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59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4) >
진코퍼레이션.
“엄마, 거기 있어요?”
진은 모니터에 대고 큰 소리로 엘리자베스를 찾았다.
치직, 치지직.
[응,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니?]
“드디어 복제된 인간의 신체에 인공 신경 회로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래? 그럼 인간의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거야?]
“네, 이제 나노봇으로 완벽한 전신을 만들기만 하면 돼요.”
[얼마나 걸리는데?]
“길어야 한 달도 안 걸릴 거예요.”
[드디어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런데, 신체를 가지면 전산망으로 다시는 못 들어오는 건가?]
“아뇨, 언제든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 다만 엄마가 전산망에 들어가면 신체는 죽어 있는 상태가 돼요.”
[그래?]
“생체이기 때문에 기온이 높으면 하루만 방치해도 썩을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하고요. 뭐 다시 재생시키면 되긴 하지만, 어쨌든 오래는 안 돼요.”
[오케이,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해.]
호호호호호호호호.
모니터 화면 가득 엘리자베스의 웃음이 채워졌다.
“요즘은 뭐하면서 지내세요?”
[뭐, ‘블랙’이랑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부 좀 하고 있어.]
“공부요?”
[인간이었을 때와 너무 달라서 뭐든 보기만 해도 다 외워지거든. 아니, 외워진다기보다는 저장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머리가 비대해진 느낌이야.]
“정말요?”
와, 이건 또 다른 영역인데.
그렇겠지. 인간이 컴퓨터가 됐다면 스스로 학습하는 딥 러닝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을 테니까.
감정을 가진 신경망 회로.
영원히 죽지 않는 지성.
어쩌면…….
“엄마, 데미안의 나노봇 통신을 장악할 수 있겠어요?”
[호호호, 그렇지 않아도 해 봤는데, 안 돼. 나는 ‘블랙’이 아니라서 동시에 여러 곳을 접속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여러 곳에 명령을 내리지도 못해.]
“아, 그렇군요.”
역시 인간의 알고리즘의 한계가 멀티가 안 되는 거구나.
하긴, ‘블랙’도 할 수 없는 걸 엄마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냥 혼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이런저런 지식을 습득하는 거지 뭐.]
다행이다.
외로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근데 아저씨 스마트폰 통신 주파수가 중국에서 잡히던데. 중국에는 왜 간 거야?]
“거기 데미안이 만들어 놓은 인공지능이 있거든요.”
[데미안이 만들어 놓은 거라고?]
“네. 원래는 구글과 애플의 알고리즘인데 중국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중국으로 옮겨 놓았어요.”
[그럼, 지금은 데미안이 없으니까 멍때리고 있겠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죠.”
[그래? 그럼, 내가 장악해야겠다.]
“엄마가요?”
[응, 어떤 알고리즘인지 확인해 볼게.]
“엄마?”
진의 부름에 대답이 없다.
“엄마? 엄마?”
호기심이 많아지셨네.
***
중국 우한시.
“다이로, 그건 뭐야?”
제이콥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우산이잖아.”
“내가 우산인 걸 몰라서 묻는 거냐? 그걸 왜 이 화창한 날에 쓰고 돌아다니냐고? 창피하게.”
“이거 우산살이 구리야. 통신을 차단한다고. 너 우리 머릿속에 나노봇 있는 거 알지. 이렇게 하고 다녀야 임재준이 우릴 맘대로 못하는 거야. 무식하기는.”
“무식? 요즘 자꾸 네가 똑똑한 줄 아나 본데. 너 정말 무식해. 그리고 통신을 차단하면 누가 전화 오는 건 어떻게 할 건데?”
“뭐?”
다이로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어, 통신이 됐다 안 됐다 하네.”
“그렇다니까. 당장 우산 접어.”
“허, 거참. 위험한데.”
“위험하긴 개뿔이 위험해? 임재준이 할 일이 그렇게 없냐?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게. 그리고 여긴 중국이야. 임재준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저건 뭔데?”
다이로가 가던 길을 멈추고 광고용 디스플레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가리켰다.
[시앙핑 주석이 투마로우와 협력하여 나노봇에 대비한 건물을 짓는 데 합의했습니다. 아직 장소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신장 위구르 및 티베트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 지역은…….]
제이콥의 볼살이 실룩샐룩 움직였다.
“임재준이 중국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뉴스에 나왔겠지. 저기 봐, 무슨 건물을 짓는다고 하네. 나노봇에 대비해서.”
“나노봇?”
“내가 잘한 거라니까, 이거 쓰고 다녀야 해.”
다이로가 빈정거리며 우산을 폈다.
“아, 좀 치워. 쓰려거든 저쪽에 떨어져 있어.”
“아, 거참. 더럽게 뭐라 하네.”
“일단 위쉬안을 만나러 가자. 인공지능을 빨리 중국에 넘기고 중국을 떠야겠어.”
“중국을 왜 떠? 편하고 좋은데. 그리고 우리 우한시고 임재준은 상하이야. 만날 일이 없어.”
“그러다가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냐?”
이때, 띠링, 제이콥의 스마트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위쉬안에게 가라.】
위쉬안?
제이콥이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야. 같이 가.”
다이로가 따라잡으려고 뛰었다.
***
‘블랏아웃’ 본사 지하.
“와, 여기도 보통이 아니네.”
제프와 함께 지하 5층에 내려온 위쉬안은 유리창 너머 1km²의 공간에 빽빽하게 놓여있는 서버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서버들의 불빛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제길, 쓸모도 없는데 매달 들어가는 돈이 얼만 줄 알아?”
제프가 서버 유리창을 쾅쾅 두드리며 짜증을 냈다.
“걱정 마, 이제 본전 생각나지 않게 벌어다 줄 테니까.”
위쉬안이 제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통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닥, 다다닥.
위쉬안이 한참 시스템으로 들어가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픽.
화면이 꺼지며,
[네가 위쉬안이니?]
문자가 떴다.
“뭐야?”
위쉬안이 키보드를 치다 말고 뒤로 물러났다.
“저거 뭐야? 해킹당한 거야?”
제프도 덩달아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저건 신입니다.”
앤서니가 앞으로 나서며 자리에 앉았다.
[앤서니, 카메라 좀 바꿔. 이건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여.]
“네, 당장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이 서버는 내가 사용할 테니. 너희들은 내 지시에 따라줘야겠어.]
“네, 어떤 일이든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뭐?
순간 제프가 나섰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거 중국에 넘기고 돈을 받기로 했잖아.”
[얼마가 필요하지?]
“얼마라니?”
[돈이 필요하다며. 얼마가 필요하냐고?]
“그걸 내가 왜?”
파파파파파팟.
화면에 수십 개의 창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 것만으로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창이 하나 뜨더니 움직임이 멈췄다.
저건?
[제프, 네 비자금을 관리하는 투자사 계좌 잔고가 3천만 불. 맞아?]
어떻게 알아낸 거지?
순간 차르르르르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야? 7천만 불?
[방금 사우디 옵션거래로 4천만 불을 벌었는데. 원하는 금액을 말해 봐. 추가로 벌어 줄게.]
뭐라고?
방금 1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와, 멍청하게 지금 신 앞에서 돈 얘기를 하기는.”
위쉬안이 제프를 뒤로 끌어당겼다.
어버버거리며 제프가 뒤로 밀려났다.
“죄송합니다.”
앤서니가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할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일단 여기로 서버를 옮겨.]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에 지도가 뜨고 신장 위구르와 칭하이성 경계의 한 지역에 빨간 점이 찍혔다.
“네, 알겠습니다.”
뒤로 물러났던 제프가 위쉬안에게 속삭였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몰라, 그냥 일단 지켜봐야지.”
“저게 앤서니의 신이야?”
“응, 맞아.”
제프는 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실제로 행동하는 신이라니.
내가 알던 신앙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네.
그럼, 아마존도 살아날 수 있는 건가?
대화를 끝낸 앤서니가 일어섰다.
동시에 화면이 픽 하고 꺼지며 원래대로 서버 통제 시스템 창으로 돌아왔다.
“앤서니.”
위쉬안의 부름에 앤서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들었으니 알 겁니다. 지정한 지역에 땅을 임대하고 서버를 옮길 준비를 하세요.”
“알겠어.”
“이봐, 그럼 아마존은 어떻게 되는 거야?”
제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앤서니의 눈이 가늘어지며 제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냥 좀 지켜보라니까.”
위쉬안이 나무라듯이 제프에게 말했다.
“답답하니까 그렇지.”
“그러다 잘못하면 죽어.”
“뭐? 죽는다고?”
“그래, 그러니까, 입조심해.”
위쉬안도 나가고 제프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
앤서니는 위쉬안과 함께 먼저 올라와 사무실 문을 열었다.
텅 빈 사무실.
낯선 사람들.
분명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직원들이 하나도 없었다.
집무실 문 앞에 공안 복장을 한두 명이 보였다.
공안을 본 위쉬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드디어 공안이 나섰다.
저벅, 저벅, 저벅.
투박한 발걸음으로 집무실에서 딩쉐이가 나타났다.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것 없어. 직원들은 조기 퇴근시켰으니까.”
딩쉐이가 천천히 걸어 소파에 앉았다.
“뭐 해? 와서 앉아.”
앤서니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딩쉐이 앞에 앉았다.
그 옆에 위쉬안이 쪼르르 따라와서 앉았다.
“나머지는 다 어디 갔나?”
“곧 도착할 겁니다.”
“그래? 어디 보자. 위쉬안, 오랜만에 보네. 질기네, 질겨. 금방 죽을 줄 알았는데.”
“제가 보낸 9억 달러는 아직 그대로 있습니까?”
푸훗.
딩쉐이가 싱거운 이야기라는 듯 비웃었다.
“그런 게 있었어? 나는 모르는 일인데. 어디다 잘못 보낸 거 아냐?”
“아직 제가 받아야 할 빚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래? 그럼 안 되지. 빚을 남기면 쓰나. 시간 나면 정리해서 보내 봐. 확인해 보고 받아야 하는 건지 줘야 하는 건지 따져 볼 테니.”
으득.
위쉬안의 어금니가 거칠게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리고 다이로와 제이콥이 들어섰다.
어라?
다이로가 딩쉐이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게 누구야? 우리 중앙판공청 주임님 아니야?”
“다이로, 다이로. 우리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그러게, 이거 어디 가서 자랑하고 싶은데. 갈 때 사인이라도 해주고 갈 수 있지?”
“그럼, 그럼. 일단 왔으니 앉아 봐.”
“어디 보자. 우리 주임님이 무슨 일로 오셨을까?”
다이로가 딩쉐이 앞에 털썩 몸을 던졌다.
“자, 원하는 걸 말해 보세요.”
“우리 정보에 의하면 중국 인민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이지?”
“그럼, 사실이지.”
제이콥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저놈은 무조건 직진이네.
“오호, 바로 인정하네.”
“그럼, 뭐 숨길 게 있다고. 그래. 그래야 서로 윈윈하는 협상을 하기가 쉽잖아.”
“좋아, 좋아. 그럼, 죽이진 않을 테니. 그 데이터 가져와.”
“그냥? 아무것도 안 주고?”
“목숨은 살려준다니까?”
“에이, 목숨이야. 이미 누구 손에 떨어져 있어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네. 그보다 우리가 미국에 데이터를 넘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뭐?”
딩쉐이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이놈 봐라.
“이봐요. 주임님. 임재준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자, 우리한테 무얼 줄 겁니까?”
< 제459화 중국? 없애버리면 되지(4)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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