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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437화 (437/477)

< 제437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8) >

“아이고, 이거 만 달러짜리 술이잖아. 어서 한잔 줘 봐.”

“자, 한잔 받으세요.”

졸졸졸졸.

재준이 그레이에게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채운 뒤 잔을 들었다.

둘이 단숨에 들이켜고,

카.

감탄사를 뱉었다.

흥. 이 상황에 술이라니.

대통령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레이, 무슨 일로 셋이 보자고 한 겁니까?”

그레이가 한심하다는 듯 대통령을 바라봤다.

쩝.

“이제 쓸 카드가 없잖아요. 그럼 투마로우에 부탁을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뭐라고요?”

“거, 핵 버튼 누를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세요. 아직은 해결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지금을 놓치면 진짜 재난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지금 국토안보부가 다음 작전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하여튼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니까.”

“뭐라고요?”

“좀, 말 좀 들어요.”

그레이가 대통령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 능력 없는 국토안보부 장관은 잘라 버려요. 할 줄 아는 게 남 해코지하는 거밖에 없는 인간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어요. 솔직히 다음 작전도 소이탄이나 터뜨리는 게 다일 텐데.”

“그럼 FEMA에서 뭐 특별한 대안이라도 있습니까?”

“그러니까 투마로우에게 부탁을 하라고요.”

“부탁?”

대통령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재준을 노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봅니까?”

으휴.

대통령이 한탄 섞인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투마로우에게 고개를 숙이란 말이지.

그럼 나노봇을 처리하고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

투마로우를 적대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긴 하지.

“이러면 두 번째 부탁을 드리게 돼서 미안해서 그럽니다.”

갑자기 순하게 나오는 대통령을 그레이가 슬쩍 쳐다봤다.

어라, 첫 번째는 뭐지?

내가 모르는 둘만의 비밀이 있다고.

일단은 모른 척해주고.

“그럼, 정부가 정식으로 투마로우에게 권한을 주는 겁니까?”

“그러겠습니다.”

음.

“임재준 당신 생각은 어때요?”

재준은 둘을 번갈아 보았다.

“은근슬쩍 책임을 떠넘기시네요. 싫습니다.”

윽.

그레이가 뭔가 속에서 올라오는 걸 움켜잡았다.

이놈, 속에 보아뱀 백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았네.

그냥은 안 하겠다?

“책임 뒤에는 보상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 자리에서 대통령님에게 원하는 걸 말해 보세요. 국토보안부 장관 자리는 어때요?”

장관?

이 사람이 어디서 수작질을.

“하하하, 그러면 제가 투마로우 주식을 내놓아야 하잖아요. 사절입니다.”

“그럼 국책 사업이라도 하나 진행하는 건 어때요?”

“전 은행가이지 건설업자가 아닙니다.”

“좋아, 그럼 연준 의장.”

연준?

이 사람이 미쳤나.

근데,

“대통령님은 가만히 있는데 그레이 청장님이 왜 설치는 겁니까?”

오호라.

대통령의 승인도 받겠다?

그레이가 대통령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대통령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전…….”

잠깐, 잠깐.

“난 연준 의장이 된다고 한 적 없습니다. 괜히 허락하지 마세요.”

“한번 튕겨보는 거예요? 아니면 진짜 하기 싫은 거예요? 연준 의장이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인데. 솔직히 투마로우 투자은행이 유리하게 정책을 결정하면 지금보다 몇 배는 커질 수 있다고 보는데.”

와, 이 인간은 정말.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해도 되는 거예요?”

“아니, 뭘 숨길 게 있다고 그래요? 어차피 기업가는 자신의 기업을 키우는 게 목적일 텐데. 역사에 남을 만한 거대 기업으로 키우려면 정치와 손을 잡는 건 당연하잖아요. 지금 우리끼리인데 숨기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차라리 속을 드러내고 손을 잡아야 서로 든든하게 기댈 수 있습니다. 안 그래요? 대통령님.”

“아, 하하, 그렇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거, 봐요.”

재준은 그레이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온갖 사람은 다 만나봤는데 이런 인간은 또 첨이네.

지금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고 그 바보 밑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잖아.

사람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고 자기 맘대로 하겠다?

그럼 나도 패 한 장은 보여줘야겠지.

“장관이고 의장이고 됐고. 도와는 드릴게요.”

“오, 원하는 게 없다는 겁니까?”

“네, 없어요.”

“대통령님 괜찮으시겠어요?”

대통령이 그레이를 바라봤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임재준이 그냥 도와주겠다는데.

“저야 뭐.”

“정말 괜찮다고요?”

그레이가 두 번째는 다그치듯 물었다.

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거, 왜 자꾸 대통령님 곤란하게 물어봅니까?”

재준이 그레이를 다그쳤다.

이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자꾸 대통령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여기서 끊어주지 않으면 대통령은 꼼짝없이 당한다.

근데 저 멍청한 대통령은 그레이가 뭘 바라는지 정말 모르는 건가?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는 있고?

그레이가 당신 위에 올라서려고 하잖아.

재준과 그레이의 시선이 부닥쳤다.

“임재준, 정말 괜찮겠습니까?”

“하하하, 지금 제가 괜찮다는 말만 다섯 번을 들은 것 같은데. 청장님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저야 괜찮고말고가 어딨습니까? 두 분을 중재하는 거로 만족합니다.”

“아, 중재요. 그럼, 여기서 이만…….”

“아니, 잠깐. 의회는 풀어줘야지요.”

“의회요?”

이야, 이 인간, 의회는 자기가 잠가놓고 나한테 덤탱이를 씌우네.

“맞아요. 임재준, 부탁드립니다.”

대통령이 그레이 말에 동조했다.

이 인간은 또 뭐야?

“하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의회는 내가 풀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난 또…….”

난 또, 뭐?

뒤에 말을 하란 말이야? 이 늙은 여우야.

이야,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야.

나노봇이야 원래 해결하려고 한 거였는데 족쇄가 되어 버렸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채로 비밀 회동은 끝이 나고 대통령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레이가 재준을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떠났다.

***

대통령이 문을 나서자 비서실장이 달라붙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시죠.”

“가자고.”

띠링.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대통령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뒤로 쓰러지듯 등을 기댔다.

휴.

“물 좀 줘 봐.”

대통령의 표정을 살핀 비서실장이 물을 건넸다.

“저희가 따로 준비할 일이 있습니까?”

“글쎄.”

미팅에서 오고 간 대화를 기억해 보려 했다.

하지만 기억나는 건 투마로우가 나노봇을 처리해준다는 사실뿐이었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더라.

임재준 말대로 괜찮냐는 말밖에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나노봇은 투마로우가 처리하기로 했어.”

“요구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게 말이야.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요?”

“응, 없어. 자리를 원하지도 않았고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어. 맞아, 확실히 아무것도 원한 게 없어.”

“잘못 들으신 거 아닙니까?”

“아니야. 확실해.”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대신 조용히 처리해. 오늘 비밀 회동이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면 절대 안 돼.”

“네.”

***

그레이가 지하 주차장에서 대통령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하고 차에 올랐다.

“임재준이 또 들이대던가요?”

보좌관의 질문에 그레이가 눈을 살짝 치켜세웠다.

“대통령을 먼저 물어봐야지, 왜 임재준이야?”

“그 상원 출신 대통령이야 뭐 볼 게 있습니까. 하원이라면 몰라도.”

상원은 세습되는 관행이 있고 하원은 자수성가 인물이 많은 탓이다.

“이제 자네도 능구렁이가 다 됐어?”

“청장님만 하려고요.”

“이 사람이 아주 못됐구먼.”

“임재준이 뭐라 했습니까?”

“임재준…….”

만만치 않아.

하긴 그 많은 싸움에서 승자로 군림했으니 상대 속내를 읽는 거에 능하겠지.

“일단 내 제안을 받아들였어. 나노봇을 처리한대.”

“저희 계획대로 되는 거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

“어떤 문제입니까?”

“족쇄를 채우지 못했어. 요리조리 잘 피해 가더라고. 먹이를 흔드는데도 안 물었어.”

“예상은 했지만 앞으로 힘들겠는데요.”

“그렇지. 이제 대놓고 활개를 치고 다녀도 저지할 구실이 없어.”

“그럼 저희는 이만 판을 접을까요?”

“아니, 아직 나노봇이 사라지는 걸 못 봤는데 왜 접어?”

“그럼, 계획대로 ‘기억의 길’을 내세울까요?”

“거기에 아서와 세르게이도 포함해서.”

“다 같이 엮으시려고요?”

“응, 일단은 그래야겠어.”

“알겠습니다. 지금 아서와 세르게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그리로 가겠습니다.”

“벌써 왔어?”

“똥줄이 탔으니까요.”

“그래, 속도 좀 올려.”

“네.”

부아아아앙.

그레이를 태운 차에 속도가 붙었다.

***

FEMA 회의실.

“오래 기다렸습니까?”

그레이가 들어서자 아서와 세르게이가 일어났다.

“아닙니다.”

으챠.

그레이가 소파에 앉자 아서와 세르게이가 앉았다.

“그래, 이렇게 찾아온 거 보니까 결정을 한 것 같은데. 어디, 내가 임재준을 만나야 하는 거지?”

아서와 세르게이가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봐, 내가 알고 있는 거라면 국가기밀도 알려줄게.”

꿀꺽.

국가기밀이란 말에 아서가 마른 침을 삼켰다.

“임재준이 나노봇 재난을 일으킨 겁니까?”

오잉?

“예상 밖의 질문을 하네.”

“저희도 추측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그래? 음, 일단 임재준이 일으킨 건 아냐. 하지만 나노봇을 만든 건 임재준이 맞아. 정확하게 진이 만든 거지.”

“그럼, 누가……. 아닙니다.”

“왜 말을 하다 말어? 설마 정부가 일부러 뿌렸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면 우리 FEMA가?”

아서가 그레이를 보며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그거 너희들이 뿌린 거잖아.”

“우리가요?”

“그래, 데미안. 왜? 기억이 안 나?”

“데미안…….”

기억난다.

데미안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분명히 뭔가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언론을 보고 확인하라고 했고.

쯧쯧쯧.

그레이가 혀를 찼다.

“알고 있었지? 근데 믿고 싶지 않았을 거야. 혹시나 하고. 하지만 맞아. 너희들이 이 사태의 원흉이라고. 데미안이 만들게 돈을 댔잖아. 기억나지?”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일은 이미 벌어졌는데. 괜찮아. 아직 아무도 몰라. 우리 FEMA야 밖으로 정보가 새어나가는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자, 또 알고 싶은 게 뭐야?”

아서와 세르게이는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생각해둔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재난의 원흉이 자신들이라니.

“그, 그, 그러면 임재준이 그 일로 저희에게 복수하는 겁니까?”

“임재준이? 왜?”

“지금 저희 기업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투자은행이 하는 일이 탐나는 물건 허물어뜨려서 헐값에 사서 파는 거 아냐? 복수는 무슨 복수?”

“탐나는 물건이라니요?”

“아마존, 애플, 구글이 그럼 탐나는 물건 아냐? 전 세계에서 가장 탐나는 물건이지.”

“물건이요…….”

전에도 체스판의 기물 정도로 생각하는 줄은 알았지만, 우리가 진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마치 시장에 내놓은 상품으로 취급되는 거야?

“왜 물건이라니까 기분이 상한 거야?”

“그럼,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물어 봐.”

“임재준이 FEMA와 손을 잡은 겁니까?”

< 제437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8)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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