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43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14) >
“더 밟아, 도날드.”
서형길의 격앙된 목소리가 운전하는 도날드를 닦달했다.
“알고 있어.”
“여기서 얼마나 가야 하지?”
“공항에서 기지까지 10분.”
“좋아, 이놈들 이번엔 반드시 손목을 부러뜨려야겠어.”
“반드시.”
도날드가 액셀을 거칠게 밟았다.
부아아아앙.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미친놈들, 허리케인 위에 핵을 떨어뜨리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뻔히 알면서.”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매번 그래. 허리케인이 오면 핵을 사용하자는 미친놈들이 꼭 있었다고. 핵을 떨어뜨린다고 허리케인은 멈추지 않아. 멈춘다 해도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상식을 초월해.”
“근데 저놈들은 왜 핵을 사용하는 거야?”
“뻔하지.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잖아. 그놈의 정치 놀음. 자기 면피용이란 말이야. 저기 보이는군.”
그들의 앞에 멀리 비밀 기지가 보였다.
끼이이익.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서형길, 서둘러.”
“왜 차를 앞에다 안 대는 거야?”
“저 앞에 댔다가는 요원들이 달려들 거야. 여긴 전에도 와봐서 알아. 대통령만 드나드는 비밀 문이 따로 있어. 가자고.”
기지는 작은 암벽을 깎아 만들어졌다.
도날드는 서형길을 이끌고 암벽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저기.”
하수도 같이 생긴 커다란 원형 구멍이 보였다.
서형길은 자기도 모르게 코에 손이 갔다.
하수구 아냐?
하지만 도날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한 것과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누구도 사용한 적이 없는 한적함.
얼마 가지 않아, 벽 쪽으로 잘 보이지 않는 문이 나오고 도날드가 열쇠를 꺼내 돌렸다.
열쇠?
서형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런 기지가 수동으로 작동한다고?”
“여긴 언제나 수동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어. 위급 시에 자동은 행동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야.”
“그것도 일리가 있네.”
철커덕.
열쇠가 돌리고 끼이익 천천히 문을 열며 안을 살짝 살펴보았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뿐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이놈들 이 문이 있는지조차 아직 모르는 것 같아.”
“대통령이면 다 아는 거 아냐?”
“이 통로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만 아는 거야.”
“그건 또 뭐야, 그럼 민주당 출신은 몰라?”
“그런 셈이지. 이 기지를 만든 게 공화당 대통령 때라서 우리끼리 공유하는 비밀이야.”
“정치인들이란.”
하여간, 정치인들은 정상이 아닌 건 확실해.
“이리로.”
도날드는 역시 하수도처럼 생긴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또 중간쯤에 놓인 잘 보이지 않는 문에 열쇠를 대고 돌렸다.
철커덕.
문이 열리고 도날드를 따라 서형길이 들어섰다.
작은 방.
어두웠지만 보안실 같은 느낌이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야?”
“기다려 봐. 대통령들은 각자 비밀이 있는 법이라고 했잖아.”
도날드가 전원 스위치를 올리자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면에 십여 대의 모니터와 컴퓨터 몇 대가 보였다.
“여기서도 대통령이 보는 화면을 같이 볼 수 있어.”
도날드가 스위치를 올리자 십여 대 모니터에 전원이 공급되고 각기 다른 CCTV 영상이 들어왔다.
“이거 기지 안에서 기지를 도청하는 거야?”
“다 그런 거지. 민주당도 공화당이 모르는 감시망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 두 당이 항상 절반씩 의석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거잖아. 저길 봐.”
도날드가 확신에 찬 동작으로 한 모니터를 가리켰다.
거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비서실장이 보였다.
“맞네. 대통령. 근데 이거 소리는 안 들려?”
“현장만 확인하면 되니까 소리까지는 안 되는 거로 알고 있어.”
“무얼 확인해야 하는 건데?”
“저기 가운데 있는 게 핵 발사 버튼이야. 버튼 덮개를 여는 순간 달려가서 현장을 덮치는 거지.”
핵이라니.
정말 쏘려는 걸까?
근데 저놈들 뭘 저렇게 심각하게 보는 거지?
저거 위성사진 아닌가?
“저놈들 위성 사진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볼 수 없는 거야?”
“아니, 우리도 볼 수 있어. 여기 어딘가 버튼이 있을 거야.”
도날드가 헤매는 사이 서형길 앞에 있는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마치 눌러보라는 듯.
꾹.
모니터 하나의 화면이 점멸하고 다시 밝아지더니 위성 사진이 떴다.
“된 거 같은데.”
도날드가 서형길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누르고 싶은 걸 누른 거야. 우연이지.”
“그래?”
“아무튼, 저 위성 사진, 현재 쿠바 동쪽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아냐? 근데 왜 저렇게 커? 원래 태풍은 다 저렇게 큰 거야?”
“가만있어 봐. 비교해 봐야지.”
도날드가 컴퓨터에서 허리케인에 대해 검색을 했다.
수십 장의 과거 허리케인의 위성 사진이 뜨자 모니터의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
“크다.”
“크다고?”
이럴 수가.
카트리나보다 크다.
도날드가 검색된 결과가 의심되는지 여러 번 번갈아 봤다.
결국, 확실해지자 예전 카트리나의 충격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으, 이건 심각한데.
자신의 머리털을 움켜잡았다.
서형길이 도날드를 보고 심각성을 깨달았다.
“얼마나 큰 거야?”
“커.”
“그러니까 얼마나 크냐고?”
“카트리나보다 커. 대충 비교해 봐도 훨씬 커.”
“뭐? 카트리나보다 크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하필 이런 시기에.
진짜 대통령이 핵을 쏘면 나노봇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서형길. 허리케인은 시계방향으로 진행해. 지금 진로가 루이지애나를 향하는 것 같아.”
“뭐? 바로 위가 아칸소와 오클라호마잖아.”
“어허, 저놈들 움직임이 왜 저래?”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비서실장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손가락으로 핵 버튼을 자꾸 가리켰다.
“막아야 하는 거 아냐?”
“당장…….”
도날드가 일어서려는데 모니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간이 없다니까.
대통령의 목소리다.
-아직 쿠바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멕시코만에 들어오면 그때 발사해도 늦지 않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목소리다.
“이거 소리는 안 들린다며. 갑자기 왜 목소리가 들려?”
“나도 몰라. 원래 들렸는데 우리가 몰랐을지도 모르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핵을 발사하려는 것 같아.”
“안 돼. 당장 가서 말려야 해.”
“잠깐, 조금만 더 들어 보고.”
도날드가 서형길을 잡으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쿠바를 벗어나서 발사하면 미국에 피해가 더 심합니다.
-대통령님. 지금 피해는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핵을 발사하면 남미의 나라들도 핵을 사용할 겁니다.
-남미에 핵보유국이 있습니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예전부터 시도해 왔습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쪽은 명분이 없습니다.
-대통령님. 허리케인이 방향을 위로 틀었습니다. 바로 멕시코만으로 진입합니다.
-뭐라고? 비키세요.
서형길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안 돼. 당장 가자.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진짜 핵을 발사할지 몰라.”
“따라와. 통제실로 가자.”
도날드가 거세게 일어나 문을 향했다.
다다다다다닥.
둘의 걸음이 빨라졌다.
하수구 같은 구간을 지나 문이 나오자 빠르게 번호를 눌렀다.
덜컥.
거칠게 문을 열자 어두운 복도가 나왔다.
“이리로.”
도날드가 앞서 걸어가고 서형길이 뒤를 따랐다.
얼만 가지 않아 군인 넷이 지키는 문이 나왔다.
“누구냐? 거기 정지. 거지 정지. 움직이면 발포한다.”
군인 넷이 일제히 총을 겨누자 도날드가 고함치듯이 소리를 질렀다.
“난 하원 의장이야. 전 대통령 도날드라고.”
군인 중 하나가 나머지 셋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군인들의 총이 제자리를 찾았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지금 안에서 핵을 발사하려고 한단 말이야. 비켜.”
“그래도 안 됩니다. 여긴 현직 대통령이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미친, 그럼 안에 들어가서 대통령에게 물어봐. 내가 왔다고 전해.”
군인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하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이때,
후다다닥.
서형길이 군인을 잡아채서 옆으로 밀었다.
“도날드 들어가 어서.”
눈치를 챈 도날드가 열린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우당탕.
결국, 도날드가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자 안에 있던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멍하게 도날드를 바라보았다.
도날드?
대통령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왜 저래?
설마?
도날드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핵이.
핵이 발사됐다.
“이런 미친놈들.”
“아니야, 우리가 그런 게 아니야. 시스템이 저절로 핵을 발사했어.”
“뭐라고? 그걸 변명이라고! 국방부 장관, 당신 이러고 살아남을 것 같아? 대통령이 발사하려면 말렸어야 하는 거잖아.”
“도날드, 진정해. 진짜야. 우린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았어.”
“그럼 저 발사 덮개는 왜 열려 있는데.”
“덮개만 열어 놓은 거야. 진짜 누르지 않았다고. 알잖아. 발사를 하려면 둘이 동시에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우당탕.
뭐야?
쒜애애애애액.
뒤늦게 들어온 서형길은 미사일이 날아가는 경로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저게 몇 기야…….
***
멕시코만.
콰콰콰콰쾅.
허리케인 한가운데 떨어진 핵 4기가 동시에 폭발했다.
핵이 폭발하면서 밖으로 공기를 밀어냈지만, 허리케인의 압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위로 솟구쳤다.
수증기가 위로 급격하게 올라가서 거대한 적란운을 만들었다.
허리케인의 크기가 두 배는 더 커져 버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멕시코만의 수면이 순식간에 줄면서 미시시피강이 빠른 속도로 바다로 유입되었다.
그 여파는 미시시피와 연결된 아칸소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의 흐름이 평소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증가하더니 미친 듯이 강물이 바다로 흡수되었다.
데미안은 흐름을 따라 미시시피강에 도착하고 이어 멕시코만으로 흘러 들어갔다.
엄마, 아빠.
기계로 된 몸은 물의 흐름을 타고 유유히 장애물을 피해 나아갔다.
엄마, 아빠.
데미안은 깊은 수심으로 가라앉아 허리케인의 핵으로 나아갔다.
미처 데미안을 따라잡지 못한 나노봇들이 허리케인에 휩쓸려 공중으로 비상했다.
공기 중에 흩날리는 풍부한 탄소는 거친 바람 속에서도 복제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허리케인은 거대한 나노봇 덩어리로 변했다.
허리케인이 루이지애나를 지나 미시시피, 그리고 지금껏 예상하지 못했던 앨라배마주, 테네시주, 버지니아주를 지나 워싱턴 DC로 향할 것이다.
이대로 뉴욕까지 갈 수도 있었다.
***
급한 호출을 받은 국무부 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정장을 차려입을 틈도 없이 밖으로 나와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순간.
끼릭.
쾅.
굉음과 함께 차가 전복되었다.
그리고 다시.
쾅.
2차 폭발이 일어나며 자동차는 불길에 휩싸였다.
애애애애애앵.
기다렸다는 듯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은 뉴스를 보며 입맛이 확 떨어졌다.
손을 살짝 들어 물 한 잔을 주문했다.
웨이터가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장관의 물잔에 물을 따라 주었다.
후.
지금 현안을 생각하며 한숨을 깊게 내쉰 재닛 장관이 물을 살짝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스테이크를 썰려는데,
덜덜덜덜.
몸을 떨더니 그 자리에 쿵,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애애애애애앵.
기다렸다는 듯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
훅, 훅, 훅.
기분 나쁠 때나 즐거울 때나 자신의 기분을 다스리기 위해 운동을 하던 법무부 장관 메릭 갈랜드는 오늘도 더러운 기분을 정화하기 위해 자주 가던 권투 도장을 찾았다.
오늘도 예비 운동을 하고 이전부터 알던 관장과 스파링을 시작했다.
퍽, 퍽, 퍽.
헉.
평소 관장의 모습이 아니다.
복부를 연속으로 얹어 맞자 호흡이 막히고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퍽, 퍽, 퍽.
허우적대는 메릭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관장의 손속은 매서웠다.
그, 그만.
하지만 관장은 멈추지 않았다.
퍽퍽퍽퍽퍽퍽.
정신이 흐릿해지며 삐, 소리와 함께 뇌가 정지했다.
애애애애애앵.
기다렸다는 듯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 제443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14)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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