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화 심경
"엽운, 제법이구나. 네가 이런 실력을 숨겨놨을 줄은 몰랐다. 나를 때려죽이던지 아니면 나한테 무릎 꿇고 사죄해라. 어쩌면 목숨은 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유도열은 마침내 정신이 돌아왔다.
두 눈에 두려움은 없고 되려 위협적으로 부릅뜨며 엽운을 노려보았다.
엽운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느릿느릿 걸어가 그를 밟기 시작했다.
“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이 곧장 유도열의 얼굴에 떨어지자 한 바탕 먼지가 날렸다.
유도열의 머리는 그대로 그의 발에 밟혀 피와 부러진 이가 입에서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엽운은 발밑의 유도열을 쳐다보지도 않고 웃기 시작했다.
“유도열 사숙, 잘 못 들었습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유도열은 눈에서 분노를 뿜어대며 악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헌데 감히 날 죽일 수 있겠느냐?”
또 “퍽!”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엽운은 다시 한 번 그를 밟았다.
“외문 제자 이하로는 생사를 결정할 권리가 없고 위반자는 즉결처형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말로 나를 위협해도 소용없다. 널 죽이지는 못해도 매일 이렇게 밟아줄 수 있으니까!"
그의 차가운 웃음소리 가운데 유도열이 비명을 지르며 입에서 피를 뿜으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100여명에 가까운 잡역부 제자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을 훑어보는 엽운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경멸이 느껴졌다.
이들이 자신처럼 조금의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유도열이 어찌 저리 맘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비교하자면 심묵이라는 가장 연약해 보이는 아이가 자신과 비슷한 별종일 것이다.
“엽운 형님! 대단하십니다!”
심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얼굴은 흥분해 홍조가 서려있고 눈빛은 엽운을 숭배하고 있었다.
엽운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라, 유도열은 절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야. 열심히 수련 하거라. 이런 세상에선 강한 실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심묵은 엽운을 보며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엽운은 주위의 쥐 죽은듯 조용하던 무리를 돌아 봤다.
이들 가운데 일부의 눈에서 이상한 빛깔을 보았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 용기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것 같았다.
광장을 떠나 엽운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허름한 오두막 한 칸으로 간신히 비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정도지만 천검종의 제자들의 집인 만큼 모든 이의 숙소에는 간단한 진법이 걸려있어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는 샘이다.
엽운은 침상에 걸터앉았다.
체내의 영력이 천검종의 기초심법을 따라 이리저리 솟구치며 끊임없이 순환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때마다 체내의 영력이 조금씩 선명하게 늘어나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달 주는 영석의 기운을 받아 수련할 때는 지금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흑백의 빛이 내 실력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내 몸마저 열곱절 강하게 만든건가? 실력이 10배가 늘어났다 한들 지금 같은 효과는 있을 수 없는데."
엽운은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몸 안을 들여다봤으나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게 무엇이 됐던 하늘이 기회를 주셨으면 제대로 잡아야겠지."
엽운은 침대 옆의 자루에서 하나 남은 영석을 꺼냈다.
옅은 백색의 빛이 반짝이는 영석이지만 불순물이 많고 순도가 낮아 한눈에도 품질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잡역 제자가 매달 받는 수련자원은 열 개의 하품 영석인데, 천검종 계산으로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품 영석 열 개는 한 달간 잡역제자가 수련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수련자원은 제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유도열을 통해 전달 되었다.
그 중 유도열은 일부를 떼먹는데, 엽운처럼 연체경의 3단계 세수경에 도달하여 잡역 제자 중에선 나름 고수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은, 2~3할까지도 떼어먹히곤 했다.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수련 영석은 유도열에게 매달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을 가져다 주고, 이렇게 갈취한 영석은 다시 윗사숙들의 손아귀로 슬며시 들어갔다.
이는 거대한 천검종의 음지에 있는 어둠의 면이었다.
수련이 연체경 7단계에 달하지 않고서는 공기 중에 영기를 흡수할 수 없고, 흡수한다 해도 거의 연화시킬 수가 없었다.
제련체 5 단계인 내식경까지 수련하고 나서야 겨우 내호흡으로 천지의 영기를 끌어 모을 수 있어 그것으로 천천히 몸을 가다듬고 정화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정상적인 수련으로는 순수한 영기를 거의 흡수하지 못했다.
때문에 잡역 제자는 영석을 통해서만 수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엽운은 영석을 사용하지 않고 기초심법을 사용하는 와중에 놀랍게도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늘어났다.
이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흑백의 빛으로 몸이 바뀌어서 천지의 영기를 공기 중에서 그대로 흡수할 수 있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영석을 이용한 수련은 어떤 효과를 낼까?’
엽운의 손은 조금씩 떨리고 가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 보잘것없는 하품 영석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매우 알고 싶었다.
천천히 손바닥을 쥐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초 심법을 천천히 가동했다.
심법의 움직임에 따라, 약한 기운이 손바닥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더니 팔을 따라 빠르게 올라가서 몸속으로 흡수 되었다.
찰나의 순간, 엽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체내를 돌아다닌다고 느꼈다.
비록 웅장하고 힘차지는 않지만, 순결하여 쉽게 흡수 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일주일을 운행하니 체내의 영력이 현저히 늘어났다.
엽운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영석없이 수련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처럼 순수한 영기가 쉽게 흡수된 일은 없었다.
하품 영석을 하품이라 부르는 이유는 영기에 불순물이 많아 순수하지 않아서 흡수하기 어렵고 내포된 영기도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손에 쥔 하품 영석은 마치 10배, 심지어는 수십배로 정화된 것처럼 거의 어떤 낭비도 없이 그대로 흡수돼 영력으로 바꿔졌다.
단 하나 부족한 것은 영석의 영기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영석이 열배로 정련된 듯 영기가 쉽게 흡수되어 연화되었지만 그 양은 열배로 줄어든 것 만 같았다.
그러나 영석이 주는 효과는 이전과는 달리 최소 몇 배 이상 향상되었다.
충분한 영석을 가지고 이런 속도로 수련을 한다면 엽운은 쉽게 지금의 경지를 돌파하여 연체경 4단계 연장경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같았다.
심지어는 내호흡을 깨우치고, 연체경의 5단계 내식경에 달하여, 외문 제자의 가장 낮은 표준에 곧 도달할 것 같았다.
하품 영석은 빠르게 희미해져 두 시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툭”하는 가벼운 소리를 냈다.
원래는 수련의 힘을 흡수해야 했다.
이틀쯤 된 영석이 가루가 되어 엽운의 손가락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보아하니, 영석이 불량했구나!”
엽운은 몸속에서 솟아오르는 영력을 느끼며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순간 눈에서 한 줄기 빛이 번뜩였다.
그는 냉소를 띄며 저도 모르게 살의를 품었다.
그의 심성은 흑백 빛의 세례를 받은 후 크게 변한 듯 했다.
조용히 참아왔던 기존의 심성은 사라지고 과감함과 결연함, 그리고 광풍과 같은 대군에도 맞서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두려움 없는 기세를 가지게 되었다.
유도열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체내의 부상이 심해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의 앞에 여섯명의 제자가 입을 다물고 심지어는 벌벌 떨며 서있었다.
“오늘 일은 너희 탓이 아니다. 엽운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 아무도 몰랐는데 뭘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지? 진림 너는 영수탑에 가서 유옥 사형을 찾아 그분이 놈을 처리하시게끔 하거라.”
여섯 제자 중 그 다음 제자가 숨을 돌렸다.
바로 그때, 조롱과 비웃음이 문밖에서 들려왔다.
“유도열 사숙, 이리도 당황하실 일입니까?”
유도열은 안색이 바뀌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금제를 열어서 그를 못 들어오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