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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화 (1/227)

제 1 화 억울함

진나라 동쪽,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높은 산맥에서 한 줄기 은색 검광이 봉우리처럼 하늘 높이 솟아올라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곳은 진나라에서 손꼽히는 수선대파, 천검종이다.

올해로 12살의 엽운은 삼년 전 고향을 떠나 여러 번의 시험을 거쳐, 이제서야 잡일을 하는 제자가 되었는데 천검종 안에는 엽운과 같은 잡역 제자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종문 외곽에만 천 명에 가까운 제자들이 있는데, 어떠한 지위도 없는 최하등 노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잡역 제자라 할지라도 속세에서는 지방 관리와 무사들의 선망을 사기에 충분해 더 높은 시험에 통과해서 외문 제자라도 된다면 개천에서 용 나듯 잘 나갈 수 있었다.

.........

외원에서는 잡역 제자들이 분주히 오갔다.

저마다 얼굴에는 바쁜 기색이 역력해 매일 처리되기만 기다리는 수많은 일들을 관리했다.

“올해 외문 제자 시험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 내 수위로는 가망이 있을지 모르겠군.”

엽운이 바위에 올라서서 저 멀리 겹겹의 구름 넘어 깊숙한 곳에 보일 듯 말 듯한 누대대전을 보는데, 그곳은 천검종의 정식 제자들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찰싹!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엽운의 등에서 울렸다.

“엽운, 화우초 백 그루를 아직 다 채집하지도 못한 주제에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느냐?”

구름무늬의 금포 차림을 한 유도열이 나타나, 손에 회초리를 들고는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등에서 쓰라린 고통이 전해져 이를 깨물었다.

유도열은 그의 사숙으로 이곳 약곡(약초 캐는 골짜기)의 잡역 제자들 중 천 명 가까이가 평소 그의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자질은 평범하기 그지없어 잡역 제자 대다수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입문 시기가 빨라 적어도 실력은 한 수 위였다.

또 그의 사촌인 유옥은 천촉봉의 제자로 천촉봉은 천검종 전체에서 중품 이하의 단약을 정제하는 외문에 불과했지만 외문의 정식 제자들은 진정한 수선심법을 접할 수 있어 밑바닥의 잡역 제자들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엽운은 유도열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지만, 마음 속 수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꾹 참아왔었다.

엽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도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쥔 채찍을 엽운에게 툭 휘둘렀다

"왜, 한 번 더 물어봐 달라고?”

채찍이 공교롭게도 엽운의 눈썹을 때리자, 순식간에 찢어져 피가 흘러 내렸다.

머리가 터질 듯 아파왔다.

조금만 더 아래쪽을 맞았다면 두 눈을 다쳤을 것이다.

“열여덟 그루가 모자랍니다. “

엽운은 피가 얼굴에 쏟아지는데도 꾹 참고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그만큼이나 모자라는데 감히 시간을 낭비 하다니.”

유도열은 웃기 시작했다.

"이달의 수행 영석을 갖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니라 영수탑에도 가고 싶은 모양이구나."

영수탑은 천검종에서 요수들을 길들이는 곳으로, 실전경험과 주인과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종종 인간과 대련을 시켰다.

이들 잡역제자들과 천검종에 붙잡힌 적들 중 일부는 요수들의 상대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잡역제자들이 영수탑에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도열 사숙, 월말 전에 내야하는 화우초 백그루 중에 딱 18그루가 모자랍니다. 아마 늦지 않을 겁니다.”

엽운은 딱히 두렵지는 않았지만 단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죽어도 유도열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꾹 참으며 손에 힘을 너무 주어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전엔 월말이었지만 이제는 오늘까지다.“

유도열은 엽운을 야유하듯 말했다.

"천촉봉이 바뀌었다. 필요한 화우초는 오늘 밤이 되기 전에 다 내야한다.".

"오늘 밤이 되기 전이요?"

엽운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소리쳤다.

“세 시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오늘 안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직도 세 시진이나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하다.. 아니면 내가 듣기에 불만이 많다고 들었는데, 영수탑으로 들어가는 편이 네놈과 더 어울리겠군.”

유도열은 웃으며 힐끗 쳐다보곤 돌아섰다.

엽운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우초는 그리 귀한 약초는 아니지만 불과 세 시진 안에 열여덟 그루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전에 82그루의 화우초를 모으는데 보름이 걸렸었다.

유도열이 진작에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참에 그냥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유도열! 네놈한테 불만이 많았지만 꾹 참고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지. 기껏해야 다른 이들처럼 너에게 아첨을 떨지 않았을 뿐. 하지만 이제 넌 나를 상대해야 할꺼다. 나 엽운이 여기서 맹세하마, 언젠가 너를 넘어서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엽운의 심장은 격렬히 뛰어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과 배가 불에 타는 듯 아파왔다.

하지만 당장은 눈앞의 난관을 넘는 것이 우선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천검종이 위치한 운룡산맥은 천 리에 걸쳐 이어져 기이한 봉우리들이 즐비하고 기괴한 바위도 우뚝 우뚝 수없이 솟아 있었다.

산맥 속에는 요수가 횡행하고 기이한 화초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천검종은 종문제자들이 운룡산맥 안에 들어가 수행에 필요한 영재를 채집하는 동안 공격받지 않도록 산 속 깊은 곳으로 요수들을 몰고 가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다.

모든 요수들을 몰아내지는 않았고, 가능한 품계별로 구분하여 높은 등급의 요수들이 산맥 깊은 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금제진법을 설치해 요수골은 천검종 제자들의 연습장이 되었고, 실력에 따라 각각 실질적인 연습 효과가 있는 지역으로 진입 할 수 있었다.

화우초는 요수골 곳곳에 있었는데, 맨 바깥쪽 두 층은 모두 낮은 등급의 요수들뿐이어서 외문 제자들은 손 한 번 뒤집으면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천검종의 진정한 공법 수련을 받지 못한 잡역제자들에게는 맨 바깥층이라 하더라도 매우 위험했다.

"보름 동안 맨 바깥쪽은 전부 다 뒤져봤는데 화우초는 거의 채집됐어. 짧은 시간 안에 다 채집 하려면 2층으로 올라가야만해."

외원 동쪽에서 약 20리 떨어진 곳에 삼천고목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어 외원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요수골의 입구 표시로 이 고목을 넘으면 바로 요수골의 범위에 진입하게 된다.

엽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하늘을 찌르는 나무 밑에서 앞을 한번 보더니, 요수의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고목을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달라졌다.

맑은 하늘은 사라지고 한가로웠던 흰 구름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온 천지가 어둠에 잠겼다.

간간이 요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깊은 데서 들려오는데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아 섬뜩했다.

엽운이 살며시 손을 들자 한 줄기 옅은 빛줄기가 몸에서 날아올라 머리 위에 머물며 사방 10장 내의 공간을 비췄다.

이 온화한 빛의 이름은 미광결(微光诀)로 모든 잡역제자들이 반드시 수련해야 하는 것으로, 요수골에서는 오직 이 온화한 빛만이 어둠을 뚫고 주변을 똑똑히 볼 수 있게 해줬다.

물론 천검종의 외문이 된 제자는 훨씬 높은 수준의 영결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법보(法寶)까지도 가지고 있어 사방 수백 장 안의 어둠을 깨끗이 쓸어버린다고 했다.

보름 동안 이 미광결 하나에 의지한 엽운은 요수골 가장 바깥쪽 거의 모든 곳을 뒤져 무려 82그루의 화우초를 찾아냈는데, 이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인내심과 강인한 의지, 뿐만 아니라 운도 따라야 했다.

요수골의 가장 바깥쪽에는 그리 강한 요수는 없지만, 한 두 계층의 요수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면 엽운같은 잡역제자 쯤은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 시진도 안되는 시간 동안 화우초 18그루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면 맨 바깥쪽 1층을 뛰어넘어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2층에는 잡역부 제자들이 들어올 리도 없는데다 외문 제자들은 당연히 이런 낮은 등급의 영약을 채집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 할리 없어 화우초의 양이 훨씬 많았다.

한 시진 동안만 들어가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지만, 두번째 층에선 낮게 잡아도 2급 정도의 요수가 출현하고, 때에 따라 3급 요수가 나오기도 했다.

제련체의 세번째 단계인 세수경에 머무르는 수준인 엽운에겐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었다.

희미한 미광결 아래 비석 하나가 엽운의 앞에 나타났다.

바로 2층의 경계비로 비석에서 시뻘건 빛이 은은하게 흘러 나왔다.

엽운은 결정을 내린 만큼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망설임 없이 비석을 뛰어넘었다.

미광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드러운 빛이 바람에 날리는 촛불처럼 흔들리자, 곧 시야가 닿는 곳이 10 장으로 줄어들었다.

그 넘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째 외문 제자들이 수련하는 미광결은 더 수준이 높아 보이던데, 2층이 이렇게 어두웠구나. 내가 수련 중인 미광결은 3층에 들어가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두렵네."

엽운은 희미한 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보더니 안색이 굳어졌다.

이런 시야로 화우초를 빨리 찾기란 쉽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온 이상 더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는 엽운은 허리를 굽혀 걸으며 화우초를 찾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2층은 잡역제자에겐 들어갈 엄두가 거의 나지 않는 곳이고, 외문 제자들도 직접 들어와서 화우초라는 값싼 재료를 찾는 일은 드물어서 엽운의 생각대로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단 일각도 안지나서 희미한 미광결 사이에서, 반 자 높이의 풀 한 그루가 엽운의 눈에 보였다.

푸른 줄기와 푸른 잎은 화우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엽운은 2층에서 이리도 쉽게 한 그루를 찾을 수 있을 줄 몰라서 이 속도라면 남은 시간 안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 두 번째 화우초도 쉽게 찾았고, 바로 세 번째 화우초, 네 번째…

엽운은 쉽게 화우초를 발견해 한 시진 동안 벌써 8 그루를 수확했다.

"유도열, 내가 이렇게 운이 좋을 줄은 몰랐을 거다. 내가 널 넘어서면 과거의 수모를 꼭 갚겠다.”

아홉 번째 화우초를 바라보는 엽운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많은 화우초가 거의 같은 지역에서 자랄 수가 있지?"

엽운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지 않아, 화우초는 성질이 차가운데, 3급 요수는 화우초를 즐겨 먹어 몸속의 냉기를 강화하지. 설마..”

후!

엽운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차가운 기운이 뒤에서 나타나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그의 조끼를 쏘아댔다,

엽운은 몸에 털을 곤두세우고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뒹굴었다.

하늘빛 한기가 그의 조끼를 스치며 흩날리는 옷자락을 잘라버렸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불과 3장도 안되는 곳에 몸 전체가 흰색의 큰 뱀 두 마리가 앉아 은은한 빛 속에서 선홍빛 혀를 쩝쩝대며 공포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삼계의 요수, 빙백설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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