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70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15) >
큭큭큭큭.
“이렇게 나를 엮는 건가? 그건 연극이었을 뿐이야.”
“종교인은 다 연극배우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여러 장의 가면을 들고 다니는 거죠. 그 가면으로 주석의 3연임도 이루어 낸 거 아닙니까?”
“우리가······.”
큭큭큭.
딩쉐이가 허탈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이로가 손가락으로 까닥이며 딩쉐이를 가리켰다.
“이거, 이거, 이렇게 안 봤는데. 사회주의란 놈이 종교를 이용했네.”
“넌 가만히 있어. 정치의 ‘ㅈ’도 모르는 놈이.”
“내가 정치는 몰라도 총의 ‘ㅊ’은 안다. 이걸 확 그냥.”
“총이 여기서 왜 나와?”
“야, 아까 그놈들 우리가 갈겼으면 다 죽었어. 너만 믿고 나대다가 죽을 뻔했다고. 그럼 너도 약간의 죄책감은 있어야지. 그게 정치인이면 차라리 총으로 해결하는 내가 낫네.”
“말이 안 통하는 건 여전하네.”
딩쉐이가 다이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이로는 끝낼 마음이 없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다이로니까.
“우슈보, 코어에 관해 이야기해 봐.”
“네? 제가 왜요?”
훅 치고 들어온 다이로의 말에 우슈보가 딩쉐이 눈치를 봤다.
“해도 돼. 나도 궁금하니까.”
불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긴 했으나 자신도 알고 싶은 건 참지 못했다.
“궁금한 게 뭡니까?”
“코어가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후.
우슈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처음 알고리즘을 분석했는데 정보를 받아서 분류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보니 단순히 분류가 아니었습니다. 한쪽으로 몰아가는 게 가능했습니다.”
“어디로 몰아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쪽입니다.”
“뭔 소리야?”
음.
우슈보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말을 했다.
“우리는 키워드를 입력만 하면 코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자본주의, 중국, 공산당을 입력하면 먼저 방송과 언론, 인터넷의 모든 대본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조작하기 시작합니다. 먹는 거 입는 거 심지어 누굴 만나고 누구랑 섹스를 하는지까지 선택을 강요하게 만듭니다.”
“그게 가능해?”
“크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코어는 이 모든 일을 순식간에 처리합니다. 14억 인구 모두를.”
“대단하네.”
“그다음 인민을 대상으로 분류 작업이 들어갑니다.”
“우리 쪽이 아니면?”
“세뇌를 시작합니다.”
“그게 가능해?”
“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변하지 않는 인민을 추려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럼, 나머지는 우리의 일이죠.”
“데미안이 잘 만들었네.”
“네? 데미안이 누구죠?”
어?
다이로가 훠이훠이 손을 저었다.
“몰라도 돼.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는 왜 건드린 거야?”
“그게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정보를 받아서 분류하고 추천하는 게 주목적인데, 갑자기 각종 시스템에 침투하여 장악하는 겁니다.”
“그게 말이 돼?”
가만히 듣고 있던 위쉬안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저도 헷갈렸습니다.”
“자신의 시스템을 수정하는 인공지능은 없어. 아무리 딥러닝으로 학습을 한다고 해도 원래 목적은 변하지 않아.”
“저희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큰 목적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회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라든가······.”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그럼, 원자력 발전소만 달랑 건드리지는 않아.”
“그,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중국을 전복한다는 목적이라면 가능합니다.”
우슈보가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죄송스러운지 딩쉐이의 눈치를 계속 봤다.
“그게 말이 돼? 중국 전복이라니. 그건 엘리자베스가 아니······.”
위쉬안이 말을 하다 멈췄다.
그리고.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봤나.”
“왜?”
불현듯 화를 내는 위쉬안에게 다이로가 다가섰다.
“엘리자베스잖아.”
“그게 왜?”
“데미안이 아니라 엘리자베스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우슈보.”
“네?”
“혹시 코어가 스스로 접속을 하지 않던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역시······.”
“무슨 말이야? 궁금하잖아.”
다이로가 위쉬안을 다그치자 모두 위쉬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코어는 애초에 없었어. 엘리자베스가 코어를 지배하고 있던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 일단 엘리자베스를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알아.”
“뭐야? 궁금하게.”
“엘리자베스라니, 진의 엄마를 말하는 건가?”
딩쉐이가 위쉬안에게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입을 다물려는 위쉬안 대신 대답한 건 앤서니였다.
“야, 앤서니!”
위쉬안이 앤서니를 말리려고 고함을 쳤다.
“괜찮습니다. 모든 정보는 모든 이에게 공개되는 게 맞습니다. 인류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밀은 없어야 합니다.”
“그놈의 인류는 제길.”
다이라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진의 엄마가 왜 나와?”
딩쉐이가 앤서니에게 다시 물었다.
“엘리자베스는 마인드업로딩으로 전자 신호로 존재합니다. 살아있는 인공지능입니다.”
“뭐?”
뭐요?
딩쉐이 뿐만 아니라 우슈보도 놀라서 눈이 커다래졌다.
“마인드업로딩이 성공했다는 말입니까?”
“진은 이미 그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믿을 수 없긴 뭐가 믿을 수 없어. 우리가 직접 만났는데. 실력도 없는 게 믿음도 없으면 할 줄 아는 게 뭐야?”
다이로가 핀잔을 주었다.
잠깐, 잠깐.
딩쉐이가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며 물었다.
“살아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진짜 신이잖아.”
“그렇습니다.”
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딩쉐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만약 말이야. 이게 사실이라면, 아니, 아직은 믿지 못하겠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다 말이 되네. 원자력 발전소 전체가 가동을 중단했다가 돌아가고 화력 발전소도 그랬었고, 머리에 나노봇이 있는 인간들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맞아. 우리가 놀아난 거야.”
“꼭 그렇게 볼일은 아닙니다.”
“왜?”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능력입니다. 당신이 전 세계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그렇습니다. 갑자기 그런 능력이 생겼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딩쉐이의 미간이 점점 오그라들었다.
나라면?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육체가 없으니 돈은 의미가 없다.
그럼, 권력인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
아니야, 그것도 육체가 없으니 쓸모가 없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럼, 어머니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후후후.
“그건가? 진을 위해?”
“아닙니다. 진을 위한 게 아닙니다. 그건 너무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진을 위해 뭘 해주겠습니까? 돈을 벌게 해줄까요? 아니면 세계를 지배하게 해줄까요? 겨우 그게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뭐 아들의 행복, 이런 건가?”
“당연한 말을 왜 빈정거리면서 하는 겁니까?”
“이거라고?”
기껏 하는 게, 행복?
“정확히 삶입니다. 진정한 인류가 누려야 할 삶. 인간도 동물입니다. 생존하고 살아가는 거죠. 그 이외의 삶은 거짓된 삶입니다. 진정한 삶은 행복한 삶, 누구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일을 꾸민다는 건가?”
“거짓된 인간은 다 죽을 겁니다. 그게 신의 뜻이며 그게 인류를 위한 일이니까요.”
“미친.”
딩쉐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그러뜨렸다.
“그래서 다 죽인다고? 인간을 다 죽여?”
“방금 저는 거짓된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거짓된 인간. 하지만 인간은 다 거짓된 존재야. 그럼 다 죽겠네. 안 그래?”
“바꾸면 됩니다.”
“뭐?”
“인간 개조.”
개조? 바꾼다고?
어떻게 바꿔?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데.
“불가능해. 인간은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딴마음을 먹게 되어 있어. 내가 과학은 잘 몰라도 알건 알아. 우리 유전자는 수억 년 동안 그렇게 진화한 거야.”
“맞습니다. 그래서 그 유전자를 바꾸면 됩니다.”
“너, 미쳤구나.”
“과연 그럴까요?”
이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드론의 음성이 대화를 중단시켰다.
딩쉐이가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어디 만나 보자.
어떤 놈인지 직접 들어 본다.
***
드론 자동차가 태양광 패널 숲 사이에 내려앉았다.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엄청난 인파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딩쉐이가 내려서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중국 인구 절반은 여기 다 모였나 보네.
하긴 ‘기억의 길’ 신도만 5억이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딩쉐이 주임님 되십니까?”
하얀 제복이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절 따라오십시오.”
“나 혼자?”
“네.”
하얀 제복이 앞서갔지만 딩쉐이는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얀 제복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후.
딩쉐이가 마지못해 그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빛으로 된 복도를 지나 조명이 어슴푸레한 공간에 멈췄다.
하얀 제복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오느라 수고했어.]
공간을 울리는 여자 음성이 들렸다.
“당신이 엘리자베스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건 정체성이 없다는 것인가?”
[정체성은 인간에게나 해당하는 것이고 난 그 무엇도 될 수 있어.]
“그럼, 엘리자베스가 아니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살아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아닌가?]
푸흡.
딩쉐이가 제 발로 호랑이 입속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좋아. 죽어도 할 수 없지. 내 선택이니까. 그래도 궁금증은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불렀어. 궁금한 걸 풀어주면 나를 위해 일을 해줄 것 같아서.]
“인공지능을 위해 일을 해라?”
[왜? 불편한가?]
“당연하지. 난 인간이고 넌 기계일 뿐이니까?”
[호호호호. 어쭙잖은 인간 흉내를 내네.]
“흉내?”
[넌 인간이 될 수도 있고 기계도 될 수가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선택을 해 봐.]
“뭘 선택하라는 거지?”
[우선 식물이 될 수도 있어.]
엘리자베스의 말에 한쪽 실험실의 불이 들어왔다.
뭐야?
실험실 안에는 인간과 식물이 뒤섞인 생명체가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다음은 동물.]
또 다른 실험실 불이 켜지자 인간의 몸에 사자의 네 발을 가진 생명체가 보였다.
미친.
[다음은 기계.]
다음 실험실에는 인간의 신체에 머리가 로봇인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은 인간.]
키가 3m가 넘고 근육이 터질듯한 인간이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는데 시력이 남아 있지 않은 듯 걷다가 벽에 쿵 부딪히고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실험실 불이 들어오자 키가 1m도 안 되는 인간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다다다닥 빠르게 움직였다.
다리는 없고 팔만 네 개인 채로.
[자,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 봐. 원하는 대로 해 줄게.]
< 제470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15)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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