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455화 (455/477)

< 제455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6) >

철컥.

철컥.

철컥.

절반가량의 폭약을 설치하고 더는 움직일 힘이 없어진 고든은 남아 있는 폭약을 한곳에 모았다.

어차피 죽는다.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정도 중력이면 조만간 심장이 뛰는 것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그래 여기서 죽자.

고든은 기폭장치를 꺼내 스위치에 손가락을 올렸다.

버튼만 누르면 이곳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한다.

아, 미안 카멀라.

혹시나 지옥에서 나를 보거든 모른 척해 줘.

기껏 이런 식으로 삶을 끝내려고 당신을 죽인 건 아닌데.

고든의 손이 떨렸다.

이제 누른다.

이때.

“팀장님.”

엘리베이터에 남겨두었던 요원의 목소리다.

“어디 있습니까? 팀장님.”

여기.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다다다다닥.

힘찬 발걸음 소리와 함께 요원이 도착했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응?

고든의 시야에 들어온 요원은 중력에 영향을 하나도 안 받는 듯 보였다.

“다들 왜 쓰러져 있는 거예요?”

“넌 괜찮아?”

“뭐가요?”

“몸이 안 무거워?”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왜 몸이 무거워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지?

“엘리베이터가 어느 방향이야? 이 녀석들 깨워서 나가자.”

“엘리베이터는 저기 있잖아요.”

“어디?”

“저기요.”

어?

왜 엘리베이터가 10m 앞에 있는 거야?

우린 분명히 몇km는 걸어왔는데.

고든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하면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주위가 변했다.

여긴 양자 컴퓨터가 있는 곳이 아니잖아.

언제 바뀐 거지?

고든은 요원을 바라봤다.

“넌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거야?”

“아니요. 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계속 안에 있었습니다. 10분쯤 지나니까 다시 문이 열렸어요.”

10분?

분명 1시간 이상은 지난 것 같은데.

설마 말로만 듣던 가상현실?

빌어먹을, 언제 나노봇이 머릿속에 들어간 거지?

고든의 지금까지 행적을 쭉 떠올렸다.

아, 소독 기체.

이런 제기랄, 거기에 섞여 있었어.

어떡하지?

임재준의 덫에 완전히 걸려들었는데.

일단 여길 벗어나고 보자.

효소로 죽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봐, 나머지 다 깨워.”

“네.”

요원이 잠들어 있는 요원들을 찾아다니며 흔들어 깨웠다.

으으으.

정신을 못 차리는 요원들을 확인한 고든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배낭을 확인했다.

C4.

배낭을 집어 들었으나 배낭에 있어야 할 폭탄이 없었다.

내가 어디다 설치한 거지?

주변의 컴퓨터는 아까 보았던 양자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냥 고성능 서버일 뿐이었다.

서버로 달려가 위아래 좌우를 살피며 C4가 설치되어 있나 확인했다.

없다.

폭탄이 어디에도 없다.

내가 어디다 설치하긴 했나 본데.

일단 여길 나가야 한다.

“팀장님, 이 녀석들 깨어나질 않아요.”

한심한 놈들.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가서 처넣어.”

고든은 요원과 함께 쓰러져 있는 요원들을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왔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 증가했던 중력 또한 사라졌다.

정신 차리자, 이건 모두 뇌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야.

허상?

그럼, 폭탄도 허상일까?

폭탄은 분명히 우리가 가지고 온 거잖아.

허상일 리가 없지.

그래, 어찌 됐든 폭탄은 터진다.

엘리베이터 앞에선 고든은 기폭 스위치를 꺼냈다.

“팀장님.”

뒤에서 요원이 불렀다.

“저희는 준비 다 되었습니다.”

뭐?

고든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요원들이 멀쩡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이것들도 전부 허상인가?

그럼 다 깨부수면 되지.

고든은 기폭 스위치를 눌렀다.

쾅, 쾅, 쾅, 쾅, 쾅.

폭탄이 터진다.

그런데 전혀 예상 못 한 장소다.

자신은 분명 일직선으로 움직였는데 폭탄은 사방에서 터졌다.

“팀장님.”

요원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십시오.”

고든은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지잉.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가까스로 올라탔다.

후.

고든은 요원들을 바라봤다.

“모두 다친 데는 없어?”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지이이이이잉.

엘리베이터가 고속으로 움직이며 위로 올라갔다.

애애애애애앵.

드디어 지하 전체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전투태세. 문이 열리면 로봇이 기다릴지 모른다.”

“네.”

모두 총을 꺼내 철컥, 철컥, 앞으로 있을 사태에 대비했다.

지이이이잉.

엘리베이터 속도가 줄어들었다.

곧 멈출 것 같았다.

지잉.

문이 열리자 모두 밖으로 튀어나와 벽에 기대어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다다다다다다.

무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 살아서 밖으로 나가자.”

“네.”

저기다.

로봇인 줄 알았는데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다행이네.

고든은 철컥, 총을 매만지며 누구든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자,

탕, 탕, 탕, 탕, 탕.

총격전이 벌어졌다.

***

시카고.

FEMA(연방재난관리청) 비밀 기지.

쾅, 쾅, 쾅, 쾅, 쾅.

연속으로 폭발음이 들리며 건물이 흔들렸다.

벌컥.

“청장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요원 셋이 청장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무슨 일이야?”

“테러입니다. 지하 주차장 기둥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피하셔야 합니다.”

테러?

그레이는 서둘러 일어나 요원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누가 감히, 여길 테러한 거야?”

“확실하지 않지만, CCTV 화면을 보면 고든으로 보였습니다.”

“고든?”

‘사이진’에 있던 놈이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기우뚱.

건물이 옆으로 기울어지고,

후두두둑.

천장에서 파괴된 콘크리트 덩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조심하십시오.”

요원이 그레이를 부축하며 떨어지는 잔해를 손으로 막았다.

“난 괜찮으니 어서 앞으로 가.”

“네.”

이럴 줄 알았으면 빌라에 있는 건데.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더라니.

고든, 설마 카멀라의 복수를 하려고?

그레이와 요원들이 옥상에 다다르자 헬기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헬기는 시동도 걸려 있지 않고 조종사 또한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레이가 요원에게 고함을 지르자 요원 하나가 헬기로 달려갔다.

요원이 헬기에 올라타 조종석에 앉자, 건물 아래에서 드론 택시 한 대가 떠올랐다.

으챠.

드론 택시에서 재준이 옥상으로 뛰어 내렸다.

임재준?

그레이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재준이 양손을 벌리고 그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그레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요? 우린 만나면 언제나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 아니었나?”

큭큭큭큭.

그레이가 목을 긁는 소리로 웃었다.

“그랬지. 그랬어. 근데 치사하게 이게 뭔 짓이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난 선물을 가져왔길래 그대로 돌려보낸 것뿐인데.”

큭큭큭큭.

“그럼, 고든을 구워삶아서 도리어 여길 치게 만든 건가?”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에요. 고든은 지금 열심히 지하 서버를 파괴하고 탈출을 하는 중일 거예요.”

“지하 서버를 파괴하고?”

그레이가 아까 고든이라고 말한 요원을 바라봤다가 다시 재준을 봤다.

“아하, 이제 이해가 가네. 지금 고든은 게임 중인 거네.”

“게임……. 그렇죠, 일종의 게임이죠. 지금 고든 눈에 보이는 건 실제와 다르니까.”

톡톡톡.

그레이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을 두드렸다.

“고든 머리에 나노봇을 심은 건가?”

“우리가 그 분야에는 좀 남다르잖아요. 예전에는 주사기가 필요했는데 요즘은 호흡으로도 가능해요. 왜, 우리 청장님도 한번 해 보시려고요?”

“기회가 되면 경험하고 싶긴 하네.”

우지지지지끈.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한차례 출렁였다.

“청장님.”

그레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자 요원 둘이 부축을 했다.

하지만 재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다.

큭큭큭큭.

그레이가 다시 기괴한 소리를 냈다.

“설마 지금도 가상현실은 아니지?”

“글쎄요.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궁금하죠. 과연 당신 머리에는 나노봇이 없을까요?”

“궁금하군. 그리고 놀라워. 내가 임재준을 너무 과소평가했어.”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잘 알면서 왜 싸움을 걸었을까? 잘 알잖아요. 날 건드리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해도 상관하지 않는 거. 그냥 미국을 지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이때,

다다다다다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레이의 눈이 재준과 헬기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하하하.

재준이 그 모습이 너무 웃긴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난 그레이 당신이 여길 떠나는 걸 방해할 생각은 없어요.”

그레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인가?”

“그럼요. 알잖아요. 난 뒤에서 딴짓은 하지 않아요.”

“알지. 아주 잘 알지.”

“그런데 말이에요. 나도 저건 막지 못해요.”

말을 마친 재준이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을 바라봤다.

그레이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다다다다다닥.

쾅.

옥상 문이 부서지며 고든과 요원 셋이 튀어나왔다.

“왼쪽.”

고든이 고함을 치며 그레이를 보좌하던 요원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그리고 고든과 함께 올라온 요원들은 오른쪽을 담당했다.

탕, 탕, 탕, 탕.

순식간에 정리가 되자 고든과 요원들은 멈췄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큭큭큭큭.

그레이가 이 상황이 웃겨 죽겠다는 듯 몸을 들썩였다.

고든, 고든.

다시 재준을 바라봤다.

재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고든과 아이들은 내가 안 보여요.”

“난 뭐로 보이는 건가? 로봇?”

“아뇨. 그래도 인간으로 보이게 했어요.”

“그건 고맙네.”

다다다다다다.

헬기 프로펠러가 돌아간다.

조종석에 있는 요원이 그레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레이가 재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살겠다고 헬기로 뛰기 시작하면 고든이 움직이겠지?”

“당연하죠.”

“그 재밌는 광경을 관람료도 없이 지켜보겠다?”

“그건 좀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다고 지금 지불할 수는 없잖아요. 이미 엔딩인데.”

“내가 고든을 처리하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사는 겁니다. 난 좀 더 재밌는 구경을 하는 거고요.”

하하하하.

“역시 재밌어. 오랜만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네.”

“그러면 나한테 고마워해야겠네요.”

“그 점은 좀 고마워. 하지만 마지막은 내 방식으로 해야겠는데.”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그레이가 뒤돌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을 주워들었다.

철컥, 철컥.

슬라이드를 두 번 움직이더니 고든을 향해 걸어갔다.

하나.

멈춰있는 요원 머리에 총을 대고 거침없이 당겼다.

탕.

풀썩.

둘.

다른 요원의 머리에 총을 대고,

탕.

셋.

탕.

마지막.

그레이가 고든 앞에 섰다.

“고든, 서운해하지는 마. 원래 재난관리청은 재난을 막지 못하면 전부 죽는 게 맞아.”

고든의 고개가 그레이를 향해 돌아갔다.

“알고 있습니다. 청장님.”

“이제 현실로 돌아온 거야?”

“죄송합니다. 임무에 실패했고 수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탕.

그레이의 총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레이가 재준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임재준, 왜 너한테 싸움을 걸었는지 물었지?”

큭큭큭.

“우리 미국에게 있어 진짜 재난은 너야.”

그레이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댔다.

탕.

재준은 쓰러지는 그레이를 바라보았다.

쿠쿠쿠쿵.

건물이 옆으로 심하게 기울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치직 치치직.

재준의 형상이 노이즈를 동반하며 사라졌다.

***

프랑스 르 꽁께 해안.

고오오오오.

와작와작와작와작.

푸석푸석푸석푸석.

기계로 된 아이가 바다에서 걸어 나오자 주변의 모든 것이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괴물이다!

< 제455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6)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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