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분노
새벽.
“탁!”
가벼운 소리가 울리더니 또 하나의 영석이 엽운에게 흡수되어 재가 되고 안에 담긴 영력은 경맥을 따라 움직였다.
"엽사형, 빨리 가시지요!"
별안간 앳된 다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수척한 모습에 심묵이 뜰에 나타났다.
"심묵, 무슨 일로 온거냐?"
엽운이 잠시 생각해보고 물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심묵의 풋풋한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형언할 수 없을만큼 초조해하며 숨을 헐떡였다.
"유…유옥이 왔어요."
“역시 그렇구나!”
엽운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일찍 왔더라면 서둘러 피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충분히 수련할 시간이 주어져 연장경은 이미 확실한 경지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 6개의 영석을 흡수해 기이한 흑백의 광채를 정련하였으니 틀림없이 이미 유옥의 힘을 능가할 것이었다.
힘으로는 월등히 뛰어날 것이고, 무예는 부족할 지라도 싸울 수는 있었다!
“엽운 사형?”
엽운이 놀라지 않고 반색하는 모습을 본 심묵은 멍하니 서있었다.
설마...
"잠깐 비키거라, 다치지 않게."
엽운은 심묵의 풋풋한 얼굴을 보며 싱긋 웃어보이곤 곧장 정원 밖으로 나왔다.
"엽운, 좋아. 역시 여기 있었구나."
멀리서 몇 가닥의 그림자가 거세게 날아왔는데 사람보다도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유도열의 목소리도 들려오더니 눈앞에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잡역 제자 몇 명과 또 흰색 긴 저고리를 입은 젊은 남자가 있는데 이마가 훤히 트이고 눈썹이 날카롭게 올라간 게 매우 잘생겼다.
게다가 가벼운 구름과도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빛만큼은 너무 차가워서 길에 보이는 잡역 제자들은 그의 눈에 개돼지 같이 보이는 듯 했다.
엽운은 그 사람이 천촉봉의 유옥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얼굴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유도열 사숙, 또 오랜만입니다.”
그는 유도열을 보면서 미적지근하게 한 마디 했다.
"엽운, 너는 나의 영석을 빼앗고 규율을 어겼으니, 오늘은 아무도 너를 구해 줄 수 없을거다."
유도열은 큰 소리로 웃더니 고개를 돌려 그 젊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사형, 바로 이 놈입니다."
흰 옷의 젊은 남자는 역시 유옥이었다.
그는 엽운의 표정은 살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영석을 내놓고 네 양팔을 자르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좋아, 아주 좋아.”
유옥은 평소 유도열의 후원자로서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지 알 수도 없었다.
비록 그를 처음 만났지만 엽운의 투기는 이상하리만치 세차게 타올랐다.
. 어디선가 “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엽운은 미동도 하지 않는 듯 하다가 순식간에 유도열에게 다가갔다.
쾅!
유도열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와 공중에서 한 송이 꽃처럼 땅에 흩뿌렸다.
“너!”
유도열과 여러 제자들은 얼굴을 찌푸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엽운의 움직임은 거의 알아보지도 못했다.
엽운은 며칠 전에 비해 더 강해진 것이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지금 유옥이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이다.
엽운은 뜻밖에도 감히 유옥의 앞에서 주저없이 독수를 썼다.
엽운 뒤에 있는 심묵도 완전히 넋을 놓은 채 보고 있었는데 이런 엽운의 행동은 더 이상 담대함이나 오만함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죽고 싶어 환장한 것 같았다.
“왜 또 나야?”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진 유도열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엽운은 분명 유옥과 맞서려 했는데, 왜 자신을 먼저 날려 버린 것인가?‘
"네놈....담이 크구나!"
유옥의 차가운 눈망울이 커지며 흰 옷이 바람도 없이 저절로 펄럭였다.
엽운은 냉소적으로 그를 쳐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유옥의 면전에서 일격을 가하니 그의 마음속 두려움 하나 없던 기세가 어느새 한 층 더 커졌다.
이때 유옥의 분위기가 그의 눈에는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보여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유옥은 어리둥절해 하다 얼굴에 순식간에 한기가 서렸다.
이곳의 잡역부 제자들은 천촉봉에서는 하찮은 존재일 뿐인데 감히 이렇게 행패를 부리다니!
"죽는다, 너는 오늘 반드시 죽는다!"
"영수탑에 네놈을 쳐넣을 생각도 없어졌다."
유옥의 손아귀에서 휘몰아치는 힘이 생겨나 마치 기류가 분출하는 것처럼 위로 솟구쳐 올랐다
진정한 수선심법이나 잡역부 제자들이 닦은 기초 심법과는 완전히 달랐다.
비록 연체경 5단계에 지나지 않는 외문 제자라고는 해도 이때 그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잡역 제자들에게서 풍기는 것과 사뭇 달랐다.
잡역제자는 기초심법을 다듬어 수위를 천천히 끌어올릴 뿐이지만 외문제자가 되면 고를 수 있는 공법이 훨씬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정신의 수행과 영혼을 향상시키는 공법 등, 이런 공법들을 수련하게 되면 은은한 위압감을 풍기게 되고 수위가 자신보다 낮은 상대를 만나게 되면 그 기세만으로도 상대방이 본 실력을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엽운은 살기가 실체가 되어 공중에 가득 찬 것 같다고 느꼈다.
비록 직접적으로 상처를 줄 수는 없지만 은근한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체내의 영력이 모두 억눌리는 것 같았다.
위압감은 허공에서 응집되어 서서히 모든 걸 뒤덮고 심지어는 뒤에 있던 심묵까지 그 안에 가두었다.
심묵은 온 몸을 떨며 호흡이 거칠어져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 무형의 압력은 수위가 한참 낮은 그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잡역 제자는 속세의 만명의 소년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만명의 잡역부 제자 가운데도 기껏해야 몇 명만이 위로 올라가 제봉의 제자가 되고 세상에는 없는 영약을 즐기며, 수선(修仙)의 힘을 얻어 만수무강을 누린다. 네 녀석들과 우리의 차이는 개미와 참매 정도라 할 수 있지.”
엽운의 얼굴에 나타난 미묘한 변화를 본 유옥은 별안간 냉소를 띄며 말했다.
"너 같은 놈 마저 이 몸의 위엄에 도전하려는 것인가?”
"엽운, 넌 죽었다!"
저도 모르게, 주저앉은 유도열의 눈에서 쾌활한 빛이 번득였다.
눈앞엔 온통 유옥이 뿜어낸 위압뿐이고 엽운 조차 저항하기 어려웠다
‘윗쪽의 제봉이라... 천촉봉의 외문제자가 농부와 같은 잡역제자와 이정도로 거대한 차이가 날줄이야.’
사방에는 이 봉우리의 잡역제자들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나타나 먼 곳을 두리번거리며 자칫 자신들이 연루될까 두려운 듯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엽운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아쉬움과 못마땅함이 서려있었다.
엽운은 차갑게 그들을 바라봤다,
유옥이 발산한 위압이 그에게도 영향을 주어 체내의 영력이 한 가닥 꺾였다.
그러나 그 위압이 영력을 더 짓누르려는 찰나 체내에서 흑백빛이 번뜩이더니 마음이 맑아지고 유옥의 살의는 더 이상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흑백 빛, 너 도대체 뭐야? 이런 효능이 있다니."
엽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아무 표정 없이 심묵의 어깨를 살짝 치며 영력을 내뿜어 그를 수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너무 가까이 오지 말거라. 다칠 수 도 있으니."
심묵이 몸에 영력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한눈 파는 사이 마음속에 있던 공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의 마음속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별안간 엽운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빛이 번뜩였다.
“죽어라!”
멍하니 있던 유옥은 어렴풋이 위험을 느꼈다.
“개산열비수!”
낮게 소리치며 오른손을 뻗자 손바닥에 희미한 빛이 번뜩이더니 엽운을 향해 매섭게 쏘아졌다.
날카로운 소리가 쌩쌩 울려 수 장 떨어진 곳에서도 위력이 느껴졌다.
손바닥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오자 뺨이 살짝 찌르는 듯이 아팠다.
“노우정각!”
엽운은 눈에서 빛을 번뜩이며 소리를 질렀다.
두 주먹을 머리 위로 쳐들곤 살짝 몸을 젖혀 마치 늙은 소처럼 두 뿔을 만들었다.
노우정각, 호포산림,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이런 권법은 심지어 공법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잡역제자들은 공법을 닦을 자격이 없어 최소한의 공법도 접하지 못했다.
이 공법은 모든 잡역부 제자들이 다 할 줄 아는 것으로 평소에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인데 오래 전부터 익혀왔기에 더 할 나위없이 익숙했다.
이 공법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어떤 자세와 기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수백명의 잡역제자들은 엽운이 노우정각을 하는 것을 보고 순간 얼굴색이 변했다.
놀라움,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기색이 얼굴에 나타났다.
그들은 엽운의 모습이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한 마리의 건장한 소가 날카로운 뿔을 치켜들고 유옥을 향해 사납게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