앞에 서 있는 것 같은데 그 금갑신장들도 모든 것을 개돼지로 여기며 차갑고 무정했다.

쾅!

차갑게 요동치는 살의가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놈을 잡아라!”

유도열은 여전히 두려움에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언가를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호흡이 갑자기 멈추었다.

엽운은 그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랐다.

바로 그 순간 엽운이 자신의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을 봤다.

주먹의 그림자가 이미 가슴에 떨어졌다.

우지직!

맑은 소리와 함께 유도열은 자신의 몸이 젓가락처럼 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엽운의 주먹에 가슴이 음푹 파였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저항할 수 없는 영력이 몸속으로 스며들어와 날뛰어 강인하게 갈고 닦은 내장은 거의 부서질 지경이었다.

유도열의 몸이 날아가는 순간, 그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해 가슴 깊은 곳에서 회한이 솟아올랐다.

억울하다 억울해!

그렇치만 모든게 너무 늦었다.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버들가지처럼 하늘하늘 날려 땅에 떨어졌고, 피가 낭자했다.

나를 개돼지 취급했겠다.

“오늘은 내가 네놈을 개처럼 도살해 줄테다!”

엽운은 유도열을 일격에 죽이고 차가운 시선을 유옥에게 향했다.

"엽사형, 빨리 가세요!"

심묵이 뒷쪽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도망가도 늦지 않았어요. 종률전의 사숙과 사백들이 오면 둘을 먼저 보내 상처를 치료 할테지만, 만약 이들이 죽어버리면 그들은 제일 먼저 사형을 쫓아가 죽일 거예요!".

심문은 어린 나이임에도 겁먹지 않고 대처했다.

그러나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천검종이 어떤 존재인지, 종률전의 제자는 또 어떤 존재인지, 심묵이 언제 들어온 잡역 제자인지 조차 알 수 없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실력이 몇배가 늘었다고는 해도 도망갈 방법은 없었다.

“심묵아, 너는 오래 살거라.”

엽운은 몸을 돌려 달려오는 심묵을 끌어당기려는 듯 그를 보다가 손을 뻗어 주먹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심묵이 주먹에 맞아 기절해 몇 장 너머로 날아갔다.

"유옥, 너도 도망갈 수 없다."

진정 생사가 갈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생사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엽운의 마음은 그저 편안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몸속에서 흑백의 빛이 다시 한 번 번쩍였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유옥을 감쌌다.

유옥은 마치 태고의 거대한 요수에게 집어삼켜진 듯 몸이 얼어붙었다.

식은땀이 배어나와 순간 움직일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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