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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450화 (450/477)

< 제450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1) >

카멀라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재준이 카멀라의 의외의 상태에 약간 민망해졌다.

반응이 너무 과한데.

카멀라가 재준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말은, 지금 고든이 제가 아는 고든이 아니란 말입니까?”

“지금 고든은 일주일 전에 새로 부임한 사람인데요.”

카멀라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 아침까지 나를 더듬던 놈이 가짜였단 말이야?

“그 말 사실입니까?”

“음,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면 알려줘야죠. ‘블랙’.”

【네.】

“그 고든은 지금 어디 있지?”

【감금되어 있습니다.】

“위치는?”

“위치는 알아요.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카멀라가 말을 가로채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과한 반응에 재준은 은근히 걱정되었다.

“조심하세요. 그레이가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데.”

“흉계요?”

이제 카멀라의 눈까지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럼, 저를 도와줘야죠. 지금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투마로우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말이 표독스러워 재준의 귀를 쿡쿡 찌르는 듯했다.

“약간 협박처럼 들리는데.”

“상관없습니다. 도와주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표정이 왜 저래?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생각해 보죠.”

“약속하세요. 도와주겠다고.”

“허, 거참. 너무 막무가내시네. 우린 그럴 시간이 없어요. 왜 남의 싸움에 내가 나섭니까?”

“흥, 내가 그레이를 죽일 겁니다.”

죽인다고? 이 사람들은 중간이 없네.

“죽이든 살리든 그건 대통령님이 알아서 하세요.”

재준의 말에 카멀라의 왼쪽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기다리세요. 다시 올 테니.”

“그럼요. 그레이와 거하게 한판 붙으면 응원은 할게요.”

카멀라가 일어섰다.

“아, 갈 때는 옥상으로 가세요. 드론 택시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밖에 기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흥.

카멀라는 재준을 다시 한번 무섭게 노려보고는 뒤돌아 엘리베이터로 갔다.

재준은 아직도 카멀라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든과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블랙’.”

【네.】

“카멀라와 고든과 무슨 사이야?”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뭐? 사랑?

“카멀라는 남편이 있잖아?”

【존재합니다.】

‘존재합니다’가 뭐야?

아무튼, 남편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고든이었다?

재준은 카멀라의 행동에서 수치심을 보았다.

그레이가 카멀라에게 원한을 사겠는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아이고, 그레이, 큰일 나겠네. 큰일 나겠어.

카멀라가 나가는 걸 확인한 윌켄이 들어왔다.

“대통령님 왜 저런 겁니까?”

“글쎄요. 기자들 밖에 있죠?”

“네.”

“갑시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죠.”

***

옥상에 올라온 카멀라는 대기 중인 드론 택시를 봤다.

성큼성큼 다가가자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다가섰다.

“대통령님, 안전을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시끄러워, 여기를 빨리 벗어나는 게 먼저야.”

카멀라는 드론 택시에 올라타고 택시 운전사를 노려봤다.

“내리세요. 우리도 할 수 있어요.”

“네.”

운전사가 내리고 비서실장이 운전석에 앉았다.

지잉.

문이 닫히고 비서실장이 운전석에 앉았다.

위잉.

드론 택시가 공중으로 부양하자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국방부 장관 연결해.”

“네.”

후.

대통령은 좌석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놀아나고 있었다, 이거지.

그레이도 임재준도 모두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거야.

그래, 그럼, 지금부터 대통령이 뭔지 보여줄게.

“대통령님, 국방부 장관 연결되었습니다.”

비서실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대통령에게 건넸다.

스마트폰을 낚아채고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국방부 장관님.”

-네.

“이 시간부로 허리케인 피해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특히 워싱턴과 뉴욕을 중심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이동하지 못하게 하세요.”

-대통령님, 계엄령이라뇨?

“같은 말 두 번 하게 만들지 마세요. 지금부터 그레이를 포함한 그 인간들, 그리고 그 세력을 지지하는 놈들, 모두, 다, 감시 대상입니다. 불법적인 요소가 털끝만큼이라도 발각되는 날엔 전부 감옥에 처넣으세요. 알아들었습니까?”

-네.

“그리고 특히, 당신, 그레이를 만나 한 번만 더 국정을 논하면 그때는 당신부터 남은 생을 감옥에서 썩을 줄 알아.”

-아, 네.

“그럼, 언론에 계엄령을 발포하고 당장 군을 풀어 지역을 봉쇄하세요.”

툭.

통화를 끊은 대통령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디 반격을 해 봐, 그레이.

네가 키운 호랑이가 네 목덜미를 무는 기분이 어떤지 너도 당해 봐.

카멀라는 비서실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먼저 시카고 빌라로 가.”

“네.”

가서 확인해야겠어.

만약 고든, 날 이용했다면, 너도 죽는다.

***

국방부 장관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레이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다니…….

정말 무서운 인간이야.

장관은 그레이와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카멀라가 임재준과 만났다면 그다음은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는 거야.

-카멀라가 그 정도 강심장이 되겠습니까?

-임재준이 그렇게 만들 거라니까.

-혹시 최면이나 약을 사용합니까?

-푸하하, 아니, 아니지. 그건 공포야. 공포는 어떤 때는 아주 강력한 저주를 걸기도 하거든.

-공포요?

-그렇게만 알아 둬. 카멀라가 무엇을 지시하든 그대로 따라줘. 계엄령을 선포해도 말이야.

-계엄령이라니요?

-이제부터 시작이야. 계엄령은 폭도들 때문이라고 대충 둘러대면 될 것이고. 우리가 만든 리스트에 있는 인물들을 전부 잡아들여 폭도로 둔갑시키면 돼.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있지 않으면 그냥 죽여. 인권이니 윤리니 따질 시기가 아니잖아. 어차피 언론에서는 방사능이다 나노봇이다 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테니, 국민들이 밖으로 나오는 일 따위는 없어.

-네.

큭큭큭큭큭.

국방부 장관은 대화 마지막에 그레이가 내뿜는 사악한 기운을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방금 나온 건물을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큰 사달이 날 것 같은데.

대충 상황을 봐서 뒤로 빠지는 게 나을 것 같아.

***

시카고.

FEMA(연방재난관리청) 비밀 기지.

“국방부 장관은 어때?”

그레이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가자미눈으로 고든을 바라봤다.

“네?”

“잘할 것 같아?”

“아니요, 가진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도 사람을 풀어. 허리케인에 피해가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닥치는 대로 약탈하라고 해.”

“네.”

“그리고 TV 좀 틀어봐.”

“네.”

고든이 재빠르게 CNN 뉴스를 틀었다.

[투마로우에서 나노봇을 해체하는 효소의 대량생산시설을 완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카리브’를 내려받은 스마트폰이면 주변에 나노봇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원리는 나노봇이 스카이링크와 주고받는 장파 라디오파의 고유 주파수를 감지하는 기술로……]

한참을 듣던 그레이가 손을 훠이 저었다.

“됐어, 이제 소리 좀 줄여.”

“아, 네.”

그레이의 말에 TV에 집중하고 있던 고든이 서둘러 TV 볼륨을 줄였다.

“효소에 장난질을 치지는 않았을 거고……. 저 ‘카리브’는 진짜 문제인데.”

그레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화면에 등장한 ‘카리브’를 노려봤다.

고든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애플 신형 스마트폰부터 ‘카리브’를 기본 앱으로 장착해서 나온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신제품이라……. 대단하네.

아직 자신들은 투마로우와 손을 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가?

“결국, ‘카리브’를 이용할 수밖에 없겠지.”

“저희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무슨 기회?”

“반독점 기업으로 몰아서…….”

“아유, 너도 참. 고든은 안 그랬는데. 고든이 됐으면 고든한테 뭐라도 좀 배워.”

“아닙니까?”

“반독점이 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카리브’를 대체할 수 있는 거 말이야. 있어? 대체할 만한 게 뭐 있냐고? 으이그, ‘카리브’가 나노봇의 존재 여부를 알려준다는데 그걸 막겠다고 설치면 국민들이 참 좋아하겠다. 참 좋아하겠어.”

“아, 네. 죄송합니다.”

고든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고든은 빌라에서 뭐 하고 있어?”

“자포자기하고 방 안에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 카멀라가 거길 찾아갈 텐데. 미리 좀 알려줘.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지. 갑자기 들이닥치면 얼마나 놀라겠어? 그래도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큭큭큭. 사랑이라니. 고든. 큭큭큭. 역시 재밌다니까.”

“근데 카멀라가 진짜 찾아가는 겁니까?”

“응, 지금 비서실장이 그리로 간다고 알려 왔어. 한 시간 안으로 도착한다니까 미리미리 준비 좀 하고.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 하니까, 그 아이 좀 데려와.”

“네, 알겠습니다.”

고든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레이가 못마땅한지 고든이 사라진 문을 향해 혀를 찼다.

쯧쯧쯧.

역시 구관이 명관이야.

***

시카고.

FEMA의 빌라.

쾅.

카멀라가 문을 거칠게 열었다.

빌라는 밖에서 보면 평범한 주유소로 위장되어 있지만, 지하로 10층이나 이어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문을 지키고 있던 요원이 카멀라를 확인하고 튀어나왔다.

“고든 어딨어?”

“지하 10층 4호실입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앞장서.”

“네.”

요원이 앞장서서 물품 보관 창고로 들어가서 허름한 문 앞에 섰다.

철컹.

거친 쇳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요원이 카멀라 일행을 확인하고 손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요원들끼리는 서로 말을 아꼈고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카멀라를 데리고 한참을 걸어가던 요원이 엘리베이터 앞에 멈췄다.

지문 인식으로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지잉.

고속으로 움직이던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멈추고 문이 열리자 긴 복도 양옆으로 작은 독방이 줄지어 있었다.

요원과 카멀라는 복도 끝에서 바로 앞에 4라고 적힌 방 앞에 섰다.

쾅, 쾅.

요원이 문을 두드리고 철문을 열자 쇠창살로 된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정면으로 앉아 있던 고든이 번쩍 눈을 뜨고 카멀라를 노려봤다.

“카멀라, 진실을 알고 온 거야?”

피식.

“너도 알고 있었어?”

“당연히 몰랐지. 내가 이 지경이 되는 걸 알았는데 가만히 있었겠어?”

“한 가지만 물어볼게.”

후.

고든은 숨을 크게 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었어?”

고든은 대답 대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그레이를 죽여도 되겠네.”

역시 이번에도 고든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카멀라가 결심이 선 듯 뒤를 돌아서는데.

위이이이잉.

멀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레이가 요원 둘과 고든, 그리고 여자 한 명과 함께 등장했다.

“카멀라,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그레이,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철컥.

총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탕.

카멀라의 머리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그레이 뒤를 따라오던 고든의 뒤에서,

철컥.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든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탕.

고든의 머리가 사라지며 그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 피곤해.”

저벅, 저벅, 저벅.

그레이가 카멀라가 흘린 피를 피해 고든이 있는 철장 앞에 섰다.

“다 된 것 같은데. 수고했어.”

저벅, 저벅, 저벅.

고든이 철장 앞으로 다가오자 철장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다신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사랑이 뭐야? 사랑이. 큭큭큭큭. 너 대신 괜한 고든만 한 명 죽였잖아.”

그레이가 죽은 고든을 내려다보며 고든의 어깨를 토닥였다.

< 제450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1)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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