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447화 (447/477)

< 제447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18) >

진코퍼레이션.

재준은 창가에 서서 핵융합 발전소와 ‘기억의 길’ 본당 주변에 만들어지는 끝없이 이어진 주택들을 바라봤다.

공중엔 수백 대의 드론이 바쁘게 배송을 하고 있었다.

이미 남부와 동부의 물류 체인은 박살 난 지 오래다.

드론이 유일한 물류 수단이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2,000km 떨어진 웨스턴 버지니아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워싱턴 DC다.

이제 하루 이틀이면 허리케인이 워싱턴을 지나 북대서양으로 사라진다.

워싱턴도 사라진다.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이주했다.

미국 1년 예산 6천억 달러로도 해결이 안 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경제적 손실만 있으면 괜찮으련만.

이 지옥도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신념을 이루려는 세력들이 등장했다.

비서실장과 도날드가 찾아왔다.

그레이가 대통령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했다.

그 새로운 세상의 밑거름으로 투마로우를 점찍었다.

좋은 의미의 밑거름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 투마로우를 썩어 문드러지게 하려 한다.

“보스.”

윌켄이 근심 어린 얼굴로 들어섰다.

“윌켄, 어서 오세요.”

“걱정됩니까?”

“뭐가요?”

“워싱턴이요.”

피식.

재준의 입가에 하찮다는 듯 미소가 지어졌다.

“윌켄, 실리콘밸리에 있는 알고리즘 기업들에 대해 LBO를 단행하세요.”

“전부 사들이려는 겁니까?”

“그것도 있고,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왕인지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굳이 왕위 쟁탈전을 하려고요?”

“우리가 언제 걸어오는 싸움을 피한 적 있나요. 오히려 누구한테 싸움을 걸었는지 분명히 알게 해 줘야죠.”

“후후, 알겠습니다.”

재준은 다시 창가를 바라봤다.

배가 고파봐야 빵의 고마움을 알지.

“‘블랙’.”

【네.】

“동부에 전기 공급하는 모든 발전소 중단시켜.”

【네.】

핵융합 발전소의 전기는 미국 전역에 공급하고도 남아돈다.

빵이 끊기면 와서 빌겠지.

“아빠.”

진이 알리샤와 함께 재준을 찾았다.

둘의 얼굴에도 역시 근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구석이 느껴졌다.

“진, 알리샤, 어서 와. 알리샤, 너 아주 핼쑥해졌어.”

“아저씨, 저만 이 상태가 아니에요. 연구실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이래요. 아주 영혼을 갈아 넣고 있다고요.”

“무슨 일인데?”

알리샤가 진을 쳐다보고 혀를 날름거린 후 다시 재준을 봤다.

“2018년에 어떤 회사가 소행성에 케이블을 내려 그 케이블을 중심으로 건물을 세운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어, 그래?”

“그래서 진이 이 프로젝트를 사들였어요.”

“뭐? 뭔 소리야?”

“진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건물이 공중에 붕 떠 있게 짓는다는 거지?”

“맞아요. 지구 중력에 의해서 일반 지상 건물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그런 걸 왜 만들어?”

“허리케인이 유럽에 상륙하면 유럽부터 아시아까지 그레이 구가 끊임없이 돌아다니게 될 거잖아요. 그레이 구의 진로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지역도 그레이 구가 지나갈 거예요. 건물을 지어봐야 언젠간 다 파괴되겠죠.”

“그래서 공중에 건물을 짓겠다는 거야?”

“그런 셈이죠.”

“아니, 지구 인구 80억 중의 80%가 유럽과 아시아에 살아. 근데 그 인간들을 어떻게 다 공중 건물에 살게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진이 달에 케이블을 달아 건물을 매달겠다는 거예요. 우린 이 미친 생각에 동조해서 영혼을 갈아 넣는 중이고요.”

“달……?”

아, 진.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정신은 차려야 하는데.

허리케인으로 인해 마음이 급해진 걸까?

그런데,

“너희들은 왜 동조한 거야?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야? 단 한 명도 반대가 없었어? 아니, 지구와 달까지 거리가 384,000km야.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 지구 둘레가 40,000km인데, 거의 열 배에 해당하는 거리를 케이블로 연결을 해서 건물을 매달아 논다고? 거기에 60억이 넘는 사람이 들어가 살고?”

“아저씨, 방금 소행성에 매단다고 했잖아요. 물론 가장 최종 목표는 달이지만 우선은 지구 주위를 도는 소행성이에요. 지구를 도는 소행성은 대충 25,000개, 그중에 가장 안전한 1,000여 개를 찾아 건물을 매달아 놓으면 돼요.”

“아, 안심이 안 돼. 바람불고 기온이 변하면 어떡해.”

“롤러코스터 같고 좋죠. 하지만 아저씨 같은 분들을 위해 알루미늄 기둥으로 100m 공중에 도시를 짓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알루미늄 기둥? 몇 개?”

“숫자에 민감하시네요. 하중을 견딜 수 있게 보통 사람 백 명당 한 개로 잡고 있어요.”

“백 명당 한 개? 그게 낫겠다.”

“우리도 그랬는데 진은 반드시 달에 매달아야 한대요.”

미치겠네.

“그보다 나노봇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진이 재준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병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도 나노봇을 사용하고 있잖아요. 자칫 나노봇을 무작위로 죽이면 저희 나노봇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위험해져요.”

“아, 그렇지, 우리 캡슐 사용자들도 나노봇을 사용하고 있네. 쉬운 게 하나도 없네. 하나도 없어.”

재준이 진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난 네가 죄인이다.

근데 알리샤 넌 무슨 죄냐?

***

다다다다다다.

방송국 헬기가 루이지애나 항공에 등장했다.

[여기는 루이지애나입니다. 여전히 거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불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 보이는 모습은 정말 처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태풍으로 도시에는 물이 들어차 있고 물 위로 거대한 쓰레기 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층은 나노봇이 무너뜨린 잔해가 모인 층입니다. 아, 그리고 잔해 중간중간에 죽은 사람이 보입니다. 미처 시체조차 수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기자는 서러움에 눈물이 울컥 올라와 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얼마나 더 비참한 모습을 봐야 합니까. 얼마 전부터 동부 지역 발전소가 중단되었습니다. 전기가 공급이 안 된 도시는 그야말로 거대한 무덤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점점 태양이 저물고 있습니다. 저 태양이 떨어지면 이곳은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정부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

라스베이거스 임시 대통령 집무실.

“도대체 전기는 왜 끊어진 겁니까?”

카멀라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장관들을 향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발전소는 거의 해안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허리케인으로 인해 대부분 기능을 상실했을 거라 예상합니다.”

“예상이라니요? 아직 실사도 안 한 겁니까?”

장관들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거길 들어가서 죽으라고?

“허리케인이 북대서양으로 빠지면 실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흡, 후아.

카멀라가 화를 참느라 숨을 길게 내뱉었다.

“좋아요. 의회는 언제 재개되는 겁니까?”

“그것도 허리케인이 빠지고 나면…….”

“그 사람들은 그러고도 국민의 대표라는 겁니까?”

“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도날드 하원 의장이 안건을 하나 전달해 왔습니다.”

“뭡니까?”

“의회를 사우스다코타에서 개최하면 어떠냐는 겁니다.”

“허, 어이가 없네요. 왜요? 아예 백악관도 거기에 새로 지으라고 하세요. 어차피 어딘가 지어야 하는데.”

“그렇게 반대만 할 건 아닙니다. 사우스다코타에서 의회를 여는 것도 괜찮은 생각입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인상을 주기에도 좋고요.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는 핵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은 아닙니다.”

“사우스다코타에 도날드와 미래당이 있습니다. 거길 기어들어 가서 치고받고 싸우자고요?”

짝짝짝.

“전 찬성입니다.”

그레이가 박수까지 치며 들어섰다.

장관 대부분이 그레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것들이.

카멀라는 지금 장면이 너무 맘에 안 들었다.

대통령인 내 앞에서 어디다 대고.

“뭘 찬성한다는 겁니까?”

“사우스다코타로 들어가는 거지 뭐겠습니까?”

그레이의 매서운 눈빛이 카멀라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지금은 도날드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들어가면 저희는 패하고 말 겁니다.”

으응?

그레이가 카멀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통령님은 벌써 선거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인정을 받는 데 신경을 써야 할 때 아닌가요?”

흠, 흠.

여기저기 장관들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너무나 뻔한 상황이라 아무도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이 없었다.

카멀라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호호호.

“무슨 말씀이세요. 마치 제가 선거에 나가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전 대통령 대행도 벅찬 사람입니다. 다만 사우스다코타에서 의회를 열면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미래당이 반대할까 그게 걱정일 뿐입니다.”

카멀라는 그레이를 노려보고 그 뒤에 있는 고든을 바라봤다.

고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참아.

그레이가 카멀라의 말에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미국을 생각하는 맘은 전 대통령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 마음을 국민이 왜 모르겠습니까? 사우스다코타 주민들도 환영할 겁니다.”

호호호.

“노련하신 청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하시니 분명 지금 이 고난은 반드시 극복하실 겁니다.”

흥.

카멀라가 그레이를 등지고 장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 생각을 말해 드릴게요. 사우스다코타로 의회를 여는 것에 대해 도날드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뜻이 맞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네.

장관들은 마지못한 대답을 하며 그레이의 눈치를 봤다.

허허허허.

“역시 대통령님은 현명하십니다.”

호호호호.

“감사합니다.”

그래, 네 뜻대로 도날드와 붙어주지.

하지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날이 네 제삿날이 될 거야.

***

[우리는 이날을 잊으면 안 됩니다.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 허리케인이 워싱턴 DC를 덮쳤습니다. 국회의사당도 백악관도 폐허로 변했습니다. 미국은 반드시 오늘을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기록해야 합니다. 과연 정치인 한 명의 선택이 미국을 대표하는 게 맞는 것인지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

사우스다코타.

미래당 회의실.

“정말입니까?”

미래당 대표의 말에 도날드는 어안이 벙벙했다.

“네, 의회를 사우스다코타에서 열겠다고 합니다.”

“거, 이상하네요. 반대할 줄 알았는데.”

“지금 동부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으니까요. 허리케인이 결국 워싱턴을 지나 북대서양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워싱턴이 사라졌습니다. 그들로서도 빠르게 정부 조직을 세워야 할 테니까요.”

“그럼 백악관도 여기에 만든다는 겁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의회가 있는데 백악관만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거 매일 눈뜨고 싸울 일만 생겼네요.”

에잉.

“안 싸우면 되지.”

서형길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어떻게 안 싸워?”

“한국엔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

“그게 뭔데?”

“개무시.”

< 제447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18)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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