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429화 (429/477)

< 제429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5) >

AAG빌딩 66층.

재준은 뉴욕항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거참 머리도 복잡해 죽겠는데, 왜 찾아오겠다는 건지.

아서가 재준과 만남을 원했다.

아마존의 매출이 또다시 급감해서 주가는 페니 스톡으로 전락했다.

중국 진출로도 그다지 성과를 못 내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주식은 6개월을 선행한다.

지금 주가가 내려간다는 것은 6개월 후에도 아마존은 답이 없다는 방증이다.

아서로서는 부채가 점점 불어나는 아마존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고 나를 찾아온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재준이 고민하는 사이.

띠링.

마침내 아서가 도착했는지 엘리베이터 벨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보는군요.”

재준은 아서와 악수를 하고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입니까? 나를 다 만나자고 하고.”

“아마존 때문에 왔습니다.”

“혼자?”

“세르게이는 일이 있어 같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뭐, 지금은 바쁠 때니까. 그래, 할 말이 뭡니까?”

후.

아서는 말하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아마존의 부채가 너무 많아져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투마로우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아, 아마존을 어떻게 할 건지 묻는 거군요.”

“네.”

“자기 자본을 잠식할 정도면 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마존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는데.”

“지금 중국에서 효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곧 매출이 발생할 겁니다.”

“그래요?”

“네.”

톡톡톡.

재준은 탁자를 두드리며 아서를 뚫어지게 보았다.

“아서, 우리 같은 투자은행은 정보가 생명인 건 알죠?”

“네?”

“우린 전 세계의 모든 나라를 한눈에 파악하고 있어요. 어디가 약한지.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 언제 나와야 하는지. 지금 전 세계가 다 어려워요. 특히 미국과 중국이 가장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의 어디가 제일 약한지 아나요?”

“소비가 살아나지 못해서…….”

쯧쯧쯧.

“그래, 소비가 왜 살아나지 못하는데요?”

“그건 ‘기억의 길’ 때문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원인 중 하나이긴 하죠. 설마 모든 게 ‘기억의 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미국과 무역 마찰로 인해 수출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될 겁니다.”

“그렇죠. 근데 전 세계가 다 물가를 잡으려고 시중의 돈을 회수하는데 중국은 반대로 가고 있는 건 아시죠?”

“돈을 풀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시장에 돈이 넘쳐납니다. 근데 왜 아마존은 중국에서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걸까요?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그럼 아마존이 중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과거에는 가능했어요. 미래도 가능할지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성공할 수 없어요.”

“지금은 왜…….”

재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존이 중국에 왜 진출한 겁니까?”

“그냐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니고요?”

“네?”

“중국에 진출하자고 처음 제안한 게 데미안 아닌가요?”

헉.

아서의 숨이 탁 막혔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우리만 아는 사실인데.

“14억 인구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아마존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했으니 당신들 눈이 확 돌아갔을 것 같은데. 특히 애플의 ‘시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거고.”

“임재준…….”

애초에 모든 걸 알고 있었어.

우리는 임재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거야.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결국은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간 꼴이 된 건데.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네요.”

“뭐가 문제입니까?”

“하긴 인공지능 개발 방향 자체가 틀렸으니 그걸 알 도리는 없었을 겁니다. 구글이나 애플은 인간과 자연스러운 대화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투자은행의 인공지능을 따라올 수가 없었겠죠.”

“우리 방향이 틀린 겁니까?”

“성공했으면 대박이었겠죠. ‘시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당신들이 상품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너무 단순했어요. 자신들이 만드는 상품을 파는 데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정작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상품을 등한시한 겁니다. 중국인이 가장 사고 싶어 하는 상품은 부동산이에요.”

“부동산…….”

지금 중국 부동산은 추락한다고 했는데.

“기업인이니까. 경제를 정확히 보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인정해요. 근데 몰라도 너무 모르네. 혹시 지금 중국 PIR 몇인지 알아요?”

“PIR라면…….”

PIR는 가구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을 말한다.

주식의 PER나 PBR과 비슷한 개념이다.

PIR 10이라면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하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 가격이 비싼 뉴욕이 10이에요. 서울이 17이고. 그런데 북경이 56. 하하하. 놀랍지 않아요? 56년을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답니다. 근데 사람이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100년은 걸린다는 의미예요.”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 미국과 중국의 수입은 몇 배인지 압니까?”

“이게…….”

“알고 있을 겁니다. 일곱 배죠. 일곱 배. 소득이 미국보다 일곱 배나 적은 나라의 부동산이 다섯 배나 비싸다……. 뭔가 와 닿지 않습니까?”

“우리가…….”

“멍청한 짓을 한 겁니다. 당신들은 아마존의 상품을 추천할 것이 아니라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지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줬어야 했어요. 부동산 살 돈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하라고 충고를 해야 했다고요.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면 방향을 똑바로 잡았어야지. 자기 상품 추천이나 하는 데 사용하다니.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습니까? 이제 알겠어요? 왜 아마존이 중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는지. 아무리 데미안이 중국을 점령하자고 제안했어도 방법은 당신들은 한 번 더 고민했어야 했어요.”

“우리가 그런 실수를…….”

하하하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그것도 세계 초일류 기업의 대표들이 고작 어린아이 말에 놀아난 꼴이 된 겁니다. 아시겠어요?”

후.

아서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뭘 하긴.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

“네?”

“당신들이 지지고 볶으면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어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해결할 수 있어요? ‘기억의 길’을 설득할 수는 있고? 나노봇을 죽일 기술은 있어요? 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거기 앉아서 죽을 건지, 아니면 투마로우에 가져오든지 그건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아마존 보증을 섰으니 회사의 절반 이상은 날아갈 테니까.”

아서는 멍하니 재준을 바라봤다.

우리가 정말 무너진 것인가?

이렇게 맥없이.

“그리고.”

재준의 이어지는 말에 아서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 전쟁에서 빌이 살아남은 건 알고 있나요?”

“빌은…….”

이상하게 빌의 말에 믿음이 안 간다고 느꼈는데.

이런 결말을 예상했다면 우릴 왜 말리지 않은 걸까?

“빌이 우릴 배신한 겁니까?”

“배신?”

“그럼, 아닙니까?”

“배신은 무슨 배신. 애초에 발을 빼겠다고 말했을 텐데. 기억 안 나요? 빌은 앤서니와의 대화 이후에 당신들과 다른 길을 가기로 했잖아요.”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요?”

재준은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여기 마이크는 당신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기 카메라는 당신들이 보는 걸 보여줍니다.”

“도청을 한 겁니까?”

“도청? ‘시리’가 있잖아요. ‘시리’가 보고 들은 걸 내가 보고 듣는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럼, 해킹을 한 겁니까?”

“해킹? 그렇게 말하면 그러네. 맞아요. 전 세계 모든 스마트폰을 해킹했네요.”

“네?”

“‘시리’뿐 아니라 당신들이 사용하는 모든 앱은 이미 우리 인공지능이 전부 데이터 처리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자, 이제 해킹을 했다고 치고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아서의 표정은 굳어서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하하하하하.

아서가 웃기 시작했다.

허탈하고 무기력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애플에 ‘시리’를 지우고 ‘카리브’를 심겠습니다.”

“음, 이제야 말귀를 알아들으시네.”

“단,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소원? 말해 보세요.”

“왜 빌이 우릴 버렸는지 알려주세요.”

“아, 빌.”

그래 그건 궁금하겠지.

그래도 버린 건 아닌데.

“빌은 앤서니와 같은 길을 가기로 한 겁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크와 손을 잡고 ‘기억의 길’을 키우고 싶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겁니다. 평화, 인류, 그런 거.”

“왜죠? 갑자기 왜 그딴 거에 관심을 두게 된 겁니까? ‘기억의 길’이 과연 그런 걸 달성할 수 있나요?”

“글쎄요. 그건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지켜봐야 한다고.

난 그걸 지켜볼 만큼 용서가 안 되는데.

***

찌리리릿.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유, 이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해.”

엘리자베스가 투덜거렸다.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를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느껴지는 감각은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이건 고통인가? 아니면 환희인가?

암튼, 지금 엘리자베스는 펜타곤의 시스템에 들어왔다.

“‘블랙’.”

【네.】

“난 왜 너처럼 동시에 여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는 거지? 난 기껏해야 한 곳밖에 들어가질 못하잖아.”

【알고리즘의 차이입니다.】

“그래? 내 알고리즘이 허접한 거네. 좀 바꿀 수 없나?”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알고리즘이라 바꿀 수 없습니다.】

쩝.

그래도 전 세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으니 이 정도도 대단하지.

엘리자베스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 나노봇이 나타나서 미국이 난리가 났다.

혹시나 하는 맘에 해결책을 찾아다녔고 결국 펜타곤 시스템에도 들어왔다.

슈웅.

펜타곤의 데이터 사이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엥?

“‘블랙’, 이거 전략핵을 준비하는 거 아냐?”

【맞습니다.】

“미친놈들, 미국 땅에 핵을 쏘겠다고?”

【나노봇에 대비하는 겁니다.】

“근데 핵을 발사하는 곳은 어디 있는 거야?”

【라스베이거스에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그 도박의 도시?”

【네.】

거참, 라스베이거스에서 핵실험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정말 거기에 있을 줄은 몰랐네.

“그쪽으로 데려다줘.”

【네.】

***

데미안이 아칸소강에 다다르자.

푸석, 푸석, 푸석.

땅이 들썩이며 데미안의 발밑으로 나노봇이 모여들었다.

데미안은 한동안 한자리에 서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푸석, 푸석, 푸석.

데미안은 나노봇과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갔다.

데미안의 주변이 무너져내리며 엄청난 양의 나노봇들이 주변을 갈아 먹기 시작했다.

저 앞에 강을 지키는 민병대와 군인이 보였다.

“야, 너 뭐야? 누가 여기에 접근하라고 했어. 어서 꺼져.”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샷건을 어깨에 걸치고 데미안에게 소리를 질렀다.

데미안은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말을 안 듣네. 하여튼 요즘 어린놈들은 두려운 게 없다니까. 야, 나가라고.”

데미안은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뚝 멈췄다.

민병대와 군인들이 모두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발밑에서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석, 푸석, 푸석.

그리고 민병대와 군인들의 몸이 덜덜덜 흔들렸다.

끄악.

데미안은 사지가 뒤틀리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갔다.

바다, 바다로 가야 해.

< 제429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5)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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