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32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3) >
라스 애니머스.
하늘에서는 수십 대의 드론이 무언가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방송사 드론부터 주요 기관의 드론까지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빌어먹을.
찰리 대위는 굳은 표정으로 대원들 앞에 섰다.
“모두 이번 작전을 숙지했을 줄 안다.”
“옛썰.”
“이번 작전의 생명은 정밀한 타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옛썰.”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나노봇이 우리의 공격을 이겨내도 강 하류에 있는 알루미늄 댐이 있다는 걸 명심해라. 우린 나노봇이 욘 마틴 저수지에 들어가지 못하게 무조건 막아야 한다.”
“옛썰.”
아칸소강에서 1km 떨어진 라스 애니머스에는 대규모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한 채 그레이 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2km 떨어진 강의 하류에는 거대한 알루미늄 댐이 건설되어 있었다.
임시로 강을 막고 있어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노봇의 방향을 바꾸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칸소강을 따라 길게 늘어진 나노봇의 행렬은 기존에 알고 있는 거대한 구모양의 그레이 구가 아니었다.
데미안의 속도에 맞추어 나노봇들은 물속의 탄소만 이용해서 자기 복제를 했다.
“500m에 접근했습니다.”
“모두 발사 태세.”
위이이이잉.
지대공 미사일의 방향이 컴퓨터에 의해 데미안을 따라 움직였다.
목표는 194번 도로가 아칸소강을 지점.
대규모 다리에 나노봇이 달라붙어 탄소를 갉아 먹는 그 순간.
“300m 접근.”
강의 폭이 넓어지며 물살이 느려지는 구간이다.
얼마나 많은 나노봇이 복제되고 있는지 강의 표면은 마치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 거품이 올라왔다.
“100m 접근.”
몇 km에 걸쳐 강가에는 파괴된 건물 잔해와 선박 조각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194번 도로 다리에 접근.”
푸석, 푸석, 푸석.
나노봇이 건물 다리에 붙어 다리의 하단부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아직이다. 좀 더 기다려. 다리가 무너지는 순간 일제히 포격한다. 화염방사기 출동 준비.”
지대공 미사일을 퍼붓고 이어 주변을 화염방사기로 정리하는 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푸석, 푸석, 푸석.
쿠쿠쿠쿠쿠쿠.
가운데 있는 기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발사.”
발사.
일제히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른 군인들이 발사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단 한 발의 미사일도 발사되지 않고.
지이이이이잉.
지대공 미사일의 방향이 후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시스템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해킹당한 것 같습니다.”
해킹당했다고?
안 돼,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찰리는 앞에 있는 지대공 화면으로 달려갔다.
Error!
라는 붉은 단어만 깜빡이고 어떤 키도 말을 듣지 않았다.
지이이이이잉.
지대공 미사일이 다시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철컥.
멈췄다.
찰리가 미사일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런 미친.
거기 알루미늄 댐이잖아.
안 돼.
쾅, 쾅, 쾅, 쾅, 쾅, 쾅.
슝, 슝, 슝, 슝, 슝, 슝.
천여 문의 포문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콰~앙!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장소가 처참하게 파괴되는 장면이 보였다.
이제 콜로라도 보다 열 배는 더 많은 양의 나노봇이 캔자스주를 잠식할 것이다.
그리고 캔자스를 지나면 미주리주다.
여기서부터 인구가 밀집한 미국의 동부가 시작된다.
***
FEMA.
“위쉬안 어딨어?”
그레이는 라스 애니머스 작전 실패를 화면으로 보면서 보좌관에게 말했다.
“‘기억의 길’ 본당에 있습니다.”
“저거 위쉬안의 작품이지?”
“네, 맞습니다.”
“국토안보부가 눈치챘어?”
“그럴 리가요?”
“그렇겠지.”
멍청한 놈들.
그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도시는 어디야?”
“200km 떨어진 가든 시티입니다.”
욘 마틴 저수지에서 가든 시티까지 200km.
그 사이에 주요 도시는 없다.
“국토안보부가 또 뭔가 해야 하는데.”
“다시 하지 않을까요? 만약 오클라호마까지 나노봇이 들어간다면 그 지역은 호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레이 구 크기가 급격하게 커져 버릴 겁니다.”
“그래, 거기 도착하기 전에 소멸시켜야 하는데……. 한심한 놈들.”
도저히 저런 주먹구구식으로는 나노봇을 이길 수가 없다.
거기에 위쉬안이 데미안을 막아서는 모든 전자 기기들을 해킹으로 소용없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나서야겠지?”
“앤서니가 좋은 명분을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백악관에서 저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말을 듣질 않아. 그렇게 풀어주라고 얘기를 했는데 기어이 일을 저지르네. 일을 저질러.”
“그리고 대통령은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핵을 사용하려고?”
“이 시국에 도박하러 갈 리는 없으니까요.”
“아휴, 차라리 도박이나 했으면 좋겠네.”
“저지할까요?”
“그럼, 진짜 핵을 쏘게 만들 수는 없잖아. 도날드에게 살짝 흘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날드는 그 위치를 알고 있을 거니까.”
“네. 그럼 다음 대통령은 도날드로 가실 겁니까?”
“누가 됐든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그저 미국만 건재하게 만들면 되는 거지. 정치하는 놈들이야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게 일인데.”
FEMA의 목적은 오직 미국.
그 외에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상관없다.
심지어 독재자를 등장시켜 전체주의로 모는 한이 있어도.
이때.
삐.
내선이 울렸다.
“왜?”
-청장님을 뵙고 싶어서 하시는 사람이 왔습니다.
“내가 지금 누굴 만날 처지로 보여?”
-아서와 세르게이라 물어보는 겁니다.
아서와 세르게이?
이놈들 급하긴 했나 보네.
근데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건가?
“그래? 회의실로 올려 보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째 이놈의 조직은 경비도 고분고분한 놈이 없어.
***
두리번, 두리번.
FEMA 회의실로 안내를 받은 아서와 세르게이는 앉자마자 방 안부터 살폈다.
“아서, 도청 같은 거 하지는 않겠죠.”
“글쎄, 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 만큼 폐쇄적인 기구는 없던 거 같던데. 이 안의 인테리어도 완전히 70년대 분위기잖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는 것 같아.”
“저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어요.”
평생을 첨단 과학 기술에 몸담았던 두 사람이 보기엔 구식도 이런 구식이 없었다.
이건 앤틱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구식인 거라고 생각했다.
끼이이익.
기름칠이 덜 된 문이 소리를 내자 아서와 세르게이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을 향했다.
나이가 70은 더 들어 보이는 노인이 중절모를 비스듬히 쓴 채로 들어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앉아 있는 아서와 세르게이의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 귀한 두 분이 어떻게 이런 초라한 곳을 다 찾아오셨을까?”
꿀꺽.
아서가 마른침을 삼켰다.
포식자다.
50년 가까이 쟁쟁한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기 싸움이라면 질리게 한 아서가 긴장했다.
“아는 분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곳은 FEMA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 시기에?”
“지금 같은 시기에 힘을 발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
툭툭 내뱉는 말이 그레이와 잘 어울렸다.
으차.
그레이가 자리에 앉았다.
“그 아는 분이 빌이지?”
“빌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내가? 왜? 그딴 허풍쟁이와 노닥거리게 생겼나?”
아서의 고개가 살짝 내려갔다.
빌을 허풍쟁이라고 부르네.
둘이 안 좋은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아니, 뭐 그런 거로 사과를 다 하고 그래. 물러 터졌어. 역시 임재준한테 먹히는 게 당연해.”
“네?”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닌가? 임재준에게 모든 걸 다 주게 생겼으니 내가 뭐 좀 해줬으면 좋겠다. 뭐 그런 거 아냐?”
“마, 맞습니다.”
아서와 세르게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들은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을 일구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이 마치 이들의 체스판에서 움직이는 기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임재준을 만나서 뭐라고 해주면 되는데?”
“저, 그게…….”
“당신들이 책임져야 할 보증을 없던 일로 해달라고 해줄까?”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못할 건 뭐야. 그만한 걸 내놓으면 되지.”
“저희가 뭘 해야 합니까?”
“데미안이 수집한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가져와. 그러면 임재준과 내가 담판을 지어줄게.”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이요?”
“응, 그거.”
응?
세르게이는 중국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떠올렸다.
그게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건가?
구글과 애플을 합친 것보다 더?
세르게이는 아서의 다음 말에 신경이 곤두섰다.
아서는 어떻게 대응할까?
“우리가 중국 데이터를 수집하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서는 세르게이와 다른 면에서 그레이에게 맞섰다.
“그걸 왜 몰라? 당신들 IT 기업이잖아. 데이터 수집이야 예전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그게 아니고, 중국 데이터 수집을 말하는 겁니다.”
하하하.
“아니, 바보도 아니고 수천 대의 서버가 우한시로 흘러 들어갔는데, 그걸 몰라? 뭐, 조사해 보니 판 것도 아니던데. 그럼, 데이터 수집이 목표잖아. 안 그래?”
“그렇군요. 저희는 숨긴다고 숨긴 건데.”
“미국이 정보는 기가 막히게 수집하잖아. 써먹질 못해서 그렇지. 자, 어떻게 할 거야. 그거 줄 거야 말 거야?”
“하지만 그 데이터는 아마존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어렵습니다.”
“그래?”
그레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럼, 아마존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다고?”
“아마존을 포기하는 순간 투마로우 채권을 갚아야 합니다.”
“아서, 당신은 포기했잖아.”
“네?”
뭐?
세르게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이건 무슨 소리지?
아서가 세르게이를 보고 다시 그레이를 보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임재준을 만났잖아. 만났는데 설마 서로 안부만 묻고 헤어진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둘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는 너무 뻔한 거 아냐?”
“넘겨짚지 마십시오.”
하하하하.
“그래? 그럼 그러든가. 암튼 아직은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넘길 생각이 없다는 거지.”
“그건…….”
“이렇게 생각이 많아서야 원. 이러니까 임재준에게 당한 거라니까. 임재준을 봐. 얼마나 일 처리가 빠른지. 아직 멀었어. 한참 더 당해야 할 거야.”
아서와 세르게이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아직은 아마존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으차.
그레이가 일어서며 아서와 세르게이를 바라봤다.
처음 볼 때 그랬듯이.
“이만 가 봐. 나중에 또 보게 되면 좋겠는데.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은. 나노봇이 이제 곧 동부지역을 덮치면, 미국은 계엄령이 발동할지도 몰라. 내수 시장은 얼어버리겠지.”
“계엄령이라니요?”
“뭐야? 모르는 거야? 당신들이 FEMA의 존재를 알게 된 게 무얼 뜻하는지 생각도 안 한 거야?”
쯧쯧쯧.
그레이는 문으로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아서가 세르게이를 바라봤다.
FEMA의 존재는 세르게이가 조사해서 알아낸 거였다.
“세르게이, FEMA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백악관을 출입하는 기관들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죠. 그런데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던 기관이 나타나서 좀 더 조사해 본 거고요.”
“FEMA가 왜 만들어졌는지부터 다시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
“그래야겠습니다.”
< 제432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3)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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