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51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2) >
뉴욕주.
헉, 헉, 헉.
“뭐야? 갑자기 왜 군인들이 나타난 거지?”
뉴욕을 중심으로 지하 경제를 장악했던 갱단 안토니오 패밀리의 두목 프란체스코 안토니오는 헐레벌떡 뛰어서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글쎄요.”
“괜히 나와서 이 고생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명품 샵은 개뿔 무슨 명품 샵이야?”
“보스도 좋아했잖아요. 아이들 모르게 둘만 가자고 한 게 누군데.”
“이게 진짜?”
“진정하세요.”
리노는 두 손으로 안토니오의 공격을 막는 척하며 말했다.
“근데 군인뿐 아니라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무장한 폭도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제기랄, 이래서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겠는데.”
“군인이 너무 깔려 있어요. 이 정도면 우리 아이들도 다 잡혔을지 몰라요.”
“재수 없게.”
빌어먹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토니오도 걱정이 되었다.
진짜 이 많은 군인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이때, 깜빡깜빡 가로등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머리 위가 확 밝아졌다.
“이게 뭐야? 웬 전기?”
그대로 모습이 드러난 안토니오와 리노.
이때,
갱단 놈들이 저기 있다!
군인 중 한 명이 안토니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리노, 뛰어.”
안토니오와 리노는 다시 골목 안으로 뛰었다.
우당탕.
골목 벽에 세워 두었던 박스 더미를 밀쳐서 쫓아오는 놈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둘은 절반쯤 부서져 있는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닥.
거의 옥상에 다다를 때쯤.
푸석.
으악.
낡은 계단 한쪽이 무너지며 리노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대로라면 아래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꽉.
아아아아아아.
안토니오가 손을 뻗어 리노의 머리털을 잡고 위쪽으로 잡아당겼다.
후두두둑.
계단이 허물어지며 잔해가 아래로 떨어졌다.
리노는 머리를 손으로 벅벅 긁었다.
“아, 아프잖아요.”
“이 새끼가 죽을 뻔한 놈 살려줬더니.”
리노에게 주먹을 들다 말고 계단 아래로 쫓아오던 놈들을 다시 확인했다.
다다다다닥.
“저놈들 계속 오네. 계단 없어진 거 알면 표정이 볼 만하겠는데.”
“저놈들 총 있어요. 빨리 피해요.”
“총? 그렇지. 군인이지.”
“빨리 피해요. 건너편 건물로 뛰어요.”
“아, 쪽팔리게 이거 쫓기는 그림이잖아.”
“잔말 말고요.”
안토니오와 리노는 부서진 건물의 옆 건물로 뛰었다.
그리고 한참을 건물과 건물을 뛰어다니더니 이내 힘이 다 빠졌는지 어느 건물 옥상에 널브러졌다.
후, 후, 후, 후.
“아, 진짜, 힘들다.”
“정말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한때 뉴욕을 장악하고 100달러로 시가에 불을 붙이던 우리였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놈의 허리케인. 이게 다 그놈의 허리케인 때문이야.”
후.
안토니오가 한숨을 쉬며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뉴욕시의 전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멀쩡한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폐허’가 적당했다.
“보스, 근데 전기가 다시 들어왔어요.”
“그러게.”
치직, 치치직, 정면 건물 외벽에 붙은 대형 스크린에서 CNN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오전 카멀라 해리스 대통령은 허리케인 피해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폭도들에 의해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 펜실베이니아주의 불안한 치한을 다스리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외 오하이오, 웨스트버지니아,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플로리다까지 계엄령을 확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Fuck the bitch.
안토니오가 CNN 뉴스를 보며 가운뎃손가락을 TV를 향해 들어 보였다.
“저거였네. 여기에 계엄령을 발동한 거야. 빌어먹을 어쩐지 군인들이 설친다 했다.”
“그런데 군인은 그렇다 치고 폭도들은 왜 덩달아 나타난 걸까요?”
“모르지. 이때다 싶어 한 몫 챙기려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야? 시가.”
안토니오가 손가락 두 개를 뻗자 리노가 얼른 시가 한 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불을 댕겼다.
뻑뻑, 후~~
안토니오는 귀찮은 듯 입을 삐죽이 내밀며 두꺼운 시가를 이빨로 물었다.
“근데, 리노,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계엄령 말이야.”
“저기 방금 말했잖아요. 치안을 위해서라고.”
“네 머리는 장식이냐? 지금 네가 보기에 여기가 치안을 내세울 처지야? 솔직히 허리케인 때문에 전보다 사건 사고가 훨씬 줄었겠다. 아니,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해? 일반 주민들은 대부분 북쪽으로 피난 갔잖아. 근데 왜 갑자기 계엄령? 우리가 빈 상점 물건 좀 털었다고?”
“그런가? 그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좀 둘러봐 봐. 뭐가 있나.”
리노도 주변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게 그 옛날의 뉴욕인가 싶다.
도시를 바라보던 중 아주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게 뭐야?
“보스, 저기 군인들이 사람들을 왕창 데리고 어디로 가는데요?”
“군인들이? 그럼 아까 폭도들을 잡은 거겠지.”
“근데 군인 옆에 폭도 같은 놈들도 있는데요.”
“어디?”
안토니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찡그렸다.
“아, 진짜 이놈의 노안. 안 보여.”
리노가 안토니오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게 돈 많을 때 그렇게 백내장 수술을 받으라고 말했는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보스.”
“왜?”
“가까이 가서 볼까요?”
“미쳤어? 그러다 걸리면 뼈도 못 추려.”
“아니, 잘 생각해 보세요. 여기 이거.”
리노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그게 뭐?”
“우리 뉴욕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도움을 요청하는 거죠. 그냥 ‘우리를 구해주세요’ 하면 올 놈이 하나라도 있어요? 하지만 저걸 찍어서 양념 좀 친 다음 사건을 부풀려서, ‘폐허 속에 홀로코스트’. 어때요? 그럼 언론이 몰려들고 그때 슬쩍 묻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토니오가 놀란 눈으로 리노를 빤히 쳐다봤다.
“오, 좋은데.”
“그렇죠?”
“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네놈 머리에서 이런 기발한 생각이 나오다니.”
“보스!”
“야, 소리 지르지 마. 그러다 들키겠다. 일단 건물로 이동하면서 가까이 가보자.”
“네.”
안토니오와 리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 군인들이 어딘가에서 계속 사람들을 데려와 큰 공터에 몰아넣는 걸 보았다.
도대체 저 사람들을 어디서 데려온 걸까?
드디어 가장 가까운 건물 옥상에서 눈만 겨우 내밀고 공터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어라, 눈에 익은 인물들이 여럿 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리노는 스마트폰을 꺼내 몰래 사람들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안토니오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들 알겠어요? 어디서 많이 본 사람 아니에요?”
“야, 확대 좀 해봐.”
“자, 자, 여기 이 사람들이요.”
“어디 보자…….”
엥?
“FBI 부국장이잖아!”
“네? FBI요?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부국장뿐이 아닌데. 어디, 이 새끼는 지부장 보좌 아냐? 이 개새끼 때문에 우리 애들 여럿, 하늘나라로 보냈잖아.”
“아니, 근데 왜 FBI가 여기 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다시 리노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다시 했다.
“보스, 이거 생각보다 일을 키울 수 있겠는데요?”
“맞아. 부국장 정도 되는 양반이랑 이야기하는 걸 보면 저 주변 인물들도 신분이 꽤 높은 거 같은데.”
“그렇죠. 설마 이런 식으로 뉴욕시 재건 회의 같은 건 아니겠죠?”
“군인한테 끌려와서 시 재건을 이야기한다고? 넌 머리가…….”
“알았어요. 알았어요. 농담이에요. 농담.”
“농담을 해도 재미는 있어야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이야기를…….”
“알았다니까요.”
흥.
리노가 안토니오를 외면하고 공터를 노려보았다.
그럼 왜 여기에 저 높으신 분들이 모여 있는 거야?
그나저나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언론이 올까?
이때, 갑자기 끌려온 사람들이 군인을 향해 삿대질하며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안토니오가 리노에게 물었다.
“왜 저런 거야?”
“글쎄요. 딱 보기에도 자진해서 끌려온 건 아니네요.”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그럼…….”
안토니오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군인들과 폭도들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총알이 날아가자 피와 살이 튀며 픽픽픽 사람들이 쓰러졌다.
안토니오는 너무 놀라 마른 침을 삼키며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리노는 정신없이 살육의 장면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거의 몰살이 끝나갈 무렵.
안토니오는 돌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리노는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담고 있었다.
“리노, 그만 찍고 숙여. 걸리면 끝이야.”
“잠깐만요.”
“빨리 여길 뜨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잠깐만요. 시체 처리하는 걸 봐야지요.”
“그걸 왜 봐. 태우거나 묻거나 하겠지.”
“그러니까 거기까지 봐야죠.”
“이 정신없는 놈. 그러다 들키면?”
“누가 여길 알아요? 아무도 몰라……. 이런 mother fucker.”
두두두두두.
헬기 한 대가 둘이 있는 건물 아래에서 올라오며 옆에 달린 총구가 지이이잉하며 움직였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리노, 뛰어.”
다다다다다닥.
드디어 헬기의 총구에서 총알이 퍼부어졌다.
탕탕탕탕탕탕.
총알 하나하나가 그들의 옆에 박힐 때마다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저기로.
안토니오가 옥상에 있는 작은 콘크리트 더미 뒤로 몸을 날렸다.
탕탕탕탕탕.
퍽퍽퍽퍽퍽.
콘크리트가 깨져 나가며 돌가루가 둘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제기랄, 이제 어쩌죠.”
“그러게 그만 찍으라니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아유, 너 때문에 이제 죽게 생겼다.”
리노는 이 사달은 만든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다 같이 죽는 거야.”
“뭐 하려고?”
“지금 촬영한 거 스위터에 올릴 거예요. 개새끼들 어디 너희는 무사한지 보자.”
리노가 스위터를 켜는 순간.
띠리리리링.
벨이 울렸다.
“뭐냐? 이 와중에 전화라니?”
“그러게요?”
“얼른 받아.”
“지금요?”
“저쪽에서 걸려온 걸지도 모르잖아.”
“우리 번호를 어떻게 알아요?”
“그럼, 뉴욕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가 흔하냐? 뭔가 있는 거잖아.”
아.
리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정면으로 뛰어내려.】
“뭐라고?”
【아래 드론 택시가 있다. 뛰어내려.】
당황한 표정을 한 리노가 안토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래 드론 택시가 있다는데요. 뛰어내리래요.”
“뭐? 드론 택시? 이 무슨 영화 같은 이야기냐?”
“모르죠.”
“믿어야 하는 거야?”
“모른다니까요.”
이때, 다시.
탕탕탕탕탕.
퍽퍽퍽퍽퍽.
콘크리트가 깨져 나가면서 이제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더 비좁아졌다.
“모르겠다.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죽는 건 사실인데, 그냥 뛰자.”
“보스, 빌딩에서 뛰어내리면 죽어요.”
“그럼, 여기서 총 맞으면 살고?”
다시.
탕탕탕탕탕.
퍽퍽퍽퍽퍽.
“더 이상은 안 돼. 나 먼저 간다.”
안토니오가 정면으로 치고 나가며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에이 씨. 같이 가요.”
리노도 뒤따라 달려서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으악.
턱.
건물 바로 아래 지붕이 열린 드론 택시에 떨어졌다.
위이이이잉.
두 명을 태운 드론 택시가 헬기의 공격에 대비하며 빌딩 아래로 하강하더니 다시 상승하면서 멀리 날아갔다.
< 제451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2)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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