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31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 >
진코퍼레이션.
“저게 뭐야?”
재준은 드론이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진에게 물었다.
동영상에는 데미안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자살이라도 하는 건 아닐 거 아냐?”
“데미안이 아닌 것 같아요.”
“데미안이 데미안이 아니라고?”
“네. ‘블랙’.”
【네.】
“데미안이 인간인가?”
【안드로이드입니다.】
재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안드로이드?
이번엔 안드로이드로 변한 거야?
“아니, 자꾸 누가 살려 낸 거야?”
재준이 신경질적으로 ‘블랙’에게 물었다.
【알 수 없습니다.】
“뭐?”
재준은 ‘블랙’의 대답에 놀랐다.
‘블랙’이 모르게 데미안을 안드로이드로 바꿀 수 있다고?
그럼, 통신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 ‘블랙’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소린데.
“아빠, 지난번에도 제이콥의 의안을 수술한 건 IT 기업이었어요. 이번에도 그들이 했을 확률이 높아요.”
“진, 뭔가 이상해.”
“뭐가요?”
“나한테 아서가 찾아와서 모든 걸 포기한다고 했어. 그런데 데미안에 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거든. 이건 IT 기업이 한 게 아니야. 누군가 또 있어.”
“하지만 그 정도 기술을 가진 기업은 없어요.”
“그러니까 나도 궁금한 거야.”
안드로이드를 만들 정도의 기술이 우리 말고 또 있다고?
설마 FEMA?
아니면 엘론?
“아빠, 일단 데미안을 막아야 해요.”
“그래. ‘블랙’, 가능하겠어?”
【현재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놀란 재준의 소매를 진이 살며시 잡았다.
“물속에 있잖아요.”
“물속. 아, 물속. 그렇지 소이탄이 소용없겠네. 그럼 물 밖으로 끌어낼 방법은 없을까?”
“그전에 그동안 데미안이 어디서 수술을 받았는지 알아내야 해요. 거기 데미안을 물 밖으로 끌어낼 열쇠가 있을 거예요.”
“그렇지. ‘블랙’, 데미안이 어디 숨어 있었지?”
【‘기억의 길’입니다.】
“뭐? ‘기억의 길’?”
이건 또 뭐야?
앤서니가 IT 기업이랑 다시 손을 잡은 거야?
“그럼 앤서니가 데미안을 돌본 거야?”
【아닙니다.】
“그럼 누구야?”
【위쉬안입니다.】
아, 위쉬안.
그래, 위쉬안이 있었지.
“지금 위쉬안은 어디 있어?”
【위치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놈 봐라.
진짜 의심스러운 놈이네.
이거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전부 사라졌잖아.
앤서니는 감금되었고 다이로와 제이콥은 브라질로 떠났고.
위쉬안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설마 중국으로 들어간 건 아니겠지?
***
푸에블로.
아칸소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처음 만나는 도시다.
끼끼끼끼끼끼, 펑, 펑, 꾸루루루룩.
선착장에 있는 배들의 바닥이 뚫리며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푸석, 푸석, 퍽, 퍽, 퍽.
와르르르르르.
강을 막고 있던 댐이 무너지며 푸에블로 도시로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이미 콜로라도주 자체에 사람이 살지 않아서 인간의 소란은 없었지만 도시는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푸석, 푸석, 콰르르르릉.
링컨 스트리트를 이어주는 다리가 무너졌다.
퍽, 퍽, 퍽, 와르르르.
한때 강가에서 영업 중이던 상가들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전투 준비.
얼마 멀지 않은 곳인 고속도로 교차로에 수백의 군인이 방호복을 입은 채 화염방사기로 무장하고 데미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속도로 다리가 꽤 크다 보니 나노봇이 꽤 시간을 지체할 것이란 계산에 이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5, 4, 3, 2, 1.
발사.
수백 대의 화염방사기가 물을 향해 발사되었다.
당장이라도 강바닥을 드러낼 정도의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꽈드드드득.
군인들이 있던 지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뒤로 물러서. 땅이 꺼진다.
으아아아아악.
꽈드드드드득, 풀썩, 풀썩.
으아아아아악.
땅이 꺼지고 군인들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방호복 사이로 덜덜거리는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퍽, 퍽, 퍽, 퍽.
줄줄줄줄줄줄.
엄청난 양의 피가 아칸소강으로 흘러들었다.
첨벙, 첨벙, 첨벙.
끼리리리릭.
데미안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피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이는 건 흉측하게 보이는 기계 인간의 모습뿐.
끼리릭, 끼리릭.
고개를 몇 번 움직이던 데미안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첨벙, 첨벙, 첨벙.
그리고 아칸소강을 따라 번영을 누려오던 도시들이 하나둘씩 형체를 알 수 없게 폐허로 변해 갔다.
이제 콜로라도를 넘어 캔자스주로 넘어가고 있었다.
***
백악관.
[긴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캔자스주의 주민들이 나노봇의 위험으로부터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나노봇은 물살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강 하류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첫 번째 군의 대응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라스 애니머스 도시에서 두 번째 군사 작전을 펼칠 예정입니다. 만약 두 번째 작전도 실패로 돌아간다면, 나노노봇은 욘 마틴 저수지에 도착하고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겁니다. 절대 실패해서는…….]
픽.
TV 꺼지고 대통령은 두 눈을 감았다.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다음 작전도 같은 건가?”
“이번엔 미사일을 대동한다고 합니다만…….”
비서실장의 말끝이 흐려졌다.
아무래도 자신감이 떨어져 보였다.
“이번에 실패하면 욘 마틴 저수지에 도착하게 된다는 거지?”
“네, 그러면 핵이라도 사용해야 합니다.”
“투마로우 움직임은 없고?”
“아무래도 물이다 보니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 청장 불러.”
“네.”
비서실장이 나가려는 데.
“내 발로 왔으니 부를 필요 없어요.”
그레이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레이 청장님.”
대통령의 입에서 존칭이 튀어나왔다.
“앉아서 이야기 좀 합시다.”
그레이가 대통령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소파에 먼저 앉았다.
대통령이 입술을 깨물며 앞에 앉았다.
“투마로우에 맡기라니까 왜 나선 겁니까?”
“FEMA는 대책이 수립되어 있습니까?”
대통령이 과거의 잘못을 덮으려 먼저 치고 들어왔다.
“뭐, 과거 재난에 대한 대책은 있지요. 하지만 이런 재난에는 대응책이 있을 리 없잖아요.”
후.
“그럼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나노봇 덩어리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동 속도를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요.”
“속도를 어떻게 늦춘다는 말입니까?”
“라스 애니머스시에서 작전이 실패한다고 가정하면 욘 마틴 저수지 앞에 아칸소강과 푸르거토리강이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나노봇을 푸르거토리강으로 진로를 바꾸게 만드는 겁니다.”
“진로를 바꿔요?”
“그렇죠. 푸르거토리강은 160km의 황무지로 흐르는 강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단 말이죠. 거기서 나노봇을 소멸시킬 작전을 짜면 됩니다.”
“진로를 어떻게 바꿉니까?”
“지류가 만나는 지점에 알루미늄으로 강을 막으면 됩니다.”
음.
비서실장이 재빠르게 대통령 앞에 구글 지도를 보여주었다.
푸르거토리강을 따라 꽤 긴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이곳에 전략핵이라도 떨어뜨리면 되지 않을까?
대통령은 슬쩍 그레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레이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대통령을 주시하고 있었다.
쯧쯧쯧.
“시간이 없어요. 말은 쉽지만, 강을 알루미늄으로 막는 일입니다. 쉽지 않아요.”
대통령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실장. 당장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부서들 전부 동원해서 빨리 시작해.”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서둘러 나가고 대통령이 그레이에게 시선을 두었다.
“나노봇이 방향을 바꾸면 황무지에 전략핵을 사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핵이라…….”
그레이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사용하는 거야 말리지 않겠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후폭풍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겁니까?”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굴 말하는 거예요?”
“핵 사용 후 피해는 당연히 국민이 감당해야죠.”
“국민?”
이 인간도 정상은 아니네.
“내 말은 대통령 당신의 정치 생명이 다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핵을 자국에 사용한 대통령을 올바르다고 평가하는 언론이 있을 거라 보십니까?”
“네?”
“나노봇을 없앤다 해도 역사는 좋게 평가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뭐, 항상 있는 이야기지만 더 좋은 해결책이 있었는데 그걸 사용하지 않았다느니, 핵으로 인해 몇백만 명이 트라우마로 고통의 삶을 살고 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느니 하면서요.”
“그건, 내가 죽은 다음에 벌어질 일입니다. 정치는 현재가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미래에 누가 뭐라든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네요.”
이판사판이다? 나부터 살자?
그래,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지.
위기가 닥치면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절대 콜로라도를 벗어나게 하면 안 됩니다.”
이 한마디에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담겼다.
“그리고 앤서니를 석방하세요.”
“안 됩니다. 앤서니는 나노봇을 퍼뜨린 범죄자입니다.”
푸훗.
그레이가 대통령의 말을 대놓고 비웃었다.
“적당히 하세요. 더 끌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뭔가 있는 겁니까?”
“‘기억의 길’에 빌과 마크가 동참했습니다. 단순한 종교 집단으로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칩니다.”
“그래도 이미 다 발표한 일인데 어떻게 풀어줍니까?”
“그거야 포장하기 나름 아닙니까? 그런 거 잘하는 사람이 여기 널렸는데.”
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으챠.
그레이는 삐거덕거리는 허리를 쭉 펴면서 일어섰다.
“아이고, 나이가 드니까 이게 걸리적거리네. 이놈의 허리. 임재준한테 가서 임모탈 예약 좀 잡아 달라고 해야지 원. 대통령님, 전 이만 갑니다. 잘 처리하고 서로 볼일 없게 만드세요.”
대통령도 일어났다.
“그러길 바랍니다.”
쿵.
그레이가 나가고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띠리리리링.
“앤서니 사건으로 위장해서 처리합시다.”
대통령은 그레이의 충고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믿었다.
***
캘리포니아.
아서와 세르게이가 마주 앉았다.
“그러니까 빌은 이미 우리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말입니까?”
세르게이가 다급한 음성으로 아서에게 물었다.
“임재준이 한 말이니 가능성이 아주 높아.”
“임재준을 어떻게 믿습니까?”
“세르게이, 월가에서 임재준의 평가가 어떤지 알아?”
“월가요?”
“월가, 신용으로 먹고사는 인간들. 거기서 임재준의 말은 최고의 신용으로 통해. 상대를 잡아먹을 때도 절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법이 없다는 거야. 대놓고 잡아먹는 거지. 그러니까 임재준이 빌이 우리를 떠났다고 하면 진짜 떠난 거라고.”
“그런가요…….”
“그리고 실제도 그렇잖아. 우린 아마존으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봤지만 빌을 봐.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어.”
음.
세르게이의 눈매가 찌그러졌다.
“알겠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대처하죠.”
“그래, 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맞습니다.”
탁.
뭔가 생각난 듯 세르게이가 자신의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서, 전에 빌이 정부 안의 누군가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래, 알아봤어?”
“그게 사람을 풀어서 알아보니까. FEMA가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FEMA? 연방재난관리청?”
“네, 단 한 번도 어떤 행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아직도 주요 기구로 존재하고 있답니다.”
“재난관리라…….”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그게 뭔데?”
“FEMA 청장 그레이와 임재준이 만났다고 합니다.”
“뭐? 그럼 확실한 거네.”
“우리도 그쪽에 초점을 두고 움직여야 합니다.”
음.
아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 제431화 그걸 넘기면 어쩌라는 거야?(2)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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