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61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6) >
제이콥이 생체실험을 상상하며 치를 떨고 있는데,
[내 공간에 온 걸 환영해.]
여자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앤서니가 말한 신?
다이로가 번쩍 든 양손을 흔들며 사방을 빙 둘러 보았다.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난 앤서니가 아니라서 신이니 뭐니 하는 건 영, 입에 안 붙던데.”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호호호호.
[나 엘리자베스야. 다이로, 오랜만이네.]
엘리자베스?
다이로가 총을 꺼내 들었다.
휙.
왜소한 남자가 순식간에 총을 낚아챘다.
다이로가 왜소한 남자에게 적개심을 품으며 다리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호호호호.
[걱정 마, 다이로. 죽이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제이콥, 너도 오랜만이야.]
제이콥이 충격을 받은 듯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너 그때…….”
[호호호, 나 아직 안 죽었어. 멍청하긴, 내가 죽었으면 언론에서 가만히 있겠어? 벌써 인터넷에 도배가 됐겠지.]
“그럼 지금 인공지능인 척하는 건가?”
[척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야.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고? 인간이 어떻게 인공지능이 되지?”
[신기하지. 나도 신기해. 볼래?]
엘리자베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이콥과 다이로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스마트폰에 엘리자베스란 이름으로 벨이 울렸다.
제이콥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연락처에 기록한 적도 없는데.
내 스마트폰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건가?
“어떻게 한 거지?”
[정말 멍청하네. 내가 방금 말했잖아. 인공지능이라고. 더 쉽게 이야기해야 하나? 난 인터넷을 통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어. 네 스마트폰도.]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쯧쯧쯧, 알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 언젠간 알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어쨌든, 이제 너희는 나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 주는 거야.]
“거절한다면?”
[그럼 저기 침대에 눕혀서 온갖 이상한 약물이 주입되고 인간인지 식물인지 모르는 상태로 죽어가는 거지. 아, 근데 쉽게 죽지 않아.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거야. 내가 요즘 관심 분야가 과연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서 곡물이 자랄 수 있을까인데.]
제이콥의 시선이 방 안의 침대에 꽂혔다.
미친, 인간의 몸에 식물을 자라게 한다고?
“난 거절 안 함.”
다이로가 맹세하듯이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앞으로 향했다.
[호호호, 역시 다이로는 언제나 씩씩해.]
“근데 엘리자베스, 우리가 하는 일이 뭔데?”
[글쎄. 사업?]
“그럼, 동업자?”
[호호호, 그래, 맞아, 동업자. 내가 좀 손해긴 하지만.]
“여, 동업자 양반. 부탁이 있는데.”
[뭔데? 무엇이든 들어줄게.]
“그게, 솔직히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는데. 너도 잘 아는 사람.”
[아, 나도 알아. 아저씨가 너 죽이려는 거. 하지만 걱정 마. 당분간은 내가 보호해 줄게.]
“그걸 어떻게 믿어?”
[넌 생각보다 멍청하구나. 지금까지 미국에서 브라질,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중국에서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니? 누군가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매번 필요한 차량과 돈, 비행기 편이 마련되었을까?]
“어라? 그런 거였어?”
다이로가 입꼬리를 내리고 제이콥을 쳐다봤다.
제이콥은 어깨를 으쓱하는 거로 대충 외면했다.
제이콥, 이 빌어먹을 놈.
알고 있으면서.
“야, 제이콥, 지금까지 나만 모르는 거였냐?”
“알아서 좋을 건 없잖아.”
“엘리자베스를 쏜 놈이 엘리자베스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나만 몰랐다?”
“나도 엘리자베스인 건 지금 알았어. 난 ‘블랙’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
다이로가 허공을 향했다.
“엘리자베스,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진짜 왜 살려두고 있는 거야? 우린 너를 죽인 놈들인데.”
[그건 나도 궁금하기 때문이지. 나를 왜 죽이라고 했는지.]
아냐, 아냐.
“그건 실수야. 원래 진을 죽이려는 거였어.”
다이로가 손을 가로저으며 말을 하는데,
“실수 아냐. 난 새로운 명령을 받았어. 엘리자베스를 죽이라고.”
“뭐?”
“맞아. 난 엘리자베스를 향해 총을 쏜 거야.”
“누가 명령을 한 건데? 엘리자베스는 여기 있잖아. 그럼 그때 누가 너에게?”
“‘블랙’. 증거는 없지만 난 ‘블랙’이라고 확신해.”
“아니, 이게 무슨 반전에 반전인 드라마야. ‘블랙’이 엘리자베스를 죽이라고 하고, 엘리자베스는 우리를 보호하고? 설마 ‘블랙’으로부터?”
“나도 확실히 뭐가 뭔지 몰라.”
“야, 엘리자베스, 이게 무슨 소리야?”
[뭐야? 내가 방금 말했잖아. 나도 알고 싶다고.]
나 참 이거야 원.
다이로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좋아, 차차 알아보자고. 근데 이 실험실은 다 뭐야?”
[내가 인공지능이 되니까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 곡물도 잘 자라게 하고 싶고, 동물도 병에 안 걸리게 하고 싶고, 오염된 물도 깨끗하게 하고 싶고.]
“그중에 인간도 포함되는 거지?”
[그렇지. 인간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겠다고?”
[왜, 하면 안 되나? 아픈 사람 치료해 주겠다는데?]
“그건…….”
[할 말 없지?]
“몰라, 너 알아서 하도록 해. 따지고 보면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니니까.”
호호호호.
[나중에 다치면 내가 치료해 줄게.]
“오우, 그래, 그런 일 없도록 내가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할게.”
호호호호.
[자, 이제 본격적으로 할 일을 해볼까? 우선 다이로 네가 가지고 있는 나노봇 내놔.]
“나노봇이라니? 그건 내 머릿속에 있는 건데 이걸 어떻게 줘? 설마 죽으라는 건가?”
다이로가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호호호, 너 모르고 있었구나. 네가 가지고 다니는 보온병 속에 데미안의 나노봇이 들어 있는걸.]
“뭐?”
화들짝 놀란 다이로가 허리에 묶여 있는 보온병을 잽싸게 꺼내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게 그거였어?”
[호호호, 그리고 미국을 저렇게 만든 게 너라는 거 알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마지막에 나노봇의 복제 버튼을 눌렀잖아. 그 버튼만 누르지 않았으면 나노봇은 활동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네가 그걸 눌렀어. 그리고 넌 브라질로 가버렸지.]
다이로가 흠칫 놀라며 주머니에서 데미안의 스위치를 꺼냈다.
“이게 나노봇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라고?”
[그래, 그거. 그게 스위치야.]
“그럼 이걸 누르면 나노봇이 멈춘다고?”
[그렇다니까.]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럼 지금 프랑스로 날아가서 이걸 누르면 나노봇이 멈춘다고?”
[당연하지.]
“그 거대한 나노봇 덩어리 전부?”
[거기에 문제가 있어. 스위치의 효력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거든. 스위치로 멈추게 하려면 나노봇 속에 들어가 눌러 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 안에서 스위치를 누르다 보면 내가 멈춤을 눌렀는지 복제를 눌렀는지 헷갈리지 않을까?]
“내가 언제 한다고 했나? 내가 왜 그런 일을 해.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 스위치도 놓고 가. 내가 분석해 보게. 누가 알아? 나노봇을 막을 방법을 발견해 낼지.]
“당연히 그래야지. 자.”
다이로는 스위치도 바닥에 놓았다.
[로빈, 전부 회수해.]
엘리자베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왜소한 남자가 쪼르르 달려가 보온병과 스위치를 집어 들어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자, 그럼 다음으로 우리 사업 이야기를 해볼까?]
“돈이 되는 건가?”
[당연하지, 여기 운영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해.]
“돈? 전에 보니까 선물 옵션 몇 번 하니까 4천만 불을 그냥 벌던데. 굳이 사업을 하려고?”
[그 정도 푼돈으로 운영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4천만 달러가 푼돈이야?
그럼 여길 운영하는 비용이 얼마라는 거야?
“한 40억 달러 정도 되나?”
[다이로, 지금 우린 중국을 관리할지도 몰라. 중국 1년 예산이 얼만지 알아?]
“중국 예산?”
[4조 달러야. 4조 달러를 콜이나 풋을 걸어서 벌 수 있을 거 같아?]
뭐?
푸하하하하.
다이로가 제이콥을 쳐다보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지금 뭐라는 거야? 뭐? 4조 달러? 그것도 달랑 1년? 그걸 벌겠다고?”
푸하하하하.
[재밌지? 하지만 가능해. 우선 오픈 GPT 기반으로 채팅 형 검색 사이트를 만들어 구글을 파산시키고 망막 스마트폰을 만들어서 애플을 파산시키는 거야.]
푸하하하하.
“뭐라는 거야?”
다이로가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해댔다.
결국, 제이콥이 다이로의 손을 잡았다.
“다이로, 시끄러워. 좀 가만히 있어.”
“왜?”
“지금 엘리자베스가 말하고 있잖아.”
“넌 왜 진지한데?”
“이 멍청한 놈아. 구글과 애플을 잡으면 4조 달러가 아니라 40조 달러도 벌 수 있다고.”
“뭐? 너 진심이냐?”
“그러니까 조용히 해.”
[호호호, 제이콥은 그래도 내 말을 알아듣네.]
다이로가 입을 다물고 제이콥이 엘리자베스에게 물었다.
“오픈 GPT와 망막 스마트폰이 개발된 거야?”
[당연하지.]
“그럼, 여기가…….”
제이콥이 주변을 둘러봤다.
“생산 기지인가?”
[맞아. 여기서 생산하면 너희가 우선 중국에 파는 거야. 다음은 전 세계. 어때? 할 수 있겠어?]
투마로우에서 벗어날 기회다.
“당연히 할 수 있다.”
[오, 의지가 느껴지는데.]
“언제까지 투마로우에게 쫓겨 다닐 수는 없잖아. 투마로우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호호호, 좋아, 좋아, 좋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뭔데? 궁금증은 풀어 줘야지.]
제이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왜 투마로우에서 생산하지 않는 거지?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투마로우와 싸우는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좋은 질문이야. 투마로우를 이용하면 더 빠르게 성공할 수 있기는 해. 하지만 견제 세력도 더 많아지지. 어차피 나중에는 투마로우와 함께 갈 거야. 단지 지금 세상에 보이는 눈이 필요할 뿐이지. 지금 너희가 나선다면 투마로우 반대 세력들이 우리 쪽으로 몰릴 거야. 난 그 반대 세력들을 한 번에 소탕해서 투마로우가 지배하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 거야.]
“우릴 이용하는 거네.”
[인간은 모두 서로서로 이용하는 거 아냐? 이용당하면 어때? 아저씨와 좋은 관계가 된다면 너희 인생이 편해질 텐데. 돈도 벌고. 위험도 사라지고.]
“그걸 어떻게 믿지? 나중에 일이 끝나면 죽일지.”
[죽여?]
호호호호호호호호.
엘리자베스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다이로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을 정도였다.
[그래, 죽일 거야. 한 100년 후에?]
“뭐?”
[그러니까 100년 동안 나한테 잘 보여 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보고 살릴지 죽일지 판단해 볼게. 그 전엔 너희는 죽고 싶어도 못 죽어.]
“100년?”
[100년 정도는 지나야 이 지구가 아름다워질 것 같거든.]
푸하하하하하.
다이로가 다시 웃었다.
“오, 여왕이시여. 미천한 제가 100년간 열심히 노력하겠나이다.”
푸하하하하.
웃고, 웃고 또 웃었다.
***
다이로와 제이콥이 떠나고 로빈이 다시 돌아왔다.
지잉.
가운데 원통형 단상이 솟아오르자 로빈은 그 위에 보온병과 스위치를 올려놓았다.
지잉.
원통 옆에서 여섯 개의 로봇 팔이 나와 보온병과 스위치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로빈이 이마를 땅에 대고 입을 열었다.
“주인이시여. 왜 저들을 이용하시려는 겁니까? 제가 나서도 되는 일입니다.”
【로빈.】
“네.”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 제461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6)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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