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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7화 (7/227)

제 7 화 얼굴을 밟다

쾅!

두 강대한 힘이 거세게 부딪히자 한 줄기 하얀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유옥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그 자리에 서있었고 늙은 소로 변한 엽운 역시 옷에서 펄럭펄럭 소리를 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막상막하!

두 사람의 강경한 충돌은 뜻밖에도 우열을 가릴 수 없어 서로 어쩌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유옥은 천촉봉의 정식 제자로 비록 천촉봉의 외문이라 할지라도 가장 약한 기술마저 기초 심법의 열배는 강했다.

수천 년 동안, 아무리 걸출한 잡역제자라 하더라도 그 위에 있는 제봉 제자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고, 막상막하였던 적도 없었다.

유도열의 눈빛은 완전히 굳었다.

심장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그는 방금 본 장면이 마치 환각인 것처럼 눈을 거세게 비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진실이었고, 거센 기류가 그의 몸을 때려 몹시 괴롭게 만들었다.

멀리서 잡역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이정도군."

뒷짐을 지고 서있는 엽운의 마음속에 더욱 자신감이 차 올랐다.

심지어 그는 이 일격에 전력을 쏟아 붓지도 않았다.

반대로 유옥의 마음속에는 차가운 기운이 차올라 두피마저 저렸다.

상대의 일격에 손이 심하게 아파왔다.

이것은 결코 잡역제자가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비록 그가 얕잡아 보았다 해도 이런 힘은 최소한 연체경 5단계의 수위는 되어야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제법이군.”

유옥은 음산한 눈으로 엽운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네 완력만으로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순진하기 짝이 없군.”

“그래?”

엽운은 비웃듯 그를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유옥이 손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옅은 붉은 빛이 그의 손바닥에서 빛났다.

멀리서 보니 피 뭍은 손바닥이 태양에 반사된 것 같았다.

“너희들이 지금껏 배운 것은 어설픈 초식일 뿐이고 기껏해 봐야 기술이지만 우리 같은 천검종 정식 제자들은 선기(仙技)를 배울 수 있고 훗날 충분한 수위에 오르면 선술마저 익힐 수 있다!”

"선기(仙技)는 9품으로 나뉘는데 1품이 가장 높고 9품이 가장 낮다. 나의 이 혈인절맥수는 겨우 9품이지만 하찮은 너에게는 이걸로 충분하다"

"자질이 썩 나쁘지 않아 이 같은 것들을 접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너무 설쳐댔구나. 진정한 수선의 길은 영원히 접하지 못 할 것이다.”

유옥의 손바닥이 핏빛 아래 하얗게 변하자 모세혈관과 경맥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예술품을 보는 것 같이 열심히 감상했다.

공기 중에 옅은 피비린내가 풍겨와 사방 수 장의의 공간을 뒤덮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자 참을 수 없는 초조함이 마음에 밀려와 지워지지 않았다.

유도열은 안색이 크게 변해 가슴이 답답해졌다.

수 십장 떨어진 곳에 있던 그 잡역부 제자들은 비록 그 기괴한 혈기에 젖지는 않았음에도 마음속이 여전히 답답하고 괴로웠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기인가?

비록 최저 수준의 9품 선기라 할지라도 이러한 위력을 가지고 있으니 유옥이 말한 바와 같이 잡역부 제자가 당해낼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엽운은 옅은 핏빛 속에 조용히 서 있었다.

여유로운 얼굴엔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고, 전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순간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핏빛이 그의 심경에 영향을 주고 수위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유옥은 손을 뻗지 않고 옅은 핏빛으로 엽운을 뒤덮었다.

"우선 네놈의 마음을 산산조각내고 영혼은 끝없는 부정적 감정에 잠식시켜 종국에는 차라리 죽고 싶도록 만들어 주마. 그래야 내 한이 풀린다."

엽운을 매섭게 쳐다보던 그의 눈에서 독사처럼 싸늘한 빛이 번뜩였다.

획실히 엽운의 창백해진 안색과 찌푸린 미간을 보면 몸에 핏빛이 스며들어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눈살을 살짝 찌푸린 엽운은 혈인절맥수가 뿜어내는 핏자국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기초심법을 닦은 잡역제자일 뿐 외문 제자의 기술에 맞설 수 있는 큰 저항력은 없었기에 핏빛이 몸 속으로 들어온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초조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핏빛이 그의 마음을 파괴하려는 순간 가슴에서 별안간 한 줄기 흑백의 빛이 뿜어져 나와 머리 위로 치솟았다.

바로 그때 엽운은 또 다시 그 장면이 보였다.

멀리서 금갑신병이 밀려와 물결처럼 일렁이고 온 천지가 모두 걷잡을 수 없는 살의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 살의가 조금이라도 잡역 외원에 퍼지면 모두가 그 말도 안되는 살의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살의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금색 빛이 넘실거리고, 살의가 엉겨 붙었다.

멀리서부터 흑백의 빛이 급격히 날아왔다.

검은 저고리의 남자는 웅장한 체격에 위풍당당하고 흰옷 여자는 아름다운 자태와 우아한 기품을 지녔다.

그러나 엽운은 이번에도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자의 몸 앞만이 보였고 어렴풋한 형체만 있었다.

이 광경은 그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곧이어 엽운은 흑백의 빛이 수천만 개의 길이 되어 경맥과 골격을 뚫고 안으로 한뼘 한뼘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몸속에 스며든 핏빛은 더 이상 남지 않게 되었다.

주위의 압력이 순간 완전히 사라져 더 이상 그에게 조금의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영력이 파도처럼 세차게 움직였다.

엽운은 눈에 기쁜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곧 그의 미간은 더욱 깊게 찌푸려졌고 얼굴빛도 조금씩 창백하게 변하였는데, 핏빛을 이겨내지 못한 듯, 이내 무릎을 꿇었다.

이를 바라보는 유옥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영롱한 핏빛 손바닥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엽운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매 걸음 아주 천천히 걸으며 끝없는 공포와 절망으로 엽운의 마음을 완전히 차지하려고 했다.

어떤 심정이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가?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죽지는 않고, 죽음이 오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아무런 저항조차 못하고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지금 이 순간, 끝없이 커져가는 부정적인 감정은 강인한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유옥은 입가에 웃음을 띠고 걸어왔다.

그가 엽운의 몸 앞으로 걸어가자 핏빛 손바닥이 천천히 움직였다.

손을 들어, 마치 연인의 얼굴을 만지듯 매우 부드럽게 엽운의 몸에 떨어트렸다.

"맛이 어떠냐?"

유옥은 크게 웃었다.

희롱과 비웃음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두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별안간 유옥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더니 미간이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그는 엽운의 얼굴에 이상한 미소가 번진 걸 보았다.

엽운은 두 주먹을 순식간에 들어올렸다.

그 어떤 기교도 없는 주먹 하나가 쾅 하고 튀어 나왔고 곧바로 다른 한 주먹이 따라붙었다.

“으악!”

첫번째 주먹이 그의 핏빛 손바닥을 세게 때리자, 유옥의 온몸이 뒤흔들려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놀랍게도 그의 손바닥 위 핏빛은 산산조각이 나 온 몸이 마비될 정도로 흔들렸다.

펑!

두 번째 주먹에 그의 동공이 급격히 커지며 얼굴을 강타했다.

유옥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오고 몸은 한 방에 몇 장 너머로 날아갔다.

엽운의 동작은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마치 전기처럼 재빨리 쫓아갔다.

바로 방대한 영력이 그의 오른쪽 다리에 주입되더니 거세게 걷어찼다.

“퍽!”

이제 막 몸을 일으키려던 유옥이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날아갔다.

"네가 진정한 천촉봉의 제자더냐?"

엽운은 계속 따라붙어 재빨리 유옥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긴 머리칼을 쥐어 잡고 돌려세워 곧바로 유도열에게 던져버렸다.

유도열은 비명 속에서 무거운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는 굉음을 들었다.

그의 머리는 완전히 사고 능력을 상실했다.

“죽일 수는 없지만 산 죄를 용서할 수도 없다.”

엽운은 숨을 깊게 들이마셔 마음속의 살의를 억누르고는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유옥의 앞으로 걸어가 발로 그의 얼굴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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