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36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7) >
빌과 헤어진다…….
헤어진다는 의미는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처음 목적은 중국 시장을 이용해서 미국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중국인의 데이터도 수집했다.
그런데 중국 시장을 장악했나?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래, 투마로우, 투마로우가 끼어들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투마로우 드론과 ‘카리브’가 중국 시장 선점을 어렵게 만들었고 제프가 중국 알리바바를 채권까지 발행해서 비싸게 인수하게 했다.
그리고 미국에 나노봇이 나타나더니 미국 시장까지 엉망이 되었다.
주가는 떨어지고 추가 채권을 발행하고 우리가 보증까지 서게 되었다.
여기구나.
보증, 이 부분에서 빌과 우리의 선택이 갈라지게 만들어졌어.
우리는 보증으로 투마로우에 끌려다녔지만 빌은 자유로워졌다.
허풍쟁이.
그레이는 분명히 빌을 허풍쟁이라고 했다.
말만 앞세우고 실제 행동을 하지 않는 인간으로 본 것이다.
“세르게이, 이제 이해가 되나?”
“이미 빌과 멀어진 것 같습니다.”
“이대로 끝나면 우리만 손해야. 우리만.”
“그러면 우리가 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자는 겁니까?”
“못할 것도 없지.”
왜? 왜 굳이 빌과 싸우려 드는 걸까?
“빌이 우리한테 잘못한 게 없잖아요.”
“혹시 우리가 무너지면 누가 가장 이득을 얻는지 생각해 봤어?”
우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경영진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물러나도 여전히 구글과 애플이란 브랜드는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러나면 누가 가장 이득을 챙기냐인데.
“설마 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건 투마로우야.”
“음, 그렇겠죠.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투마로우가 사업을 하지는 않을 거야. 어디로 팔아 버리겠지.”
이 정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주고 살 정도의 기업은 중국밖에 없는데.
“그게 빌과 무슨 상관입니까?”
“애초에 빌과 중국이 손을 잡은 거라면.”
“아서 너무 나간 거 아닙니까?”
“그리고 중국과 임재준이 손을 잡은 거라면.”
“뭐라고요?”
“그게 임재준이 미국을 자기 손에 넣는 방법이었다면.”
“정말입니까?”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나노봇이 투마로우에서 흘러나왔다고밖에 볼 수가 없더라고.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어 봐서 알잖아. 갑자기 기술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발전할 수는 없어. 지구상에 투마로우만 나노봇이 자가 복제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있어.”
“그건 데미안이 만든 거잖아요?”
“데미안이 만든 건 없어. 전부 진의 기술을 훔친 거에 불과해. 데미안이 뛰어난 건 그 애가 아이라서야. 어른들이 윤리에 얽매여서 하지 못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아이.”
“왜 이걸 지금 말하는 겁니까?”
“솔직히 그레이를 만났을 때 불현듯 떠오른 거야. 우린 임재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동안의 진행을 가만히 들여다봤지. 성장의 한계, 그리고 중국 시장. 잘 생각해 봐. 이게 뭐랄까, 원래 죽어야 하는 사람이 의학의 힘으로 겨우 숨을 붙들고 있는 느낌 같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기술혁신은 50년 주기로 이루어지는 건 알지?”
“50년이라면 지금이…….”
“맞아. 지금이 인터넷으로 시대를 바꾼 지 50년이 훌쩍 넘었어.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가 와야 하는데 그 시대로 가는 도중에 경제 위기가 닥친 거야. 그런데 이 새로운 시대를 누군가 강제로 끌고 가고 있어.”
“그게 임재준이라는 겁니까?”
“맞아.”
“그럼 빌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인가요?”
“당연히, 그리고 중국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을 거야. 자기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빌은 우리를 몰락으로 몰아넣을 자기 최면이 필요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믿지 못하겠어요. 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세르게이, 임재준이 걸어온 길을 보라고. 잘나가는 투자은행을 이끌어 가다가 갑자기 인공지능과 로봇에 미친 듯이 달려들었어.”
세르게이의 머리가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처럼 앵앵거렸다.
“우리도 인공지능과 로봇에 투자했잖아요.”
하하하하.
“나도 임재준에게 똑같은 소리를 했어.”
“그랬더니 뭐래요?”
“우리의 목적이 잘못됐다고 하더라고. 인공지능으로 상품이나 팔아먹으려고 하니, 인공지능을 개발하나 마나 한 결과를 만들었다고. 하긴 상품 팔아먹으려면 광고를 하는 게 낫지. 우리는 인공지능을 인공지능답게 사용하지 못한 거야.”
“그럼 임재준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재준의 역사를 되짚어본 세르게이는 미간을 한껏 구겼다.
제길, 도대체 임재준이 아프리카와 남미를 인공지능의 실험실로 삼았을 때 난 뭘 한 거지?
기껏해야 연구실에서 서버나 늘리고 있었으니.
그레이가 우리는 임재준에게 먹혀도 싸다는 말이 그 말이었어.
“좋아요. 그럼 빌하고 결별을 한다고 쳐요. 그다음은요?”
“또 그레이의 말 중에 곱씹어 본 게, 왜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에 그렇게 집착을 했을까였어.”
어?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과연 애플과 구글을 합친 것보다 값어치가 있을까, 또 다른 무언가 있는 걸까요?”
“우리가 이해한 다음 시대는 알고리즘으로 신용을 확보하는 시대잖아.”
“그렇죠. 그것 중 하나가 블록체인이고요. 서로가 모르는 상태에서도 믿고 금융을 발생시키는 기술이요.”
“그래,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 같아.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중국의 금융을 장악하는 게 그레이의 목표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FEMA에 그런 과학 기술이 있을까요? 우리가 본 그 회의실만 해도 7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데.”
“하지만 임재준과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그림이 맞아떨어지잖아. 우리 보증도 사라지고.”
“FEMA이 임재준과 손을 잡아서 무슨 이익을 얻는데요?”
“돈이겠지. 아닐 수도 있고. 그걸 확인해 봐야지.”
돈이라고? FEMA가 세워 진 지가 언젠데 겨우 돈?
“그럼, 임재준은 나노봇으로 일부러 재난을 일으킨 게 되네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
음.
세르게이가 번뜩 뭔가 생각 난 듯 아서를 바라봤다.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가지고 그레이를 다시 찾아가 보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나노봇이 더 번지기 전에 우리도 결단을 내려야 해.”
***
AAG 빌딩 66층.
“오늘 여기로 다 온다는데 괜찮으십니까?”
재준은 어깨를 들썩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통령과 그레이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재준과 미팅을 제안했다.
“보스, 정부가 원하는 건 알겠는데 FEMA가 원하는 건 뭡니까?”
“FEMA가 노리는 거요?”
윌켄의 질문에 재준이 되묻자 윌켄이 다시 물었다.
“네, 지금이 재난 상황이긴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잖아요.”
음. 나만 아는 건가?
“FEMA의 목적은 미국을 전체주의로 만드는 거예요.”
“네? 전체주의라뇨?”
“재난이 다가왔을 때 가장 효율적인 대처방법이 전체주의잖아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재난 상황에는 폭력이라는 편한 방법이 아직은 잘 먹힙니다. 전체주의와 폭력. 어째 잘 어울리지 않아요?”
보스!
“그게 뭐가 잘 어울려요?”
퀴니코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깜짝이야.
이 의심 환자는 꼭 설명을 해줘야 한다니까.
“그럼, 재난 상황에 공포에 쩔은 사람들이 잘도 말을 듣겠다. 인간을 너무 이성적이라고 보지 마. 그렇지 않은 사람이 90%가 넘어. 아니 99%에 육박할 거다. 네 목에 누가 칼을 대고 있다고 생각해 봐. 과연 네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마 시키는 대로 다 할걸?”
흠, 흠.
퀴니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보스, 일부러 나노봇을 방치하는 건 아니죠? FEMA처럼 공포를 조장해서 투마로우가 미국을 지배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으~~ 생각하는 거 하고는.
재준의 눈매도 날카로워졌다.
“왜? 그렇게 한번 해볼까? 만약 성공하면 내가 너를 뉴욕 시장으로 앉혀주마. 어때?”
헉.
“사절입니다.”
풋.
“됐다, 됐어, 장난할 기분도 아니야.”
“정말, 저 나노봇은 어떡할 거예요? 저대로 내버려 두면 진짜 위험할 것 같은데.”
“나노봇 없애는 방법은 진작에 개발했어.”
“정말요? 어떤 건데요?”
“사람의 백혈구에서 효소를 뽑아 탄소나노튜브를 분해시키는 것. 그러니까 기다려 봐.”
“그럼 얼마 안 있으면 나노봇이 전부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문제가 있어. 대량 생산이 안 돼.”
“대량 생산이 안 된다고요?”
“그래, 원래 몸속에 주입된 탄소나노튜브를 분해하는 용도로 개발된 기술이라서 나노봇의 숫자를 줄이는 거 외에는 효과가 없어. 숫자를 줄이면 뭐해. 금세 복제해서 늘어날 텐데. 한 번에 없애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니까. 기다려야 해.”
“이래저래 확실한 게 없네요.”
으휴.
퀴니코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너무 걱정 마.
윌켄이 퀴니코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를 하고 재준에게 질문을 했다.
“보스, FEMA가 전체주의로 몰아간다면 저희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글쎄요. 하지만 FEMA는 외계인 침공 정도는 돼야 재난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라 아직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전체주의로 몰아가도 그레이가 먼저 우리에게 제안할 거예요.”
“어떤 제안이요?”
“뭐, 우리 자산은 인정해줄 테니 우리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지 마라. 그 정도. 우리가 로봇이 너무 많잖아요. 아무리 국가를 장악해도 생산은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
이때.
띠링.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대통령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임재준, 정말 나노봇 안 막을 겁니까?”
다짜고짜?
“아니, 일개 기업이 정부의 일을 대신하라고요?”
“국가 재난 상황인데 본인들이 알아서 대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참나, 창피하지도 않나.
재준이 다른 팀원들은 물러가라고 손짓을 했다.
팀원들이 대통령을 한심하다는 듯 흘깃거리고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이보세요. 대통령님, 전에 한 번 도와줬으면 됐지, 뭐 힘들 때마다 남한테 기대려 하세요? 그리고 국토안보부가 작전을 펼치기 전에 나한테 한마디라도 했습니까? 다 실패하고 나서 왜 남한테 책임을 전가하려고 은근슬쩍 폭탄을 넘기는 겁니까? 막말로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나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대통령이 재준을 노려보고 있는데.
띠링.
그레이가 들어서며 둘의 분위기를 살폈다.
“아니, 벌써 한바탕 한 거야? 하하하.”
재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서 오세요. 일단 앉으세요. 술이나 한잔 드릴까요?”
“술? 그거 좋지. 어디 숨겨놓은 좋은 술이라도 있나?”
“있죠.”
흥.
“난 됐습니다.”
대통령이 재준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리에 먼저 앉았다.
“뭐, 그러시든지.”
재준이 중앙에 있는 바로 가서 위스키 한 병을 가져왔다.
슬쩍 상표를 확인한 그레이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 제436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7)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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