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40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11) >
중국 우한시.
“그래, 알겠어. 수시로 보고하도록 해.”
툭.
크리스토퍼가 FBI 요원과 통화를 마치고 제프를 향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봐, 제프, FBI 보고에 의하면 지금 미국 내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이상한 기류라니?”
“그레이가 아서와 세르게이를 만난 후 앤서니와 빌, 마크를 만났다는 거야.”
“그게 왜 이상한 건데?”
“그레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인간이 아니야. 지난 40년 넘게 활동 없이 정보만 수집했다고. 그레이가 움직인다는 것은 미국에 재난이 닥칠 거란 걸 말해주는 거야.”
흥.
제프가 양쪽 입꼬리를 내리며 심통 맞은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 나만 망할 수는 없지. 미국 기업 모두 같이 무너져야 정부가 아마존에 공적 자금이라도 투입할 거 아냐?”
공적 자금?
“멍청하긴. 정부는 금융기관 아니면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아. 오히려 아마존은 정리해야 할 대상 1호라고.”
“과연 그럴까? 미국 이커머스 시장을 알리바바아메리카가 장악하도록 내버려 둔다고? 그러면 미국 대부분의 제조업이 중국 손에 떨어지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 어차피 미국 내 공장이 있는 기업은 미국에 세금을 내는 거야. 소유를 누가 하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알아. 하지만 과연 미국이 자신을 압박할 수 있는 키를 중국 손에 쥐여 줄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잘 생각해. 여차하면 중국에서 미아가 될 수 있어. 미국으로 못 돌아갈 수도 있다고.”
“그럼, 네 생각은 어떤데?”
“내 생각?”
크리스토퍼는 생각에 잠겼다.
하긴 제프나 나나 뭐가 다르다고.
어차피 미국에 버림받는 건 똑같은데.
“이봐, 제프. 구글과 애플이 왜 아마존 채무에 대해 보증을 선 거지? 너희들끼리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거야?”
음.
“글쎄. 딱히 문서로 된 합의서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서로 맡은 분야에 있어서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는 있지. 그래야 시너지가 발휘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시너지는 무슨 시너지야? 그런 거로 수백억 달러의 채무를 떠안는 건 말이 안 돼. 서로 비밀리에 진행하는 사업 같은 게 있는 거 아냐?”
“그런 게…….”
제프는 말을 하려다 말고 크리스토퍼를 쳐다봤다.
마치 아직은 말하기 싫다는 눈빛이었다.
다년간 FBI를 움직인 크리스토퍼가 제프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풉, 어이없기는.
“이봐, 제프, 우리 둘을 보라고. 이건 에이스 카드를 쥐고 있는 거와 같아. 1 아니면 11이라니까. 적군이 되느냐 아니면 아군이 되느냐를 결정해야지. 저쪽 셋이 너를 버리면 넌 꼼짝없이 당하는 거야. 거기에 나까지 없어 봐. 어떻게 할 건데?”
끙.
제프는 인상을 쓰면서도 고개는 끄덕였다.
그렇지. 이미 아마존 처리를 놓고 백악관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도 조커 한 장은 손에 들고 있어야 해.
“사실 그동안 4대 IT 기업이 같이 움직인 일이 많아. 정계에 로비할 때나, 서로 사업을 확장할 때도 서로 영역을 정했어.”
“그 정도로 수백억 달러를 보증한다고?”
“그리고……. 같이 비밀리에 같이 진행한 일이 있는데…….”
음.
크리스토퍼는 역시 FBI 국장답게 차분하게 제프의 말을 기다렸다.
“투마로우를 쓰러뜨리기 위해 몇 가지 일을 도모했어.”
“그 정도야 뭐.”
크리스토퍼는 제프가 편하게 얘기하도록 옆에서 별일 아니라는 듯 살짝씩 거들었다.
“그중 하나가 지금 중국에 퍼져있는 ‘블랏아웃’이야.”
“그건 이미 예상했어.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엄연히 사업인데. 오히려 중국 정부에 좋은 일을 한 거고.”
“그리고…….”
“그리고?”
크리스토퍼의 눈빛이 더욱 차분해졌다.
“중국 인민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인공지능이 있어.”
“데이터…….”
말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지만, 머리에선 커다란 징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딩.
이거구나.
14억 인구의 데이터를 수집했다면 미국이나 중국 둘 다에 엄청난 패로 쓸 수 있는 건데.
문제는…….
“어떻게 수집한 건데?”
“그게…….”
크리스토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확신을 주었다.
“크리스토퍼, 투마로우 캡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투마로우 캡슐이라니?”
“가상현실 말이야?”
“그게 왜?”
“캡슐에 접속하면 가상현실이 구현되지. 그게 일반 인터넷 회선으로는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응, 그건 언제 끊길지 모르는 광케이블로는 불안하지.”
“그러면?”
“저 우주에 떠 있는 스카이링크. 지금도 매달 수십에서 수백 대씩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는 인공위성이 캡슐의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어.”
“그게 뭐?”
“그게…….”
제프가 또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았다.
“괜찮아. 아마 저쪽도 자신들이 살기 위해 다 말했을지도 몰라. 너만 당할 수도 있어.”
“그렇지. 지금까지 나만 당했어. 맞아.”
크리스토퍼는 다시 제프가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결심한 듯 제프가 입을 열었다.
“캡슐을 접촉하면 뇌 속에 나노봇이 들어가. 그 나노봇이 스카이링크를 통해 가상현실을 만들어 주는 거야. 모두 나노봇을 가진 사람들은 투마로우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뭐?”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 황당한 이야기다.
“우린 중국 국민의 머릿속에 있는 나노봇으로부터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 저 스카이링크를 통해서.”
“누가?”
“인공지능이 신상정보에 대한 정보를 가려서 수집하지.”
“그게 어딨는데?”
“이 건물 지하.”
중국에 있다고?
“한번 볼 수 있을까?”
“그래, 이왕 알려면 확실히 알아야지.”
제프가 일어나자 크리스토퍼가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로 지하 5층까지 내려간 뒤 얼마쯤 더 걸어서 작은 문 앞에 도착했다.
제프가 보안 장치에 자신의 지문을 확인시키자,
덜컹.
문이 열렸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이 등장했다.
다시 홍채인식을 진행하자,
덜컹.
두 번째 문이 열렸다.
어두운 조명 아래 현란하게 빛나는 서버의 불빛들.
서버는 족히 가로세로 100m는 돼 보이는 공간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담담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게 중국 인민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제프, 이걸로 뭘 하려고 한 거야?”
“아마존 상품을 추천하려는 용도로 알고 있어.”
“그게 다야?”
“아직은 그렇지. 하지만 나도 이걸로 무얼 하는지는 알아.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고 집단을 흥분시켜서 중국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지.”
“여기 인공지능은 누가 관리하는 거지?”
음.
“데미안이란 천재가 관리했는데. 지금은 잠적했어. 지금은 그저 명령에 따라 계속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리하고 있는 게 다야.”
“데미안이 인공지능에 지시한 명령이 뭔지 알아?”
“그건 나도 몰라.”
“가만, 가만. 위쉬안. 그놈을 데리고 와야겠다.”
“위쉬안?”
“그래, 그놈이라면 이 인공지능이 무얼 하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크리스토퍼의 얼굴이 어느새 조명을 받아 기괴하게 변했다.
***
‘기억의 길’ 본당.
그레이가 떠나간 공간에는 침묵만이 남아 있었다.
빌이 앤서니에게 다가갔다.
“앤서니, 괜찮겠어?”
후후후.
“어차피 한 번은 마주해야 할 고난입니다. 어쩌면 더 잘 된 겁니다. 우리 힘으로는 신을 해방시킬 수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약점을 잡히게 돼.”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건드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신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겁니다.”
똑똑.
셋의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누구지?
누군가 노크를 했다는 것은 여기 룰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
스르륵.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잘 차려있은 남자 둘이 들어섰다.
“FBI에서 나왔습니다.”
마크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번엔 FBI라고?
그럼 앤서니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FBI 요원 둘이 앤서니를 바라보았다.
마크가 요원들 앞에 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크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다시 한번 물었다.
“국장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빌을 만나러 왔습니다.”
빌이 요원들에게 다가왔다.
“크리스토퍼가 나를 보자고 하던가요?”
“아니요. 국장님은 지금 중국에 계십니다.”
“용건을 먼저 듣고 싶군요.”
“위쉬안을 중국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요?”
“네, 인공지능을 수정한다고 하면 알 거라 했습니다.”
빌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제프가 다 털어놓았나 보군.
하긴 지금 제정신이 아니겠지.
데미안이 없는 지금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위쉬안이 들어서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위쉬안.
“미국에 있어 봐야 더는 할 일도 없는데. 고향이나 가봐야지. 그게 앤서니에게도 득이 될 것 같고.”
“괜찮겠습니까?”
앤서니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앤서니, 너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 볼게.”
“중국 정부가 쫓지 않을까요?”
“흥, 그놈들이 내 덕에 9억 달러를 꿀꺽했는데.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야지. 누가 알아? 나한테 1억 달러 정도 돌려줄지. 나보다는 네가 더 걱정이야. 국토보안부에서 또 몰려오면 어떻게 해?”
“그건 걱정 마세요. 저도 중국으로 같이 갈 거니까요.”
“같이 간다고?”
앤서니가 FBI 요원을 보았다.
“저희 둘을 중국으로 보내줄 수 있습니까?”
“잠시만요.”
FBI 요원 하나가 크리스토퍼와 통화를 시도했다.
“국장님, 톰입니다.”
-그래, 위쉬안은 찾았어?
“네, 그런데 앤서니가 자신도 중국으로 같이 간다고 합니다.”
-앤서니? 그놈이 왜 거깄어? 병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뭔가 일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오호, 그레이 그 늙은 여우가 또 일을 만들었나 보네.
“우리가 신병을 확보할까요?”
-미쳤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게.
“그럼, 거절할까요?”
-아니야. 둘 다 중국으로 보내. 우리가 패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아무도 모르게 빠르게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요원이 통화를 마무리했다.
“국장님이 허락했습니다. 둘을 중국으로 안전하게 보내드리겠습니다.”
후.
위쉬안이 이제야 안심이 된 듯 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네.”
“빌, 마크, ‘기억의 길’을 부탁합니다.”
“걱정 마, 앤서니. 여기는 우리가 잘 만들어 놓을게.”
“감사합니다.”
앤서니와 위쉬안이 FBI를 따라 멀어지자 마크가 빌에게 다가왔다.
“빌, 괜찮을까요? FEMA가 알면 우리에게 불똥이 튈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좋아할 거야. 앤서니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럼, 이제 임재준과 싸워야 하는 겁니까?”
“그것도 아니지. 백악관이 어떤 법안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도날드라는 카드가 있어.”
“도날드요?”
“그렇지. 그리고 서형길도 있고. 지금까지 일로 임재준과 딜을 할 수도 있지. 아마 이제부터 우리 움직임이 전부 그레이의 귀로 들어갈 거야. 이걸 적절히 노리면서 행동하면 돼.”
< 제440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11)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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