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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2화 (2/227)

제 2 화 두려움 없이

차가운 한기가 스쳐 지나가고, 살을 에는 듯한 기운이 공기 중에 점차 퍼져나가자 반경 수십장의 기온이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엽운은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가볍게 반걸음 물러났다.

"설마 하늘마저 나를 버리는 건가?"

엽운이 지난 3년간 수련한 것은 기초 심법과 보잘 것 없는 몇가지 무공이었다.

소질은 잡역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매년 한 단계씩 올라 3년만에 연체경의 단계인 세수경에 도달해 어쩌면 유도열의 질투를 사는 것은 당연했다.

연체경은 총 7단계의 경지로 나누어지는데, 첫번째는 연골(炼骨)로 뼈와 살, 근육과 피부를 갈고 닦는 것이며, 두번째는 환혈(换血)로 전신의 혈액을 정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세번째가 바로 세수(洗髓)로, 골수를 단련시켜 비로소 맑은 정혈을 끌어내고 힘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이다.

네번째는 연장(炼脏)으로 오장육부를 가다듬는 것이다.

다섯번째 단계는 내식(内息)인데, 내호흡을 일으켜 하늘과 땅의 영기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섯번째 단계는 통규(通窍)로 내식으로 온 몸의 혈을 뚫어 혼신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일곱번째 단계는 오기(悟气)로 흡수한 하늘과 땅의 영기를 참된 기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매 경지마다 역량의 격차는 아주 커, 유도열의 경우 자질이 지극히 평범해 이때까지 네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연장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단계인 엽운을 쓰러뜨리는 일은 아주 쉬웠다.

만약 눈앞에 저것이 연체경 3단계 정도의 실력인 빙백설사 한 마리였다면 엽운에게도 승산이 있겠지만 두 마리의 빙백설사, 그것도 일자일웅의 한쌍이 바짝 압박해 온다면 유도열 정도의 경지는 되어야 비로소 맞설 수 있었다.

빙백설사는 덤벼들지 않고 두 눈에 푸른빛을 머금은 채로 엽운을 응시했다.

엽운은 잽싸게 곁눈질로 출구 방향을 훑었지만 어둠에 시야가 가려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설마 여기서 죽는 것인가?”

엽운은 눈앞의 빙백설사를 바라보며 절망적인 상황에 온 몸이 차가워졌다.

사람 한 명과 뱀 두 마리가 한참을 대치했다.

그러다 엽운의 실력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거대한 몸집의 빙백설사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엽운은 감히 물러설 수도 없었다.

한 발짝만 물러서도 빙백설사가 곧장 달려들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물리게 되면 순식간에 온 몸이 얼어 붙을 것이며 차가운 독이 핏줄을 타고 곧장 심장으로 향해 눈 깜짝할 사이에 죽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는 다른 암컷뱀이 덤벼들 것이기에 도무지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빙백설사가 두어 장도 채 안 될 만큼 바짝 다가서서 검푸른 빛을 뿜어대는 날카로운 이빨과 새빨간 혀를 내밀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엽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빙백설사의 입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그저 2층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곳은 잡역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던 엽운은 조용히 뒤로 반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빙백설사의 한 장 남짓 되는 몸뚱이가 공중에서 하얗게 빛나며 곧장 날아올랐다.

그러자 엽운의 눈에도 사나운 기운이 번득이더니 번개같이 움직여 빙백설사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동시에 옅은 빛이 번쩍이더니 차가운 비수를 손에 들고 빙백설사의 칠촌 언저리를 향해 내밀었다.

수년간의 잡역 제자 생활로 기세가 많이 꺾였지만 가슴 속에서 차마 발산해 내지 못한 분노가 가득 차올라 생사의 순간에 폭발했다.

“띵!”

날카로운 비수가 빙백설사의 몸이 닿는 순간, 뜻밖에도 금속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났다.

엽운은 겁에 질렸다.

매섭게 내지른 비수가 설사를 찔러 죽이기는커녕 비늘조차 뚫지 못했다.

“큰일이다!”

엽운은 자신의 일격이 먹히지 않자 즉시 손에 쥔 비수를 던지고 뒤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순간 비수가 다른 편에서 나오는 새빨간 혀를 쳤다.

“땅!”

가벼운 소리가 울리며 철로 만든 한망의 비수가 혓바닥에 꿰뚫려 조각이 나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암컷 뱀의 기회를 노린 일격이 성공할 뻔했다.

하늘로 날아오른 엽운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뱀의 입에서 희미한 빛이 스치더니 푸른색 냉기가 씨익씨익 소리를 내면서 사방 수십 장 안의 온도를 뚝 떨어뜨렸다.

동시에, 암컷도 곧장 달려들었다.

한 쪽에선 신통한 얼음의 공격이 날아오고 한 쪽에선 덤벼들어 몸싸움을 걸어오니, 엽운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두 공격을 동시에 피할 방법이 없었다.

순식간에 죽을 지경에 이르러 엽운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그러나 곧 매서움으로 변해 광기 어린 살의가 몰려왔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수컷 뱀의 얼음 공격을 피한 뒤 놀랍게도 암컷의 몸을 한 손에 움켜쥐고 암컷의 벌어진 입 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곳은 빙백설사의 능력이 발현되는 곳이지만, 가장 연약한 곳이기도 했다.

“네놈들이 기어코 나를 죽이고 싶다면, 목숨으로 맞바꿔라.”

그의 눈은 광기로 가득 차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하늘에 닿을 듯한 살의가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엽운은 아픔조차 잊고 수컷뱀이 옆에 있던말던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이 순간 그의 눈에는 오직 온몸이 새하얀 암컷만 보였다.

한 주먹 한 주먹씩 매섭게 암컷 뱀의 입 속을 내리쳤다.

차디 찬 뱀의 몸은 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듯 했다.

마치 폭발한 화로처럼 모든 영력을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변환시킨 후 철권으로 암컷의 머리와 입을 세게 내리쳤다.

귀를 찌르는 듯한 암컷의 처량한 울음소리는 마치 수컷에게 구해달라며 부르는 것 같았다.

벌려진 입은 이미 닫을 방법이 없게 되었고, 가장 약한 목구멍은 엽운의 철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휙!

차가운 얼음의 빛이 번득이더니 정확히 엽운의 조끼에 꽂혔다.

그러나 엽운은 잠시 멈췄을 뿐, 고통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계속해서 머리를 잡고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죽어라!”

마치 피에 굶주린 마귀처럼 뱀의 위아래 턱을 움켜쥐고 힘껏 찢었다.

“찢겨라!”

뱀의 머리가 점점 찢기더니 이어서 복부까지 찢어졌다.

암컷 뱀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죽기 전 마지막으로 꼬리를 마구 휘둘러 엽운을 세차게 때렸다.

살갖이 벗겨지고 피가 흘렀다.

그러나 엽운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뱀의 머리를 던지고 매섭게 몸을 돌렸다.

이때, 수컷 뱀이 곧장 날아와 그의 몸을 휘감으며 새빨간 입으로 엽운의 머리를 물려했다.

“들어와!”

엽운은 고함을 지르며 용과 같은 주먹을 내질러 뱀의 머리를 매섭게 내리쳤다.

그러나 수컷 뱀의 영력과 몸의 강도는 암컷보다 훨씬 강하고 좀 전에 거의 모든 영력을 쏟아 부었기에 이번 주먹질은 그다지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우지직!”

낭랑한 소리가 울리며 곧바로 엽운의 팔이 뱀에게 물렸다.

격렬한 고통과 함께 차가운 독이 상처를 따라 체내에 들어와 순식간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

동시에 뱀이 몸을 휘감아 바짝 조이자 골격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언제라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희미한 빛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사방 몇 장 안의 잔디는 새하얀 얼음 서리로 뒤덮혔다.

엽운의 몸에서 영롱한 얼음꽃이 피기 시작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죽는건가?”

시야는 흐려지고 독에 의해 생기가 없어지면서 의식이 서서히 몸을 빠져나갔다.

천신만고 끝에 천검종을 찾아 수만 명의 소년 중에서 선발되어 어렵게 잡역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유도열에게 착취까지 당하는 개돼지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모든 치욕을 견뎌낸 것은 오직 마음속에 있는 수선의 꿈을 언젠가 이루어내 억압받지 않고 구천에 포효 하며 자유자재로 의로운 일을 하고 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렇게 끝나려는 순간.

"아냐! 그럴 순 없어!"

엽운은 남은 한 방울의 힘을 끌어내 마지막으로 아우성쳤다.

바로 그때, 죽기 직전 하늘에서 별안간 흑백의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거의 감긴 두 눈에 무수한 화면이 펼쳐지며 온 천지에 빛이 가득하고 요수골의 안개가 말끔히 사라져 하늘과 땅이 환하게 빛났다.

쾅!

큰 소리가 울리며 흑백의 광채가 엽운의 머리를 매섭게 내리쳤다.

다스릴 수 없을만큼 성대한 영력이 하늘에서 흘러들자 흑백의 빛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엽운의 눈 앞에 믿기지 않는 장면이 나타났다.

천지가 온통 혼돈으로 뒤덮여 있고, 세찬 바람은 마치 신병과도 같아 지나가는 곳마다

산봉우리가 갈라지고, 밀림이 재가 되어 버려 생존력이 가장 강한 생물조차 당해낼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환경에 처한 전방의 혼돈 속에서 두개의 검고 흰 그림자가 나타났다.

산을 가르는 세찬 바람은 존재하지 않는 듯 두 사람을 날려버리긴 커녕 옷깃도 펄럭이지 못했다.

흑백의 그림자가 멀리서부터 빠르게 날아와 한 걸음에 천리를 나아갔다.

곧이어 엽운은 저 멀리 안개 속을 바라보았다.

금빛의 찬란한 빛이 바닷물처럼 밀려와 심상치 않은 기세로 요동쳤다.

금색의 빛 하나하나는 모두 금빛 갑주를 입은 신병이었는데 저 멀리에서 전해지는 기세만으로도 엽운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소리에 서린 드높은 살의는 한데 모여 실체가 되고 하늘 위에서 용솟음치며 금갑신병의 모습을 따라 재빠르게 흑백의 그림자를 향해 돌진했다.

마침내 엽운은 흑백의 두 그림자가 남자와 여자임이 또렷히 보였다.

이 두 사람은 금빛의 물결같은 금갑신병에 비해 한없이 작아보였지만, 두려움 하나 없는 기세만으로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때 엽운은 심장이 온통 얼어붙어 더 이상 뛰지 않았는데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지며 다시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흑백이 얽힌 한 줄기 빛이 남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끝없는 시공을 사이에 두고 엽운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엽운은 잠시,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모든 풍경이 깨끗이 사라져 한 번도 그곳에 없었던 것 같았다.

머릿속은 텅 비어 조금의 의식도 남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을 뜨자, 전혀 느껴본 적 없던 흑백의 빛이 두 눈에서 쏘아져 요수골의 어둠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흑백이 뒤섞인 빛은 구름을 뚫고 하늘을 가르며 허공에 선명한 흑백 빛의 기둥을 만들어냈다.

천리 밖, 구름과 안개가 피어오르는 천검종의 뒷산에서 회색의 도복을 입은 노인이 황급히 몸을 돌려 짙은 안개를 뚫고 흑백 빛의 기둥을 봤다.

"이토록 거대한 영력이 어찌 우리 천검종에서 나타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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