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화 연장
쾅!
굉음과 함께 유도열이 머물던 집의 대문이 터지며 많은 파편들이 날아 들어와 집 안을 통째로 부숴버렸다.
"유사숙, 오랜만입니다!"
문 앞에 나타난 엽운은 웃는 얼굴로 느릿느릿 걸어왔다.
‘잠시 못 보았을 뿐인데 오랜만이라니,..’
이 말을 듣는 순간 유도열의 얼굴은 마치 피라도 흘리듯 새빨갛게 상기되었다.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유도열은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내가 죽고 싶은게 아니라도, 당신 이대로 괜찮겠어?”
엽운은 냉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유도열의 눈망울에 공포가 서렸다.
“엽운, 양쪽 다 다칠 필요가 있느냐?”
"엽운, 천검종은 실력이 벼슬인 곳이다. 네가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전에는 내가 너를 잘못 대우한 것이겠지. 하지난 지금은 네가 실력을 드러냈으니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 보다는 너와 내가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다.”
유도열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엽운을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
"내 도움이 있으면 천촉봉이나 다른 봉에 들어가 수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넌 내가 세 살짜리 어린애인줄 아느냐?"
엽운은 웃으며 말을 멈추고 유도열의 앞으로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유도열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아가며 새빨간 피을 공중에서 붉은 꽃송이처럼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쿵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히더니 바닥에 거세게 쳐박혔다.
“말도 안 돼!”
유도열의 모호한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엽운이 이렇게 함부로 행동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엽운의 힘이 또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유도열은 엽운이 공격해 올 것을 감지했지만 도무지 반응할 수 없었다.
"유도열 사숙, 당신께서 사숙이시니 선택지를 하나 드리지요."
엽운은 옆에서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유도열의 제자들을 한 번 바라보곤 그대로 유도열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밟았다.
"아직도 나를 사숙으로 부른다고?"
엽운이 자신을 사숙이라 높여 부르면서 얼굴을 밟으니 유도열은 화가 나서 까무러칠 지경이었지만 엽운의 거침없는 행보는 진정한 두려움으로 느껴졌다.
"무엇을 원하느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석을 내놔라."
“그깟 영석 가지고 이럴 필요까지 있느냐.”
"오늘부터 너에게 매달 하품 영석 100개씩을 추가로 주겠다."
엽운은 싱긋 웃으며
"100개? 난 하품 영석 5만 개를 원해. 아니면 당신의 중품 영석 오백 개로 바꿔줘도 되고.”
“5만 개?”
엽운의 말에 유도열의 제자들도 벌벌 떨었다.
엽운이 마치 미치광이처럼 느껴졌다.
유도열도 눈에서 빛을 번뜩이는데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좋다!”
제자들의 생각과 달리 그는 한 마디에 승낙했다.
"일어나게 해다오. 내 저물대에 든 영석들을 전부 넘겨주마."
엽운은 말을 아끼며 발을 옆으로 치웠다.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그를 경계하여 유도열이 움직이면 다시 공격을 날리려고 했다.
가까스로 일어난 유도열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그는 오른손을 살짝 흔들어 품 속에서 저물대를 꺼내 봉인을 풀었다.
“와르르!”
저물대 안에 있는 물건들이 전부 땅바닥에 쏟아져 데구르르 굴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도열은 등급이 약간 높은 잡역제자일 뿐이지만, 저물대 안의 물건을 모두 쏟아내니 믿을 수 없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체가 펼쳐졌다.
압도적인 영기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부셨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땅 위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마음 속으로는 몹시 흥분됐지만, 차가운 얼굴을 유지하며 말했다:
”10 개의 중품 영석, 130개의 하품 영석, 한 개의 낡은 채찍과 낡은 검 한 자루? 사숙, 이건 아까 말한 5만 개의 영석이랑은 거리가 먼 듯한데."
유도열이 몇 차례 기침을 하니 피거품이 나왔지만 엽운은 전혀 놀라지 않고 느릿느릿 말했다.
“매달 9할의 영석은 천촉봉의 사숙과 사부들에게 바쳤다. 그나마 내 수행이 느리기 때문에 이 정도 여유가 있는 것이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매달 천천히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
엽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곤 물건을 모두 거두며 말했다.
"그럼 일단 달아두자고."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밖을 향해 나갔다.
유도열은 번뜩이는 눈으로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설령 정말로 5만개의 영석이 있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네 손에 떨어진다면 어쩔테냐? 너의 수위로 또 몇개나 연화시킬 수 있다고?’
‘유옥 선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 영석들을 회수해야 한다.’
10개의 중품 영석, 130개의 하품 영석은 엽운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놀라운 재산이었다.
그래서 유도열이 믿고있는 천촉봉에서 곧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은 가능한 빨리 수위를 올리는 게 급선무야. 외문 제자면 마찬가지로 연체경 정도의 실력일 것이고 만약 천지의 영기를 깨우쳤다면 내문 제자 시험을 받을 자격일텐데 이런 제자들은 수행에 전념하느라 절대로 외원 잡역제자 사이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을거야. 만약 유옥이 나선다면 그의 수위는 절대 연체경 7단계 오기경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이니, 그 흑백의 빛이 이룬 변화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면, 또 영석을 흡수하는 속도가 좀 전처럼 빠르기만 하다면, 그를 격파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속으로 온갖 궁리를 하던 엽운의 머릿속이 순식간 온통 맑아졌다.
천검종의 외문이지만 천촉봉의 제자라면 수선심법을 제대로 닦은 수선자였다.
이전의 엽운의 마음속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반항심조차 감히 갖지 못했던 존재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두렵지 않았다.
……
“탁!”
가벼운 소리와 함께 하품 영석 하나가 영력이 다 뽑혀 재가 되어 나갔고, 그 영력은 엽운의 체내에서 일렁이는 홍수가 되어 모든 경맥을 스쳐지나갔다.
49번째 하품 영석이었다.
엽운은 불과 닷새 사이에 무려 49개의 영석을 정화하여 체내에 영력이 바다처럼 세차게 흐르고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기초 심법은 천검종의 가장 조악한 수련법문으로, 완전히 잡역제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천검종 수제자의 심법이었다면 이미 200개 정도의 영석이 엽운에게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엽운의 이런 놀라운 흡수 속도는 천검종 수제자들이 닦은 심법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때가 왔다.”
엽운이 영석을 집어 들었다.
입가에는 웃음기가 어렸다.
찰나의 순간 몸 안의 기운이 요동치며 오장육부에 모였다.
영력이 끊임없이 씻어 내려가 그의 오장육부는 은은한 푸른빛이 반짝였다.
이 빛이 오장육부에 완벽히 스며들어 불순물과 독소를 밀어내고 관통하면 연체경 4단계인 연장경에 이르는 것이었다.
“탁!”
가벼운 소리가 울리며 다시 50개의 영석이 재가 되어 날아갔다.
엽운은 온 몸의 위아래에서 상쾌함이 느껴졌고, 체내에 영력이 충만하며, 오장육부는 강렬한 박동을 따라 빠르게 수축했다.
매번 수축할 때마다 한 줄기 불순물이 압출되어나와 경맥을 따라 체내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피부 밑으로 스며들어 시꺼멓게 보였다.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한 기분이 들며 귀와 눈도 밝아졌다.
영력이 체내를 떠돌아다니고 곳곳을 자유롭게 누벼 골수의 경맥을 뚫고 오장육부로 들어가 마치 언제라도 엄청난 영력이 솟구쳐 오를 듯 한게 족히 10배는 강해졌다.
연체경의 4단계, 연장경이었다.
무려 50개의 영석이 들어가 엽운은 단번에 연장경에 달했다.
수행계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3단계에서 4단계로 넘어갈 때 영력의 증가는 4~5배 정도였지만 엽운은 체내 영력이 10배 이상 늘어난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왜일까?
엽운은 순간 눈을 크게 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흑백이 얽힌 빛은 그의 의식 속에 불현듯 나타나 한 줄기 빛이 되어 임독의 양맥을 타고 빠르게 흘러 눈 깜짝할 사이 온몸을 한 바퀴를 돌았다.
찰나에 흑백의 빛은 나타난 적 없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간결하고, 중후했다!
엽운은 체내의 영력이 많이 작아진 것을 느꼈다.
다시 예전처럼 웅장하지 않게 되었지만 매 한 방울 한 방울이 모두 단련된 듯, 압축되어 순수하고 웅혼하며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엽운은 한참을 서있다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흑백 빛의 세례를 받은 뒤 체내의 영력이 최소 10배는 높아져 연장경 후기의 유도열조차 한 주먹거리도 되지 못했는데 이제 또 다시 10배가 높아졌으니 내식경의 무인을 만나도 해볼만하다 생각했다.
"이 흑백 빛과 그림자는 도대체 뭐지? 내 몸의 변화는 절대적으로 그것과 관련이 있는데.."
엽운은 몸속을 들여다보며 흑백 빛의 자취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 그 흑백의 빛이 그의 몸속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엽운은 요수골에서 보았던 장면을 기억해봤다.
사흘간 의식을 잃었고 금빛 갑옷을 입은 신병이 먼 곳에서 물밀듯이 밀려왔다.
으스스한 살기는 실체가 되어 마치 천지를 베어버릴 듯 했었다.
금빛 물결 속에 검은 옷을 입은 두 젊은 남녀가 달려왔고, 신병이 그 뒤를 쫓았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손을 맞잡은 채 걸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엽운을 지날 때 번개같던 형상이 잠시 멈추더니 곧 흑백의 빛이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한데 모여 엽운의 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되었다.
흑백의 빛이 이점을 가져다주었음은 분명했다.
우선 하품 영석을 정제하고 흡수하는 속도는 10배 내지는 그 이상 빨라졌다.
엽운이 집을 나서자 허름한 마당에는 석탁 하나, 의자 두 개뿐이었다.
천천히 걸어가 석탁에 손을 뻗어 가볍게 건드려 보았다.
우지직!
맑은 소리가 울렸다.
단단한 석탁이 가볍게 한 번 누른 것을 버텨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서 땅에 흩어져 버렸다.
“영력은 힘차게 정련되었지만 통제는 아직 멀었군.”
엽운은 크게 기뻐했다.
이 정도의 힘은 생각지도 못했다.
작은 뜰을 나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엽운은 언제나처럼 안개 낀 천검종 주봉을 바라봤는데 마음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전에는 이 주봉 위, 하늘을 찌를 듯한 검광을 바라보며 천검종의 정식 제자가 되기만을 바랬는데, 지금은 이 주봉을 바라보며 일종의 경쟁심을 느꼈다
굳이 산 아래에서 우러러 보아야 하는가, 이 산과 같이 높으면 안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