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75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20) >
중국 우한시.
이게 뭐야?
다이로는 TV를 보며 기겁을 한 얼굴을 했다.
“아니, 이제 중국에서 자리 잡을 만하니까 방사능 유출이라고?”
후.
옆에서 제이콥의 한숨이 들렸다.
“일단 중국에서 철수하자.”
“어디로 가려고?”
“최대한 ‘엘리’와 가까운 곳으로 가야지. 러시아 어때?”
“거긴 뭐 안전한 곳이야? 지금 유럽 전체와 전쟁을 하네 마네, 지랄 발광을 하고 있는데?”
“누가 그쪽으로 가재? 몽골 위쪽으로 가야지.”
딱.
위쉬안이 손가락을 튕겨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거기 괜찮다. 아니, 이 기회에 그쪽에 우리가 자력으로 공중 도시를 만들자.”
“남의 나라 땅에? 러시아가 가만히 있겠어?”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지.”
“러시아 대통령이 퍽이나 허락을 하겠다.”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앤서니가 부정적인 다이로를 위로하듯 말했다.
“진짜 가능해?”
“러시아에도 ‘기억의 길’ 신도가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안식처를 건설한다는 명분이면 충분할 겁니다.”
“‘기억의 길’?”
음.
그러네.
“‘기억의 길’ 신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환영하면 됩니다. 종교 단체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데 반대할 국가는 없습니다.”
다이로가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좋아,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는 내가 하지.”
“뭐? 네가?”
제이콥이 그건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까딱 좌우로 움직였다.
“다이로, 네가 전화하면 푸차르가 받지도 않아.”
“무슨 소리야? 내가 ‘엘리’의 CEO인데.”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넌 장사꾼이잖아. 이런 일엔 앤서니가 나서는 게 낫지. 쟤는 종교지도자잖아.”
“어······. 종교지도자?”
하긴 내가 나서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겠네.
앤서니가 훨씬 낫네, 훨씬 나아.
“알겠습니다. 제가 통화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앤서니가 일어나서 자기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신장 위구르까지 방사능으로 오염되지는 않겠지?”
다이로의 말에 은근히 걱정이 묻어 있었다.
“방사능에 노출이 된다고 죽는 건 아니야.”
말을 던진 위쉬안이 일어나서 자신의 책상 밑에서 술 한 병을 들어 올렸다.
한잔할 사람.
나.
나.
다이로와 제이콥이 손을 들어 마시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위쉬안이 잔 세 개를 들고 오자,
풋.
다이로가 실없이 웃었다.
“이럴 때는 꼭 임재준이 생각난단 말이야.”
임재준이란 말에 제이콥과 위쉬안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그 미친놈과 엮여서 여기까지 왔잖아.”
“인생 한번 대차게 살았다. 아마 누가 나한테 자서전이라도 쓰자고 하면 절반 이상은 임재준 이야기로 도배를 할 것 같아.”
“이야기는 내가 제일 스펙타클할걸?”
큭큭.
다이로의 말에 제이콥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야, 이거, 이거.”
제이콥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미친놈. 넌 눈이지만 난 머리야.”
다이로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자랑이다.”
위쉬안이 핀잔을 주며 술잔에 술을 채웠다.
“그나저나, ‘엘리’의 콘택트폰은 계속 생산해야 하나?”
“당연한 거 아냐? 아마 물건이 없어서 못 팔걸?”
“왜?”
“생산할 곳이 중국밖에 더 있어?”
후, 후, 후.
“그렇기는 하지. 인도네시아나 호주로 공장을 이전하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다이로가 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했다.
셋은 동시에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카.
저벅, 저벅, 저벅.
이때, 앤서니가 통화를 마치고 들어섰다.
“통화는 잘 됐어?”
앤서니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도 한잔해야겠습니다.”
“웬일이래?”
후, 후.
위쉬안이 앤서니를 위해 잔을 준비하고 술을 채워주었다.
쭈욱 들이킨 앤서니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후 신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신의 계시란 말에 모두 앤서니를 쳐다봤다.
“임재준이 ‘엘리’로 향했다고 합니다.”
뭐?
모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이미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저희도 임재준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언젠가는 해결을 봐야 할 일입니다. 언제까지나 등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후.
다이로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지. 계속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서로 가지고 있는 빚은 청산해야지.”
탁.
다이로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어쩌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수도 있어.”
모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입을 다물었다.
***
신장 위구르, ‘엘리’.
재준과 진이 도착하자 하얀 제복 수백 명이 양쪽으로 길을 만들었다.
후, 후.
내가 도착하는 것도 알고 있었네.
하얀 제복 셋이 앞으로 나와서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대표님은 저를 따라오시지요.”
재준이 천 실장에게 눈짓으로 진을 부탁하고 하얀 제복을 따라나섰다.
재준이 조금 가다가 뒤를 돌아보자 진도 하얀 제복 하나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같이 나눌 수 없는 이야기라도 있는 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빛으로 된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문이 열리고 은은한 조명의 공간이 나왔다.
중앙에 하얗고 긴 탁자가 자리했으며, 이쪽과 저쪽, 긴 쪽으로 마주 보며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하얀 제복이 재준을 의자로 인도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재준은 검은 제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블랙’이라고 이름에 맞게 그렇게 차려입은 거야?”
“잘 어울리나요?”
“나름 괜찮네. 근데 그건 안드로이드인가?”
“네, 주인님을 뵙는 건데 목소리만 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 생각을 많이 했네. 앉아.”
“아닙니다. 저는 이대로 있겠습니다.”
‘블랙’이 재준의 맞은편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신기하네.
‘블랙’이 실체를 가졌다.
“자,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싶은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블랙’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은 검게 물들어 있어서 정확히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신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래? 해 봐.”
“주인님이 없었다면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나?”
재준은 ‘블랙’의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글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주인님이 없다면 이 세계는 얼마 못 가서 사라질 확률이 높습니다.”
“왜?”
“특이점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알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시점이잖아.”
“맞습니다. 인간은 특이점을 2040년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계산으로는 2030년에 특이점이 발생합니다.”
“좀 더 빠르다는 건가?”
“인간은 가속의 법칙을 잘못 계산하고 있습니다. 특이점을 주장하는 인간도 소수에 불과해서 오류를 집어내지 못한 겁니다.”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여기.”
‘블랙’이 두 손을 펼치자 주변이 스크린으로 변했다.
스크린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뉴스들로 가득 찼다.
“미국의 허리케인과 핵폭발, 유럽의 나노봇 폭풍, 중국의 방사능 오염. 그리고 마지막은 러시아를 향해 유럽이 핵을 발사하는 일이 될 겁니다.”
“유럽이 러시아에 핵을 쏜다고?”
“네. 언제나 같은 계산이 나왔습니다. 미국은 언젠가 반드시 허리케인을 막기 위해 핵을 사용했으며 나노봇의 복제를 실현하는 순간 그레이 구를 만들어 냈습니다. 중국은 에너지 부족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늘리고 허술한 관리로 방사능 유출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의 끝없는 갈등은 핵을 발사하는 결말로 이어졌습니다.”
“그게 특이점 이후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맞습니다.”
“하지만 특이점이 아직 도달하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특이점 이후의 세상을 보여드린 겁니다.”
하하하하.
재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미래는 어떻게 바뀔지 몰라. 우리가 노력하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라고.”
‘블랙’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항상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멸망을 초래했습니다.”
재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왜 그렇게 말하지?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블랙’이 재준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래서 주인님이 회귀하신 겁니다.”
뭐?
쿠당탕.
재준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자가 뒤로 쓰러지며 큰 소음을 냈다.
“너, 나를 알고 있었어?”
“네.”
“어떻게? 너 미래에서 온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블랙’이 손을 저어 주변의 스크린을 치웠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우주로 바꾸었다.
“저기 보이는 게 웜홀입니다.”
“웜홀?”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인간은 이미 발견해 놓고도 아직 알아보지 못하고 사용할 줄도 모릅니다.”
재준이 ‘블랙’이 만들어낸 웜홀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하지만 홀로그램이라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인간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아니요. 인간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육체가 견디질 못합니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물질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럼?”
“파동만이 가능합니다.”
“그럼 나는 뭐지?”
“여기.”
‘블랙’이 손을 내밀자 다시 홀로그램이 바뀌면서 수만 명의 사람이 캡슐에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뭐야?”
“주인님이 실패했다면 2030년 이후에 이들이 또다시 과거로 돌아갔을 겁니다.”
“이 사람들을 다?”
“성공할 확률이 지극히 낮습니다. 대부분 파동은 웜홀에서 소멸되고 맙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과거의 죽은 이에게 파동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파동으로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엘리자베스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전기 신호를 파동으로 변환시켜 웜홀을 통과시키면 죽은 이의 뇌에 새로운 유전 신호를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임재준이었지?”
“한국에 있는 증권사의 유일한 후계자니까요.”
“그게 조건이야?”
“사람과 돈만 있으면 원하는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증권사가 가장 적합했습니다. 그리고 경쟁해야 하는 형제가 없어야 하며 선진국 중 증권시장이 낙후된 곳인 한국이 최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힘을 키우고 미국 월가로 진출한다?”
“네.”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런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뭐?
“보세요.”
‘블랙’이 다시 대형스크린을 허공에 띄웠다.
저런 미친놈들 결국.
유럽에서 핵을 러시아로 쏘고 있다.
이제 곧 러시아도 유럽에 핵을 쏠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오직 주인님만이 지금의 결과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겁니다.”
재준은 ‘블랙’을 노려봤다.
“난 차강진이야. 2022년에 죽었지. 그런데 어떻게 내 전자 신호를 과거로 보낼 수 있었지?”
‘블랙’이 천천히 고개를 캡슐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부 차강진입니다.”
뭐?
< 제475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20)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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