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64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9) >
로빈이 입꼬리를 바짝 올리고 셋을 바라봤다.
“왜, 나도 죽이려고?”
겁을 먹어야 당연한 로빈이 넷을 향해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뭐지, 저놈은?
그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돌진했다.
죽어.
푹.
로빈은 들어오는 칼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칼에 찔린 자리에 피가 나지 않는다?
콱.
로빈이 자신을 찌른 손목을 잡고 안으로 더욱 당겼다.
칼이 더 깊이 들어가자 찌른 놈이 놀란 눈으로 로빈을 보았다
어떻게…….
“이상하지 않아?”
놀란 얼굴을 비웃으며 나머지 한 손으로 찌른 놈의 목을 잡아 들었다.
켁켁켁.
놈이 몸이 들리며 버둥거렸다.
사, 사, 살려줘.
나머지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작고 왜소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거지?
아니, 저놈 방금 칼 맞은 거 맞아?
말도 안 돼.
죽어.
둘이 동시에 달려들어 하나는 로빈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고 하나는 아래로 베어 내렸다.
가가가각.
칼날이 쇳덩이를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풋.
로빈이 들고 있던 놈을 두 놈의 머리 위로 던졌다.
빠각.
세 놈의 머리와 머리가 부딪치며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목뼈가 부러진 두 놈과 허리가 꺽인 한 놈이 바닥에 널브러져서 부르르 떨었다.
셋의 죽음을 본 마지막 놈이 배낭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하지만 태양광 패널 뒤에서 하얀 제복을 입은 무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족히 백은 넘었다.
도망갈 수 없다.
털썩.
놈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사, 사,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얀 제복들이 천천히 다가와 그를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문으로 향했다.
“살려줘. 금 다 가져. 제발. 제발.”
다른 하얀 제복들이 쓰러져 있는 놈들을 번쩍 들고 전부 문 앞에 섰다.
지잉.
문이 열리고 모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지잉.
문이 닫혔다.
끌려온 놈은 하얀 제복들을 두리번거리며 봤다.
모두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날 어떻게 하려는 거지?
지잉.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으.
다리에 힘을 주고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하얀 제복의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질질질.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 다 할게요.”
실험실로 끌려온 놈이 힘으로 안 되자 사정을 했다.
하얀 제복은 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행동했다.
마치 로봇처럼.
“저쪽으로.”
로빈이 칼을 맞은 놈과 목이 꺾인 놈들, 허리가 꺾인 놈을 실험실 안으로 이동하라고 손짓을 하자 각자 다른 방의 침대에 눕혀졌다.
끼리릭, 끼리릭.
침대 밑에서 여러 종류의 가늘고 긴 로봇 팔이 나오더니 놈들 주변을 맴돌면서 붉은 불빛을 내며 상처를 살폈다.
잠시 후 거침없이 로봇 팔들이 움직였다.
치지지지직.
배에 칼을 네 번 맞아 피를 흘리는 놈의 옷이 벗겨지고 벌어진 살 사이로 실처럼 얇은 로봇 팔이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찢어진 장기를 이어 붙이고 레이저로 지져서 출혈을 멈췄다.
윙.
또 다른 전선 굵기의 로봇 팔은 놈의 머리에 미세한 드릴로 구멍을 뚫더니 또 실처럼 얇은 로봇 팔이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죽어가던 놈이 부르르 떨면서 번쩍 눈을 떴다.
덜덜덜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다시 풀썩 쓰러졌다.
옆 실험실의 목이 부러진 놈이나 목뼈가 으스러진 놈, 허리가 꺾인 놈도 마찬가지였다.
현란한 로봇 팔의 움직임 뒤에 경련을 일으키고 쓰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직 생존해 있는 놈이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어떻게 한 거지?
분명 죽었는데 살아났다.
로빈이 놈에게 다가왔다.
“내가 다 지켜봤잖아. 네가 제일 먼저 배신을 했는데 너만 살아남았네.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야.”
“아니, 내가 아니야. 저기 저놈들이 먼저 나에게 말한 거야. 절대 난 배신할 마음이 없었어. 정말이야.”
로빈이 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저기 어두운 방 보이지?”
“어디?”
“저기.”
로빈이 살짝 고개와 눈동자로 검은 유리로 된 방을 가리켰다.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줄게.”
로빈이 손짓을 하자 검은색 유리가 투명한 유리로 변하며 실험실 안에 있는 끔찍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났다.
으아아아아악.
실험실 안을 본 놈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쓰러지더니 뒤로 기어서 물러났다.
분명 눈을 깜빡였어.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인간인데 구멍이란 구멍에는 식물이 삐져나와 있었다.
식물이 삐져나온 구멍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알 수 없는 약물이 그의 목을 통해 꿀렁꿀렁 주입되었다.
그의 눈은 고통으로 떨며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로빈이 놈의 곁에 다가와 손가락으로 실험실 안의 인간을 가리켰다.
“욕심의 결과지.”
“어떻게 사람을…….”
“푸흡,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넌 방금 두 명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칼로 죽이는 것과 저렇게 죽이는 건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가져와.
로빈이 손짓을 하자 하얀 제복 셋이 다가와 놈의 입을 벌리고 그 안에 작은 알약을 넣었다.
싫어, 이게 뭐야, 안 먹어.
그러나 입안으로 물을 들이붓자 꿀꺽 알약이 넘어갔다.
우웩, 우웩.
남자는 헛구역질을 하며 삼킨 걸 뱉어내려고 했다.
“소용없어. 그건 약이 아니라 나노봇이니까.”
“나노봇?”
슥.
로빈의 손이 놈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사선으로 놈의 가슴과 배를 가로질렀다.
쩌억.
놈의 몸이 거의 반은 절단이 나서 너덜거렸다.
으악.
자신의 내장이 보이고 뼈가 절단이 났는데 살아 있다.
“괜찮아, 괜찮아. 죽지 않아. 서서히 살과 뼈가 나노봇에 의해 치료가 될 거야.”
살려줘.
“죽지 않는다니까. 근데 좀 아파. 아니 많이 아파.”
놈의 얼굴이 거의 울상으로 변했다.
집어넣어.
로빈의 명령에 하얀 제복들이 놈을 어두운 방으로 끌고 갔다.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로빈이 무표정하게 비명을 듣고 있는데,
【다 처리되었나?】
공간을 울리는 소리에 로빈이 머리를 조아렸다.
“네, 주인님. 일주일 동안 결과만 보시면 됩니다.”
【콘택트폰 생산을 더 늘려야 하니 공간을 더 확보하도록.】
“네, 주인님.”
로빈은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10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
캘리포니아.
“아서,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까?”
하하하하.
아서의 웃음엔 허탈함이 묻어 나왔다.
“불가능해, 아예 불가능해. VR 고글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저건 콘택트 렌즈야. 저걸 어떻게 만들어? 우리가 ‘엘리’의 제품을 사다가 분석해 봤는데, 저 렌즈 안에 0.5나노 굵기의 반도체 물질로 소자를 만들어 넣었단 말이야. 하하하하. 웃음밖에 안 나와. 지금 TSMC와 SS전자가 2나노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저건 0.5나노라고. 0.5나노. 거기다 어이없게도 ‘엘리’의 원천 기술이 투마로우 거라는 건 아나?”
으.
세르게이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안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칭얼거리고 싶은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한 분기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이미 주가는 한없이 떨어지고 있어요.”
“포기해야지. 스마트폰 사업에서 손을 떼는 수밖에 없어. 절대 따라가지 못해. 그래도 구글은 독과점 소송이 가능하지 않을까?”
‘엘리’의 콘택트폰은 자체 탑재된 검색기인 ‘체티’를 사용했다.
오픈 GPT 기반으로 만들어진 ‘체티’는 네이x의 지식인처럼 질문하면 바로 답을 해주는 채팅형 검색기다.
구글처럼 검색어를 치고 죽 나열되는 문서 중에 자신이 찾는 내용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질문하면 바로 그에 관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논문이나 신문 기사를 원하면 바로 그 전문을 찾아 주었다.
“우리도 오픈 GPT를 기반으로 채팅형 검색은 구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엘리’가 중국 회사라는 겁니다. 중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후.
깊어지는 한숨.
무력한 두뇌.
“지난 일이지만 그레이와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어.”
“말 그대로 지난 일입니다. 더는 미련을 두지 마세요. 우린 두 차례나 잘못된 대상과 손을 잡았습니다.”
“빌어먹을.”
데미안도, 그레이도 전부 투마로우를 잡지 못했다.
처음 데미안을 만났을 때 우리와 지금의 우리를 보면 너무 차이가 크게 났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어.
우린 변화를 읽지 못한 거야.
우리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만했어.
작은 것 하나 바꿀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삐.
“무슨 일이야?”
-임재준이 찾아왔습니다.
이 타이밍에 임재준이라…….
이제 놀랍지도 않아.
“들어오라고 해.”
아서의 담담함에 세르게이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벌컥.
“둘이 마주 앉아 뭘 그렇게 심각하게 얘기 중입니까?”
재준이 들어서며 아서와 세르게이를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서 오세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은 재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서와 세르게이.
“이번 ‘엘리’의 작품은 정말 훌륭하더군요.”
“어, 그거 우리 특허인지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 세상에 한군데밖에 없으니까요.”
“오, 이번엔 진짜 칭찬으로 들리네요.”
“중국에서 먼저 출시한 이유를 압니다. 이번이 저희에게 마지막 기회겠지요. 원하는 걸 말해보세요.”
이걸 또 이렇게 해석을 하네.
기회는 개뿔.
“뭐 따로 원하는 게 있나요. 채권 만기일이 다가오니까 빚을 갚으라는 거죠. 우리가 한 약속도 있고.”
아서가 재준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거 알잖아요.”
“그럼, 구글과 애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보면 되나요?”
“그래도…….”
아서가 말을 하다 잠시 멈추었다.
재준이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왜요. 이름이 아까운가요?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랜드라 세상에 잊히는 게 아쉬운 겁니까?”
후후후.
아서는 재준의 말에 꼭꼭 숨겨 놓은 걸 들킨 기분이 들었다.
“그래요. 우리 때문에 사라진 기업들을 압니다. 이제 모토롤라나 에릭슨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도 같은 처지가 되겠지요. 그래도 지금,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짝.
재준이 우울해하는 두 사람을 향해 손뼉을 쳤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희망의 메시지 같은 한마디에 두 사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특허를 줘도 못 만들 테니까, 우리가 렌즈를 공급해 드릴게요. 콘택트폰을 만드세요.”
“네?”
뜻밖의 제안에 아서와 세르게이가 엉덩이가 들썩이며 벌떡 일어날 뻔했다.
“경제는 균형이 중요하잖아요. 한쪽으로 확 기울어진 것도 그렇게 보기 좋지 않아요. 이 상태라면 전부 중국에 매달리는 꼴이 될 테니까요.”
아서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이걸 노린 겁니까?”
“무얼 노렸다고 생각하는데요?”
“미국에서 콘택트폰이 나왔다면 잘 만든 제품이 나온 정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콘택트폰이 나왔다면 미국 기업 몇 개는 삼키는 블랙홀일 겁니다.”
“아서, 생각이 너무 많네요. 굉장히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네. 미국에서 먼저 만들면 중국으로 들어가기 힘들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만든 겁니다. 근데 만들고 보니 너무 반응이 좋긴 한데 나만 너무 앞서 버렸잖아요. 혼자서 독주하는 건 삐져나온 못이 되는 겁니다. 언젠간 망치를 맞게 되어 있어요. 이럴 때는 같이 뛰어 줄 러닝메이트가 필요합니다. 시선을 분산시켜줄. 이해하죠?”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렌즈를 공급해주면 우리 디자인으로 콘택트폰을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그 정도도 자유도는 보장해야지. 그래야 열심히 일하니까.”
열심히 일하라고?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 이런 걸 뭐라 부르는지 알죠?”
“네?”
“이런걸 하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하청.”
하청.
애플이 투마로우의 하청업체가 되었다.
< 제464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9)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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